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미아-중국음력설야회에 조선족으로 선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월11일 12시45분    조회:1047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김미아 : "챔피언은 새로운 시작일 뿐" 
음력설야회의 출연초청서를 이미 받아


김미아의 가창실력이"성광대도(星光大道)"를 통해 전문가들에게는 물론,전국 관중들에 의해 크게 인정됨에 따라 또 한명의 조선족 가수가 전국무대에 진출하여 조선족의 명성을 중국 전역에 떨치게 됐다.
 
음악전문가들로부터 “천생적으로 놀랍게 좋은 목소리와 경탄할만한 표현능력을 갖췄다”고 평가된 김미아는 뭇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성광대도" 챔피언을 따냄으로써 중국연예계의 최고,최대무대인 음력설야회에 직행하게 된 것이다. 해마다 음력설야회에서 조선족은 소수민족의 대표의 하나로 출연하고 있지만 기타 주요 소수민족의 대가무에 섞여 공동출연 되는 형식으로 나타났으나 이번에는 김미아의 단독 가수무대가 펼쳐질 전망이여서 그녀를 통한 조선족의 이미지와 예술기량이 크게 홍보 될 전망이다.

김미아는"성광대도"평가심사위원회로부터 “천가만호에 들어갈수있다”는 예언을 받은바 있는데 이는 성광대도 챔피언이 음력설야회로 직행할수 있다는 것을 념두에 두고 그녀의 챔피언지위를 언녕 점찍었기 때문에 나온 평가이다.

뭇 눈길의 기대 이상으로 무대에서 눈부신 매력을 발산한 김미아는 연변태생의 조선족 처녀로서 6년간 피아노연주를 배우고 2000년 연변대학 예술학원에 들어가 주로 성악학과를 전공했다. 그녀는 나이가 많지 않지만 "음악 다면수"라고 할수도 있다.

대학을 졸업한뒤 김미아는 고향을 떠나 상경하여 음악의 푸른 꿈을 지닌 수천만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북경에서 "떠돌이 생활"했다.

그녀는 "뒷심이 없고 배경도 없어 기회를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어요. 한 여자애가 홀몸으로 북경에서 떠돌이 생활한다는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몰라요. 생계를 위해 저는 바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한달에 4000원씩 받았는데 집세를 내고나면 얼마 남지 않거든요"라고 어려웠던 지난날을 회고했다.

직성적이고 숨김없는 성격은 김미아로 하여금 많은 기회를 놓쳐 버리게 했으며 여러 차례 퇴짜를 맞고 나서 자신의 능력마저 의심하게 되였다.

"저는 워낙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성격인데요. 이런 성격은 오락계에서 환영 받지 못해요. 저는 그때 모든것이 너무나도 막막해서 늘 가슴에 손을 얹고 제 자신이 도대체 이 업종에 적합한지 자성하군 했어요. 날마다 머리가 아프도록 고민했으며 몇번이나 심지어 포기까지 생각하기도 했어요."

2008년 김미아는 우연한 기회에 "성광대도"에 참가하여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수있는 활무대를 발견하게 되였다. 콜클에서 그녀는 자유자재한 공연과 속되지 않은 무대표현으로 모든 관중을 정복하여 우승을 따냈고 총선에서는 조선민족의 가요인  "아리랑"을 열창해 놀라운 가창력으로 감동의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김미아는 튼튼한 실력을 바탕으로 가창력을 인정 받았으며 장우,구월조합과 더불어 영광의 2008년 "성광대도"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인생의 저곡에서 빠져나온 김미아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저의 선생은 일찍 견지하면 승리한다고 이야기한적 있는데 이것은 저의 좌우명이기도 해요"하고 말했다.

김미아는 “ ‘성광대도’ 최우등은 성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예요.이는 연예계에 들여놓은 첫 발작이고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고 봅니다”고 말했다.김미아는 이미 북경 백설문화(北京百碟文化)와 계약했으며 이로써 자신의 연예생애를 정식 시작하고 있다. “백설에 가맹했지만,가수로서의 목표는 변하지 않았어요.저는 무대를 좋아하고 무대에서 최고의 실력을 여러분들에게 선사하고 싶어요.그리고 영화,드라마,무대극 등 다종다양한 표현에 섭렵하고자 합니다만,노래를 부르는것을 우선한 전제하에서 참여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내가 애쓰는 모습을 볼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경백설문화 관계자는 “김미아의 미래에 확실한 신심을 가집니다.우리는 내지에서 유일무이한 ‘시각효과’와 ‘가창실력’을 겸비한 가수를 출범시킬 것입니다”고  락관했다.시청자들과 현장관중은 물론,전문가들과 평심위원들에게 심각한 인상을 남긴 김미아에 대해 “성광대도”의 평심위원들은 “김미아는 사람을 놀래우는 좋은 목소리,가창실력이 발군하고 무대표현력이 극히 뛰여나 그야말로 매력으로 넘친다(魅力四射)”고 극찬했다.

