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그녀는 왜 '연길감옥항일투쟁기념비'를 세웠을가?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1월22일 18시37분    조회:312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연길시에서 국내외 예술단체들이 공연할때면 어김없이 '연변예술극장'(후에 로동자문화궁으로 개칭,이하 극장으로 약칭)을 리용한다. 그런데 이 극장터가 바로 일제시기에 악명높았던 연길감옥옛터라는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극장 남쪽에는 '연길감옥항일투쟁기념비'가 우뚝 서있어 극장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럼 이 기념비를 누가 세웠는가?

  한 항일투사의 자녀가 사재를 털어 2000년도에 25만원(건축비용 및 부지비용)이라는 거금을 들여 세운것이다.

  그 자녀의 이름이 바로 김진옥(1956년생)녀사로서 연길감옥탈옥을 주도한 항일투사 김명주의 3남4녀중 막내딸이다.

  지금은 물론 그때에도 얼마안되는 월급에 의해 근근히 생활해온 김녀사가 왜 이렇게 큰 돈을 들여 기념비를 세우게 되였을가? 그 리유를 알려면 우선 김녀사의 아버지 김명주, 어머니 서순옥항일투사의 사적부터 알아야 할것이다.

  김철수 전 연변박물관관장이 2012년에 항일투사 김명주 탄생 100돐 및 서순옥(김명주의 부인) 탄생 91돐 기념문집 '불멸의 투사'란 390만자의 장편실화를 펴냈는데 이 저서의 한단락으로 김명주의 항일사적을 요약한다.

  "김명주는 1930년에 길림성 연길현 차조구 풍흥동 (지금의 안도현에 속함)에서 혁명에 참가한 항일투사이다. 그는 그해에 체포되여 연길감옥에 갇힌 뒤 옥내 중국공산당조직의 계발과 가르침을 받아 점차 견정한 혁명전사로 성장, 1935년에는 결사대를 조직해 감옥내의 수난자들을 지휘하여 옥문을 짓부시고 탈옥에 성공한후 항일부대에 참가하여 일제와 싸웠다.

  그는 항일련군 제2군 제6사에서 선후로 반장, 패장직을 맡고 활약했으며 1937년 음력 7월 7일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그후 그는 선후로 유명한 무송현전투, 장백현 리명수전투, 간삼봉전투,돈화현 륙과송전투, 화룡현 홍기하전투 등 수많은 크고작은 전투에 참가해 용맹을 떨쳤다.

  1940년 10월에 부대를 따라 소련국경지대로 이동한 후 1941년부터 항일련군소부대에 참가하여 적의 봉쇄선을 넘나들며 여러가지 임무를 수행하여 본부로부터 '명예상장'울 수여받았다.

  가렬처절한 전투에서 그는 선후로 일곱번이나 부상을 입어 전우들은 그에게 '칠성배기'라는 별명을 지어주기까지 했다.

  광복후 그는 선후로 길동군구 경비대 련장, 중국인민해방군 제10종대 제 89퇀 영장, 독립 제4사 사부 작전참모 등 직을 력임하였다.

  1949년 2월에 신체정황으로 전업하여 지방에 온후 선후로 연변전원공서 무장과 부과장, 연변조선족자치주 민정처 처장 등 직을 맡고 사업하다가 '문화대혁명'시기에 박해를 받아 사망하였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아버지는 루명을 쓰고 투쟁을 당했습니다 "

  기자를 만난 김명주렬사의 막내딸인 김진옥녀사는 이렇게 서두를 떼면서 어린시절에 직접 보고 들은 사실을 피력했다.

  ...아버지(김명주)께서는는 그제날 일제와 싸우던 가렬처절한 나날에 입은 부상때문에 몸이 망가질때로 망가져 지방에서 사업하면서 줄곧 병원문을 집문을 나들듯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해에도 아버지는 입원해 치료를 받다보니 미처 피할새도 없이 반란파조직에 고스란히 붙잡혀나왔다.

