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6월 항쟁 30주년] '목숨 건 폭로' '최루탄에 사망'… 그날을 말하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6월10일 08시51분    조회:160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이명준씨, 이석주씨, 조세현씨.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30주년을 맞았다. 국민일보는 항쟁 현장에 있었던 인물을 만나 당시 상황과 30년이 지난 현재에 던지는 의미를 들었다.

당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간사 이명준씨

“김승훈 신부 목숨 걸고 박종철 사건 조작 폭로”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고개 숙이고 인사하는 시간이 길긴 하셨는데….”

1987년 5월 18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는 김승훈 신부가 5·18광주항쟁 7주기 추모미사 도중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됐다”고 폭로했다. 이명준(70)씨도 그 현장에 있었다. 9일 당시 사건을 회상하던 이씨는 “그런 폭로가 이뤄질 줄 아는 사람은 현장에 몇 사람 없었다”며 “기자들도 다 깜짝 놀라 뒤로 넘어갔다”고 떠올렸다.

이씨는 당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간사로 학생운동 동향을 비롯해 교회 바깥 사회의 움직임을 신부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했다. 종교계와 사회를 잇는 징검다리였던 셈이다.

추모미사 당일에도 대부분은 고문치사 폭로가 있을지 전혀 몰랐다. 김수환 추기경의 강론이 끝난 뒤 김 신부가 앞에 나서 평소보다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씨는 “김 신부님은 그때 아마 목숨까지 걸었을 것”이라며 “해당 폭로는 종교계에서 나왔기에 더 신뢰와 파급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87년과 2017년의 민주화운동을 모두 지켜본 이씨는 “2017년의 ‘촛불혁명’은 30년 전 민주화 투쟁보다 한 발 더 진보한 민주주의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87년에는 시대적 특수성 때문에 시위대가 소수였고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촛불집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로워 오히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고 그는 평가했다.

그러면서 87년의 항쟁이 있었기에 30년 뒤 촛불집회가 가능했다고도 설명했다. 30년 전의 희생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라는 성과가 있었기에 비로소 민주주의 발전의 토대가 마련됐고 30년 뒤 촛불시민이 평화롭게 거리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그 뒤로도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를 돕는 일을 계속해 왔다. 그는 “시대가 변했으니 참여의 형태가 달라졌다”며 종교계는 이제 시민을 돕는 작은 역할에 충실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씨는 “사제단은 여전히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종교계의 역할에 대해 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노동항쟁 이석규 열사의 형 이석주씨

“동생 취루탄 맞고 사망, 파업투쟁 확산의 계기”



“9시 뉴스에 갑자기 동생 이름이 자막으로 뜨더라고요. 죽었다고. 망연자실했습니다.”

8일 오후 서울 구로구의 운수업체 사무실에서 만난 이석주(57·사진)씨는 30년 전 사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1987년 8월 22일 대우조선 노동조합의 가두시위 도중 경찰의 직격 최루탄을 맞아 숨진 이석규씨의 친형이다.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7, 8월에는 조선소와 자동차공장 등 전국 대규모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졌다. 이석규씨의 사망은 영남권 중심의 노동자 투쟁이 수도권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형이 기억하는 동생은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별 보고 출근해 별 보고 퇴근한다는 조선업 일을 하면서 한번도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동생이 시위 선두에 섰다가 최루탄을 맞았다는 소식에 이씨는 순간 멍했다고 한다.

TV 뉴스로 소식을 접한 이씨는 울산에서 거제도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병원 주변은 경찰과 대우조선 노동자들이 팽팽하게 맞서 있었다. 이씨는 동생이 잠든 영안실에 들어가기 위해 검문을 5번이나 받았다.

“조선소에 용접사들이 많으니까 영안실 문을 철판으로 용접해서 막아버렸죠. 혹시라도 시신을 뺏길까봐.”

이틀 뒤 두 명의 변호사가 영안실을 찾아왔다.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상수씨였다. 부검에는 가족과 노 전 대통령 등이 입회했다. 동생의 사인은 최루탄을 직격으로 맞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망한 지 6일이 지나서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동생을 묻었던 남원 산기슭의 흙은 무척 차가웠다.

민주화가 이뤄진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팍팍하다. 이씨는 6월 민주항쟁에 비해 7, 8월 노동자투쟁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노동자도 노동자답게 살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고, 또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한열장학회 1호 장학생 조세현씨

“한열이 형은 언제나 제 삶의 기준점이에요”


조세현(30·사진)씨는 이한열장학회 1호 장학생이다. 그는 연세대 상경대 학생회장이던 2008년 21주기 추모제 기획단장을 맡으면서 이한열 사건을 제대로 알게 됐다. ‘한열이 형이 지금 살아있다면 무슨 얘기를 할까’라는 주제로 행사를 준비하며 분주하게 오가던 그를 이한열씨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눈여겨봤다. 추모제를 마친 뒤 배씨는 조씨에게 다가가 “장학금의 첫 회는 네가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열이 형은 역사 속 위인처럼 보였어요. 어려운 사람이었죠. 그런데 추모제를 준비하고 어머니(배씨)와 누님을 자주 뵙게 되니까 이젠 형, 선배 같아졌어요.”

