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매하구시 영풍촌 당지부서기 장석철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12월13일 08시23분    조회:913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매하구시 영풍촌의 당지부서기 장석철씨는 성공한 향촌기업인으로, 새농촌건설 선줄군으로,  자녀교양에 성공한 아버지로 1인3역의 역할을 잘해  주위의 화제로 되고있다.

매하구시의 최대 조선족기업 운영

매하구시 번화가에는 3000여평방메터 영업면적을 가진 5층짜리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이 있다. 지금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원 조선족식당)》은 매하구시에서 가장 큰 조선족기업으로서 조선족들이 대사를 치르는 장소이다.

1984년 10여명 조선족들이 손잡고 헐망한 초가집에서 매하구 사상 처음으로 시작한 불고기집인 매하구시조선족식당(현 봄철고려식당)은 지금 영업면적 3000여평방메터에 직원 60여명이 되는 대형조선족식당으로 발전하였다. 이 식당을 이끌고있는 코기러기가 바로 매하구시조선족기업가이며 영풍촌당지부서기를 겸하고있는 장석철경리이다.

2003년 매하구시 도시건설의 수요로 매하구시 조선족식당이 원 자리에 새로 건설되고 원 직원과 재산외에 5명의 투자자가 가담하여 식당이름을 《봄철고려식당》으로 바꾸었다.

식당영업면적이 확대된데다가 매하구시에 대형식당들이 많이 일떠서면서 음식업계의 경쟁은 치렬해졌다. 이 식당에서 경리를 여러번 바꾸었지만 경영난을 타개하지 못하였고 후에는 할수 없이 식당 일부분을 한족에게 임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매하구시 조선족들은 식당의 운명을 안타까워 했고 식당 종업원들은 수심속에서 나날을 보내였다. 식당종업원들은 식당출로를 해결할 사람은 매하구시조선족식당 초창기 직원의 한사람이며 여러 해 동안 기업을 운영해온, 공산당원인 장석철뿐이라며 그가 식당운영을 맡아줄것을 갈망하였다.

《봄철고려식당》 전체 직원들의 추천속에 식당의 운명을 한몸에 안고 장석철은 2006년 4월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의  사령탑을 잡게 되였다.

장석철(56)경리는  2년간은 조선족식당의 물품구입원으로 근무하였고 1986년부터는 자체로 식당도 꾸리고 잡화점도 꾸리였다. 1990년부터는 3만여원을 투자하여 잣가공공장을 꾸리기 시작, 초창기에는 공장직원이 10여명이였으나 후에는 80여명으로, 공장부지 1000여평방메터, 공장건물 300여평방메터에 이르는 공장으로 발전하였다. 1997년까지 식당, 잡화점, 잣가공공장 등 여러 가지 기업을 운영하면서 장석철은 기업운영방법을 익혔고 일부 자금도 축적하게 되였다. 2003년 매하구시 조선족식당 확건시 장석철은 이 식당에 80여만원을 투자하여 투자자의 한사람으로 되였다.

전체 직원들의 기대속에 《봄철고려식당》의 총경리로 된 장석철은 식당의 이미지를 돌려세우고 영업액을 늘리기 위하여 모든 정력을 몰부었다. 식당에 들어오는 물품의 질을 보장하고저 아침 일찍 직접 시장에 나가 물품을 골라 구입하였고 식당에서 사용하는 소고기는 당날 잡은 애송아지고기를 직접 선택하였다. 매하구시내의 식당들을 찾아 그곳 식당의 음식맛을 보면서 장점을 배워 《봄철고려식당》의 음식맛과 메뉴를 개진하면서 봉사질을 개선하고 경쟁률을 높이였다. 식당의 주요메뉴는 불고기인데 독특한 구이방법으로  적쇠우에 종이를 펴 숯불연기를 피하면서 고기를 굽는 방법은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만의 노하우이다.

지금 식당마다 직원을 구하기 힘들어 아우성치는 현실에서 장석철경리는 직원들을 집식구처럼 생각하고 사랑하며 로임을 올려주고 복리대우를 개선하고 영업액 증가에 따라 장려금도 후하게 발급했다.

