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리광인 련재작ㅣ중국혁명 속 우리 겨레 혁명가들(관내편) - 93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7월14일 09시31분    조회:29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최음파 작곡으로 된 <전쏘대회가>는 말 그대로 중앙혁명근거지 군민들과 전국인민들을 혁명의 승리에로 부르는 힘차고 기세높은 진군의 노래, 불멸의 노래였다. 
 
쏘베트 2차대회 기간 수차의 공연들에서 최음파를 망라한 전체 공연배우들과 직공들은 모두 아주 엄숙하고 진지한 연기를 보였고 하나로 되는 배합을 보이였다. 그밖에도 무대, 배경(布景), 복식(服饰), 도구(道具), 효과등불(灯光) 등 모두 비교적 어울려 대회와 수장들의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 모택동은 친히 극사의 배우들을 초대하여 식사까지 하면서 극진한 배려를 돌리였다. 모택동은 또 쏘베트 2차대회의 전문보고에서 “쏘베트근거지 군중들의 혁명적 예술은 창조중에 있고 로농극사와 로농가무단의 운동, 농촌의 구락부운동은 널리 발전하고 있다”고 높은 평가를 내리였다.
 
쏘베트극단과 고리끼희극학교
 
1
 
1934년 1월 11일 깊은 밤에 륜선편으로 상해 오송(吴淞)부두를 출발한 전 중공중앙 책임자 구추백은 향항과 광동 산두(汕头) 등지를 거쳐 2월 5일 중앙혁명근거지 서금(瑞金)에 도착하였다. 구추백은 금방 끝난 중화쏘베트공화국 제2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제1차 쏘베트대회에 이어 중앙집행위원ㅡ교육인민위원으로 당선되였다. 공식적인 책임은 중화쏘베트 교육부 부장 겸 예술국 국장, 쏘베트중앙정부 기관보-《홍색중화(红色中华)》의 주필이였다.
 
최음파 소속 로농극사는 중앙교육부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은 데서 구추백과의 관계가 아주 밀접하였다. 구추백은 맡은바 《홍색중화》보를 잘 꾸리는 한편 중앙혁명근거지 연극사업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면서 소속 로농극사 규약 수정에 착수하였다.
 
로농극사 소속 ‘람삼극단’(蓝衫剧团”을 ‘쏘베트극단’으로 개명하고, ‘람삼극단학교’를 ‘고리끼희극학교’로 개명하여 중앙교육부에 예속시킬 것을 건의하였다. 따라서 수정을 거친 ‘로농극사 략장(简章)’, ‘고리끼희극학교 략장’, ‘쏘베트극단조직법’ 등 중요문건들이 중앙교육부의 비준을 거쳐 정식으로 실시되였다. ‘로농극사 략장’이 그 시절 중앙교육인민위원회의 비준을 받은 것은 1934년 4월이였다.
 
‘고리끼희극학교 략장’은 학교의 교육목적을 쏘베트 연극운동과 구락부, 극사, 극단의 간부양성이고 쏘베트문예운동의 인재양성이라고 밝히면서 교학시간은 제1기생은 4개월로 정하였다. 교육내용은 노래, 무용, 활보, 문자과, 정치과 등으로 배치하였다. 과외교육으로는 매일 아침저녁 춤추기와 노래하기, 군사체조에 나서야 한다. 음악은 중악과 서악, 문예이야기, 시가(가요) 등으로 나뉘여지고 지방대중사업과 여러 가지 돌격적인 운동에도 참가하도록 하였다.
 
앞에서 이미 밝혔다싶이 람삼극단은 1932년 9월 2일 서금 사주패에서 설립된 로농극사의 소속이고, 로농극사의 전신은 1932년 봄에 설립되고 최음파 소속 홍군학교 정치부의 지도를 받는 중앙혁명근거지의 첫 전업연극단인 8.1극단이다. 8.1극단은 중앙혁명근거지의 첫 극단이고 홍군력사에서의 첫 전업문예단체였다. 8.1극단은 선후로 강서의 서금, 흥국, 녕도와 복건의 정주 등지에서 많은 공연을 펼치면서 그 영향력을 넓히였다.  그러던 람삼극단과 람삼극단학교는1934년 2월 이후 구추백에 의해 쏘베트극단과 고리끼희극학교로 개편되기에 이르렀다.
 
