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임종현국장 '시장화 물결속 연변축구' 전망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11월30일 21시31분    조회:694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임종현

 

 

 

년말기획 – 2016슈퍼리그 연변팀 총결산 (10) [정부편]

 


일시: 2016년 11월 16일

 


장소: 길림신문사 회의실

 


취재인물: 연변조선족자치주체육국 국장 임종현

 


대담질문: 정하나       취재기자:  유경봉기자

 

 

 

놀라움속의  필연적

 

 

길림신문: 2016슈퍼리그 연변부덕팀을 어떤 말로 평가할수 있는가?  올시즌 성공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임종현: 신기하고 놀랍기도 하며 한편 어찌보면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연변부덕팀은 슈퍼리그에 진출한 1학년생으로서 피말리는 리그잔류에 성공하고 10위권 목표에 도달했다. “강팀에 강하고 약팀에 약한” 연변팀의 옛모습도 다시 보여주면서 “강팀킬러” 와 함께 “약팀부조군” 이라는 별명도 달렸다. 최강 광주항대팀과의 두경기는 가장 전형적이다. 홈장경기에서 88분동안 한꼴로 앞서다가 경험미숙으로 아쉽게 비기고 광주원정에서 항대선수들이 질가봐 두려워하는것을 보면서 연변팀의 위력에 다시 한번 놀랐다. 한편 다른 각도에서 보면 연변팀을 성숙된 강팀이라고 볼수 없다. 성숙된 팀이라면 원정경기에서도 15점 정도는 따야 하는데 올해 원정에서 7점밖에 챙기지 못했다.

 


필연적이라고 하는것은 이한 성적은 박태하감독의 뛰여난 지휘능력,  전체 선수단의 노력과 주당위, 주정부 지도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갈라놓을수 없으며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 언론의 지지감독과 갈라놓을수 없다. 이 모든 긍정에너지들이 거대한 힘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성적은 연변주 체육계통의 전체 봉사자들의 숨은 노력과도 갈라놓을수 없다. 올해 많은 직원들이 홈장경기때마다 휴식일을 희생하고 도시락을 먹으면서 경기장 안팎에서  묵묵히 무료봉사를 해왔다.

 

 

연변스포츠의 “왕자”는 축구 

 

길림신문: 임국장은 3년전 연변주체육국 제1책임자로 부임하면서 “축구를 중심위치”에 두면서  야심차게 연변축구부흥의 청사진을 내놓았는가 하면  또 그동안 연변축구가 을급탈락-갑급복귀-슈퍼리그 진출-슈퍼리그 잔류의  격변기도 겪어왔다.  축구계통의 “1인자”로서 감수라면?

 


임종현:  연변부덕팀은 2014년에 을급팀으로 강급, 2015년에 슈퍼리그 승격, 2016년에 슈퍼리그 잔류 등 3년사이 그야말로 “지옥과 천당사이를 넘나들면서”  정부, 구락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격정과 도전과 탐색의 3년이였다.

 
 

 

 

 
 

2015시즌 슈퍼리그 진출을 확정지은후.

 


스포츠 항목에는 축구뿐만아니라 수십 가지 항목이 있다. 연변 스포츠사업의 중점을 축구에 둔 원인은 연변축구가 연변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일으키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때문이다. 축구는 몇십년래 연변 체육운동의 상징이였다. 체육계통의 제1인자로서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였다. 연변축구가 존재하지 않으면 연변주의 스포츠산업을 담론할수 없다. 연변스포츠에서 축구와 함께 동계항목 빙상운동(스케이트)을 중점중의 중점에 놓았다.

 

 

연변축구 완전시장화 시간표는? 

 

길림신문: 프로축구에서 경제실력이 관건이라고 하는데 연변은 경제가 발달하지 못한 소수민족 변강지역지역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연변축구의 시장화는 어디까지 왔으며 애로와 한계는 무엇인가?

 


임종현: 슈퍼리그 16개 팀중 연변팀을 제외한 팀들은 기본상 시장화를 실현했지만 유일하게 연변팀만은 완전한 시장화를 완성하지 못했거니와 할수도 없다. 연변팀은 경제가 락후한 변경소수민족지역의 팀이기에 경제발달지역 대도시 팀들과 비길수 없다.  계약에 따라 작년부터 5년동안 부덕그룹과 연변주정부가 각각 70%와 30%씩 주식을 소유하고있다. 따라서 최소 이 5년간은 완전한 시장화가 불가능하다.


