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년에 연변가무단 관현악대의 《보급음악회》를 관람하노라면 여러가지 악기의 신비한 조화로 이루어진 멋들어진 관현악곡이나 가수들의 열창보다는 악대는 물론 전반 관중석의 분위기까지 말없이 이끌어가는 지휘자의 솜씨에 더구나 탄복하게 된다. 바이올린의 멜로디가 은은하게 울릴 때면 박수를 치지 말고 조용히 음악감상을 하라는 신호로 입에 손가락 하나를 갖다대고 또 모든 악기들이 총동원되여 성수나는 곡조를 연주할 때면 신나게 박수를 쳐달라고 관중석을 향해 지휘봉을 흔들어주는 지휘자 그가 바로 연변가무단 국가1급지휘인 최룡국선생이다.
손풍금반주로 인기를 끌던 시절
최룡국선생은 지금은 악대지휘로 각광을 받고있지만1967년부터 1970년대중반까지는 독창이나 중창종목을 공연할 때면 손풍금반주로 관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룡정1중에서 공부할 때 바이올린연주에 남다른 흥취를 갖고있던 최룡국선생은 1963년에 연변예술학교에 입학하여 기진도,박재범 등 교수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1965년부터는 양성덕선생님한테서 손풍금을 배웠다.
4년간 부지런히 배우고 열심히 련습한 보람으로 바이올린도 잘 켜고 손풍금도 능란하게 다루게 된 그는 1967년 졸업하고 연변가무단에 배치받게 되자 악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한편 독창이나 2인창,중창,표연창,바이올린합주 등 종목을 출연할 때면 손풍금반주로 무대에 올랐다.
그시기 연변가무단에서 성악배우로 활약한적 있는 독창가수들치고 최룡국선생의 손풍금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방초선,왕개평,박정자,김선옥,최경애 등 독창배우들도 최룡국선생의 손풍금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고 10여명씩 줄을 지어 출연하는 남성중창,녀성중창 등 종목도 손풍금반주가 없어서는 안되는 풍경으로 무대에 등장하군 하였다.
점차 관중들은 신나게 손풍금을 타는 최룡국선생에게도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으며 다음프로를 소개하면서 《여기 손풍금반주에 최룡국입니다》라고 할 때면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는 관객들도 많았다. 특히 1976년에 참가한 광주무역회공연에서는 최룡국선생의 손풍금반주가 한몫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지휘봉과 인연을 맺고
꼬박 9년간 바이올린연주원과 손풍금반주원의 임무를 수행하느라 퍼그나 분주하게 지내온 최룡국선생에게 꼭 해보고싶은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악대지휘였다.
악대석에서 바이올린연주에 몰입하면서도 전반 악대를 능란하게 지휘해가는 안국민선생님의 솜씨에 탄복을 하고 《나도 저런 재간을 배울수는 없을가?》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하던 어느날 선생은 용감하게 안국민선생님을 찾아가 지휘를 배우고싶다고 고백했다.
안국민선생님은 무엇이든 더 배우지 못해 아글타글하는 젊은이의 열성에 감동된 나머지 노력만 하면 꼭 성숙된 지휘로 성공할수 있다고 고무격려해주었다.
이렇게 안국민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1973년에 연변가무단 악대의 부지휘로 발탁된 최룡국선생은 1979년 상해음악학원 작곡지휘학부에서 꾸리는 연수반에 입학하여 3년간 전문지식을 배울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마혁순,황효동 등 교수님들의 문하에서 목마른 사람이 물마시듯 지식을 배우고 연변가무단에 돌아온 최룡국선생은 1982년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30돐을 기념하면서 마련한 가무야회에서 최삼명선생님이 작곡한 교성곡 《장백송가》를 재치있게 지휘하여 지휘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때로부터 안국민선생님은 의식적으로 창작에 많은 정력을 투입하면서 최룡국선생이 지휘사업을 마음껏 해볼수 있도록 조건을 창조해주었다.덕분에 최룡국선생은 많은 작품과 접촉하면서 실력을 다질수 있었고 보다 빠른 시간내에 크고작은 공연을 독립적으로 지휘할수 있는 성숙된 지휘가로 자리를 굳히게 되였다.
보람찬 지휘인생
1990년대부터는 최룡국선생의 지휘생애에서 가장 보람찬 전성기라고 할수 있다.
최룡국선생은 1990년에는 안국민선생님과 함께 가극 《아리랑》을 지휘하고 1991년에는 대형무극 《춘향전》을 단독지휘하였는데 이 두 작품은 선후로 국가문화부로부터 문화대상을 수여받았다.
무용시 《장백정》,음악무용서사시 《천년아리랑》,기상곡 《나의 살던 고향》,교향곡 《신기한 장백산》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 그리고 수차례 음악회에서 지휘를 담당한 선생은 또 연변가무단 관현악대외의 많은 연주단체를 지휘하면서 지휘가로서의 장끼를 충분히 과시하기도 했다.
