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과 함께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
그토록 바라던 시간이 왔어요
모든 사람의 축복에 사랑의 서약을 하고 있죠
세월이 흘러서 병들고 지칠때
지금처럼 내 곁에서 서로 위로해줄수 있나요
함께 걸어가야 할 수많은 시간 앞에서
우리들의 약속은 언제나 변함없다는것을 믿나요
힘든 날도 있겠죠 하지만 후횐 없어요
저 하늘이 부르는 그 날까지 사랑만 가득하다는것을 믿어요
...
결혼식때마다 많이 불러져서 익숙한 “사랑의 서약”의 가사인데요, 구절구절 그 의미가 가슴속 깊숙히 와 닿습니다.
한 남자의 안해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 아플때나 슬플때나 함께 하자던 그 약속, 평생토록 지켜겠다던 그 약속이 요즘 세월, 특히 젊은이들속에서는 그 무게만큼 지켜지지 않고 색바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몇십년을 해로하며 사랑을 지켜온 우리 주변의 로부부들의 가슴 따뜻한 사랑 이야기들이 큰 위로가 되여 주고 있는데요, 생활자립을 할수 없는 안해를 30여년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보살피고 섬기며 사랑의 서약을 지켜온 길림성 왕청현 리희태, 유형숙 부부의 이야기 역시 우리의 가슴을 크게 울리고 있습니다.
* 음향 (남편 리희태 선생)
“내 안해에게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뿐인데, 그래도 우리의 이야기가 요즘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였으면 하는”생각에 취재를 접수했다는 남편 리희태 선생님, 인터뷰 내내 안해에 대한 화려한 사랑 표현도 없었고, 긴 병에 효자가 없다고 어떤 사랑이여야 몇십년간 병상에 누워 있는안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필수 있느냐는 물음에도 단지 젊은 시절 안해를 만나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소박한 대답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두분의 사랑이야기는 “서로가 없이는 절대 살수 없다”는 그런 가슴 절절함도 없이, 흔한 가정의 평범한 이야기처럼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이야기가 주는 울림은 크기만했습니다.
거개가 소개로 만나 정약결혼을 하던 70년대 그 시절, 두분은 자유련애로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안해 유형숙씨는 대대 공청단 간부였고 남편 리희태씨는 단원이였습니다. 누가 먼저랄것이 없이 서로에게 끌려 사랑을 하게 된 두분은 결혼식을 올리고 신접살림을 차려 깨알이 쏟아지는듯한 신혼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풍운조화는 예측키어렵다고 그렇게 행복했던 생활을 하늘이 질투라도 했던지 결혼2년만에 안해 유형숙씨는 류마티스 관절염 진단을 받게 되였습니다. 몇년간 치료를 지속했지만하반신 신경이 마비되면서 근육이 굳어져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까지 되였습니다.
왕청현 병원의 간호사로 일하며 하늘이라도 찌를듯 사업에서도 한창승승장구하던 시절 갑자기 페인이 되여버린 자신의 모습에 유형숙씨는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생의 의욕까지 잃어가고 있을때어린 딸애와 지극정성을 다하는 남편이 버팀목이 되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병마는 쉽게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안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남편은 안해를 업고 용하다는 병원은 다 찾아다녔습니다. 가는 곳마다에서 남편은 쪽걸상에 걸터앉아 새우잠을 자면서 병시중을 들었고,혹 욕창이라도 생길가봐 아침 눈을 뜨기 바쁘게 더운 물로 안해의 몸을 닦아주고 반시간에 한번씩 움직여주며 극진하게 보살폈습니다.
공비 치료라고는 하지만 자부담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짧은 신혼 살림에 악착같이 벌어 마을에서 첫 만원호가 되였지만 안해의 병치료로 장만했던 집 세채가 날려가고 빚도 산더미처럼 늘어만 갔습니다. 속수무책으로 이대로 나앉을수는 없다며 남편 리희태씨는 단연히 한국 로무길에 나섰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 하나로 부부는 6년간의 힘든 기러기 생활을 이겨냈습니다. 남편은 한국에가 있는 동안에도 안해를 위해 꼭꼭 달마다 치료비를 보내왔고, 나중에는 안해의 이름으로 집까지 장만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생활이 조금 펴이게 되자 남편은 안해를 데리고 한국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래도 그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안해는 지팡이를 짚고 바깥 출입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렇게 힘들기만 했던 가정에 한가닥 희망의빛이 흘러든다고 생각했던 무렵 뜻밖의 낙상사고로 안해는 다시 자리에 눕게 되였습니다. 그러고나서 또 오랜시간 병원신세를 져야했고, 그렇게 힘든 사정에도 남편은 뇌출혈로 쓰러진 장모님을 모셔다 여섯달동안 대소변을 받아가며 효성을 다하고 림종까지 지켜주었습니다. 또 처가댁 조카 둘을 집에 데려다 6년간 공부뒤바라지를 하는 등 남편은 세대주답게 꿋꿋이 가정을 지켜나갔습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안해가 병상에 누운지 옹근 31년이 되던 2015년 1월의 어느날 밑반찬을 만들어 밥상을 갖추려 하던 남편은 안해가 조심조심 벽을 짚고 화장실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였습니다.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꿈같은 그 정경에 남편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병석에 있긴 했지만 그동안 남편에게 안해는 모든 아픔을 딛고 일어설수 있는 힘이였습니다.
안해의 병이 차도를 보이고 거동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하자 부부는 도시 생활을 접고 공기 좋은 시골마을로 이사했습니다.
부부의 유일한 살점인 딸애는 어려운 살림에도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마치고 좋은 직장을 얻어 상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얼마전 결혼까지 해 부부에게는 더이상 걱정거리가 없습니다.
부부에게 남아있는것이라면 힘들었던 지난 세월에 대한 기억들을 조금씩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행복한 기억들을 새로 채워 넣을 일만 남았습니다. 부부는 물 좋고 산 좋은 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여 오손도손 행복하게 만년을 살아갈것이라고 합니다.
한생을 함께 살자던 언약을 남편 리희태씨는 혼신의 힘을 불사르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켜왔습니다.
쉽게 만나 쉽게 헤여지고, 한번 맺은 인연 평생 가야한다는 부부의 의미도 조금씩 희석되여 가고 있는 현실에서 리희태, 유형숙 부부의 사랑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으로 큰 울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중앙인민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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