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식당도우미에서 서울시 첫 중국동포 공무원으로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10월28일 20시48분    조회:775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최해연
서울시 외국인다문화담당관 최해연 주무관
 

  (흑룡강신문=하얼빈) 나춘봉 서울특파원= 서울시 외국인다문화담당관 외국인주민인권팀에서 ‘외국인주민 서울생활 살피미’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최해연(39세·하얼빈) 주무관. 서울시의 첫 중국동포 공무원으로서 서울에 거주하는 46만명 외국인들의 편한 서울생활에 필요한 제도나 정책적 제안을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외국인들의 여망이 쏠린 공직에 있는 그지만 한국생활 시작초반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2000년 하얼빈에서 단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혈혈단신으로 할머니가 오매불망 그리던 고향(경상북도 상주)인 한국에 왔다. 외국어대학 통·번역학과 입학이 꿈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한족학교를 다녀 말문이 막혀 있는데다가 한국에 오면서 친지들로부터 빌린 4만5천위안의 빚까지 안고 있었다.

  꿈보다 생존이 우선이었던 그는 일식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서빙을 시작했다. 하루 12시간 이상 삭신이 쑤시도록 일했다. 손님상에 음식을 잘못 올려 야단을 맞기도 하고 낯선 환경에 친구가 없어 외롭기도 했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해왔듯이 스스로 극복해나갔다.

  “엄마가 돌아간 10세가 되던 해 아파서 병원에 가서 홀로 접수하고 약 처방을 받고 링겔을 맞았다. 옆 침상에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링겔을 맞는 친구를 보며 이젠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하는구나 생각하게 됐다.”

  그는 좌충우돌 한국생활을 스스로 이겨나갔다. 10개월간 식당일을 하면서 모든 빚을 청산한 그는 ‘벼룩시장’을 통해 분당의 중국어학원에 강사로 취직했다. 자신의 우세를 살릴 수 있었지만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이어지는 강의로 입은 떠드는데 정신이 없었고 등골에서 식은 땀이 흐르며 생리가 멈추지 않았다.

  후에 학원을 옮기며 강사로 경력을 쌓고 통·번역도 하면서 한국생활에 겨우 한숨을 돌리게 될 무렵인 2003년, 그는 중국에서 대학입시에 실패한 남동생을 한국에 데려와 유학공부를 시키기로 결정했다. 1년에 1000만원 넘는 유학비용에 가정형편상 더 이상 공부를 하기는 무리라는 친지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생을 고려대학에 입학시켰다.

  “돈은 나중에 벌 수 있지만 배움에는 때가 있다. 돈벌이를 하면 일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만 지식이 없으면 장기적으로 볼 때 더 힘들 수 있다.”

  강사 월급으로 동생 뒷바라지가 어렵게 되자 그는 2년만에 다시 횟집에서 식당일을 시작했다. 그 때부터 매일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 10년을 넘었다. “매일 한 시간의 수영시간이 힘든 일상 속에서 유일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남동생이 대학을 졸업하면서 여유를 되찾은 그는 남동생에게 양보했던 대학 진학의 꿈을 이어가기로 했다. 2009년 한국어시험 5급을 통과하고 2010년 경희대학 중국어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33세에 띠동갑의 어린 친구들과 함께 캠퍼스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갖고 있던 모든 돈을 털어 대학등록금을 내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한국입국 10년만에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닌 내 자신을 위해 충전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고 감사했다.”

  대학편입 첫 해가 가장 힘들었다. 돈을 쪼개고 또 쪼개 썼지만 밥도 제대로 못먹을 때가 많았다. 그는 학생들을 상대로 상을 주는 행사는 거의 다 참가했다. 글쓰기대회에서 장려상을 받고 한국어말하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모든 것이 기회였고 모든 게 다 돈으로 보였다. 그게 현실이었고 살아가려면 아득바득해야 했다. 그만큼 절실했고 스스로 이겨나가야 했다.”

  그는 매일매일의 행사나 프로그램을 포착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인터넷을 통해 학교 공지사항을 확인했다. 그는 가정이 어려운 학생들을 상대로 학교 내 아르바이트 기회를 주는 ‘근로학생’으로 뽑혀 매일 4시간씩 일하기도 하고 교수들의 연구과제를 돕기도 했다.

대학시절 대만으로 견학을 떠나는 최해연씨.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공부는 만만치 않았다. 수업시간마다 과제가 있고 자료를 찾으며 리포터를 써야 했다. 돌아서면 잊는 기억력으로 교과서를 반복하여 읽으며 암기보다는 이해에 치중했다. 그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멘토링프로그램을 충분히 활용하여 매일 한국어, 영어 등 자신이 약한 학과목의 교수들로부터 작성한 리포터의 검열을 받았다.

  “노력하는 사람은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대학입학 첫 해 부지런히 찾아다닌 멘토링프로그램의 영어교수가 그의 대학생활에 터닝포인트가 된 ‘영예학생프로그램’을 추천했다. ‘영예학생프로그램’은 연구, 사회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리더십과 탁월한 실천능력을 겸비한 학생을 ‘영예학생’으로 인증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영예학생프로그램’교육을 통해 그는 소속 팀의 리더가 되어 ‘한국수자원관리’에 대한 연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을 탐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팀은 ‘베스트커뮤니티상’을 수상했다.