신생한 쏘베트극단과 고리끼희극학교도 그 전신인 람삼단학교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원인들이 겹치면서 어려움이 거듭되자 구추백은 “길은 사람이 걸어서 생겨난다”(路是人走出来的)는 로신선생의 말로 동지들을 고무하여 나섰다. 강유력한 교원대오를 구성하고저 구추백은 선참 고리끼희극학교에 와서 관련 교학을 맡아나섰다.
 
2
 
전장비(钱壮飞), 호저(胡底), 사가부(沙可夫), 리극농(李克农) 등 동지들과 홍군대학과 로농극사의 주요일군들인 조품삼(赵品三), 베트남사람 홍수(洪水), 조선인 최음파 등도 관련 교수를 맡았다. 리백소, 석련성(石联星), 왕보청(王普青), 심을경(沈乙庚)은 희극학교의 전문교원으로 나섰다.
 
고리끼희극학교의 전문교원들중 호북 황매현(黄梅县) 출신 석련성(1914년 생)은1934년 이해 갓 20살의 처녀로서 전업성을 가진 희극학교의 교수에서 큰 어려움을 느끼였다. 당시 학원들 나이를 보면 어린 학원이 금방 7, 8살, 나이가 많은 학원은 30,40살에 달하여 더구나 그러하였다.
 
문화 차이도 제가끔이여서 어떤 학원들은 책을 읽고 신문을 볼 때 어떤 학원은 문맹이였다. 석련성이 한창 고민하며 부담을 느낄 때 구추백이 희극학교에 와서 속심을 나누며 고무하여주었다. 석련성보다 10살 선배인 최음파도 련성이를 도와 노래와 무용 면의 어려운 문예리론을 알기 쉽게 해석해주며 교수준비를 도왔다.
 
최음파와 석련성은 1931년 가을, 중앙혁명근거지에 전문 홍군학교가 설립되면서 백색구역인 상해에서 서금에 온 홍군학교 첫패의 문화인들이다. 나이로 보아, 혁명경력으로 보아 선후배 사이인 이들이 상해시절 서로 알고 지냈는지는 모르나 당년 홍군학교 교장들이였던 류백승과 엽검영은 이들은 상해에서 온 문화인들로서 홍군학교의 문화사업을 주최하였다고 회고하여 깊은 인상을 준다. 그런 최음파와 석련성이다 보니 고리끼희극학교에서도 서로 믿고 받들면서 부딪치는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갔다.
 
고리끼희극학교도 서금 사주패의 옛절당-동방묘에 자리잡았다. 어머니를 회고하며 바이두(百度)에 오른 석련성의 딸 릉려(凌丽)의 한편의 글에 의하면 석련성은 고리끼희극학교를 그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학교의 문 앞에는 그닥 크지 않은 한갈래 강이 있었다. 거울같이 맑은 강이였다. 강변에는 버드나무가 우거져 그늘을 던지였다. 교사 내에는 큰 대청이 있고 대청에는 바닥보다 높은 소무대를 꾸미였다. 꽤나 큰 뜨락과 운동장도 있어 학원들은 여기에서 아침체조와 기본공을 닦을 수 있었다. 대청의 한쪽에는 나무구조로 된 2층집이 있고 칸칸이 차례로 배렬되였다. 긴 복도가 드나드는 길이였다. 로농극사 본사는 여기에서 사무를 보았다.
 
석련성으로 보는 고리끼희극학교의 모습이다. 릉려는 회고에서 어머니가 보는 희극학교는 언제나 그토록 신선하였다면서 그 시절 같이 사업하며 뛴 동지들을 그릴 때면 어머니의 두눈은 정기로 넘치며 전우들에 대한 심심한 그리움에 사로 잡혔다고 쓰고 있다. 그 속에는 석련성의 동료이고 전우이며 선배인 최음파도 들어있으니 석련성은 자녀들과 홍군학교에서 희극학교로 교원으로 넘었을 때 꼬마선생으로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가르쳤다는 회고를 남기였다. 
 
