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청제1실험소학교
리강춘 퇴직교원
“죽음의 고비에서 되살아난후 보람있는 삶을 살고싶었습니다…”
왕청현제1실험소학교 퇴직음악교원인 리강춘(65살)은 일찍 말기방광암환자로서 “사망통지서”까지 받은적이 있다.하지만 그의 락관적이고 진취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그를 죽음의 변두리에서 벗어나게 했다.
1980년,당시 음악교원이던 그는 갑자기 소변에 피가 섞이고 아래배가 뒤틀리듯 아파나 연변병원에 호송되였는데 악성방광암말기라는 진단을 받게 됐다.체온이 40도를 오르내리며 혼수상태에 빠지기를 수차 반복,대수술만 해도 두번이나 받았다. 6개월후 그는 또 안해한테 업혀 천진시공안병원에 가 한달동안 화학치료를 받았다. 머리가 몽땅 빠지고 체중이 32킬로그람으로 줄어들어 석달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선고를 받았다.
고향에 돌아온후 그는 안해가 사준 도시락을 사들고 산으로 향했다.이름 모를 산나물도 뜯어먹으며 온 하루 산속을 누비다가 집에 돌아오군 했다.그리고 아침저녁으로 맞던 진통제주사를 떼기 위해 왕청현 대흥구진병원에 입원하여 의사의 협조하에 석달간 약중독과의 치렬한 “전쟁”을 벌리였다.결과 그는 기적적으로 병마를 이겨내고 건강을 되찾게 됐다.
“이 모든것이 묵묵히 뒤시중을 들어준 안해덕분이라고 봅니다.그래서 안해에 대한 고마움을 글로 표달하고싶었습니다.”
그때로부터 그는 1년 동안 쓰고 보내고 퇴고당하고 다시 쓰기를 수차 반복하면서 끝내“나의 안해”라는 실화문학을 써서 《청년생활》, 《연변녀성》 등 잡지에 발표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해마다 수백편의 글을 써서 언론매체에 발표하면서《길림신문》, 《연변일보》, 《흑룡강신문》, 《로년세계》, 《연변로인의 벗》 등 9개 신문매체의 특약기자와 특약작자로 활약했다.
글쓰기에 취미를 붙이면서 그는 왕청의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기상을 대외에 널리 선전했다. 가치가 있는 신문제재를 쥐기 위해 전 현의 9개 향,진,200개 자연촌,5개 사회구역과 각 기업,사업단위를 샅샅이 훑으며 다니였고 글의 정확성과 진실성을 위해 한개 취재대상을 수차 취재하기도 했다. 10년 사이에 그는 왕청 각 향,진에 여러가지 간행물의 특약기자와 통신원을 수십명이나 양성해주었고 왕청제1실험소학교에 꼬마기자소를 세우고 주일마다 학생들한테 무료로 습작 기교와 방법에 대해 강의해주었으며 조선족민속협회를 세우고 로인들한테 조선어랑 조선족노래랑 배워주었다.
그의 남다른 열정과 끈기는 헛되지 않았다. 그는 길림신문 “고운 남자 미운 남자 글짓기 콩클”에서 대상을, 연변인민라지오방송“건당 60돐 글짓기콩클”에서 금상을, 연변로인의 벗 “ 존로경로글짓기콩클”에서 1등상을 받아안는 등 수상의 영광을 지녔는가 하면 길림성우수지원자,주조선어문사업선진개인,주새세대관심사업선진개인,왕청감동인물,왕청현로년사업선진개인,왕청현민족단결선진개인 등 많은 영예를 받아안기도 했다.
연변일보 차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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