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함께(왼쪽 두번째가 리화옥씨).
꿈같은 고향나들이 마지막 일정으로 오늘은 두만강하류일대를 따라 중국대지의 제일 동쪽에 있는 ‘동방제일촌’훈춘시 경신진 방천 관광길에 나섰다.
5월 1일 아침 여섯시 정각, 큰 언니가 새벽부터 정성껏 말아준 김밥을 넉넉히 싸가지고 약속된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새까만 벤츠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내 앞에 멈춰선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고중시절 친구들이 벌써 차안에서 “굿모닝!”을 웨치며 어서 타라고 손짓한다.‘또 벤츠?! 연변의 생활수준이 정말 대단하네!’나는 다시 한번 속으로 흠칫 놀랐다.
십여년만에 고향에 와서 고중시절 옛 친구들과 함께 준비해온 간식들을 나누어 먹으면서 웃고 수다를 떨며 려행 떠나는 그 즐거움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2010년 9월에 개통되였다는 훈춘 고속도로는 매끄럽게 잘 닦아져 바닥에서 올라오는 소음도 적었고 도로 량옆의 안전시설도 잘 설치되여 있어서 웅기중기 줄지어선 푸른 산맥들을 편안히 흔상하며 달릴 수 있었다.
손꼽아 보니 훈춘에 다녀간지가 이언 25년이 된다.
며칠전, 미국으로 떠나면서 고향집에 놓고 갔던 <보물상자>를 우연히 열어 보게 되였고 그속에서 추억이 담긴 《조선족중학생보》 한장을 발견하게 되였다.
1994년 교사시절에 내가 가르치던 허명희 학생이 제2차 전국조선족 중학생글짓기 콩클에서 1등상을 취득하게 되여 그해 여름방학에 입선자 학생들과 지도교원들이 함께 하는 여름철야영활동에 참가하였다.
우리는 훈춘시 경내에서 10일간 주요 기업소들과 학교들을 견학했고 훈춘금삼각주 방천관광 등 풍부하고 다채로운 활동들을 진행하였다.
오늘 나는 교사시절의 소중한 추억까지 선물로 안고 가슴 설레이는 즐거움으로 훈춘려행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집에서 발견한 25년전 신문.
아침 이른시간이라 도로에는 차량도 별로 없어서 한시간 정도 운전하니 가뿐하게 훈춘에 당도하였는데 고속철도를 타면 34분밖에 안 걸린다고 한다.
려객뻐스로는 현재 1시간 반 걸리는 거리가 1994년에 내가 훈춘에 갈 때에는 2시간 반정도, 1985년에 훈춘에 있는 우리 대학 동창생들이 집 한번 다녀가는데는 3시간 반정도 걸렸다는 수치가 무척 흥미롭다.
25년전에 우리 야영대오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털렁대는 뻐스에 앉아 비 포장길에 뽀얗게 먼지를 날리며 방천으로 달리던 도로도 그사이 반듯하게 닦아져 있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황소들의 모습도 너무 반가웠다.
두만강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달리는데 길 옆에서 여유작작 풀을 뜯으며 노니는 검정, 얼룩, 누렁 등 연변의 명물들이 차들이 달려와도 피하기는 커녕 <연변황소 납신다. 길 비켜라!>하고 태평스럽게 느적느적 길을 건느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내지에서는 보기 드문 두만강 주변에 형성된 거대한 모래언덕을 리용하여 만들어졌다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금모래공원도 나의 눈길을 끌었다.
금모래공원앞에서.
이윽고 셔틀버스를 갈아 타고 올라가면서 철조망을 쳐놓은 청나라 때 세운 중국-로씨아 국경을 표시하는 력사의 스토리가 담겨져 있는 <토자비> 비석을 보게 되였다.
우리는 2012년에 개방되였다는 13층 높이의 장중하고 고풍스러운 룡호각전망대에도 올랐다.
