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구술75]105권의 대형 사료집 '탄생'(김춘선편4)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11월21일 09시33분    조회:18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75](김춘선편4)

 

 

조선족력사연구에서 론문, 저작 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론문이나 저작을 더 훌륭하게 완성하려면 이들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집대성한 사료집이 있어야 한다. 나의 지도교수인 박창욱교수도 이 방면에 대해 강조한 바도 있고 그래서 이러한 자료집을 출간하는 것이 의사일정에 올랐다. 나는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후 선생님이 옛날에 말했던 인재중심, 자료중심, 연구중심 그 세가지를 완성하기 위하여 몰두하기 시작하였고 이 사업을 20072008년부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내가 박사공부를 할 때도 그 이후에도 우리 연변을 비롯한 국내 여러 학자들이 중국조선족에 대한 자료집 출간을 여러차례 시도한 바가 있다.

초기에 류연산선생이 중심이 되여서 연변인민출판사에서《중국조선족자료집》1, 2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출간하면서 두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일단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면 그 자료를 장기적이고 계통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이 없이 서둘러 한두책씩 발간한 이 점이고, 두번째는 자료집을 발간하는데 그 자료의 성격이라던가 여러가지 외사문제라던가 출간원칙이라던가 이런데 저촉되지 않는지를 잘 검토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결과적으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였던 것이다.

명동학교 전람관에서.

이러한 실정에서 나는 당시 연변인민출판사 리성권 사장을 만나서 자료집출간에 대해 함께 계획해볼 의향이 없는가고 문의했고 리성권 사장도 일찍부터 자료집 출간에 직접 참여했고 후원해왔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의 의향에 대해 찬성과 지지를 표시했다. 이렇게 초기에 리성권 사장과 자료집 출간을 계획하게 되였다. 한국에서 박사공부를 하면서 박사학위 론문을 쓸 때부터 앞으로 사료집을 출간할 타산으로 론문의 주제를 <연변지역 조선족사회의 형성 연구>라고 비교적 큰 주제를 잡았고 그 론문을 완성하기 위하여 이주사부터 시작하여 조선족사회 형성과 발전의 여러 방면에서 자료를 대량 수집하였기 때문에 기본토대를 마련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21세기에 들어와서 통신, 컴퓨터, 각 지역 도서관 자료발굴이 많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자료집을 출간할 수 있는 토대가 이미 마련되였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리성권 사장과 논의하였는데 얼마를 몇권 계획하는가고 물어서 내가 선뜻 적어도 백권은 해야 되지 않겠는가고 대답했더니 리성권 사장이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백권을 출간하느냐고 되물었다. “중국에서 그렇게 많은 자료집이 나왔지만 지금까지 백권의 자료집은 하나도 없고, 중국력사도 24사 정도로 나왔는데” 하면서 묻던 일이 기억난다. 그러나 우리 조선족의 력사는 기타 몽골족이나 만족처럼 대륙을 통치했던 그런 위대한 민족의 력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조선민족이 걸어온 력사가 상당히 유구하고 남긴 력사유적과 문화는 상당히 많다는 것을 여러번 설명하였다. 때문에 최소로 백권이고 그 이상으로도 만들 수 있다고 얘기했다. 우선 우리가 자료집이 체계적으로 나오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료의 질보다도 량적으로 집대성하여 후학들이나 교수들의 연구에 도움이 되게끔 하는 것이 우리의 선차적인 임무가 아니겠는가고 설득했다. 이렇게 2007년에 만나 토의하고 2011년부터 계획에 착수하여 자료집 출간을 시작하게 되였다. 그런데 이 사업은 방대한 사업이여서 막강한 경제적래원이 없으면 도저히 진행하기 힘든 일이였다. 그러나 리성권 사장은 나를 믿어주었고 또 자료집의 가치도 인정하였기에 국가의 큰 도움이 없이 소수민족도서라는 한권에 몇만원씩 주는 경제지원에 의탁하여 우선 출간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2013년부터 자료집이 나오게 되였는데 약 20권이 나오면서부터 이 책이 국가의 중시를 받게 되였다. 그러자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국가출판총서에 중점프로젝트로 신청하였고 이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전문가위원회에서 우리 중국조선족사료총서 전집 100권을 검증하게 되였다.

서재에서.

