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0만 명을 넘어서면서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성큼 다가서게 됐다.
이제 거리와 지하철, 식당에서 마주치는 100명 중 4명은 외국인이다.
처음엔 이주 노동자로 한국 땅에 발을 디딘 이들은 점차 결혼 이민 여성, 외국인 유학생, 다문화 청소년 등으로 다양해지며 '이방인'에서 '이웃'으로 변모하고 있다.
불법 체류 등 외국인 범죄가 줄지 않는 것도 '다문화 혐오'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 다문화 사회로 '초고속' 진입
법무부의 27일 발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0만1천828명으로 집계됐다.
사상 처음으로 2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전체 인구 대비 3.9%에 해당한다.
국내 외국인은 2005년만 해도 74만7천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했으나 10여 년 만에 거의 4%로 껑충 뛰어올랐다.
특히 2007년 8월 외국인 100만 명 시대가 열린 지 8년 10개월 만에 200만 명 시대를 맞아 다른 나라보다도 빠른 속도로 다문화 사회로 진입 중인 것으로 풀이된다.
학계에서는 통상 외국인 주민의 비율이 5%를 넘으면 다문화 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 한국은 다문화 사회로 넘어가는 문턱에 선 셈이다.
법무부는 2011∼2015년 체류외국인이 연평균 8%씩 증가한 것을 고려할 때 2021년 국내 체류외국인이 300만 명을 넘어서 전체 인구의 5.82%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외국인 유입이 본격화한 것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자리를 찾아 동남아시아 등에서 건너온 이들은 '산업 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회에 등장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결혼 이주 여성이 늘면서 농어촌을 중심으로 다문화 가정이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한류 열풍을 타고 외국인 유학생과 관광객의 발길이 급증했다.
2007년엔 중국 동포를 대상으로 '방문 취업제'가 도입되면서 '붉은 물결'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6월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 중 조선족을 포함해 중국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50.6%)에 달한다.
◇ 장기 체류자가 74%…'다문화 이웃'
국내 외국인 가운데 장기 체류자의 비중은 무려 74%에 달한다.
한국에 잠시 머무는 이방인에서 점차 터를 잡고 사는 '다문화 이웃'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
한국 정부가 이주민 가정을 지원하는 다문화 정책을 본격 도입한 것은 2006년이다. 당시 관계 부처가 공동으로 마련한 '결혼 이민자 가족 지원 대책'을 시작으로 10년에 걸쳐 다문화 정책은 진화를 거듭했다.
이 기간 다문화 가구도 크게 늘면서 지난해 기준 27만8천36가구에 달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3%에 해당한다. 평균 가구원 수 3.16명을 고려하면 다문화가족 구성원은 88만 명으로 추산된다.
국내 정착하는 외국인이 늘면서 국회의원, 변호사, 교수, 의사 등 고위층 인사도 속속 배출되고 있다.
독일 출신 이참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 필리핀 출신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 의원, 미국 출신 인요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등이 꼽힌다.
한국의 동네 풍경도 확 달라졌다. 출신 나라별로 이주민이 모여 사는 이른바 '다문화 동네'가 전국 지자체에 속속 조성됐다.
행정자치부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다문화 1번지'로 꼽히는 경기도 안산에서는 외국인 주민 비율이 11.8%에 달하는 등 주민 10명 중 1명 이상이 외국인인 지자체가 7개로 나타났다.
가장 넓게 영역을 확장한 이주민은 단연 조선족이다. 서울 대림동으로 대표되는 '영등포 차이나타운'에만 5만6천여 명이 모여 살며 '붉은 간판'을 번쩍이고 있다.
◇ 제도 개선 더디고 차별·냉대 여전
외국인 유입은 한국 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안겨주고 있지만 그에 따른 그늘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다문화 현상은 급속도로 진행되는 반면 이를 뒷받침할 제도나 인식 개선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도입 12년을 맞은 고용허가제에서는 여전히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이동이 제한되는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된다.
특히 공장, 공사장 등에서 하도급 업체의 일용직으로 투입되는 외국인 근로자는 '을'의 처지에서 위험한 일을 떠맡아 '위험의 외주화'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의 산업 재해율은 2008∼2009년 0.7%대에서 2013년 0.84%로 증가했다. 국내 전체 재해율 0.59%(2013년)를 크게 웃돈다.
'코리안 드림'이 무너지는 것은 이주민에게 쏟아지는 차가운 시선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실시한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31.8%에 달해 미국(13.7%), 호주(10.6%), 스웨덴(3.5%) 등 선진국보다 훨씬 높았다.
안대환 이주노조재단 이사장은 "동남아 노동자에게 막말을 일삼고 손찌검을 하던 극단적 인권 침해는 조금씩 줄고는 있지만 여전히 임금 체불, 위험한 작업 환경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인 사업장 변경 제한 등 부당한 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 '反 다문화' 정서 기승…남은 과제는
다문화 사회로의 급속 진입에 따른 갈등과 진통도 곳곳에서 불거진다.
특히 무비자 관광 등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문턱이 낮아지면서 이를 악용한 불법체류자가 증가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지난 6월 말 현재 불법체류자는 21만1천여 명으로, 전체 외국인 10명 중 1명꼴이다. 최근 5년을 보면 2011년 16만7천780명, 2012년 17만7천854명, 2013년 18만3천106명, 2014년 20만8천778명, 2015년 21만4천187명으로 증가세다.
외국인 이주민을 무턱대고 혐오하는 '반(反) 다문화' 정서도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내국인 복지를 늘려야 할 판에 다문화 주민에게 지나친 특혜가 돌아간다는 반발심, 오원춘 같은 반인륜적 범죄자에 대한 적개심 등에서 기인했으나 최근엔 온라인 공간에서 이유 없이 외국인을 비하하는 '묻지마 안티'도 확산 중이다.
사각지대에서 방치되는 이주 배경 아동이 늘어나는 것도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다. 부모가 불법체류자인 탓에 출생 신고를 하지 못한 채 성장하는 '미등록 체류 아동', 사춘기 즈음 한국에 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중도 입국 청소년' 등이다.
장인실 경인교대 한국다문화교육원장은 "다문화 주민을 일방적으로 도움을 베풀어야 하는 약자로 보거나, 무조건 배척해야 하는 이방인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로 옮겨가려면 다문화 인식 개선 교육 등 제도적 노력을 강화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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