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한 외국인 취급에 상처
한민족 자긍심 선망 사라지고
공존 노력 대신 끼리끼리 뭉쳐
실제론 강력범죄율 한국인과 비슷
매년 40만명 넘게 출입국
서비스-3D업종 핵심 노동력
동거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
이달 초 서울 대림동의 한 식당에서 지인들과 삼겹살을 먹던 조선족 엄모(59)씨는 몹시 기분이 상해 일찍 자리를 떴다.
한국사회와 조선족 사이의 양적 교류가 비약적으로 증가했지만 심리적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올 10월 기준 국내 체류 조선족은 전체 외국국적 동포의 86%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으로 많다. 지난해 출ㆍ입국한 조선족만 4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왕래도 활발하다. 조선족은 방문취업비자(H-2)나 재외동포비자(F-4)를 받고 입국하면 3년 동안 국내에 체류할 수 있다. 비자 갱신이 어렵지 않아 원하기만 하면 지속적으로 한국에 머물 수 있다. 방문취업비자를 받으면 정부에서 지정한 38개 단순노무업종에서 일할 수 있는데 남성은 대부분 중소제조업체와 건설현장 등 3D업종에서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여성도 식당 종업원을 비롯해 육아ㆍ가사 도우미, 간병인, 청소업무 등 곳곳에서 궂은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이제 이들이 없으면 산업현장과 서비스업체, 도우미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기 힘들 정도가 됐다.
이들은 한국사회에 대한 선망과 같은 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한국행에 첫발을 내디딘다. 사회적 질서나 문화, 상대적으로 깨끗한 환경과 인프라 시설에 좋은 인상을 갖는 이도 많다. 재외동포비자를 받고 들어와 국내에서 용접 일을 하고 있는 안모(43)씨는 “한글을 잘 못 읽는데 지하철에서 물어보면 누구나 친절하게 잘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는 조선족도 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 과정에 차별과 멸시를 경험하면서 그들의 반감은 폭증한다. “한국인들이 우리를 범죄자 취급한다” “못 살고 무식하고 더럽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등 불만을 터뜨리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14년째 한국에 머무는 조선족 조모(50)씨는 “동포라고 좀 더 대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 관광객이나 화교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조선족이라고 밝히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숨기고 산다”고 밝혔다. 대기업이나 로펌에 다니거나, 대학강단에 서는 등 소위 ‘잘 나가는’ 업종에 몸을 담고도 쉬쉬하면서 지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조선족들은 푸념한다.
정상적인 관계 맺기 절실
한국사회와 조선족간의 반목은 양측 모두에게 원인이 있지만 조선족 전문가들은 한국인들의 배타성과 차별적 인식에 좀더 비중을 두고 있다. 조선족은 같은 민족으로 다가갔지만 한국에선 중국인이라며 방어막을 치면서 초기에 양측간 비정상적인 관계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특히 2007년 방문취업제도를 통해 조선족의 입국기회가 확대되기 전까지 15년 동안 불법 체류자로 살아왔던 상당수 조선족들이 한국사회에 앙금이 쌓인 것도 정상적인 관계 맺기를 방해했다. 조선족이 한국인과 잘 섞이지 못하고 한국사회도 조선족 일부의 잘못을 부풀려 인식하는 경향이 생겼다.
조선족 가운데 강력사범이 많다는 것도 편견이다. 박춘봉과 오원춘 등 엽기적 살인범이 조선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소개되며 TV나 영화 등 대중매체에서 조선족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영향도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제로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국적의 전체 범죄 피의자 가운데 강력범죄 피의자는 1.6% 수준이다. 한국인의 강력범죄 피의자 비율(1.4%)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폭력범죄 입건자의 경우 2011년 4,994명에서 지난해 5,903명으로 1,000명 정도 증가했고, 교통사범도 같은 기간 80% 정도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술을 먹고 몸싸움을 하거나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분출되는 잘못된 행동이 조선족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문화와 제도를 준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와 조선족간의 올바른 관계정립과 이해가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한국으로의 대량이주가 이어지면서 중국과 한국의 조선족 사회는 모두 대격변의 시대를 맞고 있다. 부모 세대가 한국에 먼저 정착했다가 자녀들을 데려오거나, 중국보다도 큰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행을 택하는 조선족도 늘고 있다. 조선족과의 화합이 당면과제로 부상했다는 의미다. 이주동포개발연구원 곽재석 원장은 “조선족은 이제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집단이 돼버렸고 이들의 이주 또한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므로 협력관계를 시급히 조성해야 한다”며 “조선족 사회도 한국사회에 이바지하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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