2014년 말이 아닌가 기억되는데 당시 북경에 있던 리성권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서 “지금 국가출판총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증단에서 우리 이 프로젝트를 심사를 하겠다는데 당신이 직접 와서 답변할 수 없겠는가? 주필이 반드시 답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면서 급히 북경에 오라고 했다. 당시 나의 어머니가 중병으로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여서 떠나기가 힘들었지만 민족의 사명감으로 출판사에 련락하여 왜서 이 책을 출간해야 하고 출간할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며 가치와 사회적효과는 어떠한가 하는 내용으로 15분 분량의 PPT를 만들어서 부사장인 량문화와 같이 밤중에 비행기를 타고 북경에 갔다. 그 이튿날에 출판총서 전문가소조의 검증단 앞에서 답변을 하게 되였는데 저는 짧은 15분내에 왜 우리 조선족의 자료집 100권이 나와야 되고 어떠한 자료들이 망라되며 이러한 자료들의 가치는 어떻고 사회적효과는 어떻다는 것을 화면으로 아주 설득력이 있게 설명했다. 그때 당시 그분들도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소수민족의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백권이란 자료집을 낼 수 있느냐? 도저히 리해가 안된다.” 초기에는 모두 이렇게 생각했는데 나의 설명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였고 결과적으로 이 항목이, 중국조선족사료전집 백권 프로젝트가 비준되였다. 지금은 105권으로 나왔는데 100권은 문자화가 된 것이고 4권은 사진자료집으로 된 것이며 마지막 한책은 목록색인으로 총 105권으로 되였다. 어떻게 되였든지간에 출판총서 전문가 검증소조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통과시켰고 근 천만원에 달하는 출판거금을 출판사에 지원함으로써 우리 자료집이 금년에 도편사료집 4권까지 완성되면서 근 십년간 105권이란 거대한 자료집이 완성될 수가 있었다.

김춘선교수의 론문집 《북간도한인사회의의 형성과 민족운동》.

이 자료집 완성에는 여러가지 경제적문제를 제외하더라도 다른 많은 문제가 존재했다. 나 혼자의 힘과 정력으로 완성할 수 없고 수많은 인력과 교수들의 정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연변대학의 민족력사연구소와 고적연구소를 중심으로 편찬사무실을 앉혔고 몇명의 전문인원을 초빙하였으며 석, 박사 수십명과 국내외 수십명의 교수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이런 성과를 올리게 되였다. 방대한 량의 자료를 어떻게 체계를 세우느냐 하는 문제도 상당히 복잡했다. 결국 우리는 력사편, 정치경제편, 문화예술편, 철학종교편, 언어문학편, 민속편, 교육편, 신문잡지편, 사진자료편 등 9개 편으로 나누어서 자료가 발굴되는 족족 분류하여 편집한 후 십년간 출간했다. 책 100권이 나온 다음 국가중점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질이 보장되였는지 제시간내에 완성되였는지 다른 문제점이 없는지 등 검증과 확인을 거쳐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우수도서로 선정되였다. 그후 출판총국에서는 연변인민출판사에 국가중점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지표를 더 증가해 주었으며 연변인민출판사는 편집과 디자인 등 여러개 상도 수상하였다.

도서기증.

