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인길사장 경영리념-한명의 고객뒤에 거대한 시장 잠재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12월5일 19시31분    조회:1053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고객 한명의 뒤에는 10명, 100명, 1000명 지어 거대한 시장이 있을수 있습니다. 한명의 고객을 잃으면 하나의 시장을 잃는셈이지요."

정리실업이후 생활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창업에 나서 1000여만원의 자산을 이루어낸 룡정시삼신전자업종 김인길경리의 경영리념이다.

1980년, 부대에서 제대한 김인길씨는 룡정시 조양천백화상점에 배치받게 되였다. 이후 1983년 룡정1백화상점에 전근되여 신, 편직, 백화, 오금 등 부문을 전전하며 열심히 노력한 보람으로 1988년에는 한 보통영업원으로부터 부문경리직책을 맡기까지 했다.

그는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있었고 앞길은 장미빛으로 물들어있는상싶었다. 1992년에는 연변대학 통신학부에 입학해 경제관리전업을 전공하기도 했다. 그런데 청청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듯 그가 맡았던 부문이 해체되면서 정리실업하게 되였다. 설상가상으로 안해가 다니던 룡정시손잡이뜨락또르공장도 파산의 변두리에 처해 로임도 내줄수 없었다. 그야말로 살아가기가 막막했다. 통신학부 공부도 열달밖에 견지하지 못했다.

1995년, 가족을 먹여살리고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그는 창업을 결심하고 전기제품상점을 꾸리기로 했다. 하지만 자금이 문제였다. 집에는 저축해둔 돈이 한푼도 없었다. 당시 은행의 문턱이 높아 대부금도 낼수 없는 형편이다. 설령 은행의 문턱이 낮다고 해도 아무것도 담보로 내세울수 없는 그에게 대부금을 내줄리는 만무했다. 친척친우들도 생활형편이 어려워 돈을 꿀수가 없었다. 하는수 없이 다년간 살며 정들었던 집을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 자금이 해결되자 그는 곧바로 종합상점의 4개 매대를 세를 맡았는데 한달에 2000원씩 3년간 계약했다.

당시는 가짜제품이 란무하고 경영업주들도 눈앞의 리익에 눈이 어두워 가짜제품을 서슴지 않고 팔아치우기에 급급했으나 그만은 신용을 첫자리에 놓고 판매후봉사에 모를 박았다. 하여 그의 매대의 제품은 룡정에서 인기제품으로 되였고 그의 제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게 되였다.

그의 매대가 이처럼 활황세를 보이며 2년간 영업하자 매대업주는 계약을 파탄하고 한달에 5000원씩 내라고 협박하면서 그렇게 내지 못하겠으면 당장 매대를 내놓으라고 을러멨다. 계약기간이 일년이나 남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첫번째의 창업은 이처럼 2년만에 요절되고말았다. 영업할 집을 찾지 못한 그는 1년간이나 허송할수밖에 없었다. 속이 타서 재가 될 지경이였다.

1997년 5월, 20만원의 대부금을 내고 친척친우들한테서 10만원을 꾸어 100평방메터되는 집을 사고 삼신(三信)전기기재상점이란 간판을 버젓이 내걸고 영업을 시작했다.

전기제품은 잘 파는것보다 책임지고 파는게 더욱 중요하다고 하는 김인길씨는 고객에게 물건 하나 팔아도 품질이 좋고 뒤근심이 없게 해야 한다는 자기의 경영리념을 고집했다. 하여 그가 판 물건이 고장났다면 생산공장에서 돈을 내지 않아도 자기돈을 팔아서라도 끝까지 고쳐주군 했다.

이같은 성실한 봉사로 10년간의 영업을 통해 삼신전기기재상점은 이미 1000평방메터의 규모를 갖춘 상가로 탈바꿈했고 경영품목도 원래의 10여종에서 300여종류의 품목으로 늘었다. 빈손으로 시작한 창업이 10여년간의 노력을 거쳐 1000여만원의 자산을 갖게 된것이다.



