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문을 열면 보이는건 첩첩산이요, 들리는건 새소리뿐인 변경오지에서 태여나 모든 시련을 이겨내며 성공의 대문을 열어젖힌 한 여성기업가가 있다. 그가 바로 료녕성 영구시 개발구 연은복장회사의 상무부경리 김수매(44세)이다.
1988년에 흑룡강성 동녕현조선족중학교를 졸업하고 자비로 2년동안 흑룡강성민족간부학원에서 기업관리전업을 전공한 김수매는 대과교원도 해보았고 연길에 나가 장사도 해보았지만 치부의 대문은 좀처럼 그에게 차례지지 않았다.
그후 1995년 3월 영구개발구로 진출한 김수매는 습기찬 세집을 잡고 월로임 180위안으로 한국기업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뒤로 직장을 세번이나 바꾸면서 많은 친구들이 한국이나 일본 등 외국으로 나가자고 청을 들었지만 김수매는 이곳에서 성공하겠다는 견고한 마음으로 기업관리를 하나 하나 익혀나갔다.
3년후 그는 노력끝에 연은복장회사 한국사장의 믿음을 얻었다. 회사는 젊고 사업심이 강하고 패기가 있는 그를 받아들이고 원자재 구입, 노동자 관리, 공상 세무 관련 업무 등을 모두 그에게 맡겼다.
한국과 국내에서 옷감을 가져와 가공한 제품을 모두 독일, 인도네시아 등 나라에 수출하는 이 회사는 옷감구입으로부터 복장설계, 재단, 바느질 등 제품완성과정에서 약간한 흠집이 있어도 회사의 자리매김에 엄중한 영향을 주기에 김수매는 대학에서 배운 기업관리지식을 되새겨가며 모든 심혈을 직장일에 퍼부었다. 그가 한창 한국사장과 손잡고 실적을 올리고 있을 때 뜻밖의 일이 생길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국내 모 옷감회사에서 선불금 100만위안을 먼저 보내야 천을 보내주겠다는 요구에 따라 돈을 은행계좌로 넘겨주었는데 그 상인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 결혼생활에서도 두번이나 실패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그에게 안겨준 심리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날따라 수척해가는 딸애를 가슴아프게 지켜본 부모들과 친구들은 회사일을 그만두라고 권고하였지만 김수매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넘어지는것보다 넘어진 다음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이 더 나약한 사람이예요." 라고 말하면서 더욱 끈질기게 사업을 밀고 나갔다.
이러한 역경속에서도 김수매는 근로자 120명이 일하는 회사를 계속하는 한편 눈길을 외국에 돌려 인도네시아에 근로자가 1500여명에 달하는 복장회사를 꾸려 제품을 몽땅 동남아시아 등 여러 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푸른 꿈은 언제나 준비된 사람에게 차례지는 법이다. 그가 이끄는 연은복장회사는 갈수록 호황을 이루어 지난해 연간 총생산가치를 1500만 달러로 끌어올려 전 영구개발구에서 손꼽히는 기업으로 부상했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경제의 소용돌이속에서 자리매김을 튼튼히 하려면 언제나 명석한 두뇌로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도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김수매는 오늘도 먼 변강오지에 살고 있던 부모님을 영구시로 모셔오고 회사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신들메를 조이고 있다.
/리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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