그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백권에 달하는 그 방대한 량을 어떻게 수집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자료를 수집하려면 연변내 도서관 하나로는 절대 부족하였고 거기에 교수님들이 수십년간 모은 자료를 다 합해도 부족하였다. 그래서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자료까지 수집하는 이런 막대한 임무가 완성해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는 출판사에서 주는 경비를 토대로 자료수집 계획을 작성하고 수많은 교수들이 자기의 연구시간을 희생하면서 총체적인 계획하에서 국내, 국외로 분산적으로 나가서 자료를 수집했다. 특히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길림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의 협조를 많이 받았다. 일본연구소에는 중국에서 유일한 만철당안(서류)이 소장되여 있었다.만철회사는 일본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할 때 제일 큰 식민회사로서 침화정책을 추진한 대본영이였다. 그때 만철회사에서는 “만철월보”라는 자료집(잡지)을 냈는데 여기에는 대량의 자료들이 기록되여 있고 지금까지도 필름자료가 완비하게 보존되여 있었다. 그런데 그때까만 해도 이런 자료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실정이였다. 일반인들은 열람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성정부에 제출하고 사회과학원에 제출하여 직접 정부와 유관부문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연구소의 적극적인 지지하에 우리가 공동 합작하는 차원에서 연구소의 학자들이 자료를 찾아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형식으로 도움을 받았던 일도 있다. 그외에도 대련도서관, 장춘, 길림, 할빈 등 각 지역의 도서관과 자료실들을 샅샅이 누비면서 자료를 수집해왔고 1910년대로부터 출간되였던 각 지역의 신문잡지도 수집해왔다. 이때 우리가 중점적으로 수집했던 것은 아마 중화민국 당안자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때 중화민국 당안자료는 갓 공개되였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중시를 돌리지 않았고 거기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을 때였다. 우리 동북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민족사연구에서 지방당안자료를 제일 많이 연구하고 개발한 것이 우리가 아니겠는가고 생각한다. 이러한 발굴작업이 우선 박창욱교수님 때부터 시작되였지만 자료집을 편집하면서 체계적인 자료집을 만들기 위하여 수많은 교수님들이 몰붓은 많은 노력에 의해서 수많은 자료집들이 발간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중화민국당안자료는 주요하게 일제가 남겼던 당안자료 혹은 다른 당안이나 회억록에서 볼 수 없었던 당시 실질적으로 중국을 지배하고 있었던 정부의 당안자료로서 상당히 보귀하고 가치가 높은 당안자료였다. 이런 자료를 발굴하여 이번 사료집에 넣을수 있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자료수집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당사자들의 회억록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항일투쟁을 비롯하여 해방전쟁, 조선전쟁 등에 직접 참여하였던 당사자들이 각종 회억록을 남겼는데 대체로 편면적이고 분산적이였다. 이 분산적인 자료들을 우리가 체계적으로 묶었고 그분들을 다시 찾아다니면서 수집, 정리하였다. 그리고 그외에도 많은 가정과 개인들이 사적으로 보관하였던 자료들을 발굴하여 당안자료에 수록한 것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조선족사료전집》100권 중의 부분적 도서(2016년 6월 22일 리광평 촬영)

금년에 도편자료집이 나왔는데 1,600여장의 도편이 여기에 수록되였다. 이 도편자료도 기존에 게재되였던 사진을 제외하고도 많은 학자들이 수십년간의 노력을 거쳐서 소중하게 보관했던 자료들을 우리에게 제공함으로써 이같은 도편자료집이 나올 수 있게 되였다. 도편자료집은 판권문제까지 존재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관계문제에서도 우리가 많은 신경을 써서 금후에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중국조선족사료전집》100권 중의 부분적 도서(2016년 6월 22일 리광평 촬영)

이번 자료집은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자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장서용으로 전국 내지는 국외까지도 널리 배포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의 현실에서 백권의 도서를 개인적으로 소장하기 어려운 것이 실제문제이지만 이 자료들은 정부나 학교, 학계에서 솔선적으로 문화를 전파하고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우리 조선족집거지라든가 조선족학교라든가 각 지역의 문화관 혹은 농촌에까지도 필요하면 전부 제공할 수 있는 이런 노력을 금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우리는 지금 정부측과 협의하고 있는데 나의 생각으로는 금후 중국 경내의 대도시를 포함하여 상해, 청도, 북경 등지에 새롭게 형성된 도시의 조선족집거지역의 문화사업을 위하여 사료집을 이들 지역에 지원하는 것은 우리들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소수민족으로서 백권의 사료집을 냈다는 것은 우리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는 처음이고 한족들도 그 성과에 대해 대단히 놀랄 정도로 우리 민족사연구에서 큰 성과를 거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이번 사료집의 출간은 금후 우리 민족사연구의 하나의 토대로서 후학들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다만 최초로 한 작업이였고 수십명이 공동으로 한 작업이였기 때문에 일부 자료선택이나 편집에서 많은 문제점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금후 이 자료집을 다시 정밀하게 재편하거나 혹은 보완하는 가운데서 극복할 바라고 생각한다.

