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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촌놈’ 최경주 골프 여행 24년
퀸스타운 밀브룩 골프장에서 지난 여행에 대해 술회하는 최경주. [사진 뉴질랜드오픈 조직위]
완도 수산고 학생 최경주는 성공하려면 섬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만난 한서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서울에 오면 챙겨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완도 밖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운동선수라 전학하려면 이적동의서를 받아야 했는데 학교에서 최경주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최경주는 선생님을 찾아가 읍소해서 전학할 수 있었다. 최경주의 아버지는 장롱 깊숙이 넣어뒀던 소 판 돈을 내줬다. 그렇게 그의 여행은 시작됐다.
“63빌딩 10층 이상 볼려면 돈 내야”
서울 친구 장난에 “얼마믄 된다냐?”
그린피 싼 뉴질랜드 첫 전지훈련
혹독한 훈련으로 우승하고 큰물로
미국선 골프장 못 찾아 실격될 뻔
다음엔 다른 선수 따라갔다 낭패
서울에서 그는 촌놈이었다. 한 친구는 “63빌딩은 10층까지는 무료로 쳐다볼 수 있는데, 그 위부터는 돈을 내고 봐야 한다”고 겁을 줬다. 최경주는 그 말을 믿었다. 9층까지 보고 나서 더 높이 보고 싶어 친구에게 “아야, 10층부터 볼라믄 얼마나 내믄된다냐?”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프로골퍼가 된 후 최경주가 첫 겨울 전지훈련을 한 곳이 뉴질랜드다. 1994년 말, 그린피가 싸고 골프 환경이 좋다 해서 남반구까지 날아갔다. 최경주는 “골프장에 나무가 많았다. 이런 곳에서 잘 치면 대회에 나가서도 잘 할 거라 생각하고 혹독하게 훈련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1995년 첫 우승을 했고 점점 더 큰 세상으로 갔다. 일본을 거쳐, 2000년 미국 PGA 투어로 진출했다. 여행의 가장 큰 덕목은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잘 안 된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최경주도 고생이 많았다. 2000년 미국 투어에 처음 갔을 때다. 당시엔 내비게이션도, 구글 맵도 없었다. 최경주는 영어를 못했고, 매니저 같은 사람도 없었다. PGA 투어를 여는 미국 명문 프라이빗 골프장들은 외부인을 꺼려 입구를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는다. 밀워키 주의 한 골프장을 찾는 데 2시간이 걸렸다. 최경주는 경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실격을 면했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말자고 다짐했다. 꾀를 냈다. 다른 선수를 쫓아가면 되겠다 싶었다. 새벽 6시에 나와 호텔 주차장에서 기다리다 일찌감치 나온 한 선수를 미행했다. 그 선수는 엉뚱한 고속도로로 20분을 가더니 쇼핑몰에 차를 댔다. 20분 후 분유와 기저귀 같은 것을 사 왔다. 최경주는 그를 따라 호텔에 다시 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경찰에 전화해 안내를 부탁했다. 최경주는 “미국에서 그렇게 고생할 때는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PGA 투어 8승을 할지 상상도 못 했다”고 웃었다. 최경주는 PGA 투어 상금만 3200만 달러(약 343억원)를 벌었다.
와카티푸 호수 옆 오버 더 톱 골프 코스에서의 최경주. [사진 뉴질랜드오픈 조직위]
그가 가장 아쉬워하는 여행지는 오거스타다. 마스터스 우승 기회가 몇 번 있었다. 2010년 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타이거 우즈와 1, 2라운드 때 같은 조에 편성이 됐다. 당시 우즈는 섹스 스캔들이 터진 후 잠적했다가 나타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늘에는 우즈를 조롱하는 문구를 단 경비행기도 날아다녔다. 그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최경주는 2라운드까지 6언더파 공동 3위로 우승 경쟁을 하게 됐다. 공교롭게도 우즈와 3라운드에서도 함께 라운드했다. 최경주는 “최종라운드 동반자가 타이거만 아니었으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3라운드 성적도 같았다. 마지막까지 우즈와 함께 쳐야 했다. 그 많은 갤러리와 카메라가 4라운드 내내 우즈와 최경주를 따라다녔다. 그는 10번 홀까지 버디 4개를 잡아 공동 선두를 달렸다. 아멘코너가 시작되는 11번 홀에서 문제가 시작됐다. 우즈의 티샷이 오른쪽으로 갔는데 갤러리는 엄청나게 많았다. 갤러리를 이동시키는 데 20분이 걸렸다. 바로 뒤에 챔피언 조 필 미켈슨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경주는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다. 버디를 잡아야 하는 파 5홀인 13번홀. 최경주가 215야드를 남기고 4번 아이언으로 2온을 노리고 어드레스를 했는데 갑자기 천둥 같은 함성이 들렸다. 미켈슨이 12번 홀에서 버디를 잡은 뒤 터져나온 갤러리의 함성이었다. 최경주는 어드레스를 풀었다. 시간은 더 빨리 가는 것 같았다. 스윙도 더 빨라졌다. 공은 그린 왼쪽 뒤 벙커에 들어갔다. 평소 공이 거의 안 가는 곳이었다. 연습도 안 해 본 곳이었다. 최경주는 스키장 슬로프 같았다. 조금만 길면 그린을 지나가 물에 빠지는 자리였다. 공을 세우려 깎아 쳤는데 좀 과했다. 공은 가파른 내리막을 앞둔 그린 경사에 멈췄다. 다들 버디를 잡은 이 홀에서 보기를 하면서 최경주의 그린재킷은 사라졌다. 최경주는 "그 때 내가 우승했다면 너무 교만해질까봐 하나님이 타이거 우즈와 4라운드 내내 함께 경기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표정에 아쉬움은 남는다.
[S BOX] 24년 만에 다시 찾은 뉴질랜드 … “우즈 이후 최고 스타 왔다” 환영
최경주는 최근 뉴질랜드 퀸스타운에서 열린 뉴질랜드 오픈에 참가했다. 프로골퍼가 된 뒤 첫 전지훈련지였던 뉴질랜드에 24년 만에 돌아갔다. 뉴질랜드 언론은 “타이거 우즈 이후 최고의 골프스타가 뉴질랜드 오픈에 참가한다”고 썼다. 최경주의 활약이 슈퍼스타급은 아니었지만 꾸준한 성적을 거뒀고, 메이저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경쟁을 펼쳤기 때문이다. 또 매너가 좋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최경주는 높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
최경주는 기자회견에서 “나도 섬에서 자랐다. 그래서 산과 바다를 잘 안다. 여름인데도 눈 쌓인 퀸스타운의 대자연이 경이롭다. 아름다운 뉴질랜드에 다시 오고 싶었다. 프로가 되어 들뜬 마음에 손에 피가 날 때까지 훈련한 24년 전 기억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경주는 여행을 많이 했다. “지난해 쌓은 항공 마일리지만 20만 마일(약 32만㎞)”이라고 했다. 지구를 8바퀴 도는 거리다. 19년간 PGA 투어에서 뛰었으니 산술적으로 150번 지구를 돈 거리를 여행했을 것이다. 어렵게 완도를 떠날 땐 상상도 할 수 없는 대장정이었다.
최경주는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미국 오거스타 내셔널과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타라이티 골프장”이라고 했다. 자연이 뛰어난 뉴질랜드에는 최근 타라 이티, 케이프 키드내퍼스, 카우리 클리프, 잭스 포인트 등 주목할만한 코스들이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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