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이 아줌마가 말 안 듣네. 아들 이름이 ○○○죠?"
지난 12일 오전 9시 30분께 A(64·여)씨의 전화로 음침한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남자는 "아들이 친구 빚보증 섰는데, 돈을 갚지 않아 아들을 데리고 있다"고 A씨를 협박했다.
아들 이름 석 자를 정확히 대며 "이 아줌마 안 되겠네"라고 말하는 범인의 행태에 기겁했다.
아들을 광주에 데리고 왔으니 광주 북구 양산동의 한 주유소로 현금 2천만원을 가져오라는 범인의 요구에 A씨는 농협으로 뛰쳐 갔다.
범인과 통화가 이어지는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지 않은 채 통장에 입금한 1천만원을 찾으려는 찰라 은행 직원이 '보이스피싱 아니에요'라는 눈짓을 줬다.
아차 싶은 A씨는 범인과의 통화를 끊지 못하고 종이에 '대부업자(캐피탈)'이라고 적어 은행 직원에게 전달했다.
보이스피싱 범행을 직감한 은행 직원은 곧장 경찰에게 신고했고, 경찰의 출동으로 납치소동은 범인 검거 작전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A씨는 범인과 전화를 잠시 끊은 틈을 타 전남에서 직장 근무 중인 30대 아들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범인을 꼭 잡아야겠다고 결심하고 긴급출동한 광주 북구경찰서 강력팀 검거 작전에 협조하기로 했다.
경찰은 검정 비닐봉지에 빈 통장과 팸플릿을 가득 채워 현금인 것처럼 위장하고 A씨를 약속장소로 내보냈다.
돈을 전하기로 약속한 주유소 옆에서 범인을 기다리며 A씨는 다시 걸려온 범인과의 전화통화로 치열한 두뇌 싸움과 명품연기를 1시간 40여분동안 보여줬다.
신중한 보이스피싱 범인은 A씨에게 한적한 장소로 이동하라, 인상착의를 말하라 이런저런 요구를 끊임없이 했지만, A씨는 범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면서도 경찰이 잠복하는 주유소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또 당황하고 무서운 척 연기하며 첫 약속장소 주변으로 범인을 유도했다.
보이스피싱 범행 조직은 현장 요원격인 중국 국적 조선족 김모(29)씨를 투입해 돈을 받아가려 했다.
김씨는 행인인 척 A씨에게 접근해 동태를 살핀 후, 버스정류장 의자에 놓아둔 비닐봉지 속 종이 쪼가리를 가로채 도망가려고 슬금슬금 다가왔다.
이 장면을 경찰들은 차 안에서 잠복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최초 보이스피싱 전화가 걸려온 지 3시간을 훌쩍 넘긴 낮 12시 45분께 경찰은 보이스피싱 조직 하부조직원 김씨를 현장에서 붙잡았다.
경찰은 김씨를 구속하는 한편 상부 보이스피싱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A씨는 "당황스러운 과정에서도 경찰과 은행 직원이 침착하게 도와줘 범인 검거를 도울 수 있었다"며 "돈을 지킨 것도 다행이지만, 무엇보다 우리 아들이 무사해 안심이다"고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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