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한국로무갔다 두 번의 유방암 이겨낸 5년 암 생존자 안명애 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9월20일 08시18분    조회:251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28살 젊은 나이에 한 살배기 아들을 중국 하얼빈에 두고 부산의 방직공장으로 돈 벌러 한국에 왔던 조선족. 식당 주방일과 홀 서빙 등으로 전국을 전전하며 억척같이 돈을 모아 귀화도 하고 30대 후반에는 번듯한 호프집도 운영하며 승승장구했다는 사람.

하지만 이를 시샘이라도 한 걸까? 승승장구하던 시절 갑자기 찾아온 유방암! 다행히 고비를 넘겼다 생각할 즈음 반대편에 또다시 찾아온 유방암! 그리고 계속된 재발 그리고 재발….

언제 끝날지 막막하기만 했던 재발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올 3월 암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있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안명애 씨(48세)다. “아들 때문에 살아야만 했어요. 살 수 있다고만 하면 뭐든 다 했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암 극복 비결을 들어봤다.

 

눈물 가득했던 타향살이…그러나 이젠

28살, 한창때였다. 한 살배기 아들을 두고 떠나기가 절대 쉽지 않았지만, 아들을 위해서 떠나와야만 했다. 당장은 마음 아프지만, 돈을 벌어 남부럽지 않게 아들을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남편과 같이 부산의 방직공장에 연수생으로 취직되어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한국에 좀 적응할 만하자 1년간의 근로계약이 만료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식당 주방일과 홀서빙 등 일자리가 있다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기 시작했다.

“울산, 금촌 등 전국을 떠돌면서 안 해본 일이 없어요. 너무 울어서 눈물이 다 말라 버렸죠(웃음).”

그러다 2년 만에 안양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지금까지 18년간 안양이 제2의 고향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안명애 씨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살만해지자 느닷없이 암 진단

한국에 와서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억척스레 일한 만큼 보람도 있었다. 한국 온 지 10년째 되던 2005년에는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큰 호프집을 운영할 정도가 됐고, 장사도 잘됐다.

“그때는 한국의 돈을 제가 다 버는 것처럼 정말 많이 벌었어요. 중국에 집도 사고 그랬죠.”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그간의 고생이 다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한마디로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누가 시샘이라도 했던 걸까? 감기가 낫질 않았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다 사우나에 갔다가 뭔가 이상해서 오른쪽 가슴을 눌렀더니 피고름이 나왔다. 엄청난 양의 하혈도 했다.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었죠. 장사한다고 하루에 대여섯 시간밖에 못 잤고, 영업하는 내내 담배 연기 속에서 살았고, 음주도 좋아해서 과음도 하고 그랬거든요. 사는 데 정신없어서 건강 관리 같은 건 아예 생각도 못하고 살았거든요.”

서둘러 동네 산부인과를 찾았고 증상을 상세히 알렸다. 이것저것 검사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 순간 ‘암인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의사는 보호자를 찾았다. 보호자는 없다고 그냥 직접 말해달라고 하자 의사는 담담히 말했다.

“암입니다. 빨리 큰 병원으로 가세요.”

이제 겨우 살만한 데… 조금만 더 있으면 아들과 함께 살 수 있는데 암이라니! 충격이 컸지만, 절망도 사치였다. 살아야만 했다. 어떻게든 살아야만 했다. 아들 때문에 살아야만 했다.

암으로부터 자신을 살려줄 만한 곳을 수소문해 제일 좋다는 대학병원엘 찾아갔다. 암 진단은 받았지만, 한 달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자리가 없어서 당장 입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할 것만 같았는데,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거 같았는데 한 달 후에 오라고 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그 한 달 새에 죽어버릴 것만 같았죠.”

망연자실해 진료실 앞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한 할머니가 말을 건넸다. 자기 여동생도 유방암이었는데 순천향대 서울병원 이민혁 교수한테 치료를 잘 받았다며 그 병원에 가보라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무턱대고 순천향병원엘 찾아갔다. 도착하니 12시 30분. 오전 진료가 끝날 시간이었고, 예약도 안 한 상태라 진료를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진료실 앞까지 찾아갔다.