중국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김미아는 이미 음력설야회의 출연초청서를 받은 상태이다.이제 10억인구가 관람하는 음력설야회 큰 무대에서 김미아의 발군의 가창표현이 주목된다.

조글로미디어 박연경 기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북방의 혹한에 도전하며 엄동설한에 야외에서 알몸에 반바지만을 입고 물까지 뒤집어쓰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얼음사나이' ,'내한기인' 김송호이다.  2월 3일 저녁 기자는 할빈시조린공원에서 관광객들의 발목을 잡는 그의 쾌거를 취재수첩에 담았다. 흑룡강성 화천현 ...
  • 2009-02-06
  • 민속악기 퉁소와 중국에서의 그 뿌리—연변문화예술연구주임 연구원 김남호씨를 만나 《퉁소는 중국조선족 민간에서 가장 널리 보급되고 사랑을 받아온 대중악기로서 백여년간 중국조선족 이주민들에 의해 중국땅에 뿌리내렸습니다.》 연변문화예술연구중심에서 연구원으로 몸담고있으면서 퉁소의 력사를 추적하고 아울...
  • 2009-02-05
  • 자연과 우주, 인생을 그린다!《마음속 깊은 깨달음이 없다면 창조란 있을수 없다!》 이것은 중국에서 가히 손꼽을수 있는 저명한 미술평론가 정헌선생님이 조선족 서양화가 문철남(文哲男)선생에게 내려준 아낌없는 찬사이다. 1962년 료녕성 심양시에서 출생한 문철남은 1987년 동북사범대학 미술계를 졸업한 후 장춘시조선...
  • 2009-02-03
  • 자연과학연구분야 정상에 조선족교수 우뚝 섰다—연변대학 리동호교수 유럽공동체연구항목 쟁취에 성공 우리 신변의 한 조선족청년교수가 자연과학 리공과연구분야에서 마침내 지방대가 세계로 나아가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그가 바로 국가교육부 중점실험실인 연변대학 장백산생물기능인자실험실 부주임 겸 분석측정...
  • 2009-02-01
  • 화룡시희망복리원 리문철원장의 35년이 세상에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싶지 않은 아이들이 어데 있겠는가. 100여 불우한 아이들로부터 아버지, 어머니로 불리는 화룡시희망복리원 리문철원장 부부, 의지가지 없는 고아들과 가난한 가정의 학생들에게 친부모와도 같은 사랑을 쏟아 35년! 희망복리원의 감동은 끝없는 메...
  • 2009-01-31
  • 중국에서 안중근 의사의 얼을 기릴 수 있는 것은 재중동포(조선족) 사회가 버팀목이 돼 왔기 때문이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의 서명훈(78·사진)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하얼빈시 조선민족사업촉진회 명예회장인 서씨는 20년간 안 의사를 연구해 왔다.서씨는 “어릴 때 어른들에게 안 의사 ...
  • 2009-01-29
  • "중국 중앙발레단보다 UBC가 한수 위" 유니버설 발레단 예술감독 在中동포 유병헌씨“한국 국적은 아니지만 제 몸과 마음에는 한국 피가 흐르고 있잖아요. 그간 외국인이 도맡아왔던 유니버설발레단(UBC)의 예술감독 자리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제가 올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기분 좋습니다. 이는 그...
  • 2009-01-27
  • 30,40대들로부터는 《방기도》, 50대들로부터는 《주정뱅이》, 로인들로부터는 《지현장》으로 불리우는 연변연극단의 인기배우 김동현씨가 2009년 음력설야회에서 소품 《부조사계절》에 출연하며 시청자들과 재회하게 된다. 야회촬영장에서 김동현씨를 만난 필자는 2006년 내부퇴직후 모처럼 새로운 작품에 출연하게 되는...
  • 2009-01-24
  • 1971년 생인 마화텅(馬化騰)은 중국에서 열 손가락에 끼는 갑부다. 이름이 생소할 수 있지만, 마화텅은 텐센트(騰訊)의 창업자로 중국 네티즌 대다수가 사용하는 ‘QQ’라는 메신저를 만들었다. 중국 네티즌 96.7%가 사용하는 대표 메신저로 4억명 이상이 등록했다. 중국 내에서는 ‘Q친구’라는 대명사...
  • 2009-01-23
  • 무자년인 2008년은 연변대학예술학원 성악교원이며 가수인 박미화씨의 인생에 굵직굵직한 일들로 큰획을 그은 한해였다. 그는 이딸리아성악콩클에서 수상했고 또 이딸리아의 류학생활을 마무리 짓고 귀국하여 다시 연변대학예술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던것이다. 1994년 상해음악학원을 졸업한 박미화는 타지방의 월등한 ...
  • 2009-01-2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