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우리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 "윤동주문학상" 평론부문 본상을 수상한 장춘식 평론가
“우리 조선족에 윤동주라는 시인이 있다는것이 자랑스럽고 그의 이름으로 된 문학상을 수상했다는것이 또한 자랑스럽다. 조선족문학의 진흥을 위해 더 노력해달라는 격려와 채찍질로 알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
평론 “일상과 꿈사이의 방황”으로 제28회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평론부문상을 수상한 장춘식 평론가의 수상소감이다.
마냥 참신한 감성과 진지한 지성으로 다져진 학자의 자세를 보이면서 최근년간 현장비평의 선두에 서서 활발한 비평활동을 전개하고있는 장춘식(張春植)평론가는1959년 룡정시 개산툰진 선구촌에서 태여났다.
변강의 오지인 천평벌에서 세상물정을 알면서부터 그의 눈에 비친 고향은 늘 식량난에 허덕이고있는 찌들고 궁기든 모습이였다. 당시 그에게는 한가지 소망이 있었으니 바로 군대에 나가지 않으면 대학교에 가려는것이였다. 그래서 그 공부가 멸시받던 세월에도 눈에 보이는대로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광란의 문화대혁명시기 분서(焚書)의 화를 요행 면한 서적들중에서 보이니치의 “쇠파리”, 똘스또이의 “부활” 등 명저들을 찾아내여 읽었다.
새로운 대학교 입시제도가 나오자 선참 응시, 수도북경의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에 입학하였다. 한동안의 습작기를 거쳐1984년 처녀작 “찌르레기야, 찌르레기야”를 발표했다.
장춘식의 초기소설은 의식의흐름 기법을 도입, 심리묘사에 많이 치중한 참신한 기법을 보였다. 당시 사회가 심한 사상적인 관념의 격변기를 겪으면서 형성된 세계관이나 인생가치에 대한 새로운 모색의 고민이 새로운 기법으로 소설에 반영된것이였다. 80년대, 중국문단에는 상징주의, 이미지즘, 초현실주의와 의식의 흐름등으로 기법이 전위적 라고 할만한 작품들이 심심찮게 나타나서 독자들에게 선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장춘식의 초기의 작품은 녹쓴 펜을 갈고있는 당시의 풍토에서 짙은 실험성으로 신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실험성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5년 룡정에서 개최된 윤동주서거 50주기 기념학술회의와 연변대학에서 개최된 반파쑈전쟁승리 50주년 기념학술회의를 계기로 우리민족의 해방전문학에 대해 료해하게 되면서 장춘식은 문학창작에보다는 연구에 필봉과 정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해방전 문학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너무도 편파적이고 락후되여있다고 생각했고 그 원인은 해방전문학에 대한 연구가 너무 뒤떨어졌기때문이라고 생각하였던것이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문학외적인 원인, 기성 연구자들의 퇴직, 자료부족 등으로 이 부분에 대한 자료는 대부분 산실되였고 따라서 연구는 상당히 부진한 상황이였다.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인문학도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춘식평론가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이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다년간 중국 국내와 한국을 오가면서 자료조사를 하고 론문을 작성하면서 지식을 쌓고 자료를 모아왔다. 2003년의 박사학위론문 “일제강점기 재중조선인소설연구”등으로 그동안 론문 수십 편과 관련 저서 2부를 간행하였고 학계에서 상당 정도 인정을 받기도 시작했다.
10년간의 연구를 거쳐 마침내 2004년 에 이 방면의 저서 “해방전 조선족이민소설연구” 를 민족출판사에서 펴냈다.
1920년대 조선족 이주민 작가와 이민소설이 출현해 서부터 1945년 광복이 되기까지 중국 조선족의 삶을 다룬 소설들을 이민문학의 시각에서 조명한 이 연구서는 연구자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께서도 해방전 우리 소설의 전모를 리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있다.
소박한 꿈을 가졌던 천평벌의 한 소년이1984년 첫 작품을 발표하여 현재까지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외줄타기로 비평, 소설, 시 등 장르를 두루 시도하면서 “음성양쇠”(1996, 소설집, 민족출판사), “파멸에로의 욕망”(1998, , 흑룡강민족출판사) 등 소설집, “시대와 우리 문학”(1993,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등 평론집, “해방전 조선족이민소설연구”(2004, 민족출판사), “일제강점기 조선족 이민문학”(2005, 민족출판사) 등을 간행. 아울러 연변작가협회 문학평론상(1999), 조선족문학비평상,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평론부문 등 굵직한 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의 중견작가, 편론가로 부상했다.
1998년, 대학원 공부를 위해 5년간 한국에 체류, 국립전북대학교 국문학과에서 “현경준 소설 연구”와 “일제강점기 재중조선인소설연구”로 석사, 박사과정을 거치고 “금의환향”하여 현까지 그는1983년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를 졸업하면서 들어간 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에 연구원으로 붙박혀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성공한 자에게만 박수갈채가 주어지고 여유있는 생활이 주어지고 여러가지 영광이 주어지는것이 사실이지만 삶이 어느만큼 의미있느냐는 우리 각자가 자기 삶에 어느만큼 의미를 부여했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문학만큼 우리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할수 있는 수단도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문학을 선택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문학에 정진할것이다. “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면서 또한 문학을 통하여 개인의 삶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고 이를 통하여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기회와 여건을 만들어주고자 하는것이 소신(所信)이며 그 소신을 장춘식평론가는 오늘도 극명한 자세로 보여주고있다.
김혁 기자
"종합신문"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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