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사춘기
웃는 달
대한을 며칠 앞둔 어느날 중학교 동창생으로부터 1월의 마지막날 동창생모임을 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러면서 나를 보고싶어하는 동창생이 있으니 꼭 참석해달라는것이였다. 나도 대뜸 짐작이 갔다. 그 애, 그 동창생… 어쩜 나도 그 애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싶었다… 사춘기 소녀에게 첫사랑을 심어준 동창생이니 내 어찌 잊으랴!
15년전의 그날 밤, 바깥은 눈보라가 쌩쌩 휘몰아치며 혹독하게 추웠다. 내가 저녁을 금방 다 먹었는데 한 친구가 찾아와서 귀속말로 누군가 나를 보자고 한다고 전했다. 난 절대 집문밖을 나갈수 없다고 딱 잡아뗐다. 그러자 그 애가 심부름하는 자기가 무슨 죄냐며 그 남자아이가 몇번이나 우리 집 부근에서 서성댄다고 말했다. 나는 심부름하는 그 애가 측은해지면서 집문을 소리없이 나섰다. 시골의 강가언덕에는 며칠전 내린 눈들이 바람에 쓸려가서 띄염띄염 작은 언덕을 이루었고 흉물스럽게 드러난 시커멓게 언 언제들이 차가운 달빛에 을씨년스러움을 더해주고있었다.
우리 동네가 끝나는 얼어붙은 강변가에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운채 그 애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막상 내가 나타나자 그 애도 아직 열일곱살 밖에 안된 소년인지라 아무 말도 못하고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가? 그 애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그렇게 대단하니?“”
아마도 몇번이나 친구를 보냈는데 내가 한번도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자 그것에 대한 불만인것 같았다.
“나는 네 생각이 많이 난다. 너는 내 생각이 안 나니?”
네댓발작 정도 떨어져서 그 애가 다가오면 자로 잰듯 정확히 그만큼 멀어지는 나한테 그 애가 잦아드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아직 어린 우리가 왜서 이른바 련애라는걸 하면 안되는지 수두룩한 리유가 하도 많아서 어느것부터 말해야 할지 난 혼란스러웠다. 나의 입속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불쑥 “안 나!”라는 간단한 단마디가 튀여나갔다. 너무나 차디찬 말에, 틈서리조차 없이 강경한 내 태도에 주눅이 들어버렸는지 그는 사귀면 안되겠느냐고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어왔다. 나는 고려할것조차 없다는듯이 처음보다 더 강경하게 “안돼!”라는 두 글자를 내뱉었다. 그리고는 기어코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는 그 애의 말을 칼로 무우 자르듯이 썩둑 잘라버리고 허겁지겁 우리 집쪽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죄인처럼 머리를 푹 떨어뜨리고 무거운 어둠속에 멍하니 서있는 그 애를 남겨둔채 마치 조금이라도 더 지체하면 그 애가 나를 어쩌기라도 하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여가는 내 마음은 칼로 도려내듯이 아팠다. 이제 다시는 그 애를 볼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눈앞이 캄캄해났다. 아직 고중학생들인 우리가 농사일로 뒤바라지하는 부모님들께 효도는 못할지언정 “조기련애”로 부모님께 미안한 일은 해드릴수는 없었다. 공부를 잘해야 시골을 벗어날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있는 우리 부모님, 자식의 출세가 가장 큰 희망인 그 애의 부모님한테까지 실망을 드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뇌리를 때렸다. 학생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으로 뭇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질타를 받는다는건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기보다는 남한테 비춰지는 이미지나 체면에 더 목숨 걸었던 나한테는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아픔은 어느새 반으로 확 줄면서 내가 방금 취한 행동이 십분 정확한 처사였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애에게 어떤 희망을 심어준다는것은 미련을 남겨주어서 더 큰 아픔을 남겨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것이다. 그냥 그의 일방적인 마음이였다는것을 나의 차디참으로 자각하게 함으로써 나를 좋아하는 감정이 미움과 원망으로 변하여 하루빨리 나를 잊고 공부에 전념하게 하는것이 내가 그 애한테 할수 있는 가장 큰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뒤 그에게서 편지가 날아왔다. 편지내용은 거의 잊혀졌지만 마지막에 “주제 넘는 **로부터”라고 적었던 부분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안 나.”, “싫어.”라는 단 두마디로 단호한 거절을 당했던 그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던것 같다. 얼음장같이 차가와야만 했던 나의 랭정함에 감추어져있었던 진심을 알고나서 언젠가는 성공한 모습으로 나를 꼭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 아픔을 이겨가려고 모진 애를 쓰던 마당에 그의 편지는 소금이 되여서 아물줄 모르던 나의 상처에 인정사정없이 뿌려졌다.
