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이주노-40억재산 날린 파란만장 히스토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0월11일 00시11분    조회:1788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원제:40억 재산 모두 잃은 이주노, 파란만장 히스토리 털어놔]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의 이주노가 10일 오전 KBS 2TV ‘이홍렬 박주미의 여유만만’에 출연, ‘서태지와 아이들’의 톱스타에서 40억원 재산을 모두 잃기까지, 그리고 최근 북경 현대 음악예술대학교 댄스 무용학부의 명예교수 수락 등 근황을 털어놨다. 이주노는 출생부터가 파란만장했다. 서울의 명문가의 아들이었던 아버지와 시골출신 어머니. 두 분은 어머니가 야학에서 학생으로,아버지는 선생님으로 만났다고 한다.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했으나 이주노가 태어나던 해 선친이 돌아가는 바람에 결혼 생활과 친가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는 외판원 등으로 힘겹게 살다가 초등학교 때 지금의 아버지와 만나 결혼했다. 이주노는 사춘기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방황이 시작됐고 고등학교를 자퇴해 어머니를 무척 힘들게 했다. 방황이 심하던 이주노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그에게 미용기술을 배우라고 해 한때 미용기술을 배웠는데 보조생활까지 해봤다고 이주노는 고백했다.당시에는 5년 정도 보조생활을 해야 했는데 그 상황이 무척 답답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주노는 서울 종로쪽에서 춤꾼들을 본 뒤 그도 춤을 배우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솟구쳤다.어렸을 때부터 끼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우연한 순간에 이처럼 바뀌었다는 것이 이주노의 고백이다. 이주노는 당시 친가와 왕래한 것은 얼마 안되고 외가에서도 무시당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도록 꼭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이 이주노의 당시 심정이었다.사실 그런 마음도 컸지만 춤이 너무 좋았다고 이주노는 당시를 회상했다. 드디어 1992년 이주노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로 연예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그는 용돈을 제외하고는 모든 수입을 어머니에게 드렸다. 어머니가 집도 사고 땅도 사면서 재테크에 성공했으나 이주노가 사업하면서 그것들을 다 잃었다. 이주노가 사업을 하다 빚질 때마다 부모에게 상의하면 팔아서 마음편하게 정리하고 살자면서 모두 내줬다고 한다. 이주노는 “사실 이런 저런 경험을 하면서 지금 속상한 것도 후회하는 것도 싫었다. 내가 그런 것을 알면 된다. 담담해지고 싶어 노력하고 있다”고 현재의 심정을 밝혔다. 이주노는 이어 “지나온 날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집 크기와 용돈이 좀 줄어들었을 뿐 힘든 생활이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만든 것 같다”고도 다짐하듯 말했다. 이어 그는 “교수 제의는 이전에도 국내 대학에서 여러번 받았으나 공부싫다고 뛰쳐나온 내가 하기에는 좀 그래서 거절했다. 하지만 이번 북경 현대 음악예술대학교 댄스 무용학부의 명예교수는 대학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응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주노는 결혼에 대해 묻자 “20대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30대는 사업하고 망해서 경황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40대는 빚진돈 갚느라고 바쁜 상황이다. 그냥 조그만 집이라도 얻어 안정이 되면 그때 열심히 결혼상대를 찾을 생각이다.조건은 마음이 착했으면 싶다”고 진솔하게 털어놨다. 이주노는 마지막으로 “사회생활하면서 누군가로부터 욕먹는 사람은 안됐다. 지금은 환경이 좀 나쁘지만 언젠가는 잘 될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조금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부자가 되었으니 안심하고 믿고 기다려 주세요”라고 부모님에게 당부해 주변 사람들을 찡하게 했다. <뉴스엔=엔터테인먼트부> 2005-10-10 10:55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광동지역 모바일 부품 선두주자 [심수 할루야전자 올들어 매출 실적 1억 2000만달러] 조선족 기업인 남화섭 총재(42세)가 이끄는 심수 할루야전자유한공사는 중국 최고의 모바일 부품 판매, 개발회사로의 비전을 꿈꾸며 이 분야에서 광동지역의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다. 고신기술 분야의 부품 수출입 무역이 주업인 이 회사...
