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도문] 박순녀량주의 간절한 입당소망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11월18일 15시15분    조회:346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최근에 출판된 “도문로협30년”을 펼쳐보며 과거사를 되풀이 하는 박순녀량주
 

중국 조선족들의 한국진출 등 대거 이동으로 거의 100% 조선족마을이 로인협회(로인독보조)로 마을을 운영하는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촌민자치”가 “로협자치”, “촌관자치”라는 신조어가 있다.
 실례로 도문시 석현진 모촌의 촌장선거 때 후선인 당선자는 “만약 내가 촌장으로 선거되면 촌로인협회에 8만원을 협찬하겠다. 오늘 촌장으로 선거되지 못하더라도 로인협회에 이 4만원을 기부한다.”며 투표시작 먼저 당장에서 돈뭉치를 내 놓았다고 한다.
11월 12일, 필자는 도문시 석현진향양촌 달라자로인협회 박순녀회장이 14년을 로인협회회장을 맡고 열심히 사업하면서 박회장 량주간이 그렇게도 드팀없이 입당을 갈망한다는 소개를 듣고 이들 량주간을 인터뷰했다.

나이 많아 안 된다면 할수 없지만 당원답게 잘 하겠습꾸마!

“지금 습근평주석이 얼마나 잘함둥! 나는 정말 당원이 되고싶스꾸마!”

인텨뷰는 박순녀회장의 이런  화두로 시작되였다.

박순녀가 당원을 부러워하기는 처녀시절에 수남에서 부녀대장을 할 때 당년에 사회주의교육공작대에 갔다가 입당을 하고 돌아온 한 마을의 최금산과 박순희를 우러러 보면서부터였다.

그후 향양촌의 김철송과 결혼을하고 자식 11명을 낳고도 두 딸만 남긴 로모를 모실랴, 로모의 신세로붙러 농촌서 아들이 없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셋째를 낳은 것이 “룡봉태”다 보니 벌금까지 하면서 자식(3녀1남)의 뒤바라지를 하던 그녀는 입당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박순녀의 “당싹”은 21세기부터 트기시작하였다.

2000년, 달라자촌로인협회에서는 회장을 선거할 때 당원이 회장이 돼야 한다며 당원인 리춘실을 회장으로, 50을 맞은 박순녀를 부회장으로 선거하고 협회의 모든일을 맡겼다.

박회장은 협회의 5무 밭을 시작으로 페경지를 개간하여 1,2쌍으로 늘이고 콩농사, 깨농사로 활동경비를 마련, 회원은 8명으로부터 지금의 50여 명으로 마을 상주인들의 거의 100%로 발전시켰다.

14년간 박회장이 이끄는 달라자로인협회는 10여 차나 시모범협회로, 박회장은 수차나 선진개인으로 표창을 받았다.

로인협회사업은 박순녀의 입당욕에 불을 지펴주었다.

박순녀의 실토정이다.

- 매년 “7.1”이면 촌당지부에서 번번히 로인협회 회장을 초청하는데 나는 번마다 의식적으로 당지부에서 눈치를 채라고 “입당은 하고 싶은데 나이가 많아서…”라며 발언을 했는데 당원들이 알아듣지 못해서 유감스러웠다. 당원들이 내 뜻을 알아 차리고 “입당은 나이와 관계없다”며 고무하고 이끌어 줄을 알았는데 말입니다.

- 나는  습근평주석이 백성들의 마음에 들게 잘 하는것을 보고 점점 더 당에 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난해에 나의 사업내막을 잘 아는 석현진로인협회 회장을 찾아 입당을 정식으로 신청했습니다.

- “그런데 지금은 60세 이상이 입당을 하려면 주급이상의 표창을 받은 사례가 있어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함둥? 썩 몇년전에  성에서 우리 로인협회를 표창할 때  당원회장이 가다 보니…”

“60이상 입당조건이 안되면 방법이 없지요. 로인들이 100%로 나를 믿어주니 회장을 죽을 때까지  잘하겠습니다. 당원표준으로 잘하면 되지요”.
무관촌장의 유언
 
김철송(68)은 20대부터 단지부서기, 생산대대장(20년간)을 지낸 촌의 토배기로 “문화혁명”전부터 지금까지 《연변일보》를 읽어 온 《신문쟁이》로 해마다 주문하는 신문만 8가지다.

