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매하구시 영풍촌 당지부서기 장석철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12월13일 08시23분    조회:912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매하구시 영풍촌의 당지부서기 장석철씨는 성공한 향촌기업인으로, 새농촌건설 선줄군으로,  자녀교양에 성공한 아버지로 1인3역의 역할을 잘해  주위의 화제로 되고있다.

매하구시의 최대 조선족기업 운영

매하구시 번화가에는 3000여평방메터 영업면적을 가진 5층짜리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이 있다. 지금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원 조선족식당)》은 매하구시에서 가장 큰 조선족기업으로서 조선족들이 대사를 치르는 장소이다.

1984년 10여명 조선족들이 손잡고 헐망한 초가집에서 매하구 사상 처음으로 시작한 불고기집인 매하구시조선족식당(현 봄철고려식당)은 지금 영업면적 3000여평방메터에 직원 60여명이 되는 대형조선족식당으로 발전하였다. 이 식당을 이끌고있는 코기러기가 바로 매하구시조선족기업가이며 영풍촌당지부서기를 겸하고있는 장석철경리이다.

2003년 매하구시 도시건설의 수요로 매하구시 조선족식당이 원 자리에 새로 건설되고 원 직원과 재산외에 5명의 투자자가 가담하여 식당이름을 《봄철고려식당》으로 바꾸었다.

식당영업면적이 확대된데다가 매하구시에 대형식당들이 많이 일떠서면서 음식업계의 경쟁은 치렬해졌다. 이 식당에서 경리를 여러번 바꾸었지만 경영난을 타개하지 못하였고 후에는 할수 없이 식당 일부분을 한족에게 임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매하구시 조선족들은 식당의 운명을 안타까워 했고 식당 종업원들은 수심속에서 나날을 보내였다. 식당종업원들은 식당출로를 해결할 사람은 매하구시조선족식당 초창기 직원의 한사람이며 여러 해 동안 기업을 운영해온, 공산당원인 장석철뿐이라며 그가 식당운영을 맡아줄것을 갈망하였다.

《봄철고려식당》 전체 직원들의 추천속에 식당의 운명을 한몸에 안고 장석철은 2006년 4월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의  사령탑을 잡게 되였다.

장석철(56)경리는  2년간은 조선족식당의 물품구입원으로 근무하였고 1986년부터는 자체로 식당도 꾸리고 잡화점도 꾸리였다. 1990년부터는 3만여원을 투자하여 잣가공공장을 꾸리기 시작, 초창기에는 공장직원이 10여명이였으나 후에는 80여명으로, 공장부지 1000여평방메터, 공장건물 300여평방메터에 이르는 공장으로 발전하였다. 1997년까지 식당, 잡화점, 잣가공공장 등 여러 가지 기업을 운영하면서 장석철은 기업운영방법을 익혔고 일부 자금도 축적하게 되였다. 2003년 매하구시 조선족식당 확건시 장석철은 이 식당에 80여만원을 투자하여 투자자의 한사람으로 되였다.

전체 직원들의 기대속에 《봄철고려식당》의 총경리로 된 장석철은 식당의 이미지를 돌려세우고 영업액을 늘리기 위하여 모든 정력을 몰부었다. 식당에 들어오는 물품의 질을 보장하고저 아침 일찍 직접 시장에 나가 물품을 골라 구입하였고 식당에서 사용하는 소고기는 당날 잡은 애송아지고기를 직접 선택하였다. 매하구시내의 식당들을 찾아 그곳 식당의 음식맛을 보면서 장점을 배워 《봄철고려식당》의 음식맛과 메뉴를 개진하면서 봉사질을 개선하고 경쟁률을 높이였다. 식당의 주요메뉴는 불고기인데 독특한 구이방법으로  적쇠우에 종이를 펴 숯불연기를 피하면서 고기를 굽는 방법은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만의 노하우이다.

지금 식당마다 직원을 구하기 힘들어 아우성치는 현실에서 장석철경리는 직원들을 집식구처럼 생각하고 사랑하며 로임을 올려주고 복리대우를 개선하고 영업액 증가에 따라 장려금도 후하게 발급했다.

