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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글짓기응모] 작은 소망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9월20일 18시57분    조회: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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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조련화 -

  (흑룡강신문=도쿄) 2018년 5월 20일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에서 주최한 우리 노래 대잔치가 도쿄 닛뽀리에서 성황리에 열렸고 나는 짝궁 훈이와 <북국의 봄> 듀엣으로 무대에 오르게 되였다. 꿈만 같았던 하루, 잊을수 없는 그날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의 계기가 되였다.

  노래자랑에 참가하게 된것은 평소부터 친하게 지내 누구보다도 나를 잘 료해하는 고향삼촌이자 학우회 선배인 마홍철선배님의 <노래자랑 참가해보지 않겠어?>라는 한마디의 권유때문이였다.그런데 꿈에서조차 생각해보지 못했던 노래자랑에 참가한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인기상까지 받게 되여 몹시 기뻤다.

 

 

  사실 노래자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또 하나의 꿈을 꾸게 되였다. 바로 유방암 초기진단을 받고 련이은 항암치료와 수술 그리고 방사선치료에 힘들어하는 엄마를 일본에 모셔와 무대에서 노래하는 딸의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싶다는 야무진꿈 말이다. 그리고 그 꿈은 곧 현실로 되였고 오랜기간 병마와의 싸움에서 지친 엄마에게 커다란 기쁨과 희망을 선사하는 뜻깊은 선물이 되였다.

  흑룡강성 녕안시 동경성 경박호폭포수가 유명한 곳에서 태여난 나는 가족사랑을 한몸에 듬뿍 받으며 자랐다. 외할아버지가 국수집을 하신 덕분에 유복한 동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나는 주위에 친구들도 많았으며 또한 공부도 잘했을뿐만아니라 무용, 스케트, 배구, 강연…다방면으로 재능을 발휘하면서 행복한 동년시절을 보냈다.

  소학교때부터 줄곧 공부성적이 우수했던 덕분에 중학교에 진학할 때에는 고향의 네개 소학교에서 1등으로 합격하였으며 목단강시삼호학생에도 당선되였다. 또한 중학교에서 고중에 진학할 때는 학교의 추천으로 목단강시조선족중학교에 입학할수 있었으며 타지에서 갔음에도 불구하고 투표로 진행된 간부선거에서 부반장으로 선발되였다.

  그러나 난생처음 기숙사생활을 하게 된 나는 옛친구들이 그립고 금방 한국으로 떠난 엄마생각이 나서 밤마다 이불속에서 흐느끼며 울었던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활발한 성격덕분에 기숙사 친구들과 금방 친해졌고 반급학생들과도 금방 친해졌음에도 어린마음에 정든 옛 친구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렇게 방황의 나날을 보내던 찰나에 편지 한장 받고나서 나는 문과가 센 녕안조선족중학교로 가고 싶다는 핑계로 전학하기로 마음먹게 되였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다!!

  그렇게 나의 념원대로 새로운 학교에 전학을 가게 되였지만 순풍에 돛단 배처럼 순리로울줄만 알았던 나의 인생에 처음으로 시련이 찾아왔다. 좋은 앞날을 바라보며 같이 공부하려고 생각했던 첫사랑은 내가 전학해서 한달만에 남학생들의 싸움을 한판 치르고 학교를 그만두고 광주로 떠나가게 되였다. 그때에야 비로소 <사람은 힘든 것을 극복해야지 피해서는 안되는구나> 라는 인생의 교훈을 깨닫게 되였다.

  그로부터 시간은 흘러 어느덧 고중 3학년이 되고 한국에 가셨던 엄마와 아버지는 불법체류로 인해 돌아오셨고 일본류학붐이 불기 시작했다. 나는 <东京爱情故事>를 다섯번이나 반복해보면서 일본생활에 동경을 품게 되였다. 그래서 결국 대학교를 포기하고 일본에 가겠다고 선전포고를 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일본류학을 반대한게 괜히 미안하신지 커다란 수박을 사가지고와서는 잘라주시면서 대학시험을 꼭 보자고 나를 달랬다.(우리고향은 수박이 유명하다.)