3
 
석련성은 이 같은 처녀선생이였다. 석련성은 리백소, 류월화와 더불어 중앙혁명근거지의 '3대 붉은 스타(三大赤色明星)'의 하나였으니 매주 일요일마다 그들이 공연을 가질 때면 모택동, 주은래, 주덕, 진의 등 중앙수장들과 홍군장령들이 말을 타고 가서 관람하기 일쑤였다. 근거지의 군중들과 홍군 장병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런 뜨거운 공연장면을 보면서 주은래는 그 시절 로농극사 본사 책임자 조품삼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품삼이, 우리 홍군의 성월련화는 정말 대단하지!  (品三啊,咱们红军的星月联华可不得了哇!) (석련성의 딸 릉려의 회고문에 잘 나타난다)
 
주은래가 말씀하신 성월련화는 석련성과 류월화를 가리킨다. 석련성의 이름 마지막 자와 류월화의 이름 중간자를 뽑고 거기에 석련성의 이름 중간자와 류월화의 이름 마지막 자를 합치면 '성월련화'가 된다. 그 시절 중앙혁명근거지의 군민들은 석련성과 류월화를 모두 성월련화라고 호칭하였다. 그런 석련성에 온 중앙혁명근거지 군민들이 받드는 '우리 바이올린수', '홍군의 첫 작곡가' 최음파가 미더운 동료와 전우로 지냈으니 석련성은 해방 후 여러 회고문들에서 최음파를 깊이깊이 그리였다.
 
쏘베트극단과 고리끼연극학교는 바로 이 같이 최음파와 석련성이 의무교원과 전직교원으로 뛰였던 잊을 수 없는 학교였다. 그에 걸맞게 최음파 소속 쏘베트극단과 고리끼연극학교는 연극대이기도 하고 선전대, 공작대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어느 곳에 가나 제일 먼저 군중사업에 나섰으니 그 책임자인 리백소는 아래와 같은 회고(1) 1934년 5월 7일부 《홍색중화》보(2)를 남기였다.
 
우리 홍색배우들은 공연 외에도... 열흘에 한번씩 벽보를 꾸리였다. 벽보에서 여러 공연에서의 내용과 형식, 기교를 토론하고 연구하였다. 따라서 당지 문화건설의 일부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가장 흥미로움은 당지 군중들의 생활을 산가로 엮어 벽보에 올림이다. 고로 벽보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저녁식사 후 한가한 시간이면 군중들이 많은 곳에서 홍군과 혁명수령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홍색중화》, 《청년실화》가 오면 군중들은 우르르 모여선 “빨리 읽으라!”고 하였다. 정치교육을 강화하는 데서 홍색 꼬마예술가들은 모두 어려움을 견디는 습관을 길렀다.
 
리백소의 회고를 통해 지방순회공연의 생생한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들은 낮에는 홍군가족의 밭일에 나서고 밤에는 혁명가요와 민가 가르치기, 공연과 긴장한 사업으로 보내면서 배우와 군중들이 한덩어리로 뭉쳤다. 그 속에서 로농극사 본사의 주요한 문예일군인 최음파는 쏘베트극단과 고리끼희극학교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놀았다. 중앙혁명근거지의 연극운동과 매회 공연활동, 지방순회공연에서 작곡가이며 지휘가인 최음파가 없는 공연은 그만큼 손실이 컸었다.