“닭울음소리에 삼국이 깨여나고 개짖는 소리에 삼강이 놀라며 꽃이 피면 이웃 나라에도 향기 풍기고 웃음소리 삼국에 울러퍼진다”는 속설이 유래하게 된 까닭을 알 것 같기도 하다.
두만강이 유유히 흐르는 가운데 강을 가로지르는 조선-로씨야대교가 놓여있고 그 오른쪽은 조선 라진-선봉 , 왼쪽은 울라지스또크, 저 아득히 먼곳에 어렴풋이 보이는 곳은 일본의 서해안, 조선의 동해라고 한다. 방천의 지리적 위치가 바라볼수록 신기하고 매력적이였다.
25년전에 우리 야영대오는 경신에서 산세가 험준하고 제일 높은 산봉오리인 수류봉을 톺아 올랐다. 둬시간 남짓이 땀을 뻘뻘 흘리며 산봉우리를 점령한 성취감에 도취되여 삼국국경지대를 내려다보던 상쾌하고 행복했던 그 기분은 지금까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룡호각 출구로 나오면서 우리는 방천변방 문화전람관과 국가급 보호동물인 동북호랑이 등 희귀 야생동물 전시관을 둘러 보았으며 전임 중공중앙 총서기 강택민을 비롯하여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이 방천을 시찰한 사진전시물들도 관람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국의 령토를 되찾고 주권을 바로세워 <토자비>위치를 바꾸어 놓은 오대징장군 조각상이며 장고봉전투 유적지 기념관도 둘러 보았다.
방천에서 친구들과 함께.
두만강 푸른 물에 유람선 몇척이 떠있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였는데 지금은 조선 두만강시까지 유람선이 개통되였다고 하니 정말 인심을 격동시키는 굿뉴스가 아닐 수 없다.
그사이 훈춘은 장길도 개발개방선도구 국가전략에 선정되고‘중국 훈춘국제 합작시범구'로 지정되였으며 두만강지역개발합작 프로젝트가 중국‘일대일로 지역관광 일체화 사업'에 편입되는 등 천지개벽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아침 일찍 출발한 우리들은 점심 식사를 하고저 훈춘 도심을 향해 출발하였다.
새롭게 개발되고 건설된 도시답게 도로들이 넓고 시원하게 쭉쭉 뻗어있는 가운데 교통흐름도 원활했고 키돋음하며 질서정연하게 줄지어선 고층건물들에 특별히 조선어,한어,로씨야어 3개 국어로 씌여진 간판들이 유난히 이색적인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구라파식 풍격의 독특하고 품위있는 로씨야거리는 중국속의 로씨야를 자랑하며 훈춘의 특색을 한층 돋보여 주고 있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그동안 두번도 더 변한 훈춘의 강산은 상상을 초월하게 변모 돼 있었다.
고속도로와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훈춘에 해마다 20여만명에 달하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모여 든다고 하니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수자이다.
세계각국이 주목하는 독특한 지리적 위치와 량호한 생태환경을 구비한 훈춘이 경제, 문화, 관광의 무한한 잠재력과 무궁한 발전성으로 국내외적으로 그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는것에 경탄과 찬탄을 금할 수가 없다.
수산자원이 풍부한 조선, 로씨야로부터 대량의 수산물을 수입한다는 훈춘에서 려행중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을 즐기려 명성이 높은 회집을 찾아 들어갔다.
정다운 고중시절의 벗님네들과 함께 웃음꽃을 피워가며 즐겁게 회포를 나누며 신선한 모듬회, 광어전골, 굴, 아구찜, 산낙지, 장어구이 등으로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해물료리들의 진미를 맛보노라니 훈춘 려행의 즐거움은 두배, 세배가 되였다.
게다가 기억의 저편에 망각되였던 중학생신문이 되찾아준 교사시절의 소중한 추억은 나의 훈춘 금삼각주 려행을 한결 풍성하고 알차게 마무리 해주었다.
/리화옥 길림신문 미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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