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릉(漢陽陵)의 문화재 보호 연구원이 조심스레 토용에 붙어 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있는 모습 |
[인민망 한국어판 5월 27일] 한대(漢代)는 중국 고대사회에서 처음으로 번성한 시기이다. ‘사사여사생(事死如事生, 죽은 사람 섬기기를 살아 있을 때와 같이 한다)’ 장례문화 영향을 받아 한대에는 토용(陶俑, 순장으로 사용하던 진흙) 제작이 매우 발달했고 출토된 토용의 수, 종류, 정교함은 중국 고대 조소 역사에서도 최고로 손꼽힌다.
한양릉(漢陽陵)의 문화재 보호 연구원이 조심스레 토용에 붙어 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있는 모습
이제 막 세상에 나온 한양릉(漢陽陵) 토용(陶俑, 순장으로 사용하던 진흙). 상태가 좋으면 흙이 붙어 있고, 상태가 나쁘면 흙으로 완전히 뒤덮여 있다. 우선 흙을 털어내는 작업이 연구원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작업이다.
문화재 복원은 작업 시간이 길고 세심함을 요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신중함을 요한다.
현재 중국에서 유일하게 발굴된 서한(西漢) 제왕 왕릉인 한경제 양릉(漢景帝陽陵)에서 대량의 서한 시기 토용이 출토되었다. 복원 및 보호는 ‘젊은’ 한양릉 문화재 보호 연구원의 미룰 수 없는 사명이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왕릉은 대량의 토용이 발견되었지만 문화재 보호 연구원의 인력 부족으로 인해 문화재 보호와 복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촬영 기록은 문화재 복원에서 빠질 수 없는 작업 과정이다. 발굴 현장에서 발굴한 덩어리를 그대로 들고 올 때 문화재 보호 요원은 수시로 사진을 촬영한다. 작업 기록을 남기고 추후 있을 수 있는 부족한 점을 보완할 때 자료로 활용한다.
알코올에 물을 혼합한 액체를 덩어리에 분사한다. 그러면 침투성과 휘발성이 높아져 덩어리가 단시간에 물렁해진다.
양릉은 한경제 유계(劉啟)와 왕 씨 황후가 같은 왕릉에 각각 합장된 묘역으로 산시(陜西, 섬서)성 셴양(鹹陽, 함양)시에 있다. 양릉은 건설되는 데 28년이 걸렸으며 바닥 면적은 20㎢에 달한다. (번역: 박민지)
그 다음 1mm 간격으로 한층 한층 조심스레 흙을 털어낸다. 문화재는 손상되기 쉽기 때문에 석고로 덩어리를 함께 싼 후 실험실로 가져와 처리한다.
두꺼운 흙으로 싸여 있었던 아름다운 칠기의 자국, 완전히 부식된 목재,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자국 때문에 문화재 보호 연구원은 복원 과정에서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고 한다.
원문 출처: 신화사(新華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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