때마침 이민혁 교수가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때 무작정 이민혁 교수의 손을 잡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는 안명애 씨.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치료받고 싶다고 간곡히 청했다. 다행히 이민혁 교수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오후에 입원한 후 일주일 뒤 오른쪽 유방암 수술을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임파선을 다 잘라내 수술 직후에는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꾸준히 운동했다. 죽지 않고 살았는데 어떤 고통이라도 참지 못할 것이 없었다. 덕분에 지금은 불편함 없이 생활하고 있다.

 

왼쪽에도 유방암이…

오른쪽 유방암 수술 후 3년째인 2008년, 안명애 씨는 날벼락 같은 정기검진 결과를 들었다. 왼쪽 유방에서도 암세포가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왼쪽은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어느 날 왼쪽 가슴이 딱딱해지면서 느낌이 이상하더라고요. 장사하느라 잠도 못 자고, 스트레스를 받고, 과음도 하면서 무리한 생활을 했는데 아마도 그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자신을 살려준 이민혁 교수(가운데)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라는 안명애(좌) 씨는 순천향대 서울병원 유방암센터장 이민혁 교수가 이끌고 있는 순유회(순천향대 서울병원 유방암 환우회)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caption]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 갈 때마다 왼쪽 유방에서 종양이 계속 발견됐다. 종양 덩어리를 긁어내는 맘모톰 시술을 받았다. 오른쪽과 달리 왼쪽은 재발에 재발을 거듭했다.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재발의 수렁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암에 좋다는 것을 찾아 나섰다. 등산에서 온열치료까지 암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다 찾아서 해보고 먹어보았다.

“그러다 알게 된 게 아사이베리에요. 지인이 아사이베리를 먹은 암 환자들이 많이 좋아졌다고 알려줘서 그때부터 아사이베리도 꼭꼭 챙겨 먹기 시작했어요.”

그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왼쪽가슴에 암세포가 발견된 지 2년 6개월째 되던 2011년 정기검진 때 안명애 씨는 암세포가 정상세포로 돌아갔다는 조직검사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드디어 재발의 늪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그리고 올해 3월 4일, 안명애 씨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아무 이상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암세포로 보이는 건 하나도 없다고 완치 판정을 받았어요.”

 

현재 안명애 씨는…

지금도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은 꼭 등산을 하고 아사이베리도 꾸준히 섭취하고 있다는 안명애 씨. 편식이 심했지만, 이제는 가리는 음식 없이 골고루 챙겨 먹는다. 정기검진도 꾸준히 받고 있으며, 순유회(순천향대 서울병원 유방암 환우회)에도 적극 참여하며 활동 중이다.

