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를 앞두고있는 동희철(87세)옹은 외출할 때면 항상 수수하고 색이 바래진 참대지팽이를 갖고다닌다. 부인보다도 더 사랑스럽다는 그 지팽이는 동희철옹이 1987년에 아미산을 오르면서 1원을 주고 산것인데 몇해전 허리를 다치면서 사용해서부터 지금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있다.
당구에 푹 매료된지도 십년이 가까운 동희철옹, 매일 오후 한시 반부터 어김없이 당구를 치러 주로간부국 활동중심을 찾는다. 근년에 들어서면서 모자가 많아지고 안경이 많아지고 시계가 많아지고 컵이 많아지고 가방이 많아지고 …
가족, 지인들로부터 받은 선물도 있겠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동희철옹이 각종 경기에 참가해 받은 상품들도 꽤나 차지한다. 늙어서 건강을 챙겨야 자식들에게 부담되지 않는다며 동희철옹은 당구며 낚시에서 좋은 성적도 거두었다.
최근 동희철옹에게는 큰 상이 안겨졌다. “선생님 들창가 지날 때마다”, “고향산기슭에서”, “손풍금 타는 총각” 등 히트곡을 내놓으며 70년 가까운 음악인생을 걸어온 동희철옹이 그 성과를 인정받아 제11회 길림성장백산문예상 성과상을 수상했다. 길림성에서는 최고의 문예상이다.
“선생님 들창가 지날 때마다(작사 김철)”로 제2차 전국소년아동문예창작평의(1954년-1979년) 2등상, “형제자매들 한자리에 모였네”로 전국민족단결가곡평의 1등상, 제5회 진달래문예상 공로상 등 국가, 성, 주의 수많은 상을 받은적 있는 동희철옹은 “내가 할 임무를 완수했을뿐인데 조직에서 만년에도 관심을 주어 너무 감동되고 기쁘다”고 10일 소감을 전한다.
퇴직한지 한참 되지만 각종 문예행사에서 백발에 허리를 꿋꿋이 펴고 지팽이를 짚고다니는 동희철옹의 모습을 여전히 찾아볼수 있다. 당의 일원으로서 조직에서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나서야 한다며 동희철옹은 부탁을 받으면 거절이 없다. 하기에 자치주 창립 60돐을 맞으면서 로간부국에서 백인합창단을 조직하고 동희철옹에게 지휘를 부탁했을 때 허리를 다쳐 한달간 입원치료를 받고 금방 퇴원한 뒤라 한동안 휴양해야 했음에도 동희철옹은 가족의 만류를 마다하고 “쓰러져도 무대에서 쓰러져야 영광스럽다”면서 결국 두곡을 무사히 완수했다.
동희철옹의 막내딸인 동옥선은 아버지는 남에게는 거절을 모르지만 또 가족에서 그를 이길 사람이 없단다. 년세도 들고 집에서 편하게 만년을 보내고 가끔씩 좋아하는 활동에 참가하면 좋으련만 초청을 받으면 항상 거절하지 못한다며 “원망”도 하지만 그 “원망”에는 애틋한 사랑이 담겨있었다.
항상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피아노연주를 들어온 동옥선은 결국 예술인으로 성장했고 현재 연길시조선족예술단 단장으로 활약하고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꾸중을 한마디 못 들었다면서 항상 솔선수범하며 행동으로 자녀들을 교육해온 자애로운 아버지였다고 말한다.
많은 단체, 협회로부터 고문으로 위촉된 동희철옹은 꾸준히 사회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당구, 낚시 등 건강을 위한 운동도 빼놓지 않는다.
“좋은 노래 그것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맑게 해주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특수한 동반자이다.” 《새 시기 중국공산당 우수격언집》에 등재된 동희철옹의 4수 격언중의 한수다. 격언처럼 그의 아름다운 음악들은 우리 사회의 멋진 동반자로 되고있다.
연변일보 글·사진 허국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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