  이를 기반으로 그의 시야는 더욱 넓혀졌고 따라서 지식에 대한 갈구가 더욱 강렬해졌다. 그는 2012년 전액장학금을 받고 경희대학 국제대학원(석사)에 입학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지식을 접하게 된 그는 세계문화유산강사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활동반경을 넓혀갔다.

외국인주민들과 함께

  2013년 12월, 석사 3기때 그는 활약적인 대학생활경력을 바탕으로 서울시 외국인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그는 대학원 전공인 국제개발협력의 연장선상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더욱 많은 외국인을 위해 봉사할 수 있게 된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특히 공무원이 되기 전까지 한국의 중국동포사회를 전혀 몰랐던 그는 3년 가까운 시간을 통해 많은 동포사회 인물과 단체장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겼다.

  “동포들이 입국시기, 정착기반이나 발전방향에 따라 애로사항이 다르지만 막일로 한국생활을 개척한 1세대나 지금 한국에서 교수나 변호사 등 전문직에서 활약하는 2,3세나 모두 충분히 존경 받을 자격이 있다. 동포사회가 서로 이해하고 융합을 이루며 원활해져야만 한국정부 측에 쉽게 정책 제안을 하고 효율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

  그는 서울시청에서의 임직은 개인 행동이 아닌 전체 중국사람들에게 간접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각오로 매사마다 신경을 쓰며 열심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국적인 내가 잘 해야 전체 중국인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인식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나중에 더욱 많은 중국동포들이 한국공기관에서 근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와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강종호의 풍경유화 조명 역영(易英) 강종호의 유화작품은 인물, 정물과 풍경 등 다양한 방면을 아우르지만 가장 많이 그린 것은 역시 풍경이다. 그가 붓터치와 색채로 부각해낸 향토의 거친 자연미는 사람...
  • 2020-10-16
  • 연변가무단의 저명한 독창가수인 렴수원씨는 국가 1급성악가이다. 렴수원씨는 중학시절 음악선생님의 우연한 발견으로 중소학생문예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뜻밖에 독창 특등상을 따내게 되여 가수의 길을 걷게 되였다. 그후 렴수원씨는 연변대학 예술학부에서 전화자교수의 지도를 받았고 졸업후 상해음악대학성악학부에 가서...
  • 2020-10-15
  • 녕안시 조선족중학교 최화길 선생님 녕안시 조선족중학교에서 최화길(58세) 선생님이라면 그 누구나 엄지 손가락을 내보인다.  뜨거운 사업열정과 헌신정신, 독특한 조선어문 교수방법 등으로 유명한 분이다. 학생들을 잘 가르쳐서 정평이 나있는 외에도 최화길 선생님은 학생들로 하여금 푸근하고도 넉넉한 아버지와...
  • 2020-10-13
  • 제3회 ‘단군문학상’ 소설부분 수상자 림원춘소설가. 제3회 ‘단군문학상’ 소설부분 수상자 림원춘소설가는 1937년 태생으로서 올해 여든이 넘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열정으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1960년에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졸업하고 1982년부터 1996년까지 연변작가...
  • 2020-10-12
  • 경기민요가수 김순희는 연변은 물론 중국 전토와 한국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가수이며 우리 민족의 전통 민요의 맥을 잇기 위한 사명감을 갖고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학부에서 전통민요를 가르치고 있는 교수이다.   전화자선생님과 함께    그는 1992년, 연변대학 예술학원 민족성악전업 본과반에 진학...
  • 2020-10-10
  •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관광산업은 전례없는 타격을 받았다. 비록 영업이 복구된지 여러달 되지만 사람들이 아직도 코로나19의 공포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탓으로 관광업 회복속도는 어느 업종보다도 더디다. 완전히 일상으로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 많은 관광업체들은 잠시 휴업하거나 다...
  • 2020-10-09
  • "중·한방송교류 및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하는 것이 최대 소원"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 한국사무소 리호국 전 대표 인터뷰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 한국사무소 이호국 전 대표, 취재 현장에서   지난 2004년 4월부터한국에 체류하면서 한중간의 중·한방송교류 및 발전에 크게...
  • 2020-09-29
  •   북경사범대학 2018년 학술년회에 초청을 받고 연설하고 있는 북경대학 박세룡교수(자료사진) ○50명 청년과학자 1.5억원 상금 획득 ○국내 정상급 청년과학자 1,200여명 경쟁에 참가, 경쟁률 25: 1 ○중국과학원과 중국공정원 원사 800여명 평심에 참여 25일, 제2회 ‘과학탐색상’ 수상자 명단이 정식으...
  • 2020-09-28
  •     (부분) 랑송: 김형자  "학창시절 조선어문 과대표를 맡으면서 시만 보면 읊어보고 싶었고, 어려서부터 시만 보면 좋았습니다." 학창시절부터 긁읽기를 좋아했다는 김형자씨, 랑송이거나 강연이 있으면 앞장서 참여해 영예를 따냈습니다. 하지만 넉넉치 못한 집안 사정때문에, 또 남편과 자식 셋 뒤바라...
  • 2020-09-28
  •  커시안그룹 박걸 동사장의 어머니 이영희 여사​   ▲사진설명: 이영희 여사가 아들 박걸 동사장, 손녀 박리나, 증손녀 김샛별과 함께 4세동당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천고마비의 황금계절을 맞이하여 베이징 왕징(望京)에 위치한 하얏트(凯悦호텔 2층 연회청에서 베이징시 조선족 각 단체 대표들과 친척...
  • 2020-09-26
‹처음  이전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