사진 글 김명성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근년들어 도문시의 교육은 전 주, 나아가서 전 성적으로도 충분한 인정을 받고있을뿐만아니라 인민군중의 긍정을 받고있다. 도문시의 교육이 이같은 승전고를 울릴수 있은데는 실정을 실사구시하게 파악, 분석하고 개혁의 좌표를 면바로 정해 파격적으로 사업을 내민 도문시교육국 김춘옥국장의 사업담략과 패기, 넘치는 열...
  • 2007-10-26
  • 글을 쓰려고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운다. 2007년10월16일 새벽4시50분, 연변의 웃음의 설계사 최인호는 뇌출혈로 고별하셨다. 향년 61세이다. 세상 뜨시기전 닷새전 나는 우연히 거리에서 최연출님을 만났다. 당금 점심시간이라 나는 식사하러 가자고 청들었다. 《지금 낚시협회 동료들이 차에 앉아 기다린다》고 하면서 다...
  • 2007-10-26
  • 올해 9월 새학기를 맞으며 림금순(47세)은 룡정시룡정실험소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였다. 25년간 그녀는 학급담임교원으로부터 교도주임, 부교장 등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온 교육자이며 수많은 우수교원과 학생들을 양성해낸 원예사이며 또 지구급, 성급, 국가급 영예들이 수두룩한 모범인물이다. 그녀 사전에는 《락후생》 《...
  • 2007-10-25
  • 청도 성양구에서 투자자문, 부동산개발 및 분양대리, 중개업소 인터넷개발사업에 진력하고있는 최대 부동산정보업체인 월드부동산을 이끌고 나가는 두 조선족 젊은이가 있다.  그들이 바로 양선모(24살)사장과 박학룡(24살)리사이다. 양사장과 박리사는 처음부터 부동산과 인연을 맺었던것은 아니였다. 리공학을 ...
  • 2007-10-24
  • 《중국은 저의 제2고향입니다…》 해마다 중국땅을 넘나들며 중국조선족청소년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면서 중국을 《제2고향》으로 간주하던 민홍기회장(72세, 중국조선족청소년장학회 회장)이 2년만에 또다시 중국땅을 밟았다. 지난해 1월, 심한 뇌경색으로 병상에 누워있으면서도 중국조선족청소년들에 대한 사...
  • 2007-10-24
  • 엄선된 량질콩에 남산지하수를 사용하고 서슬로 초를 뿌려 두부를 앗으면 구수한 전통입맛을 떠올리게 하는 재래식 남산두부가 만들어진다. 연길시장 곳곳에서 찾아볼수있는 남산두부는 크기부터 넉넉하고 하들하들하여 먹음직하고 군침이 돈다. 연변에서 가장 일찌기 규모화 두부생산기업을 꾸리고 《남산두부》라는 두부브...
  • 2007-10-23
  • 어제날 조선족촌의 빈곤한 농민의 아들 오늘날 경뇨도전립선절제술의 선두주자 현재 할빈의과대학 제2부속병원 비뇨기외과에서 활약하고 있는 리철훈(李哲勋,45세)의사는 뛰여난 의술과 후한 인심으로 의사와 환자들가운데서 인기가 많다. 1963년에 녕안시 향수촌의 평범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리의사는 1985년 녕안...
  • 2007-10-19
  • 연길시조선족문화예술중심 국가1급연주원 박미화는 당시 옥류금과의 만남이 실로 뜻밖이여서 꿈만 같았다고 한다. 1979년, 전 주 중학생음악콩클이 연길에서 있었다. 당시 왕청현의 한 중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한편 가야금을 열심히 익힌 박미화는 콩클에서 그간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당연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 2007-10-19
  • 지난 9월 13일 저녁, 은천시 녕하회족자치구대회당, 샨데리야불빛이 휘황한 장내는 우리 나라 소수민족구연예술의 축제한마당이였다. 제3회전국소수민족구연콩클시상식이 바로 이곳에서 거행되는것이다. 저명한 가수 장대위(蒋大为)가 수상자명단을 공포했다. 장대위가 《최우수배우상 세번째분, 조선족 장미...
  • 2007-10-19
  • 중국 최대 자동차부품생산기지의 하나인 장춘시에 신용과 기술력을 밑바탕으로 동업계의 선두를 향해 달리고있는 한 자동차부품생산업체가 있다. 장춘시동원플라스틱자동차부품공장, 이 회사는 조선족 기업가 최석원(58세)공장장이 1994년에 4만원의 종자돈으로 손수 일떠세운 회사로서 지금 장춘제1자동차그룹에서 생산되는...
  • 2007-10-1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