1994년 한국 KBS방송국의 초청으로 대형무극 《춘향전》의 한국방문공연시 연변가무단은 서울내셔날심포니 오케스트라(교향악단)의 반주로 무극 《춘향전》을 공연하게 되였는데 최룡국선생이 객원지휘를 맡았다.그번 공연에서의 성공적인 지휘로 소문을 놓은 선생은 그해 8월에 정부의 파견을 받고 한국국립중앙극장에 연수를 가서 반년간 지식을 풍부히 하였고 한국문화부 장관의 접대를 받는 등 대우를 향수하였다.
최룡국선생은 1997년11월에 상해음악학원 건교 70돐을 기념하는 행사에 초청을 받고 음악회에 참가하여 상해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하고 1998년 4월에는 한국 《예술의 전당》의 초청으로 《`98교향악축제》에 참가하여 연변교향악단을 지휘하였으며 그해 KBS 《열린음악회》에 출연하여 KBS관현악단을 객원 지휘하고 11월에는 한국 KBS 문화사업단의 초청으로 《제1회 재외동포서울예술제》에 참가하여 KBS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하였다. 그리고 2000년4월 《가요무대》에 출연하여 KBS관현악단을 객원 지휘하였고 2001년 5월에는 《아리랑음악축제》에 참가하여 서울내셔날심포니 오케스트라(교향악단)를 객원 지휘하였다.
예술보급의 길에서
1980년대부터 최룡국선생은 연변가무단 관현악대를 이끌고 연변 각지의 공장,기관,학교,부대,당학교 등을 돌며 《보급음악회》를 수없이 조직, 광범한 대중들에게 짙은 예술적향수를 제공하고 민족예술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이도백하림업국,훈춘시부련회,돈화백화공사,도문시당위 선전부 등 단위와 중국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를 비롯한 민간단체들에서도 예술행사를 조직할 때면 연변가무단 관현악대를 찾고있으며 연변1중에서는 2001년부터 소질교육의 한과목으로 해마다 2차씩 교정에서 《보급음악회》를 펼치고있다.
이런 《보급음악회》에서 최룡국선생은 자기가 직접 종목안내를 맡고 이름난 음악대가들이며 세계명곡들 그리고 무대우의 악기들을 하나씩 소개해주기도 하고 지휘에 호감을 갖고있는 젊은이들이 무대우에 올라와 지휘봉을 잡고 직접 지휘도 해보게 하면서 클래식음악(高雅音 )을 광범위하게 보급하고있다.
지난해에 정년퇴직하고서도 초빙을 받고 의연히 출근해서 주로 연변가무단 합창대의 지휘를 맡고있는 최룡국선생은 또 연변음악협회에서 조직한 《백일홍녀성합창단》의 지도를 담당하고있다.2007년에 한국음악협회 대전광역시지회의 초청을 받고 한국의 제12회 대통령상대전합창음악제에 참가하여 특별상을 따내고 대전,서울,천안,당진 등지에서 공연을 펼치여 박수갈채를 받은 《백일홍녀성합창단》은 돌아오는 10월중순에 중국음악협회의 주최로 복주에서 진행되는 해협량안조화합창절행사에 참가하게 된다.
음악가정의 행복한 세대주
1987년부터 4기에 걸쳐 꼬박 20년간 주정협 위원(9기,10기는 상무위원)으로 지내고 현재 중국음악협회 회원,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부회장,연변음악협회 부주석 등 사회직무를 맡고 음악을 위한 사업에만 전념하고있는 최룡국선생은 또 음악가정을 이끌어가는 행복한 세대주이기도 하다.
1960년대에 연변예술학교에서 어깨나란히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함께 연변가무단 악대에서 사업하는 최국화녀성과 결혼을 하고 피아노연주자 아들을 둔 최룡국선생네 가정은 세식구가 다 음악을 위한 사업에 종사하고있는것이 특징적이다.
재직당시에 줄곧 수석바이올린수로 활약한 부인 최국화녀성은 정년퇴직한 지금도 초빙을 받고 연변가무단 수석바이올린수를 담당하고있다.
어릴 때 전자풍금을 배워 송경령기금회에서 조직하는 전자풍금콩클에 참가하여 상을 따낸적 있는 아들 최광은 성장하면서 피아노를 전공하였는데 연변예술학교를 다닌후 중앙음악학원에 입학하여 피아노전공으로 본과대학을 졸업하였다.그후 한국예술종합대학 석사과정을 완성하고 또 독일 만하인국립음악대학에서 피아노 실내악 석사 및 최고연주자과정(박사)을 마친 그는 지난해에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피아노독주음악회를 열어 해당 전문가들로부터 전도유망한 피아노연주가로 인정을 받기도 했다.
다같이 최씨성을 가진 세식구가 각기 지휘봉,바이올린,피아노를 무기로 음악을 위한 사업에 모든것을 바쳐가면서 생활의 보금자리를 아름답게 장식해가는 이들 가정은 행복한 음악가정으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고있다.
연변라지오TV신문 채선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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