김철송은 남보다 앞선 걸음으로 지난 세기 80년대부터 속성림, 양어장, 세멘트제품공장을 개발경영, 2002년부터 지금까지 새농촌건설에 관련한 여러가지 항목에 몸을 담그고있다.

김철송은 1983년 제1기 촌민위원회 선거부터 지금까지 줄곧 95% 이상의 득표률로《원로촌민위원》을 확보, 그의 득표수가 촌장보다도 높은 데서 촌장을 맡기려니 《나는 청각장애자인데다 가방끈이 짧아서 못한다》며 거절하고는 드팀없이 촌을 위하여 발벗고 달아 다니는 《무관촌장(無冠村長)》이며 촌의 공익사업과 로인협회, 당지부활동의 버팀목이다.

김철송의 입당욕은 20대부터 키웠다.

그런데 지금부터 46년전에 그의 입당을 심사하는 당지부대회에서 그의 백부가 1917년에 쏘련에 간후 행방불명이라는데서 부결되였다.

글쎄 백부가 중국공산당이 성립하기전에 로씨야에 갔는데 그것이 사회관게문제로 남아있어 입당을 못하니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원래부터 성격이 우집스러운 그는 그후부터 그의 앞에는 입당문이 영원히 막힌것으로 알고 “당원은 아니지만 당원답게 살겠다.”는 일념으로 “무관촌장”으로 촌을 위해 전념을 다하였다.  “7.1”이면 당지부활동에 경비를 후원하면서 말이다.

 김철송은 안해가 로인협회 회장을 맡은 후 14년간 해마다 협회활동에 3, 4천원 씩 후원하였다. 그래서 박회장은 남편이 나이 사업의 뒤심이라며 어제(11일)도 남편이 달라자로인활동실때문에 석현진 진장을 찾았다고 한다.  

김철송은 자기가 입당을 못한것으로 조직에 유감을 품을 대신  부인의 입당을 견결히 지지해 나섯다.

60세 이상이 입당을 하려면 주급이상의 표창을 받은 실례가 있어야 한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진당위를 찾아가서 확인을 했단다.

필자의 체험으로 김철송은 참으로 대공무사하였다.

 1998년 12월 15일, 김철송이 연변량수탄광에서 6톤의 석탄을 샀는데 석탄수량이 눈에 확 띄울 정도로 부족하였다. 그래서 공평저울로 검근하니 과연 2톤이 부족했다.

김철송은 법으로 합법적인 리익을 보호 받고저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다가 나중에 신문여론의 도움으로 이 사건을 처리한후 연변량수탄광에서 손해보상으로 그의 집에 실어온 8톤의 석탄을 그는 몽땅 도문시홍광향양로원에 돌렸다.

김철송은 맘속으로 자기의 당령을 46년이라고, 몇년전에 촌당지부서기를 찾아가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나는 지금까지 당원이 못지 않게 사업을 잘하기에 노력을 하였다. 당지부에서 내가 죽은후 나의 일생이 당원답다고 인정되면 유골함에 당기를 덮어 달라.”

물론 그 자신도 당원이 아닌 사람의 유골에 당기를 덮어 줄수 없다는 도리를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유언을 말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김철송이 하는 말이다.

“사람은 신앙이 있어야 한다. ㅇㅇ는 사업을 잘하고 입당욕망이 간절한데 당에서 이끌어 주지 않으니 최근에 기독교에 다닌다는 소문이 있다.” “당에서사업을 잘하는 사람들을  끌어 들여야 하는데…”

 여생을 당원표준으로 떳떳히 마무리를 하겠다는 박순녀,  한눈도 팔지않고 시종 “당원 꿈”을 간직해온 김철송량주 앞에서 자신을 반성하며 머리가 숙여진다.