  당시 아버지께서는 연변당교 3층에서 매일 투쟁을 당했는데 어린나이지만 김진옥씨는 거의 매일마다 아버지를 보러 갔다. 아버지는 가느다란 쇠줄에 달린 나무판패쪽을 목에 걸고 있었으며 반란파들이 벽돌장을 패쪽에 함께 달았놓아 가느다란 철사가 목살을 여지없이 파고 들어갔다. 아버지는 매일 반란파들에게 뭇매를 맞아 피에 질퍽하게 젖은 옷을 매일 갈아입지 않으면 안되였다.

  1969년 8월 17일, 큰 오빠로부터 아버지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김진옥은 맨발바람으로 어머니와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혁명위원회측에서는 면회를 거절했다. 어른들이 서로 밀치고 닥치고하면서 싱갱이질 하는 사이에 진옥씨가 틈새를 타서 입원실에 들어가보니 아버지의 몸우에는 흰천이 덮여있었다. 기겁한 진옥씨가 울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소리치자 그제야 혁명위원회측에서는 가족 면회를 허락했다. 흰천을 벗겨보니 아버지의 얼굴은 온통 피멍이 든채 숨져 있었다.

  혁명위원회측에서는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했다. 농촌에 하향 내려가 있는 다른 오빠, 언니들에게 소식을 알리는 한편 정부에서 마차를 보내줘 아버지 시체를 집에 모실수 있었다...

  김명주씨의 부인인 서순옥씨 역시 항일투사이다.김철수가 주필한 저서의 한단락으로 서순옥의 항일투쟁사를 요약한다.

  "서순옥(1921년)녀사는 1936년에 길림성 장백현에서 항일련군에 참가하여 제2군 제6사에서 작식대원으로 있었으며 선후로 조선 보천보전투, 장백현 간삼봉전투, 가재수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견강한 혁명전사로 성장하였다. 그는 1940년 11월에 부대를 따라 소련국경지대로 이동한후 부대의 야영훈련에 참가하기도 했다..."

  "아버지께서가 잡혀가 매일 투쟁을 맞고 있을 때 어머니 역시 거의 매일이다싶이 투쟁을 당했습니다." 김진옥씨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 때를 회억하면 계속 말을 이었다. "연길시 신흥가두에 자리잡고 있었던 단칸방인 우리집은 투쟁장소였습니다. 가두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집에 쳐들어와 투쟁대회를 열기를 밥먹듯 했고 도망을 칠가봐 창문이란 창문은 몽땅 대못을 쳐서 문도 열지 못하게 했습니다. 쌀, 남새를 사러 가려면 간수들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지요..."

  1974년도에 김명주씨의 자녀들은 정부에 찾아가 아버지를 혁명렬사로 추대해 줄것을 강경히 요구했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혁명렬사증을 내주면 무휼금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무휼금을 못받아도 좋으니 렬사로 꼭 추대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해서 겨우 혁명렬사증을 타게 되였다고 한다.

  억울하게 생죽음을 당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반드시 기념비를 세워야겠다고 작심한 김진옥씨는 2000년에 연변박물관, 연변당안국 ,연변조직부, 연변선전부, 연변민정부 등 부문을 발이 닳도록 찾아다니면서 연길감옥옛터에 기념비를 세우자고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좋은 생각이지만 현재 돈이 없다"면서 "정 기념비를 세우려면 자기절로 돈을 내여 세우라"고 했다.

  그래서 김진옥씨는 언니 오빠들고 상의한 후 자체로 25만원을 모아 연길감옥 옛터에 기념비를 세웠다.