 

 

  어느덧 대학입시날이 다가왔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우리 집에는 큰 일이 터졌다. 마을사람들의 부탁으로 독일 로무수출 수속을 맡아하시던 아버지가 마을사람들의 돈이 가득 담긴 가방을 호텔에 맡긴채 잠간 집에 돌아와 서류를 가져가려는 사이 동업자가 편지 한장 달랑 남기고 돈을 가방채로 들고 도주해버렸던것이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이였다. 엄마와 아버지는 얼마나 속이 탔겠는가. 돈을 찾아보겠다고 도망간 사람 집에 가서 아예 살면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 집에는 안해와 아들만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도 처음으로 닥친 가정의 어려움이여서 앞이 막막했다. 나는 남동생과 함께 우리 마을로 와서 어린이들에게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한국청년들의 봉사활동을 도와주며 집을 지켰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돈을 갖고 도망간 사람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고 난생 처음으로 빚더미에 앉게 된 엄마는 어쩔수없이 집을 팔고 여기저기 돈을 꾸어 겨우 일본수속비를 마련하고는 부득불 나를 일본으로 떠나보내기로 결정하셨다. 일본에 가서 공부도 하면서 돈도 벌라면서말이다. 하루아침새에 나는 가족의 마지막 희망이 된것이다. 연변대학교에서 2년동안 학습을 하면서 고대 기다려왔던 일본수속이 내리고 나는 드디여 2000년 5월 30일 일본행 비행기를 타게 되였다. 가방에는火腿肠,方便面…지갑에는 8만엔, 마음에는 빚의 걱정을 짊어지고 어린 나이에 너무나 벅찼지만그래도 잘해낼꺼라는 젊음의 힘과 믿음이 받쳐주었다. 그렇게나는 그토록 동경하던 일본에 오게 되였으나 집에서 손에 물한방울도 묻혀보지못했던 나에게는 타향생활이 결코 쉬운 날들이 아니였다.

  언어학교 2년, 대학교 4년, 대학원 3년(연변대학 일어계를 졸업하지 않고 온것이 유감이어서 대학교 일본어학과, 대학원 일본어교육전공을 했다.)의 피빠지는 고생끝에 어느덧 빚을 다갚고 집도 사고 학업도 완수했다. 하지만 그동안 겪어온 마음고생은 어디에 이루다 말할수있으랴. 그와중에도 여태 내가 버틸수 있었던것은 <젊었을때는 자고 일어나면 또 힘이 난다>는 엄마의 말씀덕분이였다.

  하지만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그동안 쌓인 피로와 지친 마음에 도저히 한걸음도 내디딜수가 없을때, 22살때부터 늘 친구처럼 믿고 의지해오던 바위돌같은 일본 사나이가 언제나처럼 내 곁을 지켜주었다. 그렇게 29살에 결혼을 하게 되였고 결혼후 책임감이 있고 리해심이 깊은 남편 덕분에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수 있었으며 일본에서 사는것이 더이상 무섭지 않았고 나만의 꿈을 찾아 이루어보려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할수 있게 되였다.

  <나는 누구인가>

  <한번밖에 없는 인생 어떻게 가치있게 살수 있을까>

  <마음의 자유를 얻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

  그동안 늘 되풀이해왔던 물음이다. 이런 나의 갈급한 마음 누가 알아주랴?라는 허망한 기대와 함께말이다.

  행운스러운건 나는 인제는 그 답을 모두 찾게 되였다. 좋은 모습의 나의 미래를 확신하는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의 매듭이 조금씩 천천히 풀리기 시작했다.그런 의미에서 남편은 나에게 있어서 은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남편에게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아리가또>이다.(고마워요라는 일본어이다.) 남편은 말을 거칠게 하는 스타일인데 내가 어떤 문제에 부딛쳤을때 차근차근 상담을 잘 해줘서 배우는것도 많다.

  나는 항상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빛을 주는 하늘의 별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럴려면 나의 마음이 넓고넓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그런 바램이 노래자랑을 경험하면서 무대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 앞에 서게 되고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면서 좋은 일들을 만들어가는 일로 이어지게한것 같다.적 어도 내안에서는 말이다.

  노래자랑 당일, 우리는 모두 함께 긴장하고 있었으며 참가자가 올라갈 때마다 응원해주고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면 온 힘을 다해 박수 쳐주며 진심으로 통하고 있었다. 모두가 힘들고 외로운 날들을 이기고 생활기반을 닦아놓고 이제 우리 민족 사회로 나와 서로 응원하면서 자유와 당당함을 조용히 외치고있는것 같았다. 나에게는 지금도 그날의 여운이 그대로 남아있어 가끔씩은 마음을 아주 진하게 적셔주곤 한다.

  그로부터 일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또 다른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바로 다가오는 11월 4일이면 곧 많은 사람들앞에 펼쳐질“세계조선족문화절및동경포럼”이다. 나는 작년의 노래자랑을 계기로 올해는 집행자로서 더욱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얼마나 기쁘고 영광스러운지 모르겠다.

  부디 앞으로도 우리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조선족전통문화를 일본에 있는 조선족뿐만 아니라 일본사회, 더 나아가서 전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고 서로 교류하면서 우리 조선민족의 더 휘황찬 미래를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는것이 지금의 나의 작은 소망이다. 나는 세상을 향해 웨친다.《We are one.》

   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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