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팔뚝 좀 만져보오, 이런 알통 만져봤소?”
거짓말 안보태서 주먹만한 근육이 불끈 솟아오른 서영옥할머니의 팔뚝, 올해 76세라고 소개했을 때 놀라고 팔뚝을 만져보고 두번 놀랐다. 록두가루와 살구씨기름을 파는 할머니라하면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할머니, 그냥 보따리장사를 하는 할머니인줄 알았는데 이두박근은 너무나 례사롭지 않았다.
서영옥할머니가 50세가 다돼서 서시장 채소매대옆에 쪼그리고 앉아 장사를 시작한데는 말못할 사연이 있었다. 1년새에 기둥같은 두 아들을 선후로 잃었고 두 손녀가 할머니손에 맡겨졌던것이다. 분명 슬프고 가슴아픈 사연이였음에도 할머니는 담담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곱게 가루낸 록두가루며 살구씨기름을 올망졸망 담은 바구니들을 올려놓은 할머니의 매대는 불과 1평방메터, 15년을 서시장에서 팔다가 지난 2005년에 신세대쇼핑몰 1층의 자그마한 코너에 옮겨왔다. 손바닥만한 봉지에 담은것들을 5원, 10원씩 팔아서 장사가 될가싶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할머니는 그것들을 팔아 손녀 둘을 대학공부까지 시켰다.
모두가 익히 알고있고 또 손쉽게 구할수 있는 미용재료들이지만 만들기가 번거롭다는 점을 노리고 시작한 장사, 먼저 밀방전에 따라 약재를 사서 자신이 직접 시험해본끝에 효과가 좋은것을 골라 팔기 시작했다. 록두가루, 살구씨기름, 백지(白芷)가루, 백봉령(白茯苓)가루, 천문동(天门冬)가루 등을 팔면서 미용법도 함께 가르쳐준 덕분에 할머니의 매대앞에는 늘 손님들이 북적댄다. 멀리 북경, 상해, 광주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
“생활형편이 어렵겠다 짐작되는 손님들에게는 팔지 않고 재료명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하오.”라고 하는 서영옥할머니는 후더운 심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1평방 매대를 지켜온 26년 세월, 그 전에도 할머니는 모진 세월의 풍파에 부대껴온 억척할머니였다.
“옛날 얘기를 하면 끝이 없소.”하면서 할머니가 꺼낸것은 꽁꽁 싼 꾸러미였다. 그속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제5차, 8차 인민대표대회 대표증이며 주급, 성급, 전국로동모범 증서며 3.8홍기수, 민족단결모범 등등 세월의 흔적이 묻은 빨간 두껑의 증서들과 할머니의 아름다운 시절을 박아둔 색바랜 사진 몇장이 들어있었다.
5세때 부모를 여의고 8세부터 남의 집 일을 해온 할머니, 돼지도 직접 잡을 정도로 못해본 일이 없었다. 시집을 가서 일곱 식솔의 끼니를 챙기면서도 대대의 일을 걸싸게 해제껴 로동능수의 칭호는 늘 할머니의 차지였다.
서영옥할머니가 국가 상업부로부터 전국로동모범칭호를 수여받은것은 1983년, 왕청현 천교령에 있는 홍기려사를 일떠세운 공로를 인정받아서였다. 할머니가 경리직을 갓 맡았을 때 홍기려사는 볼품없는 모양새를 하고있었다. 할머니는 종업원들과 함께 구석구석 손수 청소하고 하얗게 다시 회칠을 했으며 이불들도 다 뜯어서 하얗게 싯었다. 그리고는 밀차를 밀고 수십리 떨어진 역전까지 가서 손님을 맞이했다. 홍기려사에서 묵고 가는 손님에게는 길에서 요기를 하라고 찐빵까지 챙겨서 보냈다. 알뜰하고 후더운 할머니의 마음씨 덕분이였을가. 페가에 가깝던 홍기려사는 린근에 소문난 려관으로 변모했다.
서영옥할머니는 꾸러미속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들었다. 전국로동모범들이 함께 연안 보탑산 관광을 가서 찍은 집체사진이였다. 지나간 추억이 떠오르는지 할머니는 이윽토록 사진을 들여다보는것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할머니의 목소리는 이내 씩씩한 톤으로 돌아왔다.
“힘자라는데까지 여기서 꾸준히 팔던것을 팔거요. 손님들이 자꾸 찾으니까.”
서영옥 할머니의 손녀들은 현재 각각 상해복단대학과 연변대학간호학원을 졸업하고 저마끔 꿈을 펼치고있다. 이제는 부담없이 할아버지와 오손도손 살아갈법도 하지만 할머니는 장사를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다. 그것은 아마 씩씩하고 락관적이며 매사에 에너지가 넘치는 서영옥할머니의 천성때문일것이다.
연변일보 글·사진 리련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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