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의열단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일본경찰 '초비상'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4월1일 13시12분    조회:241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 경성의 새벽을 뒤흔든 격렬한 총격전
의열단원 김상옥(사진=생각정원 제공)
"탕~탕~탕"

3.1운동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1923년 1월 27일 새벽.

조용한 삼판통(현 용산구 후암동) 주택가에서 총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이 곳에 은신한 의열단원 김상옥은 20여명의 종로경찰서 무장경찰들이 포위하자 양손에 든 쌍권총을 발사했다.

격렬한 총격전 끝에 김상옥은 먼저 종로서 유도사범이자 형사부장인 다무라를 사살했다.

이어 우마세 경부와 우메다 경부 등 여러명에게 중상을 입힌 후 총을 쏘며 눈 덮힌 남산으로 올라갔다.

일경은 군대까지 동원해 남산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김상옥은 왕십리에 있는 안정사에 들어가 승려에게 짚신과 장삼을 빌려입고 동지 이혜수가 사는 효제동 집에 은신했다.

이 곳마저 일경이 탐지해 4백명이 몰려와 겹겹이 포위하자 민가의 지붕을 뛰어다니며 3시간 동안 총격전을 벌이며 저항했다.

총알이 다 떨어지자 마지막 한 발을 자기 가슴에 쏘고 순국했다.

시신에는 11발의 총알이 박혀 있었다.

▣"쾅~" 폭탄이 터져 아수라장이 된 종로경찰서
총격전이 벌어지기 5일 전.

경성의 중심가에 버티고 서서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는 소굴이었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이 날아들었다.

동아일보는 이렇게 보도했다.

"12일 밤 8시 10분에 종로서 서편 모퉁이 길에서 어떤 청년이 경찰서 창문을 향해 폭탄 1개를 던져 '쾅'하는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폭탄이 터지자 종로네거리는 물론 부근 일대에서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숙직 경찰들은 대경실색하여 수색에 나섰는데, 피해는 서편으로 난 유리창 두어개가 깨졌고, 폭탄이 터질 때 지나가던 행인 5명이 파편에 맞아 다쳤다"

번화가 한 가운데 있는 경찰서에서 폭탄이 터지자 일본경찰은 아연실색했다.

수사선상에 3년전 암살단을 조직해 사이토 총독을 암살하려다 도주한 테러리스트 김상옥이 떠올랐다.

종로서를 폭파하고 사이토 총독을 죽이기 위해 국내에 잠입한 김상옥은 이렇게 장렬하게 조국광복을 위해 순국한 것이다.

▣일제 통치의 상징 '조선총독부'에 날아온 2개의 폭탄
광화문에 중앙청이 세워지기 전 남산 기슭 필동에 있었던 조선총독부 건물. 폭탄이 터질 당시에는3대 총독인 사이토 마코토가 부임해 있었다. (사진=생각정원 제공)

조선총독부 휘장(사진=생각정원 제공)

1921년 9월 12일 오전 10시.

전기공으로 가장한 의열단원 김익상은 왜성대로 불리는 조선총독부 정문에 들어섰다.

무장헌병이 "누구냐?"고 묻자,"전기 고치러 왔습니다"고 답하며 통과했다.

건물에 들어서 2층에 올라가자 재빠르게 2개의 폭탄을 사무실에 던졌다.

'쾅~'하는 요란한 폭발음에 이어 유리창 깨지는 소리,비명소리와 함께 희뿌연 연기와 화약냄새가 건물에 가득하게 퍼졌다.

하나는 폭발했지만,다른 하나는 불발탄이었다.

폭발로 창문.벽.바닥 등 건물 일부가 부서졌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폭탄이 터진 회계과장실은 직원들이 업무차 방을 비웠기 때문이다.

비서과 인사계실에 던진 폭탄은 스즈키 뺨을 스치고 책상 위에 떨어졌지만 폭발하지 않았다.

폭탄을 던진 김익상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급하게 올라오는 헌병과 경찰들에게 유창한 일본말로 "위험하다~ 올라가면 안된다"고 외치면서 유유히 정문 밖으로 나갔다.

충격에 빠진 일본경찰은 서울과 경기도에 비상경계령을 내리고 검문검색을 벌였으나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일주일 후.

베이징의 천안문 남쪽 부근의 민가에 모여 있던 의열단원들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청년을 보고 벌린 입을 닫지 못했다.

신문보도를 보고 총독부 폭탄테러가 성공한 것을 알았지만 그가 무사히 그들 앞에 나타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것이다.

김익상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의열단원들 모두 그를 껴안고 뜨겁게 환영했다.

잇따른 총격에 '혼비백산' 도주하는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
상해 황포탄의 현재 모습. 의열단은 이 곳에서 전 육군대신 다나카 대장을 죽이려고 3차례 저격했지만 실패했다. (사진=위즈덤하우스 제공)

조선총독부에 폭탄이 터지고나서 6개월이 지난 1922년 3월 초.

