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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간병인들의 눈물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6월18일 14시53분    조회:2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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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인으로 일하는 중국동포 박진숙씨(가명)가 지난 13일 오후 경기 수원의 한 요양병원에서 바퀴워커를 밀며 다리 수술을 받은 102세 환자의 걷기 연습을 돕고 있다. 박씨와 중국동포 간병인 11명은 2014년 용인의 한 요양병원에서 임금을 받지 못한 후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돌아온 답은 “노동자가 아니어서 행정을 종결한다”였다.

박진숙씨(69·가명)는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가 고향이다.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생활은 빈곤했다. 한국에서 일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2007년 남편과 함께 왔다. 입국 이튿날부터 수원의 ㄱ요양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했다. 먼저 한국에 나와 있던 안사돈이 간병인협회(용역업체)를 소개해줬고, 이 협회를 통해 일자리를 얻었다.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고됐다. 요양병원의 입원환자 대부분이 뇌졸중이나 치매, 파킨슨병, 암환자들이거나 골절로 수술한 노인이다 보니 수발드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혼자 5~6명의 환자를 돌봐야 했다.

일과는 새벽 5시에 시작됐다. 환자들의 침상을 정리하고 밤새 더러워진 기저귀를 갈아주고 양치와 세안을 해주었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환자는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다 앉히고 밑도 씻겼다. 석션(가래 뽑는 기계)으로 가래를 뽑아내고 음식을 못 먹는 환자에게 하루 4번 흔히 ‘콧줄’로 불리는 비위관을 통해 유동식을 주입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목욕을 시키고, 환자가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2시간마다 체위를 바꿔주고, 휠체어에 태워 물리치료실에 오가고, 워커로 걷기 연습도 시켰다. 하루 24시간이 빠듯했다.

밤잠을 편히 잘 수도 없었다. 용변 등의 이유로 환자가 언제 찾을지 몰라서다. 박씨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저절로 눈이 떠졌다. 하루에 대여섯번은 깼다”고 말했다. 행여 환자가 혼자 움직이다 다치기라도 하면 간병인 책임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잠깐 자리를 비운 새 환자가 혼자서 화장실에 가다 쓰러진 일이 있었다. 보호자는 병원에 항의했고, 병원은 그에게 ‘반성문’을 요구했다.

 
고단한 그의 육신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은 150㎝×60㎝의 비좁고 딱딱한 보호자용 침대가 전부. 팔·다리를 펴기도 힘든 이 불편한 침대에서 그는 잠을 청한다. 수면부족으로 눈은 늘 충혈돼 있다. 그가 집에서 자는 날은 한달에 한두번뿐이다.

24시간 일한 대가로 받는 일당은 병원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6만5000원을 받을 때도 있었고, 7만원이나 7만5000원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시급으로 따지면 3000원 안팎. 간병인협회가 병원에서 돈을 받아 매달 회비 7만원을 떼고 준다. 협회는 가입비 12만원과 1년에 20만원씩 상해보험료도 뗀다. 그가 돌보는 환자가 다칠 경우에 대비해 드는 것이라고 했다. 1~2일 쉬고 한달 꼬박 병원에서 자면서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200만원이 안됐다.

2014년 문제가 생겼다. 경기도 용인시 ㄴ병원에서 일했는데 48일치 임금을 못 받았다. 석 달 이상 돈을 못 받은 동료도 있었다.

간병인협회는 “병원에서 돈을 입금하지 않았다”고 했다. 병원 측은 “조금만 기다리라”며 중국동포 간병인들을 달랬다. 간호사들이 짐을 챙겨 떠나고 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고서야 간병인들은 병원이 폐업한 것을 알았다. 이후 협회 사장의 안내로 중국동포 간병인 11명은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에 병원을 상대로 한 임금체불 진정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노동부에서 날아온 결정문 내용은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노동자가 아니어서” 행정을 종결한다는 통보였기 때문이다. 협회도 “일을 알선해줬을 뿐”이라며 책임이 없다고 발뺌했다.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슴다. 내가 돈 벌려고 일했는데, 아이고… 노동을 했는데 노동자가 아이라니….”

