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두번째 고향, 연변이 나를 있게 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0월14일 08시59분    조회:189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연변, 나는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내 고향 연변에 대한 찬가를 수도 없이 많이 들어왔지만 상해지식청년 석토영(石兔瑛, 62세)씨의 절절한 이 한마디에 나는 전률을 느꼈다. 그녀의 여전히 힘있는 눈매에 실린 진솔한 감정이 피부로 느껴졌다. 연변을 떠난지 수십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조선말을 류창하게 구사하는 그녀가 놀라웁기만 했다.

석토영씨는 당의 호소에 주동적으로 하향을 신청했다. 하지만 정작 연길현 지신공사(현 룡정시 지신진)에 도착했을 때 상상도 못해본 생활조건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중을 나온 소달구지도 태여나서 그때 처음 봤다는 그녀의 나이 16세였다.

어려서부터 자력갱생형의 아이였던 그녀는 재빨리 생활에 적응했다. 함께 내려온 15명의 지식청년중 고된 일을 이기지 못하고 병들어 눕는 사람도 있었지만 석토영씨만은 오히려 부모에게 절대로 부담을 드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일을 해제꼈다. 조선말, 조선글도 제꺽 배워냈다.

“조선족 녀성들은 참 대단한것 같습니다. 모두들 열정이 드높았지요. 저는 그런 모습을 닮고싶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산대의 추천하에 그녀는 부녀주임을 맡게 되였고 2년후에는 생산대장으로 당선됐다. 밤낮이 따로 없이 일했고 휴일이 따로 없이 일했던 고된 나날들이였다. 마을의 오보호로인들을 도와 물도 길어주고 남새도 보내주었는데 한번은 겨울이 오기전 땔나무를 장만해주려다가 도끼에 다리를 찍힌적도 있었다. 쉴새 없이 돌아치는 그녀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철의 아가씨”라고 친절히 불렀다.

“마을에서 공수가 제일 높았어요. 600공 아가씨로 불렸지요.”

그런 “철의 아가씨”에게도 무서운것은 있었다. 매일 저녁 불빛 하나 없는 산을 넘어 대대로 회의하러 갈 때면 저도 모르게 달음박질을 쳤다. 깊은 밤, 조용한 마을에 타박타박 그녀의 발걸음소리가 들리면 약속이나 한듯이 집집마다 불을 켰다. 그 창가에서 흘러나오던 따스한 불빛을 떠올릴때마다 석토영씨는 가슴속에서 감동이 여울친다.

겨울이면 함께 온 지식청년들은 상해로 돌아갔지만 석토영씨는 한번도 돌아간적이 없었다. 1972년의 겨울, 상해지식청년들의 현황을 살피러 내려온 조사조는 석토영씨의 사적을 듣고 모든 지식청년들이 따라배울만한 본보기라고 칭찬하며 상해시정부일군 환영회에도 초대했다. 1973년 석토영씨는 상해에서 모든 지식청년들을 상대로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석토영씨는 연변에 하향해있는 동안 겨울이면 일거리가 없는 상황을 고려하여 지식청년들을 상대로 한 가공공장을 세우기도 했고 옥수수 영양모단지를 보급시켜 그해 산량을 높이기도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불태우는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 그녀는 여기에서 입당을 했고 공사 당위 부서기로까지 당선됐다.

드디여 1979년 모든 지식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연변에 내려왔던 1만 8000여명이 모두 상해로 돌아갔다. 10년 청춘을 불태웠던 제2의 고향 연변에 남아서 발전하려는 그녀에게 이번에는 상해가 손짓했다. 170만명에 달하는 지식청년들의 일자리문제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던것이다.

상해라는 훨씬 큰 활무대에서 그녀는 인생의 두번째 장의 막을 열었다. 상해복개경영회사 총경리, 상해흥화회사 총경리, 상해통용자동차부속품공장 공장장, 상해이거얼집단 부총재… 거칠것이 없었다. 그녀가 상해에서 왕성하게 펼친 활동들도 모두 상해지식청년들을 위한 일이였다.

“상해에서 아주 많은 발전의 기회가 나에게 차례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식청년들을 위한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간고한 곳일수록 일할 힘이 솟구쳤다는 석토영씨는 연변에 하향해서 고생하던 시절이 인생의 큰 밑거름이였다고 고백했다. 청춘을 불태웠던 잊을수 없는 고장, 많은 지식청년들이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을 헤아려 석토영씨는 퇴직후 “상해연변지식청년련합회”를 설립하고 일심전력 지식청년들을 위한 사업에 자신의 모든것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것은 연변을 위한 사업이기도 했다. 10년 동안 회비를 전혀 거두지 않고 사재로 운영해온 그녀를 두고 가족들은 리해를 하면서도 가끔씩 안타까운 마음에 “기부 방식이 틀렸다”고 꼬집기도 했지만 그녀는 허허 웃으며 넘겼다.