법을 공부하게 된 것도 이 열사 때문이었다. 자기 앞가림이 우선이었던 그는 추모제를 준비하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는 ‘견현사제’(見賢思齊·현인을 보고 그와 같이 되려고 생각함)라는 사자성어로 자신과 이 열사의 관계를 설명했다. “한열이 형은 언제나 저에게 닮고 싶은 사람이자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물어볼 수 있는 기준점이에요.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1987년에 태어난 조씨는 사회와 자신이 함께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6월 민주항쟁으로 형식적인 민주주의는 갖췄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일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겨울 광화문을 수놓았던 촛불집회에도 그는 참여했다.

조씨는 “87년부터 증폭된 민주화 혹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촛불집회에) 되살아난 것”이라며 “촛불집회에 참여한 일을 계기로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씨는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법조인을 꿈꾼다. 그가 로스쿨에 진학한 데도 이한열 사건이 큰 영향을 끼쳤다. 6월 민주항쟁 이후 노동자대투쟁이 이어졌지만 아직 문제가 산적해 있다. 조씨는 “민주화를 상징하는 여러 지표가 있지만 노동문제 해결이 병행돼야 내실을 채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72
  • 부산포해전 후 친구 강응황에게 보내…의병장 최균 가문서 소장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좌수영 수군은 조선 수군의 주력부대가 돼 경상남도 연안에서 왜군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었다. 거제 옥포해전, 사천 사천포해전, 통영 당...
  • 2014-05-26
  •   2년여간의 수복작업을 거쳐 심양시 황고구에 위치한 일본전범 재판 특별군사법정 유적진렬관이 5월 18일에 국제박물관의 날에 맞춰 정식으로 대외에 개방됐다.1956년, 중국정부에서는 이곳에 특별군사법정을 세우고 위만주국 국무원 총무장관을 지낸 다께베 로꾸조(武部六藏)와 륙군중장 후지따 시게루(藤田茂) 등 ...
  • 2014-05-19
  • 뉴욕매일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에 아르헨띠나에서 사상 가장 큰 공룡골격화석을 발견했다. 과학가들은 이 공룡의 품종이 뢰룡으로 체중이 17만파운드에 갈것으로 예상하고있는데 이는 아프리카코끼리 14마리의 체중과 맞먹는다.  텅쉰넷
  • 2014-05-19
  •   송애령, 송경령, 송미령 3자매가 중경에서 남긴 사진이다. 새생활운동이 시작된후 송미령은 언니 송애령, 송경령을 동원해 중경에서 한차례 패션쇼를 펼쳤다.    신화넷
  • 2014-05-15
  • 민국의 축구운동에는 관방관리기구가 없고 경험이 풍부한 외적감독도 없었으며 프로선수도 없고 빈번한 국제교류도 없었다. 하지만 중국축구는 아시아에서 9련제패를 달성했고 “아시아축구왕”으로 불리운 리혜당 등 인물들이 용솟음쳐나와 올림픽무대에 서기도 했다.   시나넷
  • 2014-05-14
  • 7일 쑤저우(蘇州)시 박물관은 오왕 부차검(吳王夫差劍), 월왕검(越王劍) 등 일부 진귀한 청동 병기들을 쑤저우 박물관에 전시하게 됐다고 전하며 이 문물들은 베이징(北京)과 난징(南京) 등 지역에서 잠시 전시된 적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최근 몇 년 동안 깊숙이 보관되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들이라고 밝혔다. 그 중...
  • 2014-05-12
  • (흑룡강신문=하얼빈) 김광석 구현아 기자 = 한국 정부 대표단이 올해 1월19일 할빈에 개관한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9일 공식 방문했다. 박승춘 한국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한 한국 정부 대표단은 이날 오전 흑룡강성 할빈시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입구에서 기념 행사를 열었다. 흑룡강성정부 관계자들의 안내 하에 한국 정부 대표...
  • 2014-05-10
  •   5월7일,《백산 흑수 해동청전》(白山·黑水·海东青展)이 흑룡강박물관에서 개막되면서 부분적인 금나라때의 녀진족유물들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였다./중신넷
  • 2014-05-07
  • 5월 3일 베이징대학교 도서관 측은 소장 문고 전시회를 열어 일본으로부터 환매한 2만여 권의 중국 고서를 공개했다. 2013년 베이징대학교 측은 일본측에 1억 위안을 지불하고 2만여 권의 중국 서적을 다시 찾아왔다. 중앙문화역사관의 위안싱페이(袁行霈) 관장은 “이는 100여 년 이래 중국이 해외에 남아있던 중...
