일본 최대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가 오는 8월부터 파격적인 재택 근무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단 2시간만 회사에 나오면 되고 나머지는 집에서 근무하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꼭 공장에서 일해야 하는 생산직 직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번 조치는 본사 전체 사원 7만 2천 명 가운데 종합직(인사·경리·영업·개발 등) 2만 5천 명에게만 적용된다. 또 입사 5년 이상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적용이 되는 대상 인원은 더 적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파격적인 것은 분명하다. 도요타는 왜 이런 재택근무를 시도하는 걸까.
남성 '육아'-여성 '계속 근무' 지원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육아 문제는 맞벌이 부부의 큰 고민이다. 올해 2월에는 30대의 일본 '직장맘'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보육원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라는 거친 제목의 글이었는데, 맞벌이 부부들의 큰 공감을 얻으면서 보육시설 부족 문제가 일본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것.
도요타의 이번 조치는 이런 보육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재택 근무를 통해 남성의 육아 참여가 크게 늘 수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 뿐 아니라 일본 공직사회에서는 이미 남성 육아를 장려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공무원에게, 근무 성적에 따라 지급하는 근면수당을 감액하지 않고 모두 지급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2014년을 기준으로 3.1%에 그친 남성 공무원의 육아휴직률을 2020년까지 13%로 높인다는 게 일본 공직사회의 목표다.
남성의 육아 참여가 늘면 자연히 결혼하거나 출산한 여성의 부담이 줄고, 직장에 계속 근무할 가능성이 커진다. 현재 일본 기업의 여성 관리직 비중은 11%로 유럽이나 미국의 20~30% 대보다 훨씬 낮다. 아베 정권은 여성 활약 추진법을 만드는 등 '여성이 활약하는 사회'를 슬로건으로 세우고 추진해 왔다. 도요타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재택 근무를 내세워 우수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초고령사회, 어쩔 수 없는 선택
65살 인구가 30% 가까이 육박하고 있는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부모를 간병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간병' 퇴직 문제가 심각하다. 일본 총무성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10만 명 가량이 부모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요타의 재택근무는 집 안의 환자나 노약자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직원들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노동조합 총연합회가 지난 4월, 40대 이상 노동자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최근 5년 안에 부모 등을 돌본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27.9%가 "일을 그만두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노인요양시설을 운영하는 '오릭스 리빙'이 지난해 9월 실시한 조사에서도 일과 가족을 병간호 하는 것이 양립할 수 있다고 답한 이들은 10%에 불과했고, 58%는 병행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아베노믹스와 발 맞추는 도요타
도요타의 파격적인 재택근무는 아베노믹스의 방향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앞서 아베 정권이 여성 인재 활용 중시 정책을 발표했을 때 도요타는 2020년까지 여성 간부를 지금보다 3배 많은 300명으로 늘리겠다고 호응했었다. 이번 조치도 지난해 말 아베 정권이 '간병 이직'을 없애겠다고 밝힌 뒤에 나온 것이다. 아베 정권이 발표하면 한국의 전경련 격인 게이단렌이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최대 기업인 도요타가 구체적인 계획을 내 놓는 형태다.
어찌됐든 도요타의 재택 근무 확대 정책은 일본의 다른 기업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 중 재택근무를 도입한 곳은 2014년 말 기준으로 11.5%인데 이 비율도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녀 보육 문제와 부모 간병, 여성 경력단절 등의 문제를 똑같이 겪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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