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음악인생 60여년 노래 500여수 펴내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3월31일 20시13분    조회:622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동희철
겨레의 감동을 불러일으킨 음악인생
음악인생 60여년에 노래 500여수 펴낸 동희철선생을 찾아서

  60여년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직전부터 음악교원사업에 종사하면서 수많은 음악인재를 양성하고 수많은 명곡들을 지어 세인을 감화시켜 존경을 받는 음악인이 있다. 바로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음악부 주임사업을 하다가 정년퇴직한 동희철선생이다. 지난 27일 오후, 동희철선생을 만난 곳은 주직속로간부활동중심이다. 1989년에 퇴직한후로 동희철선생은 매일 오후면 활동중심을 찾아 두세시간씩 운동을 해온 덕에 건강에는 별 탈이 없다고 말했다. 올해 85세인 동희철선생은 기자에게 작곡가로 성장하게 된 지난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28년 5월 21일, 8남매중의 둘째아들인 동희철선생은 조선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남산동에서 태여났고 1934년 가을 부모와 함께 중국에로 이주해왔다.

  어린시절, 체육에 소질을 보여주었던 동희철선생은 체육선생으로부터 앞으로 체육교원이 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1944년 사도학교에 입학한 동희철선생은 음악에 귀를 열었고 시간만 나면 발풍금을 련습했다. 그의 모습이 음악계몽선생인 문하연선생의 눈길을 끌었다. 하루는 문하연선생이 동희철을 불러놓고 학교의 유일한 피아노열쇠를 건네주면서 틈을 타서 꾸준히 련습하라고 했단다. 음악인으로 성장할 싹수가 보였나보다. 문하연선생은 또 동희철을 학교취주악대에 소개해줬다. 이때부터 동희철은 바리톤이라는 악기를 접했다.

  1946년 7월 3일, 동희철선생은 3학년이 되는 여름방학에 중국인민해방군 길동보안군 정치부 문공단에 참가해 바리톤연주를 했다. 문공단은 낮에는 백성들을 위해 문예공연을 하고 저녁이면 전선의 군대를 위한 위문공연을 조직하며 한밤중이면 서너명으로 된 연주대는 선전위원과 함께 그 지역의 국민당주둔지앞까지 심입해 중국공산당의 포로정책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는 이를 함화공작이라고 한다. 쓸쓸한 음악을 많이 연주했는데 미국민요 “달밤에”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튿날이 돼서 십여명의 국민당 병사들이 선전위원이 설명했던 로선을 따라 중국공산당후방에 찾아왔더라면서 “명곡앞에서는 총 든 적들도 무력해진다”고 말했다.

  “바리톤은 중음악기로 악대에서 선률을 끌고가는 역할을 한다. 현학으로 말하자면 첼로와 비슷하다”며 동희철선생은 바리톤은 나중에 그의 작곡생애에서 선률을 작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였다고 말했다.

  1948년 동북전쟁이 끝나면서 길동보안군 정치부 문공대는 연변문공단으로 개명하며 지방문예단체로 활동을 펼쳐왔다. 문공단은 실내공연에 필요되는 관악대, 현악대를 설립하고 실외연주를 위주로 하는 취주악대를 없앴다. 그때부터 동희철선생도 그때부터 바리톤을 그만두고 손풍금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연변문공단은 나중에 연변가무단으로 개칭했고 지금도 연변, 나아가 중국조선족가무예술의 대표로 활약을 돋보이고있다.

  그러나 동희철선생은 연변문공단에서 손풍금수로 계속하지 못하고 조직의 요구에 따라 짧은 교원생애를 맞았다. 1950년 9월, 연변의 첫 고중인 연변제1고중(현재 룡정고중)이 설립되였다. 당시 연변문공단에서 유일한 사도학교출신인 동희철선생은 조직의 배치에 따라 연변제1고중에서 음악교원으로 있게 되였고 1952년에는 한어사범학교에서 음악교원으로 있게 되였으며 1954년에는 연변제2고중(현재 연변1중)에서 음악교원으로 있다가 1956년 3월에 연변인민방송국 음악편집으로 전근해갔다.

  4년여간의 교원생애에서 동희철선생은 학생들을 조직해 학교에서 악대를 조직해 공연에 참가했고 “녀성행진곡”, “까치가 짖네”, “춘경준비”, “귀향병과 처녀”, “고향산기슭에서” 등 곡들을 창작해냈고 연변인민방송국 음악편집, 음악부 조장, 주임을 력임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해 조선족음악을 널리 홍보했으며 50년대 중기부터 60년대까지는 작곡생애의 전성기로 수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60여년의 음악생애에 동희철선생은 선후로 500여수의 가요를 창작했고 《고향산기슭에서》, 《배움터의 멜로디》, 《사랑의 메아리》, 《인생반려(김경석과 공저)》 등 작곡집도 펴냈다.

