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를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내 시화방조제 등에 버린 혐의로 지난 4월 8일 체포된 조선족 김하일(47)씨가 경기도 시흥경찰서로 호송되고 있다. photo 뉴시스 |
경찰에 따르면 김하일은 지난 4월 2일 부인 한씨를 둔기로 내려친 뒤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리고 나서 사체를 머리, 몸통, 손, 발, 팔, 다리로 토막 낸 뒤 두 차례에 걸쳐 사체를 시화호에 버렸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4월 8일 오전 7시, 남은 사체를 조카가 사는 집 옥상에 숨기려다 잠복 중이던 경찰에 검거됐다. 아직 재판이 시작되지 않아 유죄가 확정되지는 않은 상태지만 검찰은 김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아내를 살해하고 토막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하일. 김씨의 가족이 경찰에 진술한 바에 따르면, 그는 전과도 없고 평소 다른 이들과 다툼조차 없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그는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걸까. 기자는 김씨가 살았던 동네와 다녔던 직장을 찾아가 김씨를 알았던 사람들을 두루 만났고 주변 사람들과 경찰의 증언을 종합해 사건을 재구성해 보았다.
시화호 현장에서 피살자 한씨의 머리를 찾아내고 범인을 검거한 경기도 시흥경찰서 강력1팀 여인갑 형사는 경력 16년차다. 여 형사는 7년 전 미궁에 빠질 뻔한 예슬이 토막살인 사건 때도 사체의 일부를 찾아낸 경험이 있다. 여인갑 형사는 김하일 토막살인 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음에 김하일을 피의자로 지목하고 미행하면서 우리는 범인이 연쇄살인범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시체를 훼손한 방식이 너무 능숙하고 깔끔했거든요. 보통 처음 토막살인을 하는 범죄자들을 보면 큰 칼로 뼈를 내려치거나 하는 방식으로 시체를 절단내는데 이번 경우에는 관절 부분을 아주 능숙하고 깔끔하게 도려냈습니다. 김하일이 범인이라면 전과가 있을 거라 짐작했던 거죠. 하지만 수사결과 동종 전과가 있다거나 그렇진 않았습니다.”
여인갑 형사의 말대로라면 김하일은 강력범죄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체를 능숙하게 다뤘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여 형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시흥시에 가까운 조선족 정보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귀띔해준 내용인데요. 연변이나 지린에 살고 있는 조선족 성인 중 많은 이가 개나 노루의 사체를 손질할 줄 안다고 합니다. 방법이 아주 구체적이에요. 죽은 동물의 표피에 칼집을 내 껍질을 벗겨낸 후에 관절을 둥글게 도려내면 아주 쉽게 사체를 분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김하일이 한씨의 사체를 훼손한 방법이 이것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지린 출신인 김씨는 2009년 방문취업비자(H2)를 받고 한국에 들어왔다. 김씨는 서울에 오기 14년 전 고향에서 한씨와 결혼을 했지만 결혼하고 나서도 분가하지 않고 오랜 기간 홀어머니 집에 얹혀 살았다. 김씨의 누나가 경찰에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김씨는 한국 입국 전 6~7년 정도 배를 탔는데 한번 배를 타러 나가면 보통 몇 개월씩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돈을 벌기 위해 비교적 위험성이 적은 종이공장 일을 그만두고 선원 생활을 택했다. 이런 정황은 김씨가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살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씨가 한국에 와서 취업한 곳은 금속제조공장. 이곳에서 김씨는 평균 3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한국 기준으로도 나쁘지 않은 액수다. 취재 중 김씨 부부가 성실하게 산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2009년 김씨가 입국하고 나서 몇 개월 뒤에 한씨가 남편을 따라 들어왔다. 부인 역시 남편을 따라 시화산업단지의 공장에 취업했다. 두 사람은 ‘코리안 드림’을 이루겠다는 꿈을 품고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정착했다. 이들 부부의 목표는 중국 고향에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이었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2009년부터 2015년 동안 벌어 저축한 금액은 수억원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김씨의 월급 300만원과 부인이 받은 월급을 꼬박 저축한 돈으로 계산하면 대단히 큰 액수다. 