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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아버지의 날에 부쳐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6월19일 09시38분    조회: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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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2)

◇최장춘(연길)

지난 1990년대 말 로인절에 아버님을 모시고 온 가족이 함께

4월 18일은 아버지 탄신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저 멀리 하늘나라에 계실 아버지, 어쩌면 그 날만은 꼭 하얀 옷차림에 하얀 수염발 날리며 쏟아지는 해살을 타고 내려오시여 문득 자식들 앞에 나타날 것만 같아 이 마음 경건해집니다.

한평생 자식들을 위해 험한 산 깊은 골도 서슴지 않던 억센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시던 날 그처럼 슬퍼하시며 땅이 꺼지게 내쉬던 한숨소리에 자식들도 가슴이 미여져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훤칠한 키에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졌고 가늘게 우뚝 선 코날이 아버지의 정직하면서도 성칼진 성품을 보여주어 웬간한 사람들이 곁에 다가서기를 주저하는 까다로운 분이시였습니다.

공적인 일이라면 몸을 아끼지 않고 선뜻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여서 토지개혁의 힘든 나날에 덕신향 안방촌에서 선참에 입당한 아버지는 가난에 찌든 집살림을 어머니한테 맡겨놓고 남들이 모두 하기 싫어하는 촌장의 직책을 도맡아 밤늦도록 촌민들을 위해 허위허위 뛰여다녔습니다. 가렬처절한 조선전쟁시기 아버지는 선뜻 탄원하여 전선에 달려나가 공을 세웠을뿐더러 훈장까지 떳떳이 달고 돌아오셨습니다.

조직의 덕분에 농촌에서 도시호구로 온 가족이 연길로 옮겨졌지만 가난의 어두운 그림자는 떠날 줄 모르고 아버지의 두 어깨를 무겁게 지지리 눌렀습니다. 고작 수십원 로임으로 우리 칠남매나 되는 방대한 식솔을 거느리면서 말 못할 고생은 얼마였는지 누구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언젠가 저녁밥을 먹다 말고 내가 불시에 아파서 배를 부둥켜안고 마구 뒹굴 때 아버지는 그처럼 날렵하게 나를 둘쳐업고 병원을 향해 뛰였습니다. 조금만 늦어도 큰일 날 번했다는 의사의 말에 아버지는 구토해 범벅이 된 나의 앞섶을 닦아주면서 안도의 숨을 후 내쉬더니 나의 머리를 오래도록 쓸어주었습니다.

“어머니 사랑은 내물이라면 아버지 사랑은 산이랍니다…” 묵묵하시다가 때론 허구픈 웃음을 지어 생활의 슬픈 구석을 채워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우렷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대식품시대 식량판매부 주임으로 사업하면서 아버지는 막둥이가 굶어서 너무 아쉽게 잃어버린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견뎌낼지언정 쌀 한근, 기름 한병 공짜로 집