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구술75]105권의 대형 사료집 '탄생'(김춘선편4)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11월21일 09시33분    조회:18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75](김춘선편4)

 

 

조선족력사연구에서 론문, 저작 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론문이나 저작을 더 훌륭하게 완성하려면 이들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집대성한 사료집이 있어야 한다. 나의 지도교수인 박창욱교수도 이 방면에 대해 강조한 바도 있고 그래서 이러한 자료집을 출간하는 것이 의사일정에 올랐다. 나는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후 선생님이 옛날에 말했던 인재중심, 자료중심, 연구중심 그 세가지를 완성하기 위하여 몰두하기 시작하였고 이 사업을 20072008년부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내가 박사공부를 할 때도 그 이후에도 우리 연변을 비롯한 국내 여러 학자들이 중국조선족에 대한 자료집 출간을 여러차례 시도한 바가 있다.

초기에 류연산선생이 중심이 되여서 연변인민출판사에서《중국조선족자료집》1, 2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출간하면서 두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일단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면 그 자료를 장기적이고 계통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이 없이 서둘러 한두책씩 발간한 이 점이고, 두번째는 자료집을 발간하는데 그 자료의 성격이라던가 여러가지 외사문제라던가 출간원칙이라던가 이런데 저촉되지 않는지를 잘 검토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결과적으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였던 것이다.

명동학교 전람관에서.

이러한 실정에서 나는 당시 연변인민출판사 리성권 사장을 만나서 자료집출간에 대해 함께 계획해볼 의향이 없는가고 문의했고 리성권 사장도 일찍부터 자료집 출간에 직접 참여했고 후원해왔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의 의향에 대해 찬성과 지지를 표시했다. 이렇게 초기에 리성권 사장과 자료집 출간을 계획하게 되였다. 한국에서 박사공부를 하면서 박사학위 론문을 쓸 때부터 앞으로 사료집을 출간할 타산으로 론문의 주제를 <연변지역 조선족사회의 형성 연구>라고 비교적 큰 주제를 잡았고 그 론문을 완성하기 위하여 이주사부터 시작하여 조선족사회 형성과 발전의 여러 방면에서 자료를 대량 수집하였기 때문에 기본토대를 마련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21세기에 들어와서 통신, 컴퓨터, 각 지역 도서관 자료발굴이 많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자료집을 출간할 수 있는 토대가 이미 마련되였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리성권 사장과 논의하였는데 얼마를 몇권 계획하는가고 물어서 내가 선뜻 적어도 백권은 해야 되지 않겠는가고 대답했더니 리성권 사장이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백권을 출간하느냐고 되물었다. “중국에서 그렇게 많은 자료집이 나왔지만 지금까지 백권의 자료집은 하나도 없고, 중국력사도 24사 정도로 나왔는데” 하면서 묻던 일이 기억난다. 그러나 우리 조선족의 력사는 기타 몽골족이나 만족처럼 대륙을 통치했던 그런 위대한 민족의 력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조선민족이 걸어온 력사가 상당히 유구하고 남긴 력사유적과 문화는 상당히 많다는 것을 여러번 설명하였다. 때문에 최소로 백권이고 그 이상으로도 만들 수 있다고 얘기했다. 우선 우리가 자료집이 체계적으로 나오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료의 질보다도 량적으로 집대성하여 후학들이나 교수들의 연구에 도움이 되게끔 하는 것이 우리의 선차적인 임무가 아니겠는가고 설득했다. 이렇게 2007년에 만나 토의하고 2011년부터 계획에 착수하여 자료집 출간을 시작하게 되였다. 그런데 이 사업은 방대한 사업이여서 막강한 경제적래원이 없으면 도저히 진행하기 힘든 일이였다. 그러나 리성권 사장은 나를 믿어주었고 또 자료집의 가치도 인정하였기에 국가의 큰 도움이 없이 소수민족도서라는 한권에 몇만원씩 주는 경제지원에 의탁하여 우선 출간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2013년부터 자료집이 나오게 되였는데 약 20권이 나오면서부터 이 책이 국가의 중시를 받게 되였다. 그러자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국가출판총서에 중점프로젝트로 신청하였고 이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전문가위원회에서 우리 중국조선족사료총서 전집 100권을 검증하게 되였다.

