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전, 14세 어린 소녀는
빗발치는 탄우 속에서 장강을 넘나들며
팔에 총을 맞고도 이를 악물고 노를 저었다
소녀와 소녀의 오빠는
무려 6차례 장강을 가로 넘어
3진의 해방군을 운송했다
또 물에 빠진 많은 전사들을
구조하기도 했다
14세 소녀 포연탄우 속에서
노를 저어 해방군 운송
도강전역 기념관에는
군중들이 빗발치는 탄우를 무릅쓰고
해방군의 장강 도강을 돕는 이야기를 재연한
조각물이 있다
노를 잡고 있는 이 소녀가 바로
당시 14세 밖에 되지 않았던 마모저이다
해방전, 마모저 일가는 장강 연안에 살았다
그들은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했다
로인의 이마에는
지금도 깊은 생채기가 남아 있다
그가 6,7살 때 민며느리로 들면서
남겨진 락인이다
1949년 4월 20일
서쪽으로 강서 호구에서 시작해
동으로 강소 강음에 이르는 천리 강면에서
해방군 백만 대군의
장강 도강이 시작되였다
마모저의 고향이였던 안휘 무호 구간에서
해방군이 먼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때 마모저는 아주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노를 젓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이 하겠다고 나섰죠.”
도강전역의 로병 하수림의 회고록이다.
1500메터 강폭으로
작은 배로 대안까지 갈려면
40여분이 소요되였다
14세 마모저는 침착하게 키를 잡고
탄알을 묘하게 피해가면서 열심히 저었다
지금도 그녀의 팔에는
당시 탄알을 맞고 남겨진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녀는 당시 아픈 줄도 몰랐고
한시라도 빨리
강을 건너야 한다는 일념 뿐이였다
그때를 회억하며
마모저는 이렇게 말했다
“배에 30명 해방군이 탔습니다.
량켠에 나눠 앉아
노 젓는 일을 도와줬지요.
탄알과 포탄은
수없이 배우에 날아들었습니다.”
빗발치는 탄우를 피해
그녀의 배는
첫진으로 장강 남안에 도착했다
지형에 익숙했던 마모저는
또 해방군을 안내해
적의 또치까 하나를 폭발시키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부대는
련달아 순조롭게 강기슭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마모저와 오빠는
선후하여 6차례 장강을 건너
3진의 해방군을 운송했다
또 물에 빠진 많은 전사들을 구해냈다
모주석, 소녀에게
“열심히 배워
나날이 향상하자”는 제자 남겨
도강전역 배사공중
최년소 배사공이였던 마모저는
“도강1등공신”, “전선지원모범” 등
칭호를 수여받았다
그녀에게 있어 가장 잊혀지지 않는 일은
1951년 북경에서
국경절 행사에 참가했던 일이였다
당시 그녀는 모주석의 친절한 접견을 받았다
“모주석께서 저에게 글을 남겨줬습니다
저더러 열심히 배워
나날이 향상하라고 했지요.”
86세 마모저,
“7.1훈장”획득 훈장을
기념관에 남겨두는 것이
소원
모주석의 독려에 힘입어
마모저는 문화지식을 열심히 보충 학습했고
1954년
영광스럽게 공산당원이 되였다
사업에 참가한 뒤에도 마모저는
공신의 신분으로
안일한 나날을 보낸 적이 없었다
각급 지도자들이 위문을 와도
언제 한번 대우를 바란 적이 없었고
줄곧 청렴하고 자률적인 삶을 살았다
평범한 일터에서 묵묵히 당을 위해 헌신했고
리직후에는 자진해
혁명전통교양 보고 300여차례를 했다
올해는 중국 공산당 탄생 백주년이다
86세 마모저는
당내 최고 영예인 “7.1훈장”을 획득했다
어르신이 했던 말이 인상 깊다
“저는 여태껏 당과 인민이 저에게
이 같은 영예를 주리라 생각 못했습니다.
저는 딸더러 이 훈장을
도강전역 기념관에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후세들이 이 훈장을 보면서
당과 인민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당과의 언약
인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가장 눈부신 별에게 경의를 드린다!
중국조선어방송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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