  • 2005-09-07
  • [정의의 부를 위한 사업] —한국 '731부대죄증'연구소 소장 허유선생 인터뷰 '저가 중국에 오기전까지만 해도 731부대에 대한 료해는 교과서나 영화를 통해 약간 아는 정도였습니다. 1990년도 사업차로 중국에 왔다가 중국의 731죄증진렬관을 참관하게 되였는데 그때 일제침략군의 잔인무도한 폭행에 격분을 금치 못했...
  • 2005-09-06
  • 중국 문단에서 어색한 세대로 불리우는‘70후’ (70년대 생을 말함) 작가들은 상하 두 세대를 이어주는 군체로서 4년전부터 ‘미녀작가’로 불리는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였을뿐 실력파들로 불리우는 작가는 없었다. 그러나 ‘70후’작가군체에 ‘미녀작가’만 있는것이 아니라 실력파도 없지 않았으며 ‘미녀작가’속에서도...
  • 2005-09-06
  • 중국에서 한국어교육의 대표인물로 불리우는 강신도 교수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중국에서 한국어교육의 대표인물로 불리우는 강신도 교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과 이웃한 한반도는 예로부터 중국과의 내왕이 밀접했습니다. 그만큼 한국어의 위치도 두드러집니다. 일찌기 공화국이 창립되기 전인 1940년대에 이미...
  • 2005-09-05
  • 베이징 희리양광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 한국부 엄춘연과의 인터뷰 기자(이하는 기로 약칭함) 엄춘연(이하는 엄으로 약칭함) 기: 안녕하십니까? 엄: 안녕하십니까? 기: 바쁘신 시간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선 본인소개와 회사소개 부탁드립니다. 엄: 저의 회사는 베이징시 희리양광과학기술발전유한 회사라고 하는데...
  • 2005-09-05
  • 기: 오늘의 문화현장에서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문예부 부장으로 다년간 활약하면서 많은 텔레비죤문예프로를 제작하셨고 또한 많은 훌륭한 음악작품을 창작하신 고창모선생님과 이야기를 자리를 함께 했다. 음악에 뜻을 두게 될 때는 언제부터였는지? 고: 집의 부친이 바이올린을 켰고 삼촌이 첼로를 켰다. 어렸을 때부터 ...
  • 2005-09-05
  • 베이징희리양광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 김영 지배인과의 인터뷰 [img count='1' width='350' img] 사회자: 개혁개방 20여년간 중국은 전통산업의 양적 팽창에 힘입어 눈부신 경제성장을 지속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국경을 초월하는 인터넷 산업에 대해 아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IT산업의 육성을 21세기초 국가의 중점산업 발...
  • 2005-09-01
  • 중앙민족대학 김명숙 선생님과의 인터뷰 기자:(이하는 전부 기로 약칭함) 김명숙(이하는 전부 명으로 약칭함) 기: 올해 7월이면 학생들이 졸업이잖아요. 현재 반급의 32명 학생들의 취직 방향은 어느정도 실현돼 가고 있습니까? 명: 취직은 학생들이 아직 자기가 취직한 자리를 공개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제 한두달 정도...
  • 2005-09-01
  • 중국기업문화촉진회 조선족연의회 김정섭 부회장과의 인터뷰 (기자)안녕하십니까? (사장) 안녕하십니까? (기자) 녜, 오늘 이렇게 바쁘신 시간을 내주시고 방송국까지 찾으시여 감사합니다. 백마강음식점 하면은 베이징에서 참 오래됐다는 인사을 받게 되는데요, 최초 영업을 시작한지는 언제지요? (사장) 백마강음식점은 19...
  • 2005-09-0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