연변주정부는 물론 성정부에서도 팀에 자금을 지원하고있다. 부덕그룹의 자금이 기본상 제때에 도달하지만 일부 상금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으면 주정부에서 돈을 꿔서 구단의 상금을 선대해주기도 한다.  주내 8개 현, 시 정부에서도 경제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부의 참여가 없이 단순히 부덕그룹에만 의거했다면 연변팀의 오늘이 있을수 없다. 또 한가지 특수한 점은 현재 연변팀만 후원기업이 당지 기업이 아니기에 시장화가 더욱 어려울수밖에 없다.

 

 

 
 

하태균선수를 격려하고 있는 임종현국장.


내가 알건대 국내에서 연변팀만큼 당지 당위와 정부의 지지를 많이 받는 팀은 없다.  연변주당위와 주정부 지도자들은 연변팀의 협찬자금 유치까지   발벗고 나섰다. 특히 전임 장안순서기와 리경호주장 등 지도자들이 수많은 관심과 배려를 주었다. 신임 장엄서기는 홈장경기를 관람하면서 현장사무로 구단에 존재하는 어려움, 주당위와 주정부가 해결해주어야 할 문제 등을 직접 료해하고 중요한 지시를 했다.

 


올해 3월 5일, 상해신화팀과의 첫 원정경기 당시 리경호주장은 북경에서 전국“량회”에 참석하고있었는데 당일 회의가 끝나자 오후 5시 30분 항공편으로 상해에 달려와 가까스로 후반전 경기를 보면서 선수단을 응원하고 배려해주셨으며 이튿날 이른 새벽 비행기로 북경에 돌아가서 계속 회의에 참석해 선수단을 감동시켰다.

 
 

연변과 부덕, 누가 주인? 

 

길림신문: 북방변강의 연변축구와 최남단 중국개혁개방의 전초인 심천의 기업과의 합작은 지역을 뛰여넘는 성공적모식이라고 한다. 임국장은 부덕그룹과의 담판의 주요멤버로 참여해왔다. “연변”과 “부덕”, 이 두 “주인”의 관계를 어떻게 리해해야 하는가?

 


임종현: 리론상에서 보면  연변부덕팀은 70%의 주식을 소유한 부덕그룹의 축구팀이다. 하지만 구락부 소재지가 연길에 있고 홈장이 연길에 있으며 선수들 대부분이 연변에서 배양한 선수들이다. 연변은 소수민족지역이고 연변축구는 연변에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이런 연변의 특수성때문에 연변팀을 완전히 부덕그룹의 팀이라고 보면 안된다. 실제로도 불가능하다. 연변팀이 부덕의 완전소유로 되면 연변축구가 비뚤어진다. 이는 사명이고 책임감이다. 이 점을 부덕그룹에서도 충분히 알고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 우리는 최악의 경우, 부덕그룹의 협찬이 없었다면 연변팀이 슈퍼리그에서 힘들었겠지만 연변팀이 슈퍼리그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다.


하여 체육국에서는 담판시 중요한 3가지 기본원칙을 부덕그룹에 명확히 제기했다. 첫째, 홈장은 연길을 떠나지 못한다. 둘째, 연변적 선수들을 위주로 해야 한다. 셋째, 구락부 명칭에서 “연변”  두 글자를 빼놓으면 안된다. 그러지 않으면 연변팀이 존재할 의미가 없다.

 

 

 

 
 

올시즌 슈퍼리그 잔류를 확정지은후 지문일선수를 격려하고 있는 임종현국장.

 


연변의 특수한 환경, 위치와 더불어 구락부 총경리는 연변적인 사람이여야만 했다. 올해 구락부 총경리 임명시 체육분야 인사를 우선 고려했다. 여러가지 방면을 고려하고 부덕그룹과 처음부터 장기적 협상을 해오면서 여러 해동안 연변축구를 주관해온 주체육국 부국장 우장룡을 주정부에 추천하여 최종 확정되였다.

 


부덕그룹과의 담판과정은 곡절이 많았다. 전임 부주장인 부문표(付文飙)는 합작소조를 설립하고 북경에 가서 연변팀 협찬상 후보로 여러 개의 대형회사들을 만났다. 부덕그룹과의 담판에서 부문표와 우장룡은 심천에 수십차례 드나들면서 진짜 고생을 많이 했다.