장석철경리의 탐구적인 경영방법과 전체 직원들의 노력으로 지금 《봄철고려식당》의 영업액은 전보다 20% 장성하였고 이 식당을 찾는 단골손님이 많이 증가되였다.

지금 매하구시 봄철고려식당의 1층과 2층의 불고기좌석은 300여명이 동시에 식사할수 있는데 매일 점심과 저녁에는 손님들이 차고 넘치며 400여명을 용납할수 있는 3층 연회청은 매주 토요일, 일요일과 명절때면 환갑, 결혼 잔치로 차고 넘치는바 한달전에 예약해야 한다.

《벼종자마을》의 서기

장석철은 식당경영의 바쁜 나날에도 시간과 정력을 영풍촌사업에 돌리고있다.

영풍촌은 원래 150여호에 인구 580여명, 경작지 1500무를 가진 조선족촌이였다. 지금 촌에는 100여호에 인구 300여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100여명이 로인협회 회원이다.

장석철은 부대에서 입당한 로당원이다.  2001년 3월, 촌의 서기로 당선된 장석철은 일찍 촌민대회를 소집하고 땅을 사사로이 타촌 촌민에게 양도하지 못하며 집도 함부로 팔지 못한다는 촌민규약을 정했었다. 한데서 지금까지 90% 이상의 토지가 본촌 촌민들에 의해 경작되고있다.   영풍촌에는 벼재배전문가 김일규의 일풍벼종자유한회사가 있어 전 촌이 벼종자재배를 위주로 하는바 《벼종자촌》으로 불린다. 따라서 이 촌 촌민들의 벼재배수입은 비교적 높고 벼판매난도 모르고 살아가고있다.

장석철서기는 촌에 로인들이 많은 점을 고려하여 로인협회에 27무의 논을 내주어 그 수입으로 활동경비를 마련하게 하였고 지난해에는 로인협회 활동실과 게이트볼경기장까지 마련해주어 로인들이 유쾌한 만년을 보내게 하였다. 그외에도 로인협회 대형활동때마다 개인적으로 일부 자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선생같고 친구같은 아버지

장석철과 부인 안순애는 1녀 2남을 두었다. 장석철은 우로는 년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어린 자녀들을 키우면서 7명의 식솔이 가난했지만 화목하게 지냈다. 후에 장사를 하고 기업을 꾸리면서 부유해지고 가정살림이 윤택해졌지만 자녀교양은 늦추지 않았다.

아들딸이 소학교에 입학해서부터 그는 집에다 《학습과 생활 평의란》을 꾸려놓고 시험에서 100점을 맞으면 붉은기를 달아주고 5원의 장려금을 주는 가정평의제도를 실시하여 자녀들의 학습을 격려하였다. 자녀들은 받은 장려금을 정기저금하였는데 고중을 졸업할 때 그들의 통장에는 2000여원씩 쌓이게 되였다. 또한 집에서 작식제도를 정하고 자녀들의 기상, 아침단련, 식사, 등교 시간과 저녁의 휴식시간을 제도화하여 자녀들의 생활을 규칙화시켰다. 한편 아버지로서 또한 친구처럼 자녀들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자녀들의 심신건강을 지켜왔다.

큰딸 장연옥은 대학졸업후 지금 매하구시재정국에서 사업하고있다.  큰아들 장봉학은 길림대학 법학학부에 입학, 졸업후 북경의 한 변호사사무소에 취직했으며  중국정법대학의 석사연구생에 합격되여 지금 석사공부 과정, 작은 아들 장봉국은 길림대학 시장판매학부에 입학하였는데 지금 소주시의 모합자기업의 책임자로 근무하고있다.

자식들은 모두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있지만 명절때마다 매하구에 와서 부모를 찾아 뵙고 매주마다 부모님께 문안전화를 드리면서 효도하고있다.

