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성 상지시에 살고있는 우리 집에는 금년에 45살인 불구자 아들이 있어요. 그는 원래 향정부에서 사업하였는데 1990년 12월에 남을 위해 의로운 일을 하다 차에 깔려 하지가 마비되는바람에 영원히 일어설수 없는 불구자로 되였어요. 그러다보니 늙은 우리 부부는 그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일체 뒤바라지를 해야 했어요. 나는 아들애가 불구로 되였을 때 땅을 치며 오열을 터뜨렸어요. 아들이 이제는 녀자의 손목도 쥐여보지 못하고 생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어요. 그런데 뜻밖으로 수년전 훌륭한 한족며느라가 들어와 남편에게 충성을 다하고 시부모들에게 효성을 다하니 어찌 기특하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자랑하고싶지 않겠나요!
2009년, 아들은 방광염으로 할빈의과대학 제1부속병원에 입원했어요. 내가 간호를 했어요. 그런데 그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늘 주위의 환자들을 도와줘 친구들이 많아지자 그는 나의 간호가 필요없다며 나를 억지로 집에 돌려보냈어요.
얼마후 갑자기 아들이 전화로 우리 량주더러 병원에 오라는것이였어요. 무엇때문인가고 물으니 오면 알게 된다며 상세한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게 원일인가요? 병원에 들어서니 웬 낯모를 한 중년 한족녀자가 살포시 깍듯이 인사를 건네왔어요. 우리가 어리둥절해하자 아들이 설명했어요. 그녀는 학강시에서 중등전업학교를 졸업하고 종이공장에서 일을 하다 공장이 부도나는 바람에 직업이 없어 지금 장사도 하고 품팔이도 하고있는데 얼마전에 병원에서 만나 서로 사귀면서 백년가약을 맺었다는것이였어요. 우리가 그녀와 이야기를 해보니 그는 신체나 지력상에 아무런 부족점도 없었어요. 하여 내가 그녀보고 왜 우리 불구자아들을 좋아하게 되였는가고 물으니 그는 “한동안 사귀여보니 몸은 비록 불구지만 아주 성실하고 사리도 밝으며 포부도 커 마음에 든거예요. 어르신들이 허락하시면 우린 같이 살 계획인데 앞으로 많이 돌봐주기 바래요.”라며 공손히 말하는것이였어요.
며칠후에 그들은 결혼등기를 하고 우리와 같이 살았어요. 이 소식을 접한 한국의 딴 자식들은 전화로 “펀펀한 녀자가 우리 집에 들어오는데는 딴 궁리가 있을수 있으니 조심해야 해요.”라고 부탁했어요.
한족며느리와 우리는 이미 한집에서 3년 이상을 같이 살았어요. 그러니 이제는 나도 며느리의 사람됨됨이를 알수 있다고 말할수 있지요. 며느리는 매일마다 제 남편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세수물을 떠다주고 기저귀를 빠는 등 모든 뒤바라지를 빈틈없이 했어요. 결혼전에는 아들이 일보러 거리에 나가게 되면 남편이나 내가 휠체어를 밀어야 했지만 지금은 며늘애의 몫이예요. 이것만 해도 나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셈인데 며느리는 또 빨래, 청소 등 일체 가무도 도맡았어요.
하지만 음식은 흔히 내가 했는데 때로 그가 료리를 만들고는 “내가 한건 왜 엄마가 한것보다 맛이 없어요.”라고 해요. 나는 “내가 료리를 만든 세월이 너의 나이보다도 더 긴데 네가 어떻게 나와 비기겠니? 천천히 배워야지.”라고 위안했어요. 후에 며느리는 조선료리를 만들 때면 이것저것 물어가며 하는데 이제는 제법 잘해요. 그리고 식문화가 달라 조선족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련만 그는 제법 잘 먹었어요. 때로는 내가 상추쌈을 상에 올리는데 한족들은 근본 쌈이란걸 모르지만 그는 우리를 따라 쌈을 싸서는 아귀아귀 먹어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더운 새 료리를 주고 전번끼에 먹다 남은 료리는 아예 자기가 모두 먹군해요. 내가 채소를 사러 시장에 나가려는 기미가 보이면 제가 제꺽 나가 사와요. 그러면서 과일, 음료, 사탕 등도 무더기로 사다 우리 머리맡에 가져다놓군 해요. 혹시 내가 기침이라도 하면 병원에 가자고 성화를 부리다가 내가 가지 않으면 기침약, 진통제, 혈압약 등을 사다주며 시간을 맞춰 약과 물을 챙겨주군 해요.
재작년에 아들과 며느리는 자가용 승용차(불구자 전용차) 한대를 샀어요. 며느리는 원래 자동차면허증이 있는데 불구자전용차를 다루는 방법도 배웠어요. 그리고는 날이 희붐히 밝는 이른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자기 남편과 함게 번갈아가며 차를 몰고나가 택시운전을 해 돈을 벌어요. 우리 량주가 혹시 어디에 출장가려 하면 차를 제꺽 발동하는데 거리가 멀지 않아 필요없다는데도 고집스레 우리를 차에 태워요. 작년에는 아들며느리가 우리 량주를 자가용에 태워가지고 5일간 2,000여리를 돌며 오대련지, 경박호 등 성내 여러 명승지들을 유람했어요. 유람길 5일동안 며느리는 다리가 불편한 나를 시종 부축하고 다녔어요.
지난 춘절에 나는 한국에 있는 자식들의 요청으로 집을 떠났어요. 하지만 집에 있는 늙은 남편이 무척 걱정이였어요. 설후에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며느리가 내복을 사줬다느니, 매일 아침 우유를 사왔다느니, 양다리를 통채로 구워먹었다느니 하며 자랑을 타스로 쏟았어요.
매일 고마운 심정이지만 며느리를 보고 고맙다고 하면 그는 말없이 웃기만 합니다. 며느리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사진은 차를 닦고있는 며느리.
료녕신문 정복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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