/길림신문 글 구성: 김태국

영상 사진: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72
  • 6월 28일 오전, 환인만족자치현 고수산문화관광산업단지프로젝트 계약체결식이 현정부 상무회의실에서 진행됐다. 계약에 따라 단지내에 대형 고구려문화체험전시관을 건설하게 된다.   체결식에서 료녕오녀산관광개발그룹 리사장 호문과 안휘성황산포가원개발유한회사 리사장 리견이 고수산문화관광산업단지프로젝트 ...
  • 2018-07-05
  • 지난 6월 23일, 중국공산당 창건 97주년을 맞으며 류하현조선족학교 당지부에서는 ‘초심을 잃지 말고 당의 령혼을 주조하자(不忘初心 铸造党魂)’는 취지하에 ‘항일혁명의 길을 다시 걷기’활동을 진행했다. 류하를 포함한 주변의 지역들은 항일전쟁시기에 양정우, 리홍광, 량세봉 등 항일 명장...
  • 2018-06-28
  • 화룡시 서성진 와룡촌 어랑툰에 위치한 13용사기념비앞에서 [항일뻐스 19]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의 항일유적지 답사는 계속 되였다. 화룡시로혁명근거지답사길에 오른 합창단 단원들은 달리는 뻐스에서 화룡시로혁명근거지건설촉진회 부회장 후진청(70세, 侯振清)선생이 들려주는 로혁명근거지건설에 관한 이야기...
  • 2018-06-05
  •       6월 1일 필자는 동북륙군강무당 옛터전렬관을 탐방했다.   단층집으로 된 전렬관 건물에 들어서면 강무당 평면도와 연혁이 전시되여 있다.   동북륙군강무당은 1907년 당시 동북 총독을 임하고 있던 서세창이 청정부의 명을 받고 창립한 것이다. 1919년 장작림은 청 말기에 정지됐던 '...
  • 2018-06-02
  • [항일뻐스18 5월 27일,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에서는 동북의 첫 쏘베트정부 설립 88돐을 맞으며 화룡시 투도진 약수동 상촌의 막바지에 있는 100년 버드나무가로 찾아갔다. 이곳이 바로 항일혁명전쟁시기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동북에서 제일 처음으로 세워진 쏘베트정부이다. 이날 따라 봄비가 장줄기를 이루며 ...
  • 2018-05-31
  •   1 1934년 10월, 밀산항일유격대와 항일구국유격군은 항일동맹군 제4군으로 개편되였다. 그때 제4군 소속 안순복 등 4군의 조선족동지들과 가족들은 밀산현 서대림자(西大林子)에 있다가 그곳에서 80리 떨어진 양강구(杨岗沟)에 자리잡고있었다. 그해 겨울에 안순복, 허현숙(许贤淑), 리동숙, 리범숙 등 녀전사들...
  • 2018-05-14
  • 장백산기슭에 자리잡은 길림성 무송현(抚松县) 선교진(仙桥镇)내에 “동천”(氡泉, 철도역 명이기도 함.)이라는 유명한 온천구가 있어 국내외 유람객들의 발길이 닿은지도 수십년을 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또 “전우샘”(战友泉) 이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항일전쟁시기 중국의 장울화렬사와...
  • 2018-04-30
  • 26일, 주로혁명근거지건설촉진회는 안도에서 2기 6차 리사회를 소집했다. 주정부 부주장 풍도는 연설에서 지난해 주로혁명근거지건설촉진회의 사업성과를 충분히 긍정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로혁명근거지건설촉진회는 우세를 발휘하고 연변로혁명근거지에 대한 선전을 틀어쥐여 연변의 경제발전에 동력을 부여하...
  • 2018-04-27
  •   본사소식 4월 20일, 동북항일전쟁사 연구일군들이 항일민족영웅 리진룡 장군 순국 100주년을 맞으며 관전만족자치현 청산구 은광자촌에 위치한 리진룡장군기념원을 참배했다.       추모식에는 장홍군 료녕성사회과학원 항일전쟁문화연구쎈터 주임, 전정혁 료동항일영렬연구실 주임,  최용학 한...
  • 2018-04-23
  •   19일 력사 전문가들은 심양 ‘9.18’력사박물관에서 '항일민족영웅 리진룡장군과 우씨 부인 순국 100주년 기념 학술좌담회"를 갖고 항일민족영웅 리진룡 장군과 우씨부인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에는 장홍군 료녕성사회과학원 항일전쟁문화연구쎈터 주임, 범려홍 9.18력사박물관 ...
  • 2018-04-19