석토영씨는 상해의 연변지식청년, 연변에 남은 상해지식청년들의 일뿐만아니라 연변이라면 발벗고 나설만큼 연변사랑이 대단하다.

2012년 사과배 판로때문에 고민하는 연변재배농의 사연에 팔걷고 나서서 해결해줬고 연변가무단이 상해공연을 갔을 때 숙박을 전부 배치해주기도 했다. 연변에서 손님이 오면 그녀의 집은 비공식적인 거처이다. 연변손님들을 위해 그녀는 커다란 대야에 김치를 담그고 찰떡도 쳤다.

석토영씨는 최근 연변의 관광업에 큰 관심을 갖고있다. 앞장서서 상해, 나아가 전국과 연변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데 취지를 두고 관광사업을 추진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서 운신하지 못할 때면 연변에 와서 지내고싶을만큼 연변을 사랑하는 석토영씨, “연변이 나를 있게 했다. 내 말에 호소력이 남아있을 때까지 연변을 위한 일에 나서고싶다”고 고백한다.

연변일보 글· 사진 리련화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 글 / 조련화 -   (흑룡강신문=도쿄) 2018년 5월 20일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에서 주최한 우리 노래 대잔치가 도쿄 닛뽀리에서 성황리에 열렸고 나는 짝궁 훈이와 듀엣으로 무대에 오르게 되였다. 꿈만 같았던 하루, 잊을수 없는 그날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의 계기가 되였다.   노래자랑에 참가하게 된것...
  • 2019-09-20
  • 독서에 심취한 전동빈,조예화부부의 이야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뛰여드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종종 뉴스로 전해지기도 한다. 허나 월급을 주요 수입원으로 하는 그런 직장을 그만두고 금전적인 수익이 없는 공익사업에 뛰여드는 사례는 그리 흔치 않다. 7년간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공무원직을 내려놓고 &...
  • 2019-09-16
  • 초등학생이 그린 테네시 대학교 로고(왼·로라 스나이더 페이스북)와 실제로 제작된 테네시대 티셔츠(오·테네시대 공식 트위터 계정). 미국의 한 대학교가 초등학교에서 놀림당하던 학생의 그림을 대학교 티셔츠로 제작했습니다. 친구들의 조롱으로 주눅 들어있던 이 아이와 부모는 어른들의 배려에 감동받았다...
  • 2019-09-14
  • 까치소리는 언제나 반갑고 그립다. 까치소리는 내 동년의 아름다운 추억중의 하나로 나의 마음 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마을 앞 키 높은 백양나무 우에 둥지를 틀고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우며 가끔 마을의 낮은 지붕우로 “깍깍”거리며 날아지 날 때면 어쩐지 기분이 좋았던 나의 동년시절이다. 필자 홍순...
  • 2019-09-09
  • - 글 / 리연춘 -       (흑룡강신문=도쿄) 지난 가을쯤이였던것 같다.   이른 아침 한주일 먹거리를 장만하려고 우리집 부근의 아침시장으로 나갔다. 부지런한 한족들은 쌀쌀한 늦가을에도 사이사이에 발 들이댈 틈도 없이 일자로 길 한쪽에 난전을 펼치고 싱싱한 풋채소에 상긋한 과일에 고기까지 없는것이...
  • 2019-08-22
  • 련이은 장마로 올해 유난했던 무더위가 주춤하는 말복, 알라디조선족학교 72년 13기 졸업생동창생들이 고향마을-알라디를 찾아 큰소리로 “고향아, 우리가 돌아왔노라.”를 웨쳤다.   드디여 고향마을에 도착한 동창...
  • 2019-08-19
  • ‘인생 70 고래희’ 라고 하던데 내 나이가 벌써 73살 된다. “아이들은 날(日)이 빠르고 해(年)가 늦고 로인들은 날이 늦고 해가 빠르다”는 말과 같이 실로 감짝 사이에 한해가 지나니 말이다. 젊어서는 희망으로 살고 늙어서는 추억으로 산다더니 이 나이를 먹고 보니 지나간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
  • 2019-08-19
  • - 글 / 한경애 -           개미 채바퀴 돌듯 석자 교단에서 달리고 달리다가 멈춰서 되돌아보니 어언간 3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사슴의 눈망울을 가진 꼬마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인간성을 키워주는 시간속에서 수많은 부동한 색갈의 이야기로 아름다운 멜로디를 엮어왔다. 내 기억의 푸르른...
  • 2019-08-16
  • 인생은 미완성 숙제   김 경 희   인생살이 굽이굽이 아리랑 열두 고개, 집집마다 말 못할 사정이 있듯이 나도 살면서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문 문제들에 마주하며 살아왔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인생 매단계마다에 의미를 부여하며 참으로 벅차고 억척스레 살아온 것 같다. 그렇게 내 인생의 끝...