하지만 검거 당시 이 부부의 통장 잔고에는 거의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김씨가 전부 도박에서 탕진했기 때문이다. 내 집 마련은 물론 중국에 부쳐줄 돈도 부족하게 된 상황이었다. 부부의 아들은 현재 19세로 중국 할머니 집에서 머물고 있다. 부부는 처음부터 매월 10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을 아들에게 부쳐줬다.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중국에서 용돈으로 쓰기에는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을 것이라는 게 조선족 주민의 설명이다. 경찰이 조사한 통화내역에서 죽은 한씨는 매주 한 번 이상 아들과 통화했고 김씨도 한 달에 2~3번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코리안 드림은 토막살해라는 비극으로 결말났지만 이들이 살아온 과정은 일반 이주자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박 문제를 제외하곤 성실했던 김씨가 살인을 저지른 원인은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김씨의 누나와 피살자 한씨의 친척은 경찰에 김씨가 내성적이고 얌전한 성격이라고 진술했다. 한씨 또한 잔소리가 심한 스타일이 아니어서 김씨 부부가 큰 문제 없이 원만하게 지낸 것으로 보고 있다. 도대체 이들에게 불어닥친 비극의 출발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김씨가 거주했던 곳은 경기도 시흥시 정왕역 입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이주자 거주단지’다. 제대로 된 푯말 하나 없었지만 경찰과 지역 부동산업자 및 상인들은 이곳을 모두 ‘이주자 거주단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기자는 지난 4월 29일 기사를 쓰기 위해 이곳을 처음 가본 후 모두 여섯 번 가보았다. 처음 방문한 이곳의 모습은 여느 지방 소도시와는 여러 가지로 달랐다. 대낮이지만 소주병이 골목 옆에 나뒹굴고 있었고 편의점 앞에서는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선족 억양을 쓰는 중년 남성 6명이 서로 멱살을 잡고 다투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중국어 간판으로 된 슈퍼마켓에는 소주 같은 술은 찾아볼 수 없었고 대신 다양한 종류의 고량주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또 고추장 대신 중국식 초피기름이 진열대에 놓여 있었다. 가게에 들어서자 가게 계산대에서 비뚤게 앉아있던 여주인은 서툰 한국말로 “어서 오세요~”라며 쳐다봤다. 이곳 주인에 따르면 이 동네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은 서로 친하게 교류하는 편이 아니다.
경찰 조사에서도 김씨는 직장일과 도박 외에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고 했다. 하루에 두 끼는 직장에서 해결하고 밥은 꼭 집에서만 먹었다. 오전근무와 야간근무를 번갈아 가며 하고 쉬는 날은 도박장을 방문하는 패턴이다. 카지노를 가도 잠은 꼭 집에 와서 잤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고 담배만 가끔 피는 정도. 김씨가 살던 집은 보증금 기본 5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23㎡(7평) 원룸이다. 이 집에는 냉장고, 세탁기 등의 살림살이는 있었지만 TV와 컴퓨터는 없었다. 때문에 김씨는 검거 직전까지 본인이 유기한 부인의 사체가 발견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김씨의 살인사건에 대해 “김씨가 사회성이 상당히 결여된 인격장애를 갖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김씨는 특별히 교류하는 친구도 없이 사회와 단절된 형태의 생활패턴을 오랜 기간 유지한 탓에 왜곡된 생각을 하고 사회 대응력이 많이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중국 사회는 물론 한국 사회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규범에 대해 추론해내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이 교수는 김하일의 지능이 낮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했다. 김 교수는 “보통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눈앞의 이익보다 미래의 이익이 더 크면 미래의 가치를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하일의 경우, 돈을 계속해서 잃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박을 끊지 못했고 아내가 본인을 위해 도박하지 말라고 하는 충고를 듣기 싫은 잔소리쯤으로 생각한 것이다.