  • 사진출처 인터넷 고고계 ‘오스카’로 불리는 ‘2017년 전국 10대 고고 새 발견’ 최종 평의회가 10일 북경에서 펼쳐졌다. 초심을 통과한 26개 고고 종목 가운데서 안도 보마성 금나라 시기 장백산 신묘 유적 등 10개 종목이 최종 확정됐다. 입선된 10개 종목으로는 신강 지무나이 통천동 유적, 산동 ...
  • 2018-04-16
  • 석경의 기원, 장백산의 력사문화연구에 중요한 실물증거 제공 4월 8일, 전문가들의 감정을 거쳐 길림성 장백산 서남비탈 만강에서 발견한 5점의 천공석기는 신석기시기의 ‘장백산석경(石磬)’임이 확인되였고 돈화시 강자유적지(岗子遗址)에서 발견한 석경도 전문가들로부터 확인되였다. 이는 동북 장백산...
  • 2018-04-11
  • [인민망 한국어판 4월 8일] 두 달 전, 미국 필라델피아 프랭클린 과학박물관에 전시된 병마용(兵馬俑)의 손가락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손가락을 훔친 남성과 박물관 측의 실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불만을 야기했다. 현재 병마용 손가락을 훔친 남성은 체포 후 법정 심판...
  • 2018-04-08
  •   주변 록화대에 연변애청자협회 회원들이 하얀 꽃송이를 매달고 있다. 청명절을 맞으며 연길시 의란진 발전촌에 자리한 에는 선렬들을 기리는 하얀 꽃송이들이 피였다. 4일에는 연변애청자협회 40명 회원대표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이곳을 찾아 발전촌 로인협회 대표들과 함께 당년의 연길구 당위서기였던 ...
  • 2018-04-05
  •   남경대학살 생존자 가족 영상 집중적으로 전시   4월 3일, 참관자가 중국침략 일본군 남경대학살 조난동포기념관에서 영상전람을 관람하고 있다. 이날 이 중국침략 일본군 남경대학살 조난동포기념관에서 열렸는데 30여가구의 생존자 가족 기념사진, 일부 생존자의 개인초상사진 등을 전시했다(신화사).
  • 2018-04-04
  •   3월 31일, 2018 무술년 칭밍(淸明, 청명) 사마천(司馬遷) 민간 제사 행사가 사마천의 고향, 산시(陕西, 섬서) 한청(韓城)시에서 열려 국내외 학자와 사마천 후손을 비롯한 현지 민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사마천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본 행사는 ‘쉬춘(徐村, 서촌) 사마천 제사’에서 기원한다. &lsqu...
  • 2018-04-03
  • -청명절을 맞아 장춘시 조선족 160여명 화피창렬사릉원서 추모 행사 진행 4월 2일 오후, 청명을 맞아 장춘조선족부녀협회, 장춘시록원구조선족소학교, 장춘시조선족로인협회, 장춘시조선족새세대관심사업위원회 등 장춘시 각계 조선족 30여명과 장춘시조선족중학교의 부분적 학생과 교사 130여명이 길림시 화피창...
  • 2018-04-03
  • 中당국 삼국지 조조 진짜 무덤 최종확인…진위논란은 여전 [앵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무덤이 확인됐습니다.  죽기 전 자기 무덤이 도굴되는 것을 막기 위해 72개의 가묘를 만들라는 유언을 했던 인물입니다.  그의 무덤 위치와 관련해 다양한 학설이 난무했는데 이번에 논란이 끝날지 주목됩니...
  • 2018-03-26
  •   “3.13”반일운동 99주년이 되는 3월 13일, 룡정시3.13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한락연연구회, 룡정•윤동주연구회, 룡정시통신협회가 공동 주관하는 추모활동이 룡정시 지신진 합성리 동쪽 언덕에 자리잡은 “3.13반일의사릉”에서 개최된다. 룡정시“3•13”기념사업회 리광...
  • 2018-03-12
  • 26개 대상중 21위 2017년 전국 10대 고고 새 발견 초심 결과가 지난달 26일에 발표됐다. 지난해 고고학 분야의 성과가 뚜렷하고 경쟁이 심한 가운데 안도 보마성에서 발굴된 금대 황가 장백산 신묘 유적이 21위를 차지했다. 보마성 유적은 안도현 이도백하진 서북쪽 4킬로메터 되는 구릉지대의 남쪽비탈에 위치해 있다. 지...
  • 2018-03-09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10 1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