장석철경리의 탐구적인 경영방법과 전체 직원들의 노력으로 지금 《봄철고려식당》의 영업액은 전보다 20% 장성하였고 이 식당을 찾는 단골손님이 많이 증가되였다.

지금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의 1층과 2층의 불고기좌석은 300여명이 동시에 식사할수 있는데 매일 점심과 저녁에는 손님들이 차고 넘치며 400여명을 용납할수 있는 3층 연회청은 매주 토요일, 일요일과 명절때면 환갑, 결혼 잔치로 차고 넘치는바 한달전에 예약해야 한다.

《벼종자마을》의 서기

장석철은 식당경영의 바쁜 나날에도 시간과 정력을 영풍촌사업에 돌리고있다.

영풍촌은 원래 150여호에 인구 580여명, 경작지 1500무를 가진 조선족촌이였다. 지금 촌에는 100여호에 인구 300여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100여명이 로인협회 회원이다.

장석철은 부대에서 입당한 로당원이다.  2001년 3월, 촌의 서기로 당선된 장석철은 일찍 촌민대회를 소집하고 땅을 사사로이 타촌 촌민에게 양도하지 못하며 집도 함부로 팔지 못한다는 촌민규약을 정했었다. 한데서 지금까지 90% 이상의 토지가 본촌 촌민들에 의해 경작되고있다.   영풍촌에는 벼재배전문가 김일규의 일풍벼종자유한회사가 있어 전 촌이 벼종자재배를 위주로 하는바 《벼종자촌》으로 불린다. 따라서 이 촌 촌민들의 벼재배수입은 비교적 높고 벼판매난도 모르고 살아가고있다.

장석철서기는 촌에 로인들이 많은 점을 고려하여 로인협회에 27무의 논을 내주어 그 수입으로 활동경비를 마련하게 하였고 지난해에는 로인협회 활동실과 게이트볼경기장까지 마련해주어 로인들이 유쾌한 만년을 보내게 하였다. 그외에도 로인협회 대형활동때마다 개인적으로 일부 자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선생같고 친구같은 아버지

장석철과 부인 안순애는 1녀 2남을 두었다. 장석철은 우로는 년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어린 자녀들을 키우면서 7명의 식솔이 가난했지만 화목하게 지냈다. 후에 장사를 하고 기업을 꾸리면서 부유해지고 가정살림이 윤택해졌지만 자녀교양은 늦추지 않았다.

아들딸이 소학교에 입학해서부터 그는 집에다 《학습과 생활 평의란》을 꾸려놓고 시험에서 100점을 맞으면 붉은기를 달아주고 5원의 장려금을 주는 가정평의제도를 실시하여 자녀들의 학습을 격려하였다. 자녀들은 받은 장려금을 정기저금하였는데 고중을 졸업할 때 그들의 통장에는 2000여원씩 쌓이게 되였다. 또한 집에서 작식제도를 정하고 자녀들의 기상, 아침단련, 식사, 등교 시간과 저녁의 휴식시간을 제도화하여 자녀들의 생활을 규칙화시켰다. 한편 아버지로서 또한 친구처럼 자녀들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자녀들의 심신건강을 지켜왔다.

큰딸 장연옥은 대학졸업후 지금 매하구시재정국에서 사업하고있다.  큰아들 장봉학은 길림대학 법학학부에 입학, 졸업후 북경의 한 변호사사무소에 취직했으며  중국정법대학의 석사연구생에 합격되여 지금 석사공부 과정, 작은 아들 장봉국은 길림대학 시장판매학부에 입학하였는데 지금 소주시의 모합자기업의 책임자로 근무하고있다.

자식들은 모두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있지만 명절때마다 매하구에 와서 부모를 찾아 뵙고 매주마다 부모님께 문안전화를 드리면서 효도하고있다.