의열단 김원봉 단장은 상해에 의열단원들을 불렀다.

일본 육군의 실세 다나카 기이치 대장이 싱가포르와 홍콩을 거쳐 상해에 온다는 정보 때문이다.

그런데 오성륜.김익상.이종암이 앞다투어 "내가 처치하겠다"고 자청했다.

누구도 양보하지 않아 결국 3명 다 가담하기로 하고,다나카가 배에서 내릴 때 오성륜이 1선을 맡아 저격하고,실패하면 김익상이 차로 가는 그를 저격하고,이마저 실패하면 차에 탈 때 이종암이 확인 사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1922년 3월 29일,기선이 상하이 황포탄 공공부두에 도착하자 다나카는 마중나온 인사들과 악수를 나눴다.

그때 오성륜이 권총을 꺼내 발사했다.

그러나 총알은 그 옆에 선 영국여인을 맞췄다.

이어 2선의 김익상이 승용차로 도주하는 다나카에게 권총을 발사했지만,그의 모자창만 뚫었다.

김익상은 폭탄을 꺼내 그를 향해 던졌으나 불발이었다.

그러자 3선의 이종암이 군중을 뚫고 나가 다나카가 탄 승용차에 폭탄을 던졌지만 또 불발이었다.

이종암은 재빨리 외투를 벗어버리고 군중 사이로 몸을 숨겼지만,오성륜.김익상은 일본경찰과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일본영사관 경찰서로 끌려간 두 사람은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조사 도중 김익상이 조선총독부 폭탄투척사건의 주인공으로 밝혀지자 일제는 경악했다.

그 와중에 오성륜은 일본인 죄수와 함께 영사관 감옥을 부수고 탈출해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을 떠난 일본 공안당국 수뇌들의 회고담에는 공통된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 독립군 1개 사단보다 의열단의 폭탄이 더 무서웠다"

