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국내 조선족 동포 수가 어느새 70만 명에 이르고 조선족 동포들의 삶의 모습과 질은 많이 달라졌지만,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20년 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몰려오던 조선족에 머물고 있습니다. 과거 조선족들이 '한몫' 잡기 위해 앞다퉈 한국에 들어왔다면, 지금은 한국의 앞선 문물을 익혀 중국에 돌아가 사업을 하거나 아예 한국에 정착하려는 이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이런 변화된 국내 조선족 동포사회의 모습을 기획기사 다섯 건으로 정리해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한국서 돈 벌어 고향에 가겠다는 것이 과거 추세라면 한국 정착이 최근 추세다."
중국 동포(조선족)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다. 중국 동포 사회의 변화가 뚜렷하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 동포의 국내 유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사실상 세대 교체가 이뤄지면서 의식도 변했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에 따른 한중 교류 증가와 중국 관광객의 급증, 그리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중국 동포의 의식도 바뀌고 있다.
가장 큰 변화가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살겠다는 중국 동포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뜨내기 아닌 한국 사회의 주인이 되겠다는 의지를 품은 것이다.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를 포함, 헤이룽장(黑龍江)성과 랴오닝(遼寧)성 조선족 집거 지역이 급속히 쇠퇴하는 가운데 한국에 정착하는 중국 동포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서울 구로구 대림동은 물론 신림동, 신대방동, 자양동 건국대 주변, 그리고 경기도 수원역 부근, 성남 수진동, 안산 원곡동 등은 중국 동포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중국 동포 타운이라고 할 수 있다.
◇ "중국 집 팔고 한국 집 샀다"…중국 동포 정착 트렌드
1999년 제정된 '재외동포의 출입국 및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재외동포가 국민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부여받고 근로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을 계기로 중국 동포의 국내 유입이 활발해졌다. 특히 2007년 방문취업제로 자유로운 출입국이 가능해지자 중국 동포의 입국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중 간 소득 격차와 임금 차이가 중국 동포의 돈벌이 한국행을 부추겼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 현재 외국인 신분의 중국 동포 수는 60만 6천694명이다. 여기에 행정자치부의 작년 통계상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중국 동포는 7만 6천921명이다. 이를 합치면 70만 명에 육박한다. 이는 경기도 안산시 인구와 비슷하다.
눈에 띄는 건 돈벌이 후 귀국이 목적인 방문취업(H-2)은 갈수록 주는 추세라면 정착 목적의 재외동포(F-4), 영주자격(F-5) 등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방문취업 사증 취득자 수는 2007년 22만 8천686명에서 2009년 30만 6천283명, 2011년 29만 5천464명, 2013년 23만 739명으로 감소 추세가 뚜렷하다. 반면 재외동포 사증 취득자 수는 2007년 3만 4천695명에서 2013년 28만 130명으로, 영주자격 사증 취득자 수는 2007년 1만 6천460명에서 2013년 8만 7천497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재외동포(F-4)를 국적별로 보면 전체 25만 363명 중에 중국 동포가 17만 3천499명(69.3%)이며 이 가운데 20대에서 40대까지가 11만 9천762명으로 전체의 47.8%에 달한다. 현재 우리 정부가 60세 이상의 중국 동포에 대해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주는 것을 고려하면 20∼40대의 비중이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동포인 김용선 한중무역협회장은 "한국 이주 1세대라고 할 노년층은 돈 벌고 고향으로 돌아간 경우가 많다면 젊은 층은 정착을 택하는 사례가 많다"며 "나도 중국에 있는 아파트를 팔고 한국에서 아파트를 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조선족 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한중 교류 확대와 우리나라 기업의 중국 투자 때문에 중국 동포들이 한국 기업이 있는 베이징(北京)·칭다오(靑島)·상하이(上海) 등지나 한국으로의 이주와 정착이 급증하면서 지린·헤이룽장·랴오닝성의 조선족 집거 지역은 해체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김 회장은 "헤이룽장 자무스시의 조선족 거주지인 탕왕향 13개 마을에 11개의 조선족 소학교(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지금은 1개만 남았을 정도이며, 그마저도 학생 부족으로 폐교 위기"라고 전했다.
◇ 한중 FTA 시대…창업 꿈꾸는 중국 동포 늘어
중국 동포의 우리나라 정착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직업이다.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와는 달리 재외동포에게는 상대적으로 폭넓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중국 동포의 한국 정착으로 이끄는 '유인'이다.
정부는 1월 27일 재외동포의 취업 범위를 제조업·농축어업·임업 분야로도 확대했다. 특히 제조업 진출 허가는 의미가 작지 않다. 한국의 선진 기술을 익혀 중국에서 창업할 꿈을 꿀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동포세계신문의 김용필 대표는 "2000년대 초반 한국에 유학와 한국어와 중국어가 능통한 30대와 40대의 창업이 부쩍 늘고 있다"고 전했다.
직업 분야도 다양하다. 근래 관광 가이드, 면세점 직원, 통역 요원 등으로 비교적 고임금을 받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식당 등에서의 서비스업 취업이 여전히 많지만 근래 몇 년 새 중국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중국 동포 관광 가이드가 5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안다"며 "통역 요원의 경우 하루 일당이 15만원 선"이라고 말했다.
실제 쇼핑몰이 집중된 서울 명동의 면세점엔 중국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이를 응대할 중국 동포 면세점 직원 수요가 늘고 있다.
◇ 중국 동포 주거지 다변화…강남에도 진출
경제 여건에 따라 중국 동포의 거주지도 변하고 있다. 초기 입국 중국 동포들은 서울 지역에서 비교적 집값이 저렴한 가리봉동 또는 대림동을 선호했으나, 최근 몇 년 새 돈을 번 중국 동포들은 사당·방배·성북동, 서대문·동대문, 심지어 강남으로도 이주한다.
관련 단체들의 현황을 봐도 중국 동포 사회의 변화는 뚜렷하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초기 단체들은 교회 주도의 재한조선족연합회·귀한동포연합총회·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 등으로 활동이 주로 인권·복지 문제에 한정됐다. 2007년 방문취업제 이후 중국동포한마음협회·재한동포연합총회·꽃망울회·kcn클로버봉사단·중국동포축구연합회·한마음골프클럽·문인협회 등으로 다변화했다.
또 최근에는 경제(한중경영협회)·정치(재한동포유권자연맹)·예술(한중예술협회)·각종 다문화 중국 동포 단체 등으로 단체들이 분야별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 구로동에서 재외동포 학교를 운영중인 문 민 어울림학교 교장은 "전체적으로 볼 때 조선족이 잘 적응하고 있고 한국의 주류에 진입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남한은 물론 북한도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조선족이 남북 화해 사업에 앞장서서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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