조글로미디어
오기활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한국 속 작은 중국 “장사하고 싶어도 상가가 없다” 대림2동에 중국인들이 몰려들면서 상권이 활성화되고 있다. 사진은 대림2동 도깨비시장 거리. 아주경제 김현철·권경렬·노경조 기자 = "대림2동 상권은 경기를 타지 않습니다. 권리금이 치솟아도 상가를 넘기지 않는 이유는 이 권리금으로 다른...
  • 2013-12-11
  • 한평생 농사군으로 황소처럼 일하며 자식들을 위해 살아오신 아버지 박두현. 《세월이 류수》라더니 아버지께서 저 세상에 가신지도 어느덧 30여년이 흘렀습니다. 아버지, 셋째딸 동선입니다. 아버지를 잃은 그날부터 이 딸은 종래로 아버지를 잊은적 없습니다. 세월이 좋아질수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애절하게 가...
  • 2013-12-09
  •   (흑룡강신문=서울) 나춘봉 특약기자 = “이젠 엄마도 힘들고, 돈도 없으니 수술을 포기하겠어요.”   세 번째 골수이식수술을 거부하는 딸애의 말에 중국 동포 박경옥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그 동안 딸이 병마와 싸우며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을 이겨냈고, 삶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누구보...
  • 2013-12-05
  • 4년간 주덕해주장의 경호원을 지낸적 있는 곽해선(郭海善, 80세)옹은 쉽게 자기 경력을 내비치지 않는 특이한 사람이다. 그는 또 남다른 주장을 가진 사람으로서 소수민족지역 공무원들은 민족을 막론하고 반드시 소수민족언어로 말할줄 알아야 자격있는 공무원이라고 한다. 혹 조선족자치주 초대주장의 경호원으로 사...
  • 2013-11-29
  • 연길시 남양사회구역 경로전통미덕 이어가 “로인들의 오늘이 우리의 미래다.” “로인들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하다” 연길시 진학가두 남양사회구역에서는 로인을 존중하고 로인을 사랑하며 로인을 돕는 경로분위기를 형성하여 사회구역의 로인들이 보다 편하고 보다 즐겁게 만년을 보내게 하고있다....
  • 2013-11-28
  • 소아마비로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정태룡(58살)씨와 지체장애 2급판정을 받은 허채란(56살)부부는 목발없이는 한발작도 내디딜수 없다. 남보다 느리지만 이들 부부는 늘 멈추지않는 걸음을 옮긴다.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무리 별볼일 없더라도 살면서 포기해야 할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숫...
  • 2013-11-27
  • 또 하나의 풍년해이다. 훈춘시 반석향 맹령촌의 산골짜기와 들은 울긋불긋 사과로 뒤덮였다. 벌거우리하고 어린애머리통만한 사과들이 가지휘게 달려 보는이들을 경탄케 한다. "우리 촌의 사과산업발전에는 이름없는 영웅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시농업국의 안종헌이야말로 첫손 꼽을만한 무명영웅이지요." 맹령촌 리호...
  • 2013-11-25
  • 연화조선족향 장복촌 당지부서기 마덕운. 유수시 연화조선족향에는 의지할곳이 없는 조선족아이를 자기집에 데려다가 친자식처럼 키운 한족 당지부서기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미담으로 전해지고있다. 이야기의 장본인은 바로 연화조선족향 장복촌 당지부서기인 마덕운이다. 1995년 연화조선족향 장복촌의 조선족농민 현청산...
  • 2013-11-23
  • 설경촬영 떠났다가 선봉령에서 폭설에 갇혀 19시간만에 구조돼 눈에 갇혀 움직일수 없게 된 박군걸기자의 승용차(박군걸기자 제공). 지난 11월 17일에 연변지역을 강타한 폭설로 인한 각종 재난과 사고소식이 빈번한 가운데 연변주 화룡시소방대대에서 발부한 한편의 기사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해당 기사...
  • 2013-11-22
  • 연길시제3중학교 종미영학생. 11월 16일 저녁, 연길시제3중학교에 다니는 종미영(18세)학생은 연길천성쇼핑광장부근에 있는 학원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골목입구에서 남성용지갑을 주었다. 안에는 현금 한묶음과 령수증 여러장이 들어있었다. 지갑을 주은후 종미영은 집에 돌아가서 아버지께 알렸다. 《아...