그후 나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서 받았던 편지와 그 시기에 썼던 일기장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한 소년에게로 걷잡을수 없이 향해지던 감정을 그 누구한테도 들키지 않은채 말이다. 넋이 나간 얼굴로 사춘기시절을 송두리채 불태워버린 나는 가벼운 한줌의 재로 변한 종이장들을 수많은 세월동안 한없이 아쉬워하면서 사무치게 후회도 하고 또 못 견디게 그리워하기도 했다.
사실 나도 그를 정말 좋아했다.
그를 처음 만났던것은 중학생이 된지 얼마 안되는 저녁노을이 피여나던 여름날이였다. 수도시설이 없는 시골 중학교라 청소하는데 필요한 물은 두명이 짝을 지어 근처에 있는 강가에 가서 물통에다 길어와야 했다. 강가에 다가가니 웃학년인듯한 남학생이 한창 물을 퍼담고있었다. 그 애가 도와줄 용의가 있는 눈길로 우리를 돌아보는 순간 나는 그만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고말았다. 당시 류행되던 흰색해군복을 입고있었는데 하얀 얼굴에서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두눈이 해맑게 웃고있었다. 언젠가 어디에서 본것도 같은 낯 익은 얼굴이였다. 아무런 리유도 없이 부끄러움때문인지 당황스러움때문인지 가슴이 콩닥콩닥 뛰다가 그대로 멈춰버릴것만 같았다. 그때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상야릇한 느낌이 가슴에서 물결쳤다. 이것이 이른바 어른들이 말하는 “첫눈에 반한다”는 그 첫사랑이란것일가? 후에야 그 애는 우리 웃학년 학생이란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날 느낀 미묘한 감정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서서히 희미해져갔다.
그렇게 거의 잊혀갈무렵 그가 중점고중진학을 위하여 우리 반에 재학생신분으로 다시 나타났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기 시작하자 그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이 살며시 기억에서 되살아나면서 따사로운 봄볕에 어린 새싹이 하루 다르게 파릇파릇 자라나듯이 그에게로 향해지는 내 마음도 조금씩 조금씩 날에 날마다 커져가기 시작했다.
매일마다 만날수 있는 그때문에 나는 마냥 행복했고 옷차림과 행동거지에 여간 신경 쓰지 않았다. 난생처음 자물쇠가 달린 앙증맞은 다이어리도 마련해놓았다. 내 일기장은 온통 한 소년의 일거수일투족으로 도배되여있었다. 학교에서 6리쯤 떨어진 마을에서 통학하는 그 애가 기상악화로 날씨가 나쁜 날에는 제시간에 등교하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가 하고 그 애의 걱정으로 마음이 온통 심란해진다. 그 애가 혹시 지각이 아닌 결석을 해버리면 이 하루동안을 지겨워서 어떻게 보낼가 하는 생각으로 수업은 듣는둥마는둥 머리속은 하얗게 비여있었다. 온갖 억측으로 까맣게 속을 태우다가도 똑똑 반가운 노크소리에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가 상기된 얼굴로 교실에 들어서는 그 애를 결국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호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군 했다. 유일한 교통수단이 자전거였던 그 시절 폭우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이나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지각을 하더라도 등교는 꼭 하던 그 리유가 바로 나때문이였다는것을 세월이 훨씬 지난 먼 후날에 알게 되였지만.
