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한세대전만 하더라도 로년이란 손자들 뒤바라지를 하면서 쓸쓸히 인생을 정리해가는 시기로 여겨졌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은 다소 억지스러운 위안처럼 들렸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였다.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쳐야 하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만의 인생을 만끽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생긴것이다.
“열혈로인” 김범룡(79살)옹에게 나이는 그야말로 수자에 불과하다. 주교통국당위 서기로 정년퇴직한 김범룡옹은 나이들어 더 활발한 생활을 하고있다. 하늘빛 꿈꾸는 청춘인양 빛나는 하루를 보내는 김범룡옹의 비결은 뭘가?
“새로운 세상을 하나 더 얻은듯한 기분이다. 로인세대라 하지 말고 골드세대라 불러달라”고 요청하기도 하는 김범룡옹은 퇴직해서부터 테니스 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처음엔 좀 힘에 부치는가싶었는데 갈수록 몸이 젊어지는것 같다”며 탄탄한 다리근육을 자랑스레 내보인다.
묵직하고 힘있는 목소리, 대화 간간이 섞는 유머, 수준급 테니스 실력… 삶의 여유가 묻어나는이였다.
김범룡옹도 처음에는 여느 퇴직자들과 다름없었다. 시간이 많아 며칠간은 행복했지만 어느새부턴가 공허감이 밀려왔다. “헛되이 세월을 보내는게 아닐가”하던 찰나 마침 동네부근에 있는 테니스장이 눈에 띄였다. 젊은시절부터 눈여겨보았던 테니스를 시간여유가 생긴 지금 기어이 배우고싶어지더란다.
이후 김범룡옹의 하루는 달라졌다.
건강이 좋아진건 물론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니 마음마저 유쾌해져 하루라도 테니스장을 찾지 않으면 안되였다. 게다가 리더십도 남달랐던 그는 테니스협회 회장도 떠맡기까지 했다.
그러다 부동산개발로 협회테니스장이 없어지게 되자 김범룡옹은 선참으로 나서서 회원들과 함께 부르하통하 강변의 쓰레기더미를 밀차로 실어 나르고 모래와 진흙을 고루 다지며 고생고생해서 새롭게 마련한게 바로 지금의 4000여평방메터도 넘는 연길시테니스협회의 테니스장이다.
“나 혼자 즐겁자고 한 일이 아니다. 160여명 회원중 대부분이 로인들이다. 자식들 곁에 없어 외롭고 쓸쓸한 로인네들이다. 그동안 테니스를 치면서 서로 의지가 됐는데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돼주고싶었다”는 김범룡옹은 지난 20년간 연길시테니스협회 회장직을 맡아오면서 많은 일을 해오신분이다. 지난해부터는 연길시테니스협회 명예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남은 인생을 제대로 즐기고있다.
6년전부터는 큰아들이 해마다 보약이라도 지어드시라 내놓는 2만원을 선뜻 협회 테니스장관리와 로인들 휴식실을 짓는데 보태라고 내놓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김범룡옹이 테니스장건설에 내놓은 돈만 12만원을 훌쩍 넘는다.
“보약이 따로 없다. 여기 함께 늙어가는 모든이들이 나한테 보약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부자인것도 아니다. 단지 다같이 건강하게 여생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일뿐이다.”
남이 다 알아주는 “번쩍한 비범함”이 아니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묵직한 평범함”을 선택한 김범룡옹이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사이에서도 김범룡옹은 단연 제일 믿음직스러운이로 손꼽힌다. 이들사이에선 지금의 테니스장이 생긴후로 평균수명이 늘었다는 우스개도 있다고 한다. 함께 도란도란 모여앉아 며느리험담부터 자식자랑, 고생한 이야기, 령감, 할멈 흉까지 몽땅 뱉어내고나면 스트레스가 말끔히 해소돼 마음속에 쌓일게 없다는 이야기이다.
밥술 떨어지면 테니스장에 모여 함께 하는 협회 회원들은 테니스실력도 좋아 크고작은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참 많이 따낸다. 79살이라는 나이가 무의미하게 김범룡옹도 국내 크고작은 테니스경기에 참가해 1등을 수차례나 따냈다.
“인생 대부분을 일하다가 로년에 새롭게 태여났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실감난다”는 김범룡옹, “막상 이 나이가 되니 나이 먹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네.” 테니스장에 가야 한다며 그가 자리를 뜨면서 남긴 말이다
.글·사진 신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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