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인 식사비용 12%증가
나홀로 맛집 탐방 열풍
한끼에 1만엔도 기꺼이 지불
혼자 밥먹고, 고기굽고, 술 한잔
대형패밀리 레스토랑 시들
소규모 외식업체들 때아닌 호황
식당엔 1인석 칸막이 유형
29일 일본 도쿄 신주쿠의 음식점 ‘이치란 라멘’을 찾은 손님들이 칸막이로 나눠진 좌석에 앉아 ‘혼밥’을 즐기고 있다. ‘혼밥’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일본의 ‘혼밥 시장’ 규모는 연간 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진=최인준 기자.
#장면1.
“나를 위해서 건배!”
29일 오후 일본 도쿄 우에노역 주변 한 고기구이집. 회사원 노가미(36)씨가 1인용 화로에 올려진 소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은 뒤 생맥주 잔을 들며 혼자 말했다. 좌석 양옆은 도서관처럼 칸막이가 설치돼 있어 옆자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혼자 고기를 구워 먹더라도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설치한 것이다. 이날 66㎡(약 20평) 매장에 있는 25개 좌석은 전부 노가미씨처럼 혼자서 고기를 먹는 손님으로 꽉 찼다. 노가미씨는 “혼자 밥을 먹으면 단체 회식과 달리 속도를 조절하며 술과 식사를 할 수 있고, 2차를 가야 할 필요도 없어 좋다”며 “이런 장점 때문에 요즘엔 이런 히토리 야키니쿠(혼자 고기 구워 먹기)가 큰 인기”라고 말했다.
#장면2.
오사카에서 광고회사에 다니는 미요시(33)씨는 매주 금요일 시내 맛집을 홀로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리는 게 취미다. 지금까지 가본 가게만 300곳이 넘는다. 지난주에는 퇴근 후 꼬치구이집을 찾아 혼자서 1시간 동안 종류별로 음식을 맛보며 8000엔(약 8만4000원) 가까이 지불했다. 미요시씨는 “비록 술친구는 없지만 맛있는 안주를 즐길 수 있어 결코 외롭지 않다”며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을 혼자 발굴해 사진을 올리면 주변으로부터 동정이 아니라 부러움을 받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혼밥’(혼자서 식사하기)이 최근 일본에선 외식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외식 시장 전문조사연구기관인 핫페퍼외식종합연구소에 따르면 2014년 일본에서 ‘1인 외식 시장(저녁 식사 기준)’의 규모는 전년에 비해 3% 이상 증가한 총 3114억엔(약 3조2340억원)을 기록했다. 점심 식사까지 포함하면 일본의 전체 ‘혼밥 시장’은 우리 돈으로 연간 5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日, ‘혼밥이 대세’… 식사 비용도 증가
일본에서 혼밥 시장은 매년 커지는 추세다. 과거보다 결혼 시기가 늦어지면서 1인 생활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일본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기준 일본 전체 세대 가운데 부부 혹은 1인 가구는 54%가량이다. 일본 신세이(新生)은행은 최근 일본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점심을 혼자서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최근 들어선 삼각김밥·라멘 등으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것에서 벗어나 혼자 식사하는 데에 1만엔 내외도 기꺼이 지불하는 ‘작은 사치’가 늘면서 1인 식사비도 증가했다. 지난해 1인 식사의 평균 비용(저녁 식사 기준)은 1211엔(약 1만3000원)으로 전년에 비해 12% 증가했다. ‘애인 혹은 이성과 식사’(5.8%) ‘직장 회식’(2.3%)’ ‘가족’(1.5%) 중에서 가장 높은 식사 비용 증가율이다. 그만큼 일본인들이 혼자 식사하는 데에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쓰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나가키 마사히로 핫페퍼외식종합연구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엔 영업 등 외근 직종에서 활약하는 여성이 늘면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혼밥 경향이 강해졌다”며 “바쁜 세상일수록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식사 메뉴를 결정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 없이 언제 어디서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혼밥족을 모셔라
혼밥 인구 증가는 일본 외식 업계 판도를 바꿔나가고 있다. 스카이락 등 대형 패밀리 레스토랑 업체들이 주춤하는 사이 영세 외식 업체를 중심으로 혼밥족들을 겨냥한 간편식 메뉴 개발과 상품 출시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외식 업계는 ‘혼자서도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가게’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경쟁에 나서고 있다. 푸드코트 ‘에치카 오모테산도’는 가게 내 조명을 어둡게 해 혼자서도 편하게 머무르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고, 라멘 체인점 이치란(一蘭)은 좌석마다 칸막이를 둬서 손님이 혼자 식사를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에이비컴퍼니는 최근 닭꼬치 전문점 ‘닭꼬치 스탠더드’를 새로 오픈해 닭꼬치와 미니 라면을 120엔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1인 손님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외식 체인 업체 다이아몬드 다이닝은 일식당에 샐러드나 생선회 등 1인분 메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일본 최대 맛집 정보 사이트인 ‘구루나비’는 지난 6월부터 홈페이지에 ‘혼자서도 들어가기 쉽다’는 제목으로 혼밥이 가능한 전국 식당 3만곳을 소개하고 있다. 2011년 만들어진 ‘와쇼쿠야(和食屋)’는 1인 가구를 방문해 요리를 해주고 함께 밥을 먹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도쿄에서 1인 샤브샤브 전문점인 ‘샤브샤브 야마와라우’를 운영하는 다카시(56)씨는 “요즘엔 메뉴를 가리지 않고 혼자서 식당을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단체 손님 테이블보다 1인용 테이블과 좌석을 늘릴 정도”라고 말했다.
◇일본의 소비 패턴으로 정착
혼밥이 일본에선 이미 사회적 문화 현상으로도 자리 잡은 만큼 앞으로도 ‘혼밥 시장’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 높다. 혼밥을 주제로 다룬 드라마 ‘와카코와 술’ ‘고독한 미식가’는 혼자서 맛집을 탐방하는 스토리를 담은 내용으로 인기를 끌며 일본에서 혼밥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중년 직장인 남성이 혼자서 도쿄 맛집을 찾아다니는 스토리를 다룬 ‘고독한 미식가’는 원작 만화가 1997년 출간돼 그동안 1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호타 무네노리 미야기대학 식품산업학과 교수는 “1인 가구의 꾸준한 증가로 혼자서 맛집을 찾는 이른바 ‘고독한 미식’이라는 새로운 소비 패턴이 트렌드로 정착됐다”며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남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에 혼밥 시장은 더욱 발전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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