 

 

달라진  정부의 역할 

 

길림신문: 현재 연변축구는 체육국, 구락부, 심천부덕그룹의 3자 1체라고 할수 있다. 구락부 운영에서 각자 위치와 역할을 어떻게 리해할수 있는가? 

 


임종현: 올해 구락부 및 연변팀에 대한 체육국의 사업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부차원에서 많은 관여를 하고 구락부에 실질적인 일들을 많이 해주었다. 주로 자금면에서 로임과 상금을 보장하고 주요 인사임명에도 관여했다.

 


올시즌부터는 연변부덕축구리사회에서 자금관리 조절, 체육국에서는 거시적관리, 구락부에서는 구체적인 관리를 분담했다. 체육국사업의 올해 변화는 사업중점을 구단관리가 아니라 인사관리, 자금유치 등 구락부에 대한 거시적인 관리에 주력했다. 구단관리와 선수관리에 참여하지 않았다.  연변팀이 2년간 슈퍼리그 진출과 잔류 성공의 순항을 할수 있었던 제일 큰 원인은 구락부의 운영이 궤도에 올랐고 감독의 주관능동성을 최대한 발휘시킨것이다. 이것이 연변축구의 성공의 비결이라 할수 있다.

 

 

박감독은 “진정한 남자” 

 

길림신문: 임국장은 박태하감독의 영입부터 직접 참여하면서 그동안 박감독을 가까이에서 접촉해왔다. “부드러운 리더십”이라고 하는데  박감독에 대한 가장 깊은 인상이라면? 

 

임종현: 박태하감독은 감독직을 떠나 우선 인간적인 측면에서 봤을때 정말 인간적인 분이다. 한 인간으로서 박감독에게는 보귀한 점이 매우 많다. 항상 겸손하며 해맑은 사람이며 진짜 선비같은 사람이다. 목소리가 높다고 해서 남자인것이 아니다. 사람을 잘 거느리는, 사람들이 잘 따라줘야 진정한 남자다. 박감독은 말수가 적고 목소리가 낮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선수들은 엄청 잘 따른다. 이것이 박태하란 남자의 매력이다.

 


감독으로서는 그 능력이 이미 증명되였다. 나는 경기후 감독초대석 중계방송을 번마다 지켜보는데 박감독의 말은 여느감독들과 달리 론리성이 아주 강하고 내용이 많이 들어있다. 그는 IQ는 물론 EQ가 아주 높은 사람이다.  처음 연변팀을 맡았을때 내가 박감독에게 “연변팀을 중국축구 3부리그 팀이라 생각하지 말고 중국조선족의 대표팀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을 하니 아주 공감을 하시더라.

 

 

중국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팬들 

 

길림신문: 가장 기억에 남는 명승부 혹은 잊지 못할 경기, 아쉬운 경기가 있다면?

 


임종현: 연변팀의 슈퍼리그 첫경기인 상해신화와의 원정경기장에  우리팀 원정팬이  5천명이나 달해 그 붉은 파도에 나는 놀라고 감동했다. 기억에 가장 남는 경기는 지난해 갑급리그시절 호남상도팀과의 경기였다. 장가계에서 버스 20대를 타고 우리 팬들이 응원하러 왔다. 장가계에는 조선족이 고작 3천명이라고 하는데 버스 20대면 근 1천명이 왔다는 얘기다. 이는 중국조선족사회에 존재하는 특수한 현상이다. 정부에서 조직하는 행사나 명절때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기 힘들다. 하지만 연변축구만은 가능하다. 올 한해도 연변부덕팀은 원정팬이 슈퍼리그중 제일 많았으며 원정경기장 분위기는 항상 홈장 같았다. 부덕그룹의 당지 직원들도 원정때면 대거 나와 합세하는데 열정이 대단하다. 연변축구팬 현상은 중국 프로축구에서 유일한 현상이다. 우리 팬은 중국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팬이다.

 
 

언론의 힘 크다

 

 

길림신문: 프로축구에서 언론의 역할 어떻게 생각?