사건을 담당했던 수원지검 안산지청 형사2부 윤영준 차장검사는 검찰 측 견해를 밝혔다. 윤 검사는 “김하일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윤 검사는 “솔직히 말하면 이번 사건을 두고 김하일의 범행이 우발적인지 계획적인지 상식적인 선에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과학수사부의 지원을 받아 정밀조사를 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조사한 부분은 심리생리·행동분석·임상심리 세 분야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판명났다.
검찰은 경찰에서 수사한 내용을 토대로 김씨의 범행이 의도적이지 않고 우발적이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을 두고 많은 추측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 중국 국적의 박춘풍, 오원춘 등이 저지른 잔혹한 토막살인 사건이 있었다. 이런 탓에 김하일 또한 돈벌이를 위해 장기를 적출한 것이 아닌지, 치정에 의한 보복살해는 아닌지 등 의심의 눈초리가 쏠렸다. 하지만 경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과수의 부검 결과 한씨의 장기는 그대로 보존돼 있었고 피살 당일 먹었던 닭고기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통화내역을 추적해 보고 주변 인물들을 탐문수사 해본 결과 부인 한씨가 몰래 만나는 내연남도 없었다. CCTV를 확인해본 결과 역시 범행이 단독으로 행해진 것이 입증됐다.
오히려 조사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은 김씨가 철저하게 외톨이였다는 것이다. 나중에 김씨가 경찰에 털어놓은 이야기에 따르면 중국에 있을 당시에도 오히려 도박을 좋아하지 않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마작을 배우려고 했지만 도박이 어려워서 그마저도 잘 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랜 선원생활 역시 김씨를 사회와 단절시키는 요인이 됐을 수 있다. 한국에 와서도 술을 마시지 않아 술자리에도 어울리지 않았고 말수가 적어 직장에서는 작업에 필요한 말 이외에는 사적인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TV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 집에서 김씨는 자거나 밥을 먹는 게 전부였다.
김씨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근무지를 찾아가 보았다. 집에서 직장이 있는 시화산업단지까지는 자동차로 10여분. 김씨는 보통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다. 시화산업단지 거리는 조용했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산업단지 내 도로 위로 운송용 차량만 여러 대 보이고 행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공장 입구에서 담배를 태우는 근로자들의 모습만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는 약 8만명의 근로자가 일을 하고 있다. 이 중 시흥시가 공식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 수는 1645명이다. 하지만 시흥시 전체 43만명 인구 중 3만명 이상이 외국인임을 감안했을 때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실제 외국인 근로자 수는 이를 훨씬 웃돈다는 게 시흥시청 경제활성화전략본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곳에서 김씨가 검거된 후 김씨를 면회했던 직장상사 A씨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는 주간조선에 김씨에 대해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잔여근무까지 도맡아서 할 정도로 성실한 직원”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기계로 철판을 절단하는 업무를 맡았었다고 한다. A씨는 “같이 근무한 지 수년이 되는데 어떻게 정이 안 드냐”면서 “사건이 발생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면회를 갔다”고 말했다. 면회를 가서 A씨는 김씨에게 “도대체 왜 죽였냐”라고 물었고 김씨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죄송합니다. ΟΟ님 부디 몸 건강하십시오”라는 짧은 답변만 남겼다고 한다. A씨는 “죄책감에 밥을 거르지나 않을까 사식을 넣어 주려고 했지만 식사는 평소대로 하고 있다는 경찰 말에 다소 놀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갑자기 검거된 김씨에게는 받지 못한 월급 300만원이 있었다. A씨가 이를 구치소에서 사용할 수 있게 영치금으로 넣어주겠다고 하자 김씨는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어 들려온 그의 대답은 “남은 월급은 아내 장례식비에 보태주십시오”였다. 6년 전 함께 집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조선족 부부는 결국 돈 때문에 이렇게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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