  • 2014-05-07
  •   5월 4일, 일본의학참관대표단 단장이 “731” 인체실험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힌 긴 회랑에서 희생자들에게 헌화했다.   해당 의학참관단은 일본전국보험의료련합회와 전일본 민주의료기관련합회 성원 2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중국에서 731부대 유적지를 돌아보고 중국 731문제 전문가들과 좌담회를...
  • 2014-05-05
  •  일본 외무성은 최근 외무성 웹사이트에 신규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홍보가이드북을 올려 일본이 댜오위다오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있음을 거듭 표명했다. 이 홍보가이드북에서는 “일본정부는 1895년 댜오위다오를 일본 오키나와현에 편입하고, 이때부터 줄곧 댜오위다오는 일본 영토의 일부분으로...
  • 2014-04-29
  • ▲ 지린성 당안관이 공개한 위안부 관련 사료 중국에서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기록한 추가 사료가 공개됐다. 새로 공개된 사료에는 위안부 1명이 열흘 동안 178명을 상대했다는 기록이 있었으며 동남아 지역에서도 위안부가 강제 동원된 것도 드러났다. 관영 신화(新华)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지린성당안관(吉林省...
  • 2014-04-28
  • 질문에 없는 위안부 언급 … "전시라 해도 충격적 성폭행" 오바마, 아베 역사인식 직격탄 "과거 해결하고 미래에 눈 맞춰야" 더 편리해진 뉴스공유, JoinsMSN 뉴스클립을 사용해 친구들과 공유하세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5일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전시(戰時)임을 감...
  • 2014-04-26
  •         할빈기차역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이 개관 3개월여만에 방문자 수 5만명을 돌파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측은 "개관 초기에는 하루 방문객 수가 1000명을 넘기도 했으나 현재는 하루 평균 5~600명의 방문객이 방문하고 있다"며 "개관한지 100일도 안 돼 기념관 방문...
  • 2014-04-25
  • 한일 국장급회담 거행해 "위안부"문제 토론   일본침략군의 위안부문제를 론의하고저 한국 외교부 동북아국 리상덕국장과 일본외무성 아주대양주 사무국 이하라쥰이치국장이 현지시간으로 16일 오후 4시 국장급회담를 진행했다. 보도에 따르면 회의에서 한국정부는 법적 책임인정과 실질적인 조치를 일본정부에 요구했...
  • 2014-04-17
  •  4월 12일, 중경(重慶)대폭격 민간 대(對)일본 배상요구 단체가 대폭격 발생지 부근에서 중경대폭격 사진전을 개최하고, 중경이 대폭격을 받았던 역사와 과정이 담긴 사진 300여 장을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중경대폭격의 피해자 대표는 다음 날 일본 도쿄로 건너가 중경대폭격 사건 관련 법정 심사에 참석했다.
  • 2014-04-15
  •  일본 사전에 있는 ‘위안부’라는 단어는 ‘군대를 따라 전투 부대로 들어와 일본군을 위로하던 여인’이라는 뜻으로 적혀 있다. 하지만 더 많은 학자들이 ‘위안부’라는 단어에 내린 정의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본 군인에 의해 강제로 성적인 행위를 받아 성노예로 살...
  • 2014-04-14
  • 청명절기간 관전만족자치현 청산골진 은광자촌소학교(한족학교) 100여명 사생들은 자체로 화환을 마련하여 항일민족영웅 리진룡장군의렬비(义烈碑)를 찾아 화환을 진정하고 뜻깊은 추모활동을 진행하였다.  이 학교 왕길파교장은 앞으로도 여러 형식을 통해 영웅을 기리는 활동을 활발히 벌일것이라고 밝혔다. &n...
  • 2014-04-11
  • (흑룡강신문=하얼빈) ‘중국침략 일본군 제731 부대 옛터 보호계획’이 일전 국가문물국의 심사에 통과되였다.   흑룡강성인민정부가 계획의 실시를 정식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이는 중국침략 일본군 제731 부대의 옛터가 효과적으로 보호되고 합리하게 리용되여 유엔 유네코스 세계유산 신청에 기초를 마련...
  • 2014-04-09
  • 4월 5일, 난징(南京)대학살 생존자와 희생자 유가족을 비롯한 사회 각계대표들이 난징대학살 희생자 기념관 내 희생자들이 적힌 벽 앞에서 거행된 ‘난징대학살 희생자 유가족 청명추모제’에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달랬다. 난징대학살 희생자 기념관의 주청산(朱成山) 관장은 청명추모제는 20년 간 지속해 왔으...
  • 2014-04-08
‹처음  이전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