서재에서.

2014년 말이 아닌가 기억되는데 당시 북경에 있던 리성권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서 “지금 국가출판총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증단에서 우리 이 프로젝트를 심사를 하겠다는데 당신이 직접 와서 답변할 수 없겠는가? 주필이 반드시 답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면서 급히 북경에 오라고 했다. 당시 나의 어머니가 중병으로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여서 떠나기가 힘들었지만 민족의 사명감으로 출판사에 련락하여 왜서 이 책을 출간해야 하고 출간할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며 가치와 사회적효과는 어떠한가 하는 내용으로 15분 분량의 PPT를 만들어서 부사장인 량문화와 같이 밤중에 비행기를 타고 북경에 갔다. 그 이튿날에 출판총서 전문가소조의 검증단 앞에서 답변을 하게 되였는데 저는 짧은 15분내에 왜 우리 조선족의 자료집 100권이 나와야 되고 어떠한 자료들이 망라되며 이러한 자료들의 가치는 어떻고 사회적효과는 어떻다는 것을 화면으로 아주 설득력이 있게 설명했다. 그때 당시 그분들도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소수민족의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백권이란 자료집을 낼 수 있느냐? 도저히 리해가 안된다.” 초기에는 모두 이렇게 생각했는데 나의 설명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였고 결과적으로 이 항목이, 중국조선족사료전집 백권 프로젝트가 비준되였다. 지금은 105권으로 나왔는데 100권은 문자화가 된 것이고 4권은 사진자료집으로 된 것이며 마지막 한책은 목록색인으로 총 105권으로 되였다. 어떻게 되였든지간에 출판총서 전문가 검증소조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통과시켰고 근 천만원에 달하는 출판거금을 출판사에 지원함으로써 우리 자료집이 금년에 도편사료집 4권까지 완성되면서 근 십년간 105권이란 거대한 자료집이 완성될 수가 있었다.

김춘선교수의 론문집 《북간도한인사회의의 형성과 민족운동》.

이 자료집 완성에는 여러가지 경제적문제를 제외하더라도 다른 많은 문제가 존재했다. 나 혼자의 힘과 정력으로 완성할 수 없고 수많은 인력과 교수들의 정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연변대학의 민족력사연구소와 고적연구소를 중심으로 편찬사무실을 앉혔고 몇명의 전문인원을 초빙하였으며 석, 박사 수십명과 국내외 수십명의 교수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이런 성과를 올리게 되였다. 방대한 량의 자료를 어떻게 체계를 세우느냐 하는 문제도 상당히 복잡했다. 결국 우리는 력사편, 정치경제편, 문화예술편, 철학종교편, 언어문학편, 민속편, 교육편, 신문잡지편, 사진자료편 등 9개 편으로 나누어서 자료가 발굴되는 족족 분류하여 편집한 후 십년간 출간했다. 책 100권이 나온 다음 국가중점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질이 보장되였는지 제시간내에 완성되였는지 다른 문제점이 없는지 등 검증과 확인을 거쳐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우수도서로 선정되였다. 그후 출판총국에서는 연변인민출판사에 국가중점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지표를 더 증가해 주었으며 연변인민출판사는 편집과 디자인 등 여러개 상도 수상하였다.

도서기증.