간병인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노인의 활동을 보살피고, 개인위생을 돕고, 배설을 보조하며 환자의 안전을 살피는 업무를 담당한다.
 

- 간병인 30만명 추산…90%가 중국동포

2010년 건강보험공단이 발주한 ‘간병서비스 실태조사’ 연구 결과를 보면 당시 전국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간병인 규모는 4만5000여명(급성기 병원 2만7841명·요양병원 1만7831명). 하지만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 박대진 사무국장은 “구직 중인 간병인 수를 포함하면 2016년 현재 3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이 중 90%가 중국동포다.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일인 데다 저임금 등 열악한 처우 탓에 한국인은 기피하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간병인 연령대는 6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아 진입장벽이 낮다.

상당수 간병인들은 ○○협회라는 이런저런 이름의 용역회사에 소속돼 있지만 대부분 법적으로 협회나 병원과 직접 고용관계가 아니다. 간병인 개인이 각각의 환자들과 고용관계를 체결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쉽게 말해 간병인은 사업자등록을 했건 안 했건 개인사업자 형태의 근로를 하는 ‘특수고용직’인 것이다. 이때 협회가 병원과 간병인 사이의 근로계약관계를 간병인과 환자 사이의 계약관계로 바꿔주는 비합법적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간병인에게 가입비나 월회비를 받아 이윤을 남긴다. 일당은 6만5000~9만원 선. 환자가 간병인에게 직접 주는 형태도 있고, 협회가 받아 회비를 떼고 매달 주는 방식도 있다. 특수고용직이다 보니 대다수 간병인들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산재보상보험법의 적용도 받지 못한다. 예방 및 안전대책에서도 소외돼 있다.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파동 때 중국동포를 포함해 간병인 8명이 병원 내 감염으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2011년엔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간병인 이모씨가 에이즈 환자의 링거 바늘에 찔린 일도 있었다.

이씨는 병원에 감염 여부 검사를 요청했지만 병원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노조를 통해 겨우 진료는 받았지만 응급실 방문비, 진료비, 약값, 검사비 등 모든 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중국동포의 경우엔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을 때 더욱 속수무책이다. 한국말이 서툰 데다 한국실정에 어둡기 때문이다. 박진숙씨와 마찬가지로 용인시 ㄴ병원에서 742만원의 임금을 떼인 임창준씨(63·가명)는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할지 답답했다”고 말했다.

“여기 가면 저기 가서 알아보라 하고, 저기 가면 또 다른 데로 가보라 하고… 노동부에 전화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했더니 ‘법에 고소하라고 함다. 어느 분의 소개로 법률사무소를 찾아갔는데 제출 서류 중 하나인 협회의 사업자등록증을 가져다주지 못해 고소도 못했슴다. 분명히 전화를 하고 협회를 몇번이나 찾아가봤지만 그때마다 문은 잠겨있고…. 결국 지쳐서 포기했슴다.”

임씨는 중국의 교통국 소속 공무원이었다. 만 60세 정년을 마치고 퇴직한 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 없이 술이나 마시며 여생을 보내기 싫어서였다. 그는 지금 충북 영동의 한 ㄷ요양병원에서 6명의 중증 남자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이 병원에선 혼자 12명의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도 있다고 했다. 임씨는 “우리가 없으면 대한민국 환자들은 어떻게 되겠슴까? 대한민국 법은 왜 우리를 근로자로 취급 안 하는지, 돈을 못 받아도 정부는 왜 가만 있는 건지 모르겠슴다.”

- 환자 과도한 요구…수면 부족 고통도

지난 14일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중국동포 간병인 유미옥씨(64·가명)는 “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뭐냐고”고 묻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환자나 보호자가 무시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유씨는 옌볜 옌지에서 4년 전 입국한 후 의정부성모병원, 백병원을 거쳐 공동간병이 아닌 1 대 1 간병을 하고 있다. 그는 “환자가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쌍욕을 해도 당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전 병원에서 일할 때 그런 일이 많았슴다. 간호사들이 안정제를 한번에 한 알씩만 먹이라고 했는데 환자는 네 알을 달라고 고집부리고. 간호사에게 물으면 절대 안된다고 하고. 화가 난 환자는 막 욕을 퍼붓고…. 일하다 운 적도 참 많슴다.”