처녀 시절, 얼굴 전체에 여드름이 너무 많아서 늘 고민이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여드름 때문에 시집도 못 가겠다고 할 정도로 여드름이 심해서 모진 마음을 먹고 두 번이나 약을 먹었다는 안명애 씨다. 그런 그녀에게 여드름은 감히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암을 극복하게 된 비결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들이요. 아들 때문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들을 생각하면서 암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그런 아들은 지금 어엿한 대한민국 청년이 되어 대형 기획사에서 가수 데뷔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건강다이제스트  이기옥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연길시로간부국 업무과에는 로간부들의 지기이자 사랑스러운 “딸”로 불리우는 리휘영과장(54살)이 있다. 1998년에 리퇴직간부관리봉사사업에 종사한 이래 “책임”, “애심”, “진심”을 로간부사업의 척도로 삼고 로간부사업에 최선을 다해온 그는 로간부들의 수호천사로 되기...
  • 2013-07-11
  •     당겨라, 당겨라, 더 힘껏 당겨라   《우리 담임선생님은 활달하고 꼬치꼬치 따지지 않아요》, 《리기적이지 않고 먹을것이 있으면 똑같이 나눠줘요》, 《글도 신나게 가르치고 제문도 재미있게 해요》,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자습이 끝날 때까지 같이 있어줘요》, 《쌀밥과 마라탕(麻辣烫)작식법도...
  • 2013-07-10
  • 지난 몇년간 전세기 2000여회 취항, 베트남, 캄보쟈, 태국 등 나라의 항공사와 총대리계약을 체결, 중국려행업계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인물, 전세기를 띄워 하늘을 주름잡는 멋진 사나이 리화경씨를 만난것은 바로 청도-인천 제주항공취항 1돐 기념행사에서였다. 저가항공사로 알려진 제주항공을 몇차례 리용하면서 깊은...
  • 2013-07-10
  • “사회구역봉사중심 건강실(健康小屋)이 있은 뒤로는 집근처에서 바로 무료건강검진을 할수 있어 얼마나 편리한지 모르겠습니다.” “붐비는 병원에 갈 필요 없이 건강실에서 필요한 검사를 하고 의료자문도 할수 있어 무척 좋습니다.” 6월 27일 오전, 연길시 건공사회구역봉사중심 건강실에서 만난 ...
  • 2013-07-09
  • 로지에서 재배되는 블루베리는 꽃망울이 금방 떨어졌지만 시설재배로 블루베리열매판매까지 마친 정문충(59세)씨는 과학영농으로 수확의 단맛을 남먼저 맛보고있다. 일찍 1989년 이도백하림업국에서는 길림성농업과학원의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블루베리의 원산지인 미국으로부터 블루베리를 도입하여 지난 2011년까지 줄곧...
  • 2013-07-09
  • 역경을 헤치고 창업한 김수매의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문을 열면 보이는건 첩첩산이요, 들리는건 새소리뿐인 변경오지에서 태여나 모든 시련을 이겨내며 성공의 대문을 열어젖힌 한 여성기업가가 있다. 그가 바로 료녕성 영구시 개발구 연은복장회사의 상무부경리 김수매(44세)이다.   1988년에 흑룡강성 동녕현...
  • 2013-07-09
  • 7월 5일 오전, 무순시경제문화교류협회가 주최하고 무순시조선족로년협회와 리석채조선족촌민위원회가 주관한 《2013무순시조선족로년인게이트볼친선경기》가 무순시조선족기업가협회의 후원으로 무순시 심무신성 리석채조선족촌에서 펼쳐졌다. 이날 행사에는 무순시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상무부회장 추영화, 무순시조선...
  • 2013-07-08
  •  의덕과 의술로 유명했던 이성원의사   이정열사의 아들, 독립유공자 후손 연금 향수   가목사시 우수노동모범, 화천현 인대대표 역임 (흑룡강신문=서울) 나춘봉 기자= 흑룡강성 가목사지구에서 유명 소아과 의사로 명성을 떨쳤던 이성원 노인이 지난 6월 30일, 친지와 향우들 그리고 진료를 받았던 많은 사람들의 축복...
  • 2013-07-08
  • 백혈병에 걸렸으나 거액의 치료비로 눈물짓는 박명혁학생의 가족 고중입시준비를 하던 16살 소년이 난데없는 백혈병진단을 받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고있다. 바로 연길시제4중학교 9학년 2반 박명혁학생의 딱한 사연이다. 지난5월16일, 고중입시를 한달남짓 앞두고 입시준비에 여념이 없던 박명혁학생은 감기...
  • 2013-07-06