그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백권에 달하는 그 방대한 량을 어떻게 수집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자료를 수집하려면 연변내 도서관 하나로는 절대 부족하였고 거기에 교수님들이 수십년간 모은 자료를 다 합해도 부족하였다. 그래서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자료까지 수집하는 이런 막대한 임무가 완성해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는 출판사에서 주는 경비를 토대로 자료수집 계획을 작성하고 수많은 교수들이 자기의 연구시간을 희생하면서 총체적인 계획하에서 국내, 국외로 분산적으로 나가서 자료를 수집했다. 특히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길림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의 협조를 많이 받았다. 일본연구소에는 중국에서 유일한 만철당안(서류)이 소장되여 있었다.만철회사는 일본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할 때 제일 큰 식민회사로서 침화정책을 추진한 대본영이였다. 그때 만철회사에서는 “만철월보”라는 자료집(잡지)을 냈는데 여기에는 대량의 자료들이 기록되여 있고 지금까지도 필름자료가 완비하게 보존되여 있었다. 그런데 그때까만 해도 이런 자료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실정이였다. 일반인들은 열람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성정부에 제출하고 사회과학원에 제출하여 직접 정부와 유관부문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연구소의 적극적인 지지하에 우리가 공동 합작하는 차원에서 연구소의 학자들이 자료를 찾아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형식으로 도움을 받았던 일도 있다. 그외에도 대련도서관, 장춘, 길림, 할빈 등 각 지역의 도서관과 자료실들을 샅샅이 누비면서 자료를 수집해왔고 1910년대로부터 출간되였던 각 지역의 신문잡지도 수집해왔다. 이때 우리가 중점적으로 수집했던 것은 아마 중화민국 당안자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때 중화민국 당안자료는 갓 공개되였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중시를 돌리지 않았고 거기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을 때였다. 우리 동북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민족사연구에서 지방당안자료를 제일 많이 연구하고 개발한 것이 우리가 아니겠는가고 생각한다. 이러한 발굴작업이 우선 박창욱교수님 때부터 시작되였지만 자료집을 편집하면서 체계적인 자료집을 만들기 위하여 수많은 교수님들이 몰붓은 많은 노력에 의해서 수많은 자료집들이 발간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중화민국당안자료는 주요하게 일제가 남겼던 당안자료 혹은 다른 당안이나 회억록에서 볼 수 없었던 당시 실질적으로 중국을 지배하고 있었던 정부의 당안자료로서 상당히 보귀하고 가치가 높은 당안자료였다. 이런 자료를 발굴하여 이번 사료집에 넣을수 있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자료수집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당사자들의 회억록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항일투쟁을 비롯하여 해방전쟁, 조선전쟁 등에 직접 참여하였던 당사자들이 각종 회억록을 남겼는데 대체로 편면적이고 분산적이였다. 이 분산적인 자료들을 우리가 체계적으로 묶었고 그분들을 다시 찾아다니면서 수집, 정리하였다. 그리고 그외에도 많은 가정과 개인들이 사적으로 보관하였던 자료들을 발굴하여 당안자료에 수록한 것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조선족사료전집》100권 중의 부분적 도서(2016년 6월 22일 리광평 촬영)

금년에 도편자료집이 나왔는데 1,600여장의 도편이 여기에 수록되였다. 이 도편자료도 기존에 게재되였던 사진을 제외하고도 많은 학자들이 수십년간의 노력을 거쳐서 소중하게 보관했던 자료들을 우리에게 제공함으로써 이같은 도편자료집이 나올 수 있게 되였다. 도편자료집은 판권문제까지 존재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관계문제에서도 우리가 많은 신경을 써서 금후에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중국조선족사료전집》100권 중의 부분적 도서(2016년 6월 22일 리광평 촬영)

이번 자료집은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자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장서용으로 전국 내지는 국외까지도 널리 배포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의 현실에서 백권의 도서를 개인적으로 소장하기 어려운 것이 실제문제이지만 이 자료들은 정부나 학교, 학계에서 솔선적으로 문화를 전파하고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우리 조선족집거지라든가 조선족학교라든가 각 지역의 문화관 혹은 농촌에까지도 필요하면 전부 제공할 수 있는 이런 노력을 금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우리는 지금 정부측과 협의하고 있는데 나의 생각으로는 금후 중국 경내의 대도시를 포함하여 상해, 청도, 북경 등지에 새롭게 형성된 도시의 조선족집거지역의 문화사업을 위하여 사료집을 이들 지역에 지원하는 것은 우리들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소수민족으로서 백권의 사료집을 냈다는 것은 우리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는 처음이고 한족들도 그 성과에 대해 대단히 놀랄 정도로 우리 민족사연구에서 큰 성과를 거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이번 사료집의 출간은 금후 우리 민족사연구의 하나의 토대로서 후학들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다만 최초로 한 작업이였고 수십명이 공동으로 한 작업이였기 때문에 일부 자료선택이나 편집에서 많은 문제점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금후 이 자료집을 다시 정밀하게 재편하거나 혹은 보완하는 가운데서 극복할 바라고 생각한다.

