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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린성 당안관이 공개한 위안부 관련 사료 |
중국에서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기록한 추가 사료가 공개됐다. 새로 공개된 사료에는 위안부 1명이 열흘 동안 178명을 상대했다는 기록이 있었으며 동남아 지역에서도 위안부가 강제 동원된 것도 드러났다.
관영 신화(新华)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지린성당안관(吉林省档案馆)은 지난 25일 일제의 만행을 입증하는 관련 문서 89건을 공개했다. 공개한 문서 중에는 '만주(국) 중앙은행의 전화통화 기록' 문서 2건, 치안보고서 2건, 군인범죄조사표 등 위안부의 강제동원 관련 문서 25건이 포함됐다.
일본이 난징에 파견한 헌병대가 1938년 2월 1일부터 10일까지 난징 및 주변지역의 위안소 시설상황을 기록한 '헌병대관할구역치안회복조사보고'에는 당시 일본군과 위안부 비율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샤관(下关) 지역의 경우 주둔 중인 일본군이 1천2백명이었는데 위안부 수는 고작 6명이었다. 위안부 1명이 최소 200명 이상 접대한 셈이다.
난징 위안소의 한 위안부는 "열흘 동안 남자 178명을 상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새로 공개된 자료에는 중국, 한국 뿐 아니라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 동원된 위안부도 있었음이 밝혀졌다.
난징 헌병대의 기록에 따르면 우후시(芜湖市) 지역에서는 위안부 수가 열흘만에 84명이나 증가했으며 총 109명의 위안부 중 중국인은 25명, 조선인은 36명이었다.
또한 1944년 3월 5일 일본 헌병대에서 발간한 '헌병일보'에 따르면 일본 1576부대는 해외에서도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 이 사료는 "일본군이 있는 곳이면 위안소는 반드시 있었다"며 "인도네시아 자바섬에도 위안소가 있었고 동남아 여성이 동원됐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는 일본군이 위안부를 동원하기 위해 군용 공금을 지출했다는 사실이 최초로 밝혀졌다. '만주중앙은행 외국자본과 위안부 구매 전화통화 기록'에 따르면 일본군이 1944년 11월부터 5개월 동안 53만2천엔(541만5천원)을 들여 위안소를 건립했다. 이는 일본 관동군 관련 부문의 비준을 받았다.
위안부 문제 전문가인 상하이사범대학 쑤즈량(苏智良) 교수는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위안부'가 일본의 국가적 행위이며 일종의 성노예 제도를 계획적으로 추진해온 것을 충분히 입증해준다"고 밝혔다.
지린성당안관은 위안부 자료 외에도 일본이 미군과 영국군 등 연합군 포로들에게 강제노역과 비인간적인 학대를 자행한 내용이 포함된 731부대 생체실험, 강제노역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일본 침략군이 난징시에서 사흘동안 8만5천명의 중국인을 때려 숨지기 한 후 시신을 하천에 버려 '거대한 시신 강'이 형성됐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온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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