료녕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72
  •   중한 양국 안중근 연구 학자의 공저   (흑룡강신문=하얼빈) 일전 한국문화사에서 중한 양국 안중근 연구 전문가인 중국 반무충씨와 한국 김월배씨 공저, 박신신씨 번역의 ‘안중근은 애국-역사는 흐른다’(壮士忧国-历史流转)를 출간했다.   이 책은 교육가, 의병, 신앙인, 선각자, 순교자, 문학인, 구국...
  • 2014-01-30
  • 필자는 일본 구마모토현 출신으로 부친은 다케후지 슈이치이다. 부친은 2차 대전 시 일본 제6사단의 사병이었으며, 그가 군복무 기간에 남긴 일기는 한국전쟁 및 여성인권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부친의 군복무 경력에 대해 점차 의문을 갖게 되었고, 전쟁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뚜렷하...
  • 2014-01-30
  • ▲ 2014년 1월 19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지점을 표시하는 이전의 바닥석으로 세모난 무늬가 안 의사가 총을 쏜 곳이며 나란히 선 세명중 가운데 사람의 발밑 네모난 무늬가 이토 히로부미가 총맞은 지점이다. ⓒ 하성봉 안중근 의사 부활로 중∙한∙북∙러 항일연합전선 구축…안 의사의 '동양...
  • 2014-01-27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일본 당국자가 최근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한 데 대해 "반일애국 열사를 함부로 모독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날 중국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개관했다고 밝히면서 "조선인민뿐 아니라 중국인민에게도 헤아릴 수 없는 불행을 안긴 이토 히로부...
  • 2014-01-27
  • 안중근기념관 개관 3일째 주목도 높아... 정부기관 인사 적극 평가   (흑룡강신문=하얼빈) 마국광 기자 = 지난 19일 할빈역에 개관한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개관 직후부터 일반에 무료로 개방돼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21일 오전, 한 바깥로인이 사진기를 들고 열심히 촬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이 로인...
  • 2014-01-24
  • 中포양호(파양호) 가뭄 전후 사진 전 세계가 고온과 저온을 오가는 이상기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중국에서는 극심한 가뭄 때문에 최대 담수호가 흔적도 없이 말라버린 기이한 풍경이 공개됐다. 중국 장시성 주장시의 포양호(鄱阳湖)는 중국 최대 규모의 담수호이자 중국 10대 호수 중 하나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
  • 2014-01-22
  • 일제가 중국 난징(南京)대학살 저지른 뒤 수개월에 걸쳐 대대적인 사체 처리 작업을 벌였다는 내용의 기밀문서가 추가로 공개됐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22일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중국 랴오닝(遼寧)성 기록보관소는 난징대학살과 관련된 일제 남만주철도회사(滿鐵)의 기밀문서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기밀문서는...
  • 2014-01-22
  • 22일 료심만보(遼瀋晩報)에 따르면 료녕성 기록보관소는 1639년 청나라 호부(戶部·조세와 재정을 담당하던 부처)가 반포한 금연 포고문을 최근 공개했다. 포고문의 주요 내용은 청나라 2대 황제인 태종의 명령에 따라 관원과 군인, 평민의 연초 재배, 흡연, 판매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도적질에 준해 무겁게 처...
  • 2014-01-22
  • 하얼빈역 기념관 가보니 중국인의 추모 그림 등 전시 '동양평화의 창의자' 문구도 일본 또 "테러리스트" 망언 더 편리해진 뉴스공유, JoinsMSN 뉴스클립을 사용해 친구들과 공유하세요 한 중년 남자가 안중근 의사 흉상 앞에서 묵념을 했다.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20일 오후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
  • 2014-01-21