/길림신문 글 구성: 김태국

영상 사진: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72
  • 더불어민주당 여성위, '류석춘 교수 파면하라'(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류석춘 연세대 교수는 지난 9월 '발전사회학' 강의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했다. (서울=연합뉴스) 권선미 기자 = 수업 도중 일본군 위안부를 성매매에 비유하고, 이에 항의하는 여학생에게 성희롱...
  • 2019-12-27
  •   모안영 순국기념일인 11월 25일, 30여명 심양시 조선족 로인들이 항미원조렬사릉원을 단체로 참배했다.   이들은 또한 민간단체 항미원조렬사감은퇀 제2퇀의 성원들이다. 심양시 화평구 서탑가두 주민구역써비스센터 손열(孙悦) 주임을 단장으로 하는 항미원조렬사감은퇀은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과 항...
  • 2019-11-26
  • [연변]모주석이 리종률에 총을 장려하다 지난 10월 1일, 집에서 수도 북경에서 거행된 새 중국 창건 70돐 맞이 열병식 생중계를 관람하는 룡정시 로투구진 로서촌의 로민병 리종률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보무당당 천안문광장을 지나는 열병대오를 보면서 리종률은 천천히 70년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196...
  • 2019-10-18
  • [70년 기억속의 연변]    이 오래된 흑백사진은 1962년 6월 22일에 촬영한 것으로 변강인민들에 대한 주은래총리의 사랑을 기록했다.   당시 연변에서 시찰중이던 주총리는 주당위 뒤 울안에서 전 주 간부사업회의를 마친 뒤 연변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총리가 연길에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수천명...
  • 2019-10-16
  • 9월18일 "9.18"사변 88돐을 맞아 장춘시 각계 인사들은 장춘위만황궁박물원 동북함락사진렬관에서 선서, 서명 등 다양한 기념활동들을 펼치였다./중신넷 
  • 2019-09-19
  •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차 대전 후 '하켄크로이츠' 사용 불법으로 금지한 獨과 달리 日에선 해상자위대 등 군기로 여전히 사용] /사진=AFP"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이 논의(경기장 내 욱일기 허용)의 초기부터 경기장은 어떠한 정치적 주장의 자리가 돼서는 안된다고 말해왔다. 대회 기간 중 문제가 생겼을 경...
  • 2019-09-14
  •     (흑룡강신문=서울) 우리민족 기원 연구에 대한 국제학술회의(Korean Origins Research International Symposium)가 지난 8월 30일(금)에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이시형, 이하 KF) 글로벌센터세미나실(서울 중구 수하동)에서 개최되었다. 회의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 호주 등 지역의 ...
  • 2019-09-10
  • 日 강제동원 피해자 영상 세계가 호응 / 4분 분량 ‘당신 탓이 아닙니다’ / 일주일 만에 조회 13만건 달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영상의 한 장면.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일본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입장과 목소리를 담은 해외 홍보 영상 ‘당신 탓이 아닙니다(It’s not your&...
  • 2019-09-05
  • 민주당 이석현 의원 "동포사회 영향력 키우려 무리한 해석" 김좌진 장군[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초등학교 교과서에 윤동주 시인이 '재외동포'로 기술된 것을 두고 논란이 발생한 가운데 이를 추진한 재외동포재단(이하 재단)이 윤동주 시인 외에도 김좌진, 홍범도 장군 등 다른 독립운동...
  • 2019-08-22
  • 합니하, 삼원포에서 신흥의 흔적을 찾다(하)          김창영 이제, 일행은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경학사 옛터를 답사할 차례다. 신흥무관학교는 널리 알려졌으나 "경학사" 하면 머리를 갸우뚱 할 사람이 있음직 하여 먼저 "만주 벌판에 뿌린 조국 광복의 씨앗"(박도)이란 글에 소개된 경학사의...