  • 20년 이상 독보조활동을 견지해온 10명 로인들을 특별표창하였다. 7월 1일, 목단강시조선족가두판사처에서는 《어미니 독보조》 설립 60주년을 경축하였다. 이날 모임에는 시민종국 김훈국부국장을 비롯한 시조선민족 예술관, 도서관, 은행, 병원, 주둔군 레이다부대, 형제단위 등 20여개 단위의 래빈대표들과 아름다운 조...
  • 2013-07-05
  • 30여년의 당령을 가진 연길시 북산가두 단진사회구역의 김순희(85살)로인이 재활용쓰레기를 회수하여 모은 돈으로 독보조로인들의 활동경비를 해결하여 주위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내고있다. 단진사회구역당총지부 조단서기의 말에 의하면 김순희로인은 당과 정부의 해당 정책을 료해하기 위해 신문학습에 각별한 중시를 돌...
  • 2013-07-04
  •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연길시 연남시장에는 이 가게 저 가게를 활보하며 다니는 한 녀자아이가 있다. 그가 바로 4급지체장애자 김금란(58살)씨가 어쩔수 없이 돌보게 된 5살짜리 녀자애 김지혜이다. “아이는 참 활발하고 령리해요. 하지만 호구도 올리지 못하고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란다는것이 너무나...
  • 2013-07-04
  • 흑룡강성 상지시에 살고있는 우리 집에는 금년에 45살인 불구자 아들이 있어요. 그는 원래 향정부에서 사업하였는데 1990년 12월에 남을 위해 의로운 일을 하다 차에 깔려 하지가 마비되는바람에 영원히 일어설수 없는 불구자로 되였어요. 그러다보니 늙은 우리 부부는 그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일체 뒤바라지를 해야 했...
  • 2013-07-04
  •   내가 70이 넘어서야 “은퇴”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가 직장에서 어떤 중요한 책임자로 활약하다 “은퇴”했을거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하지만 실은 그게 아니라 내가 수십년간 우리 가정의 리발사노릇을 하다가 이제야 “은퇴”하게 되였다는 얘기다. 50여년전, 결혼했을 당시 남편...
  • 2013-07-04
  • 저희는 서란시 영안촌 조양툰에 사는 로부부 문인성(78),주영숙(75)이라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둘다 어머니가 없이 할머니슬하에서 자랐습니다. 1960년도에 서로 만나 결혼하여 남의 뒤방살이를 하다가 겨우겨우 9평방의 조그만 집을 내집이라고 마련해 입쌀 2근과 수수쌀 3근으로 살림을 시작했지만 고생을 락으로 살아왔...
  • 2013-07-03
  • “저는 그저 평범한 담임교원일뿐입니다. 담임교원이라면 다들 그렇게 합니다.” 안도현조선족학교 림명자교원은 연신 이런 말을 곱씹으면서 취재가 부끄럽다고 했다. “가냘픈 몸매지만 학생에 대한 사랑만큼은 풍성하기 그지없습니다. 탄복된다니까요.” 학교 주영산교장의 말이다. 1986년 연변사범...
  • 2013-07-03
  • 1등상을 받은 소품《고와도 내 령감, 미워도 내 령감》. 《웃으며 삽시다》를 장춘조선족로인들의 활동주제로 한 장춘시조선족로인협회에서는 30일 장춘시조선족중학교에서 경연을 가져 로인들의 웃음보를 터뜨리게 했다. 장춘조선족로인협회 회원들이 자체로 창작공연하고 평심한 소품, 재담, 만담은 아름답고 행복하며 즐...
  • 2013-07-01
  • 려명촌 촌민위원회 사무청사 오랜만에 장춘을 떠나 고향으로 가는 나는 기쁨과 흥분으로 마음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 아릅답던 기억들이 점점 퇴색돼 가물가물하건만 변함없는것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나의 고향은 흑룡강성 라북현 동명향 려명촌이다. 현성과 8리 떨어져 있는지라 택시타고...
  • 2013-07-01
  • [타향이야기] 선이는 밀항선 밑창에서 피오줌을 누고 물벼락을 뒤집어 쓰면서 일주일이나 견뎠다. 밀항선에서 내려보니 관광지인 자그마한 섬 백령도였다. 인민페 6만원이나 주고 왔기에 급히 돈을 벌어야 했다. 처음으로 찾은 일이 모텔일이다. 백령도는 유동인구가 많아 모텔일이 더 쉽지 않았다. 한 일년가량 하루도 쉬...
  • 2013-06-29
  • 모아산삼림공원내에서 쓰레기를 줏고있는 로인뢰봉반 성원들. 당 창건 92돐을 맞으며 연길시 북산가 로인뢰봉반 13명 성원들은 26일, 모아산국가삼림공원에 가서 꿈나누기 이야기활동을 펼친후 《우리공원 우리 가꾸자!》며 공원내서 뢰봉따라배우기활동을 진행하였다. 로인들이 저마다 쓰레기줏기에 나섰지만 문명한 유람...
  • 2013-06-2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