노컷뉴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72
  • 부산포해전 후 친구 강응황에게 보내…의병장 최균 가문서 소장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좌수영 수군은 조선 수군의 주력부대가 돼 경상남도 연안에서 왜군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었다. 거제 옥포해전, 사천 사천포해전, 통영 당...
  • 2014-05-26
  •   2년여간의 수복작업을 거쳐 심양시 황고구에 위치한 일본전범 재판 특별군사법정 유적진렬관이 5월 18일에 국제박물관의 날에 맞춰 정식으로 대외에 개방됐다.1956년, 중국정부에서는 이곳에 특별군사법정을 세우고 위만주국 국무원 총무장관을 지낸 다께베 로꾸조(武部六藏)와 륙군중장 후지따 시게루(藤田茂) 등 ...
  • 2014-05-19
  • 뉴욕매일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에 아르헨띠나에서 사상 가장 큰 공룡골격화석을 발견했다. 과학가들은 이 공룡의 품종이 뢰룡으로 체중이 17만파운드에 갈것으로 예상하고있는데 이는 아프리카코끼리 14마리의 체중과 맞먹는다.  텅쉰넷
  • 2014-05-19
  •   송애령, 송경령, 송미령 3자매가 중경에서 남긴 사진이다. 새생활운동이 시작된후 송미령은 언니 송애령, 송경령을 동원해 중경에서 한차례 패션쇼를 펼쳤다.    신화넷
  • 2014-05-15
  • 민국의 축구운동에는 관방관리기구가 없고 경험이 풍부한 외적감독도 없었으며 프로선수도 없고 빈번한 국제교류도 없었다. 하지만 중국축구는 아시아에서 9련제패를 달성했고 “아시아축구왕”으로 불리운 리혜당 등 인물들이 용솟음쳐나와 올림픽무대에 서기도 했다.   시나넷
  • 2014-05-14
  • 7일 쑤저우(蘇州)시 박물관은 오왕 부차검(吳王夫差劍), 월왕검(越王劍) 등 일부 진귀한 청동 병기들을 쑤저우 박물관에 전시하게 됐다고 전하며 이 문물들은 베이징(北京)과 난징(南京) 등 지역에서 잠시 전시된 적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최근 몇 년 동안 깊숙이 보관되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들이라고 밝혔다. 그 중...
  • 2014-05-12
  • (흑룡강신문=하얼빈) 김광석 구현아 기자 = 한국 정부 대표단이 올해 1월19일 할빈에 개관한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9일 공식 방문했다. 박승춘 한국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한 한국 정부 대표단은 이날 오전 흑룡강성 할빈시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입구에서 기념 행사를 열었다. 흑룡강성정부 관계자들의 안내 하에 한국 정부 대표...
  • 2014-05-10
  •   5월7일,《백산 흑수 해동청전》(白山·黑水·海东青展)이 흑룡강박물관에서 개막되면서 부분적인 금나라때의 녀진족유물들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였다./중신넷
  • 2014-05-07
  • 5월 3일 베이징대학교 도서관 측은 소장 문고 전시회를 열어 일본으로부터 환매한 2만여 권의 중국 고서를 공개했다. 2013년 베이징대학교 측은 일본측에 1억 위안을 지불하고 2만여 권의 중국 서적을 다시 찾아왔다. 중앙문화역사관의 위안싱페이(袁行霈) 관장은 “이는 100여 년 이래 중국이 해외에 남아있던 중...
  • 2014-05-07
  •   5월 4일, 일본의학참관대표단 단장이 “731” 인체실험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힌 긴 회랑에서 희생자들에게 헌화했다.   해당 의학참관단은 일본전국보험의료련합회와 전일본 민주의료기관련합회 성원 2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중국에서 731부대 유적지를 돌아보고 중국 731문제 전문가들과 좌담회를...
  • 2014-05-05
  •  일본 외무성은 최근 외무성 웹사이트에 신규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홍보가이드북을 올려 일본이 댜오위다오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있음을 거듭 표명했다. 이 홍보가이드북에서는 “일본정부는 1895년 댜오위다오를 일본 오키나와현에 편입하고, 이때부터 줄곧 댜오위다오는 일본 영토의 일부분으로...
  • 2014-04-29
  • ▲ 지린성 당안관이 공개한 위안부 관련 사료 중국에서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기록한 추가 사료가 공개됐다. 새로 공개된 사료에는 위안부 1명이 열흘 동안 178명을 상대했다는 기록이 있었으며 동남아 지역에서도 위안부가 강제 동원된 것도 드러났다. 관영 신화(新华)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지린성당안관(吉林省...
  • 2014-04-28
  • 질문에 없는 위안부 언급 … "전시라 해도 충격적 성폭행" 오바마, 아베 역사인식 직격탄 "과거 해결하고 미래에 눈 맞춰야" 더 편리해진 뉴스공유, JoinsMSN 뉴스클립을 사용해 친구들과 공유하세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5일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전시(戰時)임을 감...
  • 2014-04-26
  •         할빈기차역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이 개관 3개월여만에 방문자 수 5만명을 돌파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측은 "개관 초기에는 하루 방문객 수가 1000명을 넘기도 했으나 현재는 하루 평균 5~600명의 방문객이 방문하고 있다"며 "개관한지 100일도 안 돼 기념관 방문...
  • 2014-04-25
  • 한일 국장급회담 거행해 "위안부"문제 토론   일본침략군의 위안부문제를 론의하고저 한국 외교부 동북아국 리상덕국장과 일본외무성 아주대양주 사무국 이하라쥰이치국장이 현지시간으로 16일 오후 4시 국장급회담를 진행했다. 보도에 따르면 회의에서 한국정부는 법적 책임인정과 실질적인 조치를 일본정부에 요구했...
  • 2014-04-17
  •  4월 12일, 중경(重慶)대폭격 민간 대(對)일본 배상요구 단체가 대폭격 발생지 부근에서 중경대폭격 사진전을 개최하고, 중경이 대폭격을 받았던 역사와 과정이 담긴 사진 300여 장을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중경대폭격의 피해자 대표는 다음 날 일본 도쿄로 건너가 중경대폭격 사건 관련 법정 심사에 참석했다.
  • 2014-04-15
  •  일본 사전에 있는 ‘위안부’라는 단어는 ‘군대를 따라 전투 부대로 들어와 일본군을 위로하던 여인’이라는 뜻으로 적혀 있다. 하지만 더 많은 학자들이 ‘위안부’라는 단어에 내린 정의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본 군인에 의해 강제로 성적인 행위를 받아 성노예로 살...
  • 2014-04-14
  • 청명절기간 관전만족자치현 청산골진 은광자촌소학교(한족학교) 100여명 사생들은 자체로 화환을 마련하여 항일민족영웅 리진룡장군의렬비(义烈碑)를 찾아 화환을 진정하고 뜻깊은 추모활동을 진행하였다.  이 학교 왕길파교장은 앞으로도 여러 형식을 통해 영웅을 기리는 활동을 활발히 벌일것이라고 밝혔다. &n...
  • 2014-04-11
  • (흑룡강신문=하얼빈) ‘중국침략 일본군 제731 부대 옛터 보호계획’이 일전 국가문물국의 심사에 통과되였다.   흑룡강성인민정부가 계획의 실시를 정식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이는 중국침략 일본군 제731 부대의 옛터가 효과적으로 보호되고 합리하게 리용되여 유엔 유네코스 세계유산 신청에 기초를 마련...
  • 2014-04-09
  • 4월 5일, 난징(南京)대학살 생존자와 희생자 유가족을 비롯한 사회 각계대표들이 난징대학살 희생자 기념관 내 희생자들이 적힌 벽 앞에서 거행된 ‘난징대학살 희생자 유가족 청명추모제’에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달랬다. 난징대학살 희생자 기념관의 주청산(朱成山) 관장은 청명추모제는 20년 간 지속해 왔으...
  • 2014-04-08
‹처음  이전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