  • 2019-08-15
  • - 글 / 김미란 -       (흑룡강신문=도쿄) 오늘도 예전처럼 일 끝내고 집에 와서 부랴부랴 저녁상을 차려놓고 작은 아들과 식탁에 마주앉았다.   무의식에 반찬 하나를 가리키며 아들한테 물었다.   "이 반찬 누가 제일로 좋아하지?"   "할아버지..."   "어떻게 알아???"   "엄마가 이 반찬 할 때마...
  • 2019-08-09
  • 코리아패션의 손향(좌1) 사장 연변지체장애인협회 리춘자(가운데) 회장에게 운동복을 전하고 있다. 연길 코리아패션의 손향 사장은 지난  8월 5일, 총동문회 회장단 일행과 함께 연변지체장애인협회를 방문, 운동복 20벌을 후원했다. 지체장애인협회 활동실에는 다가오는 연변주장애인좌식배구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선...
  • 2019-08-08
  • 화룡시 룡성진 부흥촌 제대군인 렴경창의 고향건설 이야기 생활이 제일 구차한 촌민 기와집에 먼저 지난세기 70년대에 건설된 부흥촌 주택구 “이제 당의 지시에 따라 우리가 악전고투한다면 고향사람들이 저런 오두막에서 번신할 날도 멀지 않겠지” 제대하던 날 렴경창은 기와집 한채 보이지 않던 부흥마을을 ...
  • 2019-08-07
  • 정든 고향을 떠나면서 기억속에 담아놓은 연길공항 오늘날 세상은 5G 시대에 들어섰고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을 이루고 있다. 나한테 가정용전화기가 절실했던 시대는 불과 25년전의 일에 지나지 않지만 먼 옛날 얘기처럼 고리타분하게 들린다. 를 맞이한 고향의 변화는 실로 놀라웠다. 중국 연변에서 모바일의 혁신적인 변...
  • 2019-08-06
  • 화룡시 룡성진 부흥촌 제대군인 렴경창의 고향건설 이야기 연길 아들 집에서 기자와  인터뷰 중인 렴경창옹. (사진설명: 렴경창부부(안로인 지난해 85세로 병고)는 슬하에 네 오누이를 두었는데 딸을 일찍 잃었고 세 아들 중 두 아들은 제대군인, 지금 세 아들은 다 외국에서 로무에 종사하고 있다. 렴...
  • 2019-08-05
  • 친구들과 함께(왼쪽 두번째가 리화옥씨). 꿈같은 고향나들이 마지막 일정으로 오늘은 두만강하류일대를 따라 중국대지의 제일 동쪽에 있는 ‘동방제일촌’훈춘시 경신진 방천 관광길에 나섰다. 5월 1일 아침 여섯시 정각, 큰 언니가 새벽부터 정성껏 말아준 김밥을 넉넉히 싸가지고 약속된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
  • 2019-08-02
  •   - 글/ 박영옥 -    오늘은 토요일이라 애들이 작문배우러 오는 날이여서 여느때보다 일찍이 일어나서 아침 먹고 이쁘게 화장을 하고는 반시간 앞두고 림시로 빌려쓰고 있는 로인대학2층교실로 향했다.   그런데 몇몇 애들이 벌써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날 본 애들은 쫑그르 달려와서 저마다 나한테 인사를 했...
  • 2019-07-31
  •              하늘아래 빈자리에 평범할래야 더 평범할 수 없는 내가 서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을가? 그리고 또 어디로 갈것인가? 이 물음에 답안을 작성해 본다면 조금은 식상하지만 절때로 흠을 잡을 수 없는 답이 나온다. 나는 주련화이고 엄마의 배속으로 부터 왔으며그...
  • 2019-07-30
  • "생명의 강, 만남의 강, 희망의 강"으로 마음속 깊이 여울치는 강   두만강가의 중조국경에서 친구들과 함께한 리화옥(가운데 사람)특파원 기다리던 4월 30일, 아파트문앞에서부터 도문까지 택시타고 가는데 40분 밖에 안 걸린다고 했지만 나는 부득부득 30분동안 공공뻐스를 타고 연길서역으로 향하였다. 고향에...
  • 2019-07-29
  • 진달래축제 현장에서 친구들과 함께(오른쪽 두번째가 리화옥특파원) 십여년만의 고향방문길에 마침 화룡에서 열리는 장백산진달래국제 문화관광축제에 참여할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되였다. 27일 아침 6시 30분, 축제에 가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여 부랴부랴 아파트밑에 내려갔더니 중학교시절의 친구가 새까만 윤기가 흐르...
  • 2019-07-26
  • - 글 / 김영숙 -   (흑룡강신문=하얼빈) 오늘은 사촌녀동생이 백년가약을 맺는 날이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사촌녀동생을 바라보노라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내 눈앞에는 꽃너울을 곱게 쓰고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우리 김씨 가문에 들어선 올케의 예쁜 얼굴이 선히 떠올...
  • 2019-07-25
‹처음  이전 4 5 6 7 8 9 10 11 12 13 1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