이 병원의 또 다른 중국동포 간병인 채숙자씨(66·가명)는 “잠이 부족한 게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어떤 환자는 하루 2시간밖에 못 자면서 계속 이것저것 주문해요. 자다 깨기를 반복하니 잠을 잘 수가 없지요. 24시간 붙어있어야 해 다른 데서 눈을 붙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휴게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최근 수원의 ㄹ요양병원에선 환자를 목욕시키던 중국동포 간병인이 갑자기 뒤로 넘어지면서 팔에 크게 타박상을 입었다. 수면 부족 때문에 순간적인 어지럼증으로 쓰러진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선 어떤 치료나 약도 제공하지 않았다. 이 병원 8인실에서 간병일을 하는 최수옥씨(65·가명)는 “환자가 크게 안 다친 게 천만다행”이라며 “환자가 잘못해 다친 것도 간병인 책임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속상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우리도 잠을 자야 하는 사람임다. 기계가 아니잖아요?”

육체적·정신적으로 워낙 힘든 일이다 보니 질병이 생기거나 과로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재작년 서울대병원에선 뇌졸중 환자를 돌보던 간병인이 토요일에 집에 갔다가 이튿날 출근하는 길에 쓰러져 사망했다. 급성 대장암 판정을 받고 두 달 만에 세상을 뜬 간병인도 있다.

최정남 서울대병원 희망간병 분회장은 “일하다 사망해도 산재처리가 안되니 간병인은 한마디로 개죽음”이라고 말했다. 희망간병은 서울대병원노조에서 만든 비영리단체다. 다른 용역업체처럼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간병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만든 조직이다. 조합비로 월 3만5000원만 내면 교육도 시켜준다. 하지만 한국인만 가입할 수 있다.

중국동포 간병인들은 자신들이 “한국인 간병인에 비해 차별받고 무시당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한국인 간병인들은 “일부 중국동포 간병인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아 질서가 없고 이로 인해 한국인 간병인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간다”고 불평한다.
 

- 간호·간병 통합서비스…일자리 불안

한국인 간병인의 90%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환자나 보호자는 한국인 간병인을 선호하지만 인력이 달린다. 임금체불 문제로 중국동포 간병인들을 면담한 적이 있는 박정호 민주노총 수원용인오산화성지부 사무처장은 “간병서비스는 언어소통이 안되면 불가능해 한국인이 기피하는 직종에 대거 중국동포를 고용하면서도 2등 국민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간병인 전체의 처우가 열악하지만 그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국동포는 약자 중에서도 약자”라고 덧붙였다.

간병업계는 지난 몇년 동안 간병인 직접고용을 요구해왔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 박대진 사무국장은 “간병인을 병원의 정규직군으로 편성함으로써 체계적인 관리시스템 속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간병인의 생존권 확보는 물론 간병인의 안정적 수급과 환자의 보건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환자·보호자의 간병부담을 줄이고 입원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2013년부터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환자나 보호자가 간병인을 개인적으로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 간호·간병에 필요한 모든 입원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서비스는 종전보다 최소 2배 이상 늘어난 간호인력과 병동당 최대 4명까지 배치된 간병지원인력(병원이 직접고용한 간병인)이 팀을 이뤄 간호와 간병을 책임진다. 2015년 말 기준으로 112개 기관이 시범사업에 참여했다.

환자와 보호자는 통합서비스 확대를 마다하지 않는다. 일반병동에 비해 간호·간병서비스를 운영하는 병동의 입원비가 하루 2만원 정도 비싸도 개인 간병비보다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병인, 특히 중국동포 간병인들의 불안감은 크다. 일자리를 잃을까봐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통합서비스 확대 속도가 빠르지 않은 데다 전국 1400여개에 이르는 요양병원은 서비스 대상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간병인들이 일시에 일자리를 잃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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