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아리랑꽃’은 제가 현역 무용수로 무대에 설수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
7일, 10월에 있은 제8회 진달래문예상 예술류 새별상을 수상한 김선화씨를 만나 자리에서 그녀가 한 말이다. 생글생글 웃고는 있지만 그녀의 얼굴에 깔린, 수명이 짧은 무용수가 가지고있는 아쉬움과 고뇌를 어렵지 않게 보아낼수 있었다.
사실 김선화씨가 지금처럼 무용수로 립지를 굳히게 되기까지는 그렇다 할 특별한 사연도 없다. 누군가처럼 어려서부터 남달리 춤추기를 즐겼던 끼있는 소녀도 아니였다. 그저 사춘기 중학생시절 우연하게 무용수모집으로 학교를 찾았던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선생의 추천이 그녀를 “춤쟁이”로 묶어두는 “끈”이 됐다.
모든게 순탄했던것만은 아니였다.
문화예술이 빠르고도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속에 우리 민족무용이 점차 외면받고있음은 피할수 없는 현실이 되였다. 다들 점점 밀려나기만 하는 전통무용의 처지에 중도포기를 선언했다. 이젠 다른 진로를 생각해보라는 주변의 말림이 없었던것도 아니였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무용에 대한 그녀의 자부심만은 꺽지 못했다. 이 빠른 변화에서 잠시 비켜선 김선화씨는 묵묵히 그녀만의 춤행진을 이어갔다. 춤 때문에 기뻤고 춤으로 생각하고 집중하는 그녀의 춤연습은 텅빈 무대를 사용할수 있는 늦은 밤에도 멈추지 않았다.
남들보다 조금은 늦게 시작한 무용이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했고 춤을 출때 비로소 열정이 생긴다는 그녀는 뒤늦게 찾은 자신의 재능으로 내실을 다지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04년 제6회 전국무용콩클 군무표현 3등상, 2006년 제8회 “제자컵” 무용콩클 표현 1등상, 2014년 제1회 전국소수민족우수무용작품콩클 은상, 2016년 제4회 전국고등학교렴정문화콩클 금상, 2016년 제5회 전국소수민족문예회연 금상 등 크고작은 대회에서 묵직한 영예를 받아안으면서 그녀의 끈기는 결국 빛을 발했다.
“우스개소리로 들리겠지만 저는 우리 민족 전통춤을 출때 ‘그분이 오신다’는 표현을 써요. 춤속에 빠져들면 무릉도원에 있는것처럼 오로지 춤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요.”
춤을 사랑하는 그녀가 하는 말에는 망설임이란 없다.
지난 2008년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과 석사과정을 끝마치고 여기저기서 온 러브콜을 마다하고 김선화씨는 “하고 싶은 일이 뭘가, 무엇이 되고 싶나”는 고민끝에 민족무용 강사로 학교에 남았다.
현역 무용수로서 무대우에서의 삶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무대 밖에서도 우리 전통춤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관객에서 감동을 주고싶다는게 그녀의 결코 소박하지않은 바람이였다.
“나의 선생님으로부터 이어오는 우리의 전통춤을 뿌리삼아 오늘 나의 춤이 있게 됐고 또 고맙게도 곁으로 모여들어 함께 하는 동행이 있고 제자들이 있기에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운 우리 춤이 피여날수 있다는걸 깨닫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녀는 대중이 잘 몰랐고 외면했던 우리 전통춤에 대해 그들이 먼저 가까이 다가가 리해해줄 때 가장 가슴 뿌듯함을 피부로 느낀다.
그렇게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평생을 “춤군”으로 사는 김선화씨에서 “춤군”이 갖춰야 할 덕목을 물었다.
그녀는 “첫째도 둘째도 련습이 아닐가요. 춤은 많이 하면 할수록 몸이 먼저 기억합니다. 춤은 내 자신을 찾아가는 길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우리 전통무용의 미래는 밝습니다. 앞으로 국제적인 행사에서도 열정의 다하는 우리 전통무용의 황홀한 장관에 다들 넋을 잃고 보게 될겁니다.”라고 덧붙인다.
연변일보 글·사진 신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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