  • 할빈시 기차역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이 1월 19일 오전 개관식을 가졌다. 100여평방메터에 달하는 기념관은 안중근의사의 사적진렬실과 안중근이 이도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점표식 등이 포함되여 있다. 이 기념관은 할빈시정부와 철도부문에서 출자하며 건립했고 할빈시 관련 부문과 할빈시 철도국에서 책임지고 관리한...
  • 2014-01-21
  • 안중근의사 동상. 19일 오후, 할빈역에 위치한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개관의식을 가졌다. 기념관에는 안중근의사의 사적진렬실과 이또 히로부미 저격지점 표기 등이 포함되며 할빈시 정부와 철도부문에서 출자하여 건설되였고 할빈시 관련부문과 철도국에서 관리를 책임진다. 이또 히로부미 저격지점(네모난 블록). 안중근의...
  • 2014-01-20
  •   안중근 의사 기념관 (서울=연합뉴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중국 하얼빈역에 19일 안 의사의 의거를 기리는 기념관이 전격 개관했다. 사진은 기념관 개관 전 마무리작업하는 모습. 2014.1.19 > photo@yna.co.kr "中, 아베 야스쿠니 참배 계기로 적극 추진한 듯"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일...
  • 2014-01-20
  •       룡두산고분군은 룡두산중심지역에 위치했는데 낮은데서 높은데로 점차 올라가면서 이루어진 7개대지에 대, 중형석실무덤, 전곽목관무덤, 탑무덤 등 도합 20여기의 무덤과 건축터 한자리가 선포되어있다. 무덤구역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진릉대”위에는 기원 792년에 별세한 발해 제...
  • 2014-01-19
  • "中, 일제 戰犯까지 인도적 대우… 日은 이 정신 깨뜨려" [안용현 베이징특파원 - 푸순 戰犯관리소 르포] 중국(1949년 집권 공산당), 日전범 1000명 중 死刑 '0'… 대부분 돌려보내 中지도자 "복수가 복수 낳는다" 戰後 책임 추궁 비교적 관대   안용현 베이징 특파원   "일제 전범(戰犯)의...
  • 2014-01-18
  • 지난 1974년 필리핀 루방섬 밀림에서 발견된 구 일본군 정보장교인 히루 오노다 소위가 91세로 일본 도쿄병원에서 숨졌다. 오노다 소위는 3명의 다른 병사와 함께 2차대전이 끝나기 전 밀림으로 들어간 뒤 30년간 정글에서 숨어 살았다. 동료들이 숨진 뒤에도 발견될 때까지 일본이 항복한 것을 모른채 혼자서 밀림에서 살았...
  • 2014-01-18
  • 책으로 만나는 韩国史 -갑오 동학농민혁명과 전봉준 2014년 올해는 갑오년(甲午年)이다. 갑오년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해다. 근대화의 시작인 1894년 갑오년은 동학농민혁명, 청일전쟁, 갑오개혁 등으로 일제 강점기의 계기를 마련한 해다. 갑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되는 올해, 한국 근대사의 걸출한 혁명가, 녹두장군으...
  • 2014-01-18
  • 1월 15일 중국 청대 광서연간(光緒年間, 1875~1907)에 만들어진 세선 법랑•화훼영지대개위각방존(花卉靈芝帶蓋委角方尊)이 저장(浙江) 항저우(杭州) 공예미술박물관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당일 이 박물관에서는 95점의 중국 청나라 시대 황실 및 민간법랑 명품들도 전시되었다.
  • 2014-01-17
  •     2차 세계대전 때 강제로 징용되어 노역에 동원됐던 중국인 노동자들이 국내에서 일본 기업을 집단 소송하는데 나설 예정이다.   16일 동방망(东方网)은 일본의 교도통신사의 보도를 인용해 일본 기업의 중국인 노동자 강제 징용을 둘러싸고 피해자 및 유가족들이 일본 기업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
  • 2014-01-16
  •   지난 12월 12일, 료녕성동북항일련군사 및 항일전쟁사연구회 항일투쟁사 연구기지 현판식이 심양시 우홍구 오가황조선족중심소학교 조선의용군회지기념비앞에서 열렸다.    현판식에서 장홍군소장은 《목하 중앙으로부터 애국주의교육기지 건설에 큰 중시를 돌리고있는데 이는 우리들이 애국주의...
  • 2014-01-08
  • 중앙인민방송국(CNR) 조선어부 특별제작으로 된 TV다큐멘터리《중국 조선족 이민사》 시사회가 1월 4일 북경에서 열렸다. 시사회에서는 10부작 TV다큐멘터리《중국 조선족 이민사》의 제2부와 3부가 공개됐다. 국가민족사무위원회 기관당위 김성화 상무 부서기, 중국조선민족사학회 황유복 명예회장, 중앙민족대학 문일환 교...
  • 2014-01-0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