  • 2013-11-22
  • 화룡시 서산소학교에는 품덕도 좋고 학습성적도 좋아 선생님들의 사랑을 한몸에 듬뿍 받고있는 공금령이라는 녀학생이 있다. 그런데 얼마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고있던 그가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가까운 병원에 호송되여 긴급치료를 받았지만 병세를 확진할수 없어 또 연변병원에 호송...
  • 2013-11-21
  • 130명 고아, 결손가정 아이들을 부양한 중위기씨 심장병으로 쓰러져   “불우아이들과 함께라서 더 맛있어...” 왕청현 대명사회구역의 “봄비 사랑의 집”의 “애심아버지” 중위기씨(60살)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거느리고 아침 일찍 새벽운동에 나섰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
  • 2013-11-21
  • “형사경찰로서 자아희생을 겁내면 안되죠, 앞으로도 이런 사건이 터지면 례외가 아닙니다.” 올해 31세에 나는 남궁승인(南宫胜仁)은 연길시공안국 형사경찰대대 인신침범사건정찰중대의 한 일반 조선족형사이다. 사업에 참가한지 그닥 오래되지 않고 또한 공안국 형사경찰대대에 입문한지는 1년밖에 되지 않지...
  • 2013-11-20
  • 아이들과 함께(두번째줄 우로부터 여섯번째 남수부서기)/ 사진 리성복 특약기자 연길시 북산가두 단연사회구역 당총지 부서기를 맡고있는 남수(42세)씨는 고혈압환자지만 자기 직책을 훌륭히 완수해 주민들의 칭찬을 받고있다. 연변대학의 한 학생이 생활난에 부딪쳤다는 말을 듣고 푼푼치 않은 상황에서도 매달 200원씩 이...
  • 2013-11-19
  • 조선족불구자 김영화 일전 장백조선족자치현심계국, 현발전개혁국, 현불구자련합회에서는 공동으로 돈을 모아《장백 좋은 사람》이며 조선족불구자인 김영화한테 가치가 6600원에 달하는 전동휠체어를 가져다주었다. 장백현 십사도구진 삽사도구촌에 살고있는 김영화는 어려서부터 선천성 척추(脊柱)병에 걸려 다리가 마비...
  • 2013-11-16
  • 1953년 아홉자식들과 함께 있는 아버지, 어머니(뒤줄 오른쪽 첫벗째 13세 나는 작자 김영자) 나의 어머니는 93세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림옥련이라 부르는 어머니는 글공부를 하지 못해 평생 자기 이름을 써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러나 빈궁속에서도 아홉자식을 낳아키워준것만도 고마운데 공부까지 시켰다. 자식농사...
  • 2013-11-15
  •      “내 자식과도 같은 나젊은 소방장병들이 더 안전하게 불을 끄고 생명을 구조하도록 하기 위해 이 총을 만들었습니다. 한번 봐주십시오.”  일전, 훈춘시의 열정시민 최선생은 자신이 발명한 소방용격파권총(消防破拆手枪)을 가지고 주공안소방지대훈춘대대를 찾아 소방장병들로부터 발...
  • 2013-11-14
  • 길림시 선영구의 한 로인협회에는 올해 79세 나는 안련복로인이 있다. 젊었을 때는 전국 로동모범으로 활약했고 지금은 로인협회에서 로인들과 함께 마지막 여생을 뜻깊게 보내고있다. 안로인은 《남보다 일 좀 더 하는것이 참말 행복한 일이요》라고 한다. 로인활동일이면 안련복로인은 언제나 일찍 활동실에 가서는 깨끗...
  • 2013-11-14
  •   “량부모를 일찍 여의여서인지 아프고 힘든 로인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손길이 다가가고 보살펴드리게 됩니다. 때론 하루에 2~3시간도 못 자지만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편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룡정시 하서가두 봉림촌 봉림 2대에서 봉림로인락원을 경영하는 림계화(46세)씨의 진...
  • 2013-11-12
  •          미국 국회의사당앞에서 딸과 함께 지난 8월 14일부터 9월 13일까지 나는 손자가 미국 뉴욕대학에 붙은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미국을 유람하는 행운을 갖게 되였다. 14일 저녁 나는 대련에서 한국 아시아나려객기에 올라 한국 인천에 도착했다가 거기에서 다시 미국비행기에 오...
  • 2013-11-11
‹처음  이전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