 


임종현: 연변팀이 이룬 훌륭한 성과에는 언론의 힘이 아주 크고 특수하다. 축구는 사회의 방대한 계통공정으로 그중 언론의 지지와 감독역할도 아주 중요하다. 《연변일보(조, 한문)》,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등 연변 현지 언론사는 물론 특히 《길림신문》은 지난 2년간 연변축구의 발전을 위해 축구보도에서 어느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영향력이 있는 《길림신문》축구사이트는 만강의 열정으로 연변팀을 성원하고 있으며 때로는 무게있는 언론을 통해 존재하는 문제도 적시에 지적하고 조언하고있다.


경기장에 제일 먼저 나타나는 김룡기자의 부지런함에 선수단도 칭찬하고있다.

 

 

 

 

 

 

길림신문 사진 글/ 김룡 유경봉 정하나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의 찜통더위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던 대형무극 “아리랑꽃”은 그 인기만큼이나 출연배우들에게도 잊지못할 추억을 선물했다. 무대우에서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배우들이 ...
  • 2016-12-16
  • 단동대동강식품유한회사 전정식총경리     단동대동강식품유한회사 전정식총경리는 1995년 길림화공학원을 졸업했다. 사회에 진출한후 선후로 단동염료공장과 한국외자기업의 관리직에 취직했으나 안일한 회사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나만의 사업"을 위해 여러 사업아이템을 면밀히 검토하는 한편 경영에서...
  • 2016-12-14
  • 색 바래지 않는 예술인생 --- 저명한 음악가 김봉호선생님의 50년 창작인생을 더듬어 중앙인민방송국 조향란 제4편 식을줄 모르는 열정 – 애틋한 고향 정 선생님의 최근 모습 선생님은 1937년 조선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태여났고 1941년 부모님을 따라 길림성 화룡현으로 이주하였다. 선생님은1957년 화룡현 문공단 ...
  • 2016-12-14
  • 김밥 배달·세차·식당 서빙·사우나 청소 등 안해본 일 없어 만두공장 취직했다가 회사 인수, 7년만에 연매출 10억대로 키워 다문화 봉사단체 설립·운영 "피눈물 흘려봐서 봉사에 더욱 매진"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한 건물 2층에 사단법인 다문화가족지원연합회...
  • 2016-12-12
  • 료녕풍성공업기술유한회사 박성갑사장     지난 1991년 7월 중남대학 응용물리학부를 졸업한 박성갑사장(1968년생)은 심양유색금속가공공장에 배치받았다. 수년전만해도 국유기업에 배치받으면 철밥통이여서 흐뭇한 느낌이였지만 그때는 국유기업이 구조개편이 한창이라 갓 대학을 졸업한 이 열혈청년의 마음을 ...
  • 2016-12-09
  • 색 바래지 않는 예술인생 - 저명한 음악가 김봉호선생님의 50년 창작인생을 더듬어 80년대 선생님 모습 1974년 선생님은 길림성 문화국 부국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관직보다는 창작에 더 열성을 보였다. 연변을 떠나 장춘에서 근무하면서 선생님의 창작세계는 한차례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1979년 봄 어느...
  • 2016-12-07
  • "역사유적 발굴 정리는 그 누구도 미루지 못할 책임이다"   연변B.O환경예술미디어회사 리성남회장 기업 수익보다 역사유적 발굴 정리 우선시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특파원=“조국은 속삭이는 어머니”이라는 시어가 있다.그렇듯 조국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
  • 2016-12-06
  • 2010년 4월 부임…"지난 7년 중 요즘이 가장 바쁜 시기" 중국 한류 확산에도 기여 "언론이 조선족에 대한 편견 조장"  "베이징보다 여의도가 편해…초3 아들 중국 가기 싫다해 걱정"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서울 여의도 KBS 신관 7층에 자리 잡은 CCTV 서울지국 사무실 앞에서...
  • 2016-12-05
  • 요리는 경험을 필요로 하고 있다. 기본으로 조리법과 양념에 대한 레시피가 축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막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젊은 층에게 있어서 막연한 것이 아닐 수...
  • 2016-12-01
  •       년말기획 – 2016슈퍼리그 연변팀 총결산 (10) [정부편]   일시: 2016년 11월 16일   장소: 길림신문사 회의실   취재인물: 연변조선족자치주체육국 국장 임종현   대담질문: 정하나       취재기자:  유경봉기자      ...
  • 2016-11-30
‹처음  이전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