  • 2019-08-06
  • 소녀상 출품된 나고야 아이치트리엔날레 기획전, 사흘만에 중단 소녀상, 2012년 도쿄도립미술관 이어 두번째 철거 日 정부, 전방위 압력…작가·큐레이터들 "일방 통보" 반발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서울=연합뉴스) 다음달 1일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
  • 2019-08-03
  • 한국 대전시교육청은 교원 및 교육전문직원 29명을 조직해 23일부터 28일까지 5박 6일간 ‘2019년 교원 력사, 통일 력량강화 연수'를 실시했다.     이번 연수는 '3·1 독립운동' 및 '한국 림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추진되였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독립운동...
  • 2019-07-31
  • 료녕성조선족련의회가 임기교체 후 첫 스타트로 공화국 창립 70주년을 계기로 우리 민족의 발전력사와 예술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전을 기획해 성내 여러 도시에서 순회전을 할 예정이다.  7월 18일,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주년 경축 테마의 '료녕성조선족...
  • 2019-07-19
  • 중국항일투쟁 연고자가족들이 9일 조선 국제친선전람관을 참관하였다.   그들은 전람관에 모신 김일성동지, 김정일동지, 항일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랍상을 우러러 인사를 드렸다.   연고자가족들은 세계 수많은 나라의 당 및 국가, 정부수반들과 저명한 인사들이 보낸 선물들을 감동속에서 돌아보았다. 중국항...
  • 2019-07-16
  • 평화의 소녀상. /연합뉴스 평화의 소녀상에 침을 뱉는 등 모욕적 행위를 했던 한국인 청년 4명 중 일부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사과를 끝내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그동안 고소장 제출을 미뤄왔던 나눔의 집은 지난 10일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호시설 ‘나눔의 집&rsquo...
  • 2019-07-12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1군―위급 군관 최일현(崔一贤, 1906―1939):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 제7퇀 제4련 련장 1906년 8월 17일, 조선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출생했고 1932년에 유격대에 입대했으며 1939년 봄에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 제7퇀 제4련 련장이 되였다. 같은 해 12월 17일, ...
  • 2019-07-11
  •    ‘일대일로’ 건설과 변강민족지구 및 과경민족발전을 주제로 한 중국조선민족사학회 2019년 학술년회가 7월 2일부터 3일까지 이틀간 장춘에 있는 길림건축대학교에서 열렸다. 사학회 정신철&nbs...
  • 2019-07-03
  • 칭다오 조선족단체 팸투어 처음으로 신비의 태항산 답사   칭다오 조선족단체 팸투어 처음으로 신비의 태항산 답사     (흑룡강신문=칭다오)이계옥 특약기자=황산, 태산, 장가계, 화산, 장백산 등 이미 널리 알려진 중국 명산을 다녀온 조선족은 많아도 요즘 새로 부상하는 태항산을 찾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
  • 2019-06-24
  • 동북항일련군 투쟁형세도 ―500명 조선인 장병이 주력인 동북항일련군 2군 6사의 로흑하밀영유적지 “12일, 장백산 지남구에서 동북항일련군의 유일한 밀영 성보를 발견했다”고 17일, 길림성인민정부 뉴스판공실에서 전했다. 12일, 장백산보호개발구 지남구 만강촌 촌민 3명은 산에서 들나물을 캐던중, 지남구 ...
  • 2019-06-18
  • 항일유적지 답사 실기(4)   그 산 그 강은 기억하네 최윤구, 80년만에 고향에 돌아오다                         김창영      리홍광의 석상이 모셔져 있는 신빈현 남산의 렬사릉원에서 주차장까지 내려와보니 시침은 벌써 12시를 넘어서...
  • 2019-06-13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