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방정부끼리 “북한 인력 달라” 아우성…현지 한국 기업도 고용 간절히 원해
중국 정부가 허용한 북한 인력이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기 시작한 2012년 5월, 평양을 출발한 북한 인력이 단둥을 거쳐 속속 투먼(图们)으로 진입했다. 당시 이를 부러움 속에서 유심히 지켜본 것은 투먼과 인접한 훈춘시(珲春)였다. 바로 전달 중국 국무원은 훈춘시를 ‘훈춘국제합작시범구’로 지정했다. 중국 변경도시 가운데 유일한 국가급 경제특구였다. 이 시범구 전체 넓이는 90km2. 훈춘과 북한 나선을 연결, 나진항을 통해 동해 뱃길을 확보하고 국제적인 물류 거점을 조성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당시 ‘국제합작시범구’로 지정된 훈춘시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현안이 있었는데, 바로 인력 수급 문제였다.
사람 찾아보기 힘든 접경지역
아무리 경제특구를 조성한다 해도 노동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들어올 기업이 없는 것이다. 당시 접경지역에서 제조업 분야의 중국 인력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가 북한 인력 공식 수입 움직임을 보이자 훈춘시 측은 어떻게 해서든 북한 인력을 수입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훈춘은 투먼처럼 북한 인력 수입 권한을 따내지 못했다(2013년 12월 기준으로 중국 정부가 허가한 북한 인력 수입 가능 도시는 투먼이 유일하다). 훈춘은 투먼보다 훨씬 큰 도시였기에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인력 수급 문제가 ‘국제합작시범구’의 사활이 걸린 사안이다 보니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훈춘은 북한 인력을 받아내려고 백방으로 뛰었다. 마침내 북한 측을 설득해 인력 수입 합의에 성공했다. 훈춘의 한 여성 의류 기업인이 북한 인력송출업체 ‘능라도’와의 각별한 인연을 활용해 계약을 따낸 것이다. 이는 정부 간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일종의 편법이었다.
중국 훈춘 취안허 세관과 북한 원정리를 잇는 다리. |
훈춘이 요청한 북한 인력 30명이 2012년 5월 말 평양을 출발해 북·중 접경 도시 단둥에 도착했다. 현장에는 이들을 인솔하려고 훈춘시 공무원과 기업인이 나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투먼 지역 기업인들이 나와 북한 인력의 훈춘행은 불법이라고 저지하며 북한 인력을 투먼으로 돌리려 한 것이다. 이에 훈춘 측은 발끈했다. 북한 인력을 고용하기로 한 훈춘 봉제 공장의 여성 대표는 “왜 우리 인력을 막느냐”며 북한 인력을 데려가려는 투먼 측 인사의 머리채를 잡아끄는 등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졌다. 훈춘시 공무원들은 현장에서 “북한 인력을 달라”며 집단 농성을 벌이기까지 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단둥시가 나서야 했다. 그러나 북한 인력은 투먼에서만 고용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 때문에 결국 북한 인력 30명은 모두 투먼으로 향하게 됐다.
북한 인력 고용 문제를 놓고 한바탕 충돌이 벌어진 후 투먼과 훈춘 간 갈등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그사이 훈춘은 훈춘대로 북한 인력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투먼시 정부가 상부인 옌볜조선족자치주(옌볜자치주) 정부에 훈춘의 북한 인력 수입 중단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투먼시 정부는 크게 2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투먼이 시 정부 차원에서 힘들게 일궈놓은 북한 인력 수입을 훈춘이 기업 차원에서 뒤늦게 뛰어들어 가로채고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이렇게 편법으로 고용한 북한 인력에게 훈춘이 투먼보다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함으로써 시장경제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점이었다.
투먼시의 진정서를 접수한 옌볜자치주 정부는 2012년 8월 중순 북한 인력 수입을 잠정 중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결국 그해 5월부터 속속 들어오던 북한 인력의 발길은 8월 중순 멈춰버렸다. 이러한 조치가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북한 인력을 받기로 했던 중국 기업, 그리고 북한 인력 송출담당업체 ‘능라도’ 모두 비상이 걸렸다.
결국 이 문제는 절충점을 찾으면서 해결됐다. 모든 북한 인력은 투먼시 정부에서만 수입하고, 훈춘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이 있으면 투먼시가 배분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투먼은 훈춘으로 인력을 송출하는 과정에서 행정 처리를 대행하는 조건으로 일정 비용을 받게 돼 그나마 타협이 이뤄질 수 있었다.
우수 기업들 중국 이탈 속출
필자는 특파원 기간 투먼과 훈춘 등 북·중 접경지역 소재 제조업체들의 심각한 인력난을 취재한 적이 있다. 유명 A 업체는 전 세계로부터 주문이 답지하지만 노동력 부족으로 주문을 감당하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을 토로했다. 이 기업의 근로조건은 웬만한 중국 기업에 비해 상당히 우수한 편이었다. 급여도 높은 편이었고, 근로자들이 쾌적하게 일하고 쉴 수 있는 공간과 휴식 시간을 충분히 제공했다.
그럼에도 젊은 근로자의 이탈이 끊이지 않았다. 한 번 이탈하면 새로운 젊은 노동자를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젊은이 대부분이 대도시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찾는 것이 교도소 수감자였다. A 기업은 수시로 여러 감옥을 돌며 우수한 수감자를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이마저도 충분한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다며 하소연했다. 이처럼 인력난이 심각하다 보니 북·중 접경지역 기업은 북한 인력에 대해 경쟁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북한 인력이 수입되기 시작하자 투먼 경제개발구로 “북한 인력을 쓸 수 있느냐”는 접경지역 소재 기업들 문의가 쇄도했다.
제조업 분야의 인력난은 비단 접경지역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중국 거의 전역에서 일어나는 문제였다.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세계의 시장 중국’으로의 변화. 이는 필자가 베이징 특파원 기간 실감한 중국의 대표적 변화였다. 세계 빅2의 위상을 가진 중국은 더는 넘쳐나는 저렴한 노동력의 국가가 아니었다. 아무리 힘들고 더러운 일이라도 시켜만 달라는 사람으로 넘쳐나던 중국은 옛말이 됐다. 이는 여전히 여러 지역에서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중국 정부로서도 골치 아픈 문제다. 인력이 없다면 그 많은 개발은 누가 담당할 것인가.
필자가 둥관, 칭다오, 다롄, 상하이 등 중국 각 지역에서 만난 제조업 분야 기업들은 북한 인력을 쓰겠느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일하겠다는 사람은 누구든 반기는 마당에 북한 인력은 더더욱 환영의 대상이었다.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을 잘할 뿐 아니라, 이직 우려도 없기 때문이다. 2011년 여름 중국 정부가 처음으로 북한 인력 수입을 결정한 배경에는 이와 같은 중국 내부의 다급한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필자는 본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다수의 한국 기업 관계자 역시 한국정부가 북한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줄 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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