그렇게 잠간씩 잊고 살다가 15년만에 동창생모임에서 그를 다시 만날수 있다니… 그는 나를 정말 많이 좋아했었다면서 누가 가르쳐주기라도 한듯 알려준적조차 없는 내 생일날자를 그때까지 잘 기억하고있는것이였다. 꼭 마치 나를 찾아왔던 15년전 그날이 그의 생일날이였다는것을 나도 지금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고있는것처럼…
동창생모임에서 그 겨울날 밤에 그의 왼쪽귀가 동상을 입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였다. 산에라도 가려면 털모자가 필수라면서 초겨울부터 아려오는 왼쪽귀때문에 그는 그해 그 겨울날 밤을 도저히 지울래야 지울수가 없었다고 한다. 뾰족한 바늘이 되여서 사정없이 할퀴고 간 그날의 상처자국이 이성에 대한 반감으로 바뀌면서 다가오는 녀자친구도 여지없이 뿌리칠 정도로 그는 매우 암울했던 청춘기를 보냈다고 한다. 그를 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나름대로는 현명하다고 휘둘렀던 내 채찍이 본의 아니게 그에게는 동상을 입혔던 왼쪽귀와 함께 쓰라린 아픔으로 남아서 그로 하여금 많은 시간동안 방황하게 했던것 같다. 그러면서 살을 에이는듯한 칼바람을 마주 향해서 가슴이 내려앉는 슬픔과 실망을 짊어진채로 힘겹게 가야만 했던 그의 그날 밤 돌아가는 길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귀가 빨갛게 얼어가는것조차 감지하지 못한채로 아직은 어린 그가 작은 가슴을 들먹이며 눈물을 삼키면서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프게 해보았다.
그는 느닷없이 “나는 그때 너를 보기만 해도 기분이 그렇게 좋았는데…”라고 하면서 술 한잔을 비워버린다. 자기를 좋아했을거라는 짐작은 가지만 확인이 서지 않아 내가 말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약간 보상적인 그의 눈빛을 나는 애써 외면해본다.
예전에는 갸름했었지만 다소 둥글어진 얼굴에서는 여전히 그의 작지도 크지도 않은 두눈이 웃고있었다. 애된 소년이였던 15년전 그의 얼굴이 떠올라서 나는 흠칫 놀라면서 “그땐 내가 너무 매몰찼지…”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는데 내 말이 끝나기도전에 “정말 차가왔어. 너 그날…” 하면서 반 정도 남아있던 술을 마저 비워버린다…
그러나 1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러간 지금까지도 나는 그때의 진심을 그한테 말해줄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가 너무나 궁금해하는 부분이겠지만 감정이라는것은 자기것이지만 스스로를 조절할수 없게 하는 마력을 가진 엄청난것이라는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있기때문이다.
다방안의 화초와 어항속에서 자유롭게 헤염치는 고기들을 보노라니 지금이 여름이라고 착각하고 하느작거리는 원피스를 입고싶어졌다. 하지만 누군가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려고 할 때 차가운 바람이 확 불어들어왔다. 바깥은 겨울이 한창이였다.
문 하나를 사이 두고도 이렇게 극과 극인데 만약 나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그에게 보여준다면 그후 그의 감정변화를 누가 감내할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언젠가는 나의 진솔한 마음을 그한테 가감없이 다 말해줄 날이 있을것이라고 믿는다. 세월이 많이 흘러간 다음 감정변화폭이 유연해져있을 때 또 그렇게 부드럽게 나이 먹어가고있을 때 그때까지도 아직 그와의 련락이 끊어지지 않고있다면 가슴이 찢어질듯이 아팠던 그 겨울날밤의 나의 진실한 심정도 낱낱이 말해줄것이다.
가끔 꿈속에서 나타나 천진란만했지만 그속에 애처로운 핑크빛풋사랑도 어울려있는 풋내기중학생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그는 분명 내 인생에서 소중한 동창생이자 애잔한 추억을 함께 만들고 간직할수 있는 잊을수 없는 친구이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로 하여금 한가로운 아줌마를 가슴 뛰는 소녀로 돌아갈수 있게 해주고 가끔씩 아주 오랜만에 아련한 추억에 젖어서 설레임이 있는 불면의 밤을 보낼수 있지 않았던가?
일일이 악수하고 우리 동창생들은 아쉽게 갈라졌다. 추위는 뼈속까지 파고들었다.
아, 그날 밤도 이렇게 추웠지…
<청년생활>잡지 2016년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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