리창근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신용과 품질로 성공의 기반 닦아요"오상시의 유일한 '악어'표 신사복전매점의 주인 정은주씨(37세)는 신용과 품질,  량호한 서비스로 20개에 달한 오상시 동업종중 선두를 달리고있으며 최근 5년래 매년 백만원의 매출액을 기록하고있다. 오상시 룡봉산향 흥원촌 태생인 정은주씨는 할빈보험학교를 졸...
  • 2008-05-10
  • 4년전, 엄마의 배속에 자리를 잡은지 7개월 반만에 세상에 태여난 아이가 있다. 고령산모의 임신중독증때문에 880그람의 미숙아로 태여난 신생아는 젖도 빨지 못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아이는 여느 건강한 어린이와 다름없이 모든 발육지표가 정상적이다. 880그람의 미숙아에게 새 생명을 안겨준 이...
  • 2008-05-09
  • 최근 몇년간 연변대학은 자기특유의 본과교수 건설과 개혁을 단행하여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룩하였다. 5월 11일부터 16일까지 국가교육부 평가전문가소조가 연변대학의 본과교수사업수준에 대하여 평가(이하 "평가"로 략함)를 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기자는 일전에 연변대학 교무처 처장이며 본차 평가건설판...
  • 2008-05-09
  • 무용언어로 쓰는 서사시  무용은 인류사회 최초의 예술이다. 무용, 음악, 문학이 미분화상태로 있던 원시사회 무용은 음악, 문학과 더불어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반영하였다. 몸짓으로 풀어가는 기쁨과 애환, 바로 이런 무용의 언어로 인생의 서사시를 써가는 예술가가 있으니 그가 바로 73세에 나는 저명한 조선족예술...
  • 2008-05-08
  • 조기증상 뚜렷하지 않아 발견 어려워 신장병환자 과일 채소 '독'이 될수도 현재 전국적으로 신장병을 앓고있는 환자는 약 1억여명, 그중 뇨독증으로 전환될 위험에 처한 환자는 약 100만명이다. 이처럼 신장병은 발병률이 높고 또한 치명적인 후과를 가져올수 있는 질환으로 꼽히지만 현재 중국의 발견률은 10%수준에도 미...
  • 2008-05-08
  • 리혜운녀성은 왕청현의 한 편직물공장에 출근하다가 1993년에 정리실업하였다. 그녀는 처음에 시장에서 매대를 세맡고 의류를 팔기도 하다가 현성에 불고기점이 없다는것을 발견, 기회라 판단하고 연길, 장춘 등지를 다니며 한국 불고기기술을 익힌 후 2003년 8월 300평방메터되는 건물을 임대맡아 《금컵불고기집》을 오픈...
  • 2008-05-08
  • 조국의 변강 천평벌에서 밭 44헥타르를 다루면서 청춘의 열을 새 농촌건설에 이바지하고있는 청년이 있다. 룡정시 개산툰진 광소촌 청년농민 맹범강이다.다른 청년들이 대도시, 연해지역으로 자리뜸을 하면서 젊음의 패기와 열기를 자랑하는 이때 맹범강은 농촌에 뿌리박고 창업하리라 작심하였다. 그래서 천평벌에서 타농...
  • 2008-05-08
  • <<죽은 나무뿌리>>에 살아숨쉬는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연변장백산나무뿌리조각예술협회 황영칠부회장입니다.    소학교시절부터 남다른 애착을 갖고 꾸준히 실천해온 그림그리기, 도장새기기 ,돌조각기능은 황영칠씨가 본격적으로 뿌리조각을 할수 있는 믿거름이 ...
  • 2008-05-06
  • 다년간 독서문화운동을 천직으로 삼고 꾸준히 실천해온 지성인이 있습니다. 그이가 바로 룡정시 한글독서사 김재권회장입니다. 유서깊은 룡정땅에 연변의 첫 조선문독서사를 세운 이가 바로 김재권선생입니다. 김재권선생은 연길현 팔도향에서 소학교를 다닐 때 일요일만 되면 당시 팔도에서 유일한 서점인 <<동...
  • 2008-05-02
  • —룡정고중 임창범교원의 24년의 예술지도사업 성과 주렁성시범보통고중(우리 주 4개)인 룡정고중은 예술교육에서 주렁진 성과를 따내 명성을 떨치고있다. 이 학교 예술교육이 이같이 명성을 떨칠수 있은데는 학교지도부의 현명한 교육리념과 적극적인 지지외에 다년간 예술지도에 혼신을 쏟는 정열의 사나이 임창범교...
  • 2008-05-0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