  김진옥의 어머니 서순옥씨는 2009년 4월 18일에 림종하셨다. 림종을 앞두고 "어머니는 자식들이 련루될까바 그때 일을 더는 말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광복을 위해 싸웠는데 언제든지 력사는 밝혀질것이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취재를 마치면서 김진옥씨는 "지금 큰 오빠, 큰 언니를 비롯한 형제들은 모두 그리 변변치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특히 큰 오빠는 병환에 계서 경제난으로 힘겹게 생활하고 있단다."고 말하고 나서 "기념비는 세워졌지만 구체적으로 관리하는 부문이 따로 없어 지금도 그의 형제들이 손수 돌보고 있다"며 "일제하에 악명높았던 연길감옥옛터를 왜 흔적없이 없애버렸는지 리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72
  •   중한 양국 안중근 연구 학자의 공저   (흑룡강신문=하얼빈) 일전 한국문화사에서 중한 양국 안중근 연구 전문가인 중국 반무충씨와 한국 김월배씨 공저, 박신신씨 번역의 ‘안중근은 애국-역사는 흐른다’(壮士忧国-历史流转)를 출간했다.   이 책은 교육가, 의병, 신앙인, 선각자, 순교자, 문학인, 구국...
  • 2014-01-30
  • 필자는 일본 구마모토현 출신으로 부친은 다케후지 슈이치이다. 부친은 2차 대전 시 일본 제6사단의 사병이었으며, 그가 군복무 기간에 남긴 일기는 한국전쟁 및 여성인권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부친의 군복무 경력에 대해 점차 의문을 갖게 되었고, 전쟁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뚜렷하...
  • 2014-01-30
  • ▲ 2014년 1월 19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지점을 표시하는 이전의 바닥석으로 세모난 무늬가 안 의사가 총을 쏜 곳이며 나란히 선 세명중 가운데 사람의 발밑 네모난 무늬가 이토 히로부미가 총맞은 지점이다. ⓒ 하성봉 안중근 의사 부활로 중∙한∙북∙러 항일연합전선 구축…안 의사의 '동양...
  • 2014-01-27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일본 당국자가 최근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한 데 대해 "반일애국 열사를 함부로 모독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날 중국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개관했다고 밝히면서 "조선인민뿐 아니라 중국인민에게도 헤아릴 수 없는 불행을 안긴 이토 히로부...
  • 2014-01-27
  • 안중근기념관 개관 3일째 주목도 높아... 정부기관 인사 적극 평가   (흑룡강신문=하얼빈) 마국광 기자 = 지난 19일 할빈역에 개관한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개관 직후부터 일반에 무료로 개방돼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21일 오전, 한 바깥로인이 사진기를 들고 열심히 촬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이 로인...
  • 2014-01-24
  • 中포양호(파양호) 가뭄 전후 사진 전 세계가 고온과 저온을 오가는 이상기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중국에서는 극심한 가뭄 때문에 최대 담수호가 흔적도 없이 말라버린 기이한 풍경이 공개됐다. 중국 장시성 주장시의 포양호(鄱阳湖)는 중국 최대 규모의 담수호이자 중국 10대 호수 중 하나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
  • 2014-01-22
  • 일제가 중국 난징(南京)대학살 저지른 뒤 수개월에 걸쳐 대대적인 사체 처리 작업을 벌였다는 내용의 기밀문서가 추가로 공개됐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22일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중국 랴오닝(遼寧)성 기록보관소는 난징대학살과 관련된 일제 남만주철도회사(滿鐵)의 기밀문서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기밀문서는...
  • 2014-01-22
  • 22일 료심만보(遼瀋晩報)에 따르면 료녕성 기록보관소는 1639년 청나라 호부(戶部·조세와 재정을 담당하던 부처)가 반포한 금연 포고문을 최근 공개했다. 포고문의 주요 내용은 청나라 2대 황제인 태종의 명령에 따라 관원과 군인, 평민의 연초 재배, 흡연, 판매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도적질에 준해 무겁게 처...
  • 2014-01-22