  안국민선생은 동희철선생의 음악작품은 서정가곡의 선률이 류창하고 사람들의 입에 쉽게 오르며 깊은 철리성, 사상성, 예술성이 보여지며 조선민족의 풍격이 뚜렷하다고 지적한바 있다. 이는 동희철선생이 길동사도학교시절에 처음으로 접한 바리톤, 국민당주둔지에 찾아가 연주하던 시절 그리고 음악교원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조직해 다양한 음악활동을 펼치던 시절 그리고 연변방송국에 있던 시절, 이 모든것들이 그의 체구속에서 되새김질되면서 수많은 명곡들이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치주 창립 60돐을 맞으면서 동희철선생은 음악인의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곡 한편을 써냈고 이미 김응준시인에게 보내 곡을 붙여달라고 했단다.

연변일보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허상림선생의 연변사랑 연변자랑 연변대학 공학원 제1임원장 허상림선생을 만나 지난 5월 1일, 기자는 연변대학공학원 제 1임원장을 지냈던 허상림선생을(78세)을 인터뷰하였다. 허상림선생은 말초신경염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다보니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집에서 컴퓨터와 마주하고 사이버공간에서 세계를 주유한단다. ...
  • 2012-05-13
  • 연변체육관 관장 연변체육복권관리센터 박성웅주임 인터뷰 연변체육복권관리센터 박성웅주임. 사람들은 체육복권에 대해 익숙하지만 연변의 체육복권 관리사업을 책임진 박성웅씨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지 못하고있을것이다. 연변에 첫 체육복권이 나타나고 이어 체육복권관리센터가 세워져 지금에 이르기까지 10여년간 ...
  • 2012-05-11
  •     연변제2인민병원 베테랑 간호장 한길숙씨 이야기 해맑은 미소, 상냥한 문안, 열정적인 봉사…사랑이 듬뿍 담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환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21년간 그녀는 고상한 의덕과 숙련된 업무, 앞선 사유로 매 한명의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왔다. 그녀의 간호를 받은 환자들치...
  • 2012-05-10
  • 야외 극한 도전자 “대지의 타향인”- 리근호   -   “중국오토바이려행 1인자” 를 적다     아리랑주간  취재사진 박군걸   글 륙삼   출중한 사람은 늘 평범하게 보인다. 그들은 항상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극도로 평범하게 살면서 출중하다는 성분...
  • 2012-05-09
  • 사 교육이 비교적 체계화되여 교육의 한부분으로 간주되는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 나라는 아직 사교육을 향한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 다. 이런 현황에서 학부모, 학생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주위의 삐딱한 시선을 돌려세운 한 경영인이 있다. 바로 연길시지능양성학 교 교장 최향란씨(36세)이다.   최향란 ...
  • 2012-05-08
  • 중앙민족대학 민족리론 및 민족정책 연구학자 지난 2월, 북경출장길에 우연히 대학시절의 스승이였던 김병호교수를 만나게 되여 옛 스승을 잠간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흑룡강성 연수현태생인 김병호교수는 1974년 중앙민족대학을 졸업한 뒤 모교에 남아 오늘까지...
  • 2012-05-08
  •   최근 중국공산당탄생 90돐 맞이 기념선집《새시기 중국공산당인 우수격언선집》에 연변의 원로작곡가 동희철옹(85세)의 4수의 격언이 등재되였고 편집부로부터 우수격언증서와 메달이 전달되였다. 《명곡앞에서는 총을 든 적들도 무력해진다.》 《총탄은 사람의 육체는 해칠수 있어도 인간의 령혼은 정복할수 없다....
  • 2012-05-08
  •   조선족이 낳은 당대의 저명한 시인 김철선생이 문단에 발을 들여놓던 20세기 50년대 초반, 그가 조선전선에서 돌아와 신문기자로 일할 때였다.서정시 《앵두 네알》을 써서 문단과 독자들의 이목을 끌었고 단시 《지경돌》과 노래 《귀환병과 처녀》(동희철 작곡)가 신춘문예에 입선되여 한창 주목을 받고있을 때였...
  • 2012-05-08
  • 칭다오야베스상무회사 김대수 사장 이야기 신라원 아파트단지 정문에서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는 김대수 사장.         (흑룡강신문=칭다오) 박영만기자= 칭다오시에서 6년동안 한국의 아파트문화보급을 위해 꾸준히 한 우물을 판 한국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인 칭다오야베스상...
  • 2012-05-07
  • 성공 가도 달리는 조선족 3세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리수봉기자 = "재한조선족들의 생활실태를 비교적 전면적이고도 현실적으로 기록해 중국과 한국에 알리려는 목적에서 대림동,가리봉,안산 등 중국인(주로 조선족)집거지역을 답사하게 되였습니다.코리안드림이 시작되여서부터 오늘까지의 전반 과정 역시 우리 ...
  • 2012-05-0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