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으로 중국에서 취재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먼저 '톈진 폭발 사고'처럼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장 취재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과 '두 자녀정책 폐기'처럼 중국 정부의 정책 발표나 기자회견 취재하는 방법, '북·중 국경 광범위 전파 방해'처럼 취재원 전화 제보와 확인 과정을 거치는 취재, 그리고 이번 취재처럼 중국 언론을 인용하는 비교적 손쉬운 취재 등이다.
중국에는 신화통신, CCTV 등 수십 개의 관영언론에, 역시 중국 정부의 통제를 받는 수백 개의 인터넷 언론사들이 있는데, 나는 기삿거리를 얻기 위해 매일 중국 주요 언론사들과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검색한다. 검색하는 가운데 중국 최대 포털 가운데 하나인 텅쉰이 제작한 ‘초점인물’이란 프로그램에 ‘차오시엔 꾸냥 짜이 중궈’ 즉 ‘중국의 북한 여인들’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프로그램은 중국에서 일하는 북한 외화벌이 여성 가수들의 얘기를 담은 7분 16초짜리 다큐멘터리였다.
북한 외화벌이 가수를 고용한 중국 장쑤성 이우시의 한 호텔 사장인 션산롱 씨가 얘기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북한 외화벌이 일꾼 여성들의 생활이 담겨 있었다.
션산롱 씨는 먼저 중국에서 외화벌이를 하는 북한 아가씨들에 대해 중국 사람들은 일단 호기심을 갖고 접근한다고 말한다. 외모는 물론이고 노래와 춤 그리고 연주 솜씨까지 정말 나무랄 데 없는 ‘북한 예술인’들이 왜 중국 호텔에 고용돼 일하는지 등등의 호기심을 보이는데 자신이 그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고 말머리를 꺼낸다.
션산롱 씨는 20대 중후반의 북한 여성들은 대부분이 북한 간부의 자식들이며, 예술 대학을 졸업한 재원이라고 말한다. 고용기간은 3년이고 호텔 옆 아파트에서 10여 명이 합숙하며 공연 연습을 하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중국어 공부를 한다고 한다. 일반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융통성이 없지도 않고 말도 많이 할뿐더러 매우 명랑하고 낙관적이며 놀이동산도 가고 몸매도 가꾸는 등 중국인들보다도 더 즐겁게 생활한다고 한다.
그러나 3년 동안 북한의 가족과는 통화할 수 없고 다만 편지로만 소식을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매일 아침 김일성 김정일 부자 사진을 닦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며, 북한정부와 예술인 인력송출 계약을 맺었다고만 했지 돈을 얼마나 주는지, 계약관계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아파트 생활과 놀이동산에서의 모습, 같이 공부하는 모습 등을 보여 주며, 이들은 북한 정부에 고용돼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비록 외화벌이를 위해 중국에 왔지만, 중국에서 3년 동안 고생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호텔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하며 다큐멘터리는 끝난다.
처음 보고 느낀 점은 외화벌이 일꾼 가수 생활의 좋은 점만을 부각한 잘 연출된 다큐멘터리 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다음에 드는 생각은 제대로 꾸민 북한 여성들이 자신의 신상과 일상생활을 유창한 중국어로 소개하는 것을 보고 왜 북한이 이런 그림과 인터뷰를 허용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특히 외화벌이 여성들의 공개를 극히 꺼렸던 북한이 이들의 생활 촬영을 오히려 지원하고 홍보 수단으로 삼았다. 그리고 여기 등장하는 북한 여성들도 인터뷰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평양시 대성구에 살구요, 가족은 아빠 엄마 여동생이 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뭔가 국가에 이바지할 게 없을까 고민하다 중국에 와서 이 일을 하게 됐어요”
참 이례적이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외화벌이 여성들의 생활을 공개하다니. 그러면서 북한이 최근 ‘먹방 북한 복무원’, ‘북한 스키장’ 등의 촬영을 허용하고 이들의 영상들이 유투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까, 그리고 류윈산의 북한 방문과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방북 허용 등과 연관돼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관련해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일련의 친근한 이미지 부각은 부드러운 이미지 구축을 통해 관광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며, 북한 외화벌이 일꾼의 생활 공개 등은 외화벌이 인력 송출의 장점을 부각하려는 북한의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반기문 총장의 방북 허용 등 지도자급의 잇단 방북도 북한 개방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출발점이 좋은 결과로 계속 이어질지는 예측할 수 없는 게 또 북한이라고 덧붙였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 방영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닌지 하는 회의감도 든다. 그리고 그동안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신뢰를 잃은 북한에 대해 개방을 기대하는 게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북·중 관계와 남북관계를 취재하는 특파원으로서 작은 변화의 신호탄이라고 보고 북한과 중국 언론을 계속 주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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