리창근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길에 이런 심의(心医)가 있다 조선조 세조가 즉위 9년 12월에 직접 집필한 《의약론》에서는 의사를 심(心), 식(食), 약(药), 혼(混), 광(狂), 망(莽), 허(虛), 살의(薩医)  등 여덟 부류로 설명했다. 4월 16일, 필자는 친구(의사)가 약의(药医)라며 소개하는 중풍치료연구소 김설희소...
  • 2008-04-29
  • ㅡ조선족대학생 리향매 업계의 눈길 모았다  지난 3월 27일에 있은 상해국제복장축제 복장설계콩클에서 조선족녀대학생 리향매의 작품 “카나스”가 종합금상(대상)을 따내 업계의 눈길을 모았다. 어려서부터 복장설계에 남다른 흥취를 가지고있었던 정주 화동중원공학원 3학년 학생 리향매는 길림시출생으...
  • 2008-04-25
  • 젊은 기업 정직한 기업으로 부상저렴한 가격으로 신속하고 안전하게 운송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외국행을 택하고 있을 때 연길시 이용 사장은 자신이 선택한 택배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연변TV방송국 2층에 자리잡고 있는 '비트택배'는 이른 아침임에도 화물 분리작업이 한창이다. 직원들 틈에서 바쁘게 움직이...
  • 2008-04-24
  • 화룡시 복동진의 박명자녀성은 한국에 나가 돈을 벌어온후 여느 사람들처럼 도시에 들어가 안일한 생활을 추구한것이 아니라 고향에서 창업하여 지금은 린근에 이름난 "목이버섯대왕"으로 되였다. 복동진의 한 편벽한 산골마을에서 태여난 박명자씨는 아버지가 중병으로 앓는바람에 아주 어려운 생활을 해왔다. ...
  • 2008-04-24
  • 최의선은 올해 57세, 연길시 의란진 대성촌 농민, 형제가 5명 가운데 맏이다. 가정은 부유하지 않지만 29년 동안 안해 조명옥과 함께 의지가지없는 청소년 10여명을 부양해왔다.1979년 어느날 오후, 워낙 낚시질을 좋아하는 최의선이 마을옆의 강물에서 낚시질을 하고있는데 한 16살 가량되는 아이가 혼자서 강옆에서 고독...
  • 2008-04-23
  • 룡정시 룡문가의 리은희(40세) 녀성은 떡장사로 치부의 꿈을 무르익혀가고있다. 그녀가 떡장사를 시작한것은 2001년 화룡에 있을 때부터였다. 처음엔 떡장사에 경험이 없다보니 떡의 질이 낮고 모양이 곱지 않아 잘 팔리지 않았다. 많은 떡장사군들과 경쟁해 이기자면 떡의 질이 좋아야한다는것을 절실히 느낀 그녀는 그때로...
  • 2008-04-22
  • 20여년간 장백산 겨울풍경을 렌즈에 담아낸 한 촬영가가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최주범촬영가입니다. 백설을 떠인 장백산, 장관을 이룬 얼음세계, 이는 우리 주 사진작가 최주범이 렌즈에 담아낸 장백산의 장려한 모습니다. 1977년 동북사범대학 예술학부를 졸업하고 훈춘시문화관에서 미술관원으로 근무하게 된 ...
  • 2008-04-21
  • 해학적인 연기로 인기높은 채용연극,소품 무대에서 자기만의 특유한 개성으로 관중들의 주의력을 끌어당기는 채용,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의 이미지를 확립해주고 전반 작품이 성공을 거두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수한 존재 인간 채용은 꽃송이의 아름다움에 이채를 더해주는 푸른 잎사...
  • 2008-04-21
  • 민간문학가 김재권선생은 요즘에야 비로소 25년간 마음을 무겁게 하던 짐을 내려놓은듯 좀은 홀가분해진 심정이다. 그가 수집정리하고 집필한, 10권으로 된 《황구연전집》 다섯권이 이미 출판되고 이제 나머지 다섯권도 곧 해빛을 보게 된것이다. 1983년 7월, 황구연로인을 처음 만나 민간이야기를 수집해서부터 올해 책으...
  • 2008-04-18
  • 15일 아침에 산부인과 전문의로 이름을 날리고있는 연변병원 산부인과 김연택주임을 어렵게 만났다. 바쁜 스케줄때문에 이날 김주임은 아침일찍 사무실에 나와 수술실에 들어가기전의 시간을 리용해 인터뷰를 접수했다.“녀성들중에서 자궁암 발병률은 유방암 버금으로 많이 나타나는 질병이고 또 임신가능녀성의 25%...
  • 2008-04-1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