  • 하얼빈역 기념관 가보니 중국인의 추모 그림 등 전시 '동양평화의 창의자' 문구도 일본 또 "테러리스트" 망언 더 편리해진 뉴스공유, JoinsMSN 뉴스클립을 사용해 친구들과 공유하세요 한 중년 남자가 안중근 의사 흉상 앞에서 묵념을 했다.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20일 오후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
  • 2014-01-21
  • 할빈시 기차역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이 1월 19일 오전 개관식을 가졌다. 100여평방메터에 달하는 기념관은 안중근의사의 사적진렬실과 안중근이 이도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점표식 등이 포함되여 있다. 이 기념관은 할빈시정부와 철도부문에서 출자하며 건립했고 할빈시 관련 부문과 할빈시 철도국에서 책임지고 관리한...
  • 2014-01-21
  • 안중근의사 동상. 19일 오후, 할빈역에 위치한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개관의식을 가졌다. 기념관에는 안중근의사의 사적진렬실과 이또 히로부미 저격지점 표기 등이 포함되며 할빈시 정부와 철도부문에서 출자하여 건설되였고 할빈시 관련부문과 철도국에서 관리를 책임진다. 이또 히로부미 저격지점(네모난 블록). 안중근의...
  • 2014-01-20
  •   안중근 의사 기념관 (서울=연합뉴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중국 하얼빈역에 19일 안 의사의 의거를 기리는 기념관이 전격 개관했다. 사진은 기념관 개관 전 마무리작업하는 모습. 2014.1.19 > photo@yna.co.kr "中, 아베 야스쿠니 참배 계기로 적극 추진한 듯"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일...
  • 2014-01-20
  •       룡두산고분군은 룡두산중심지역에 위치했는데 낮은데서 높은데로 점차 올라가면서 이루어진 7개대지에 대, 중형석실무덤, 전곽목관무덤, 탑무덤 등 도합 20여기의 무덤과 건축터 한자리가 선포되어있다. 무덤구역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진릉대”위에는 기원 792년에 별세한 발해 제...
  • 2014-01-19
  • "中, 일제 戰犯까지 인도적 대우… 日은 이 정신 깨뜨려" [안용현 베이징특파원 - 푸순 戰犯관리소 르포] 중국(1949년 집권 공산당), 日전범 1000명 중 死刑 '0'… 대부분 돌려보내 中지도자 "복수가 복수 낳는다" 戰後 책임 추궁 비교적 관대   안용현 베이징 특파원   "일제 전범(戰犯)의...
  • 2014-01-18
  • 지난 1974년 필리핀 루방섬 밀림에서 발견된 구 일본군 정보장교인 히루 오노다 소위가 91세로 일본 도쿄병원에서 숨졌다. 오노다 소위는 3명의 다른 병사와 함께 2차대전이 끝나기 전 밀림으로 들어간 뒤 30년간 정글에서 숨어 살았다. 동료들이 숨진 뒤에도 발견될 때까지 일본이 항복한 것을 모른채 혼자서 밀림에서 살았...
  • 2014-01-18
  • 책으로 만나는 韩国史 -갑오 동학농민혁명과 전봉준 2014년 올해는 갑오년(甲午年)이다. 갑오년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해다. 근대화의 시작인 1894년 갑오년은 동학농민혁명, 청일전쟁, 갑오개혁 등으로 일제 강점기의 계기를 마련한 해다. 갑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되는 올해, 한국 근대사의 걸출한 혁명가, 녹두장군으...
  • 2014-01-18
  • 1월 15일 중국 청대 광서연간(光緒年間, 1875~1907)에 만들어진 세선 법랑•화훼영지대개위각방존(花卉靈芝帶蓋委角方尊)이 저장(浙江) 항저우(杭州) 공예미술박물관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당일 이 박물관에서는 95점의 중국 청나라 시대 황실 및 민간법랑 명품들도 전시되었다.
  • 2014-01-17
  •     2차 세계대전 때 강제로 징용되어 노역에 동원됐던 중국인 노동자들이 국내에서 일본 기업을 집단 소송하는데 나설 예정이다.   16일 동방망(东方网)은 일본의 교도통신사의 보도를 인용해 일본 기업의 중국인 노동자 강제 징용을 둘러싸고 피해자 및 유가족들이 일본 기업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
  • 2014-01-16
  •   지난 12월 12일, 료녕성동북항일련군사 및 항일전쟁사연구회 항일투쟁사 연구기지 현판식이 심양시 우홍구 오가황조선족중심소학교 조선의용군회지기념비앞에서 열렸다.    현판식에서 장홍군소장은 《목하 중앙으로부터 애국주의교육기지 건설에 큰 중시를 돌리고있는데 이는 우리들이 애국주의...
  • 2014-01-08
  • 중앙인민방송국(CNR) 조선어부 특별제작으로 된 TV다큐멘터리《중국 조선족 이민사》 시사회가 1월 4일 북경에서 열렸다. 시사회에서는 10부작 TV다큐멘터리《중국 조선족 이민사》의 제2부와 3부가 공개됐다. 국가민족사무위원회 기관당위 김성화 상무 부서기, 중국조선민족사학회 황유복 명예회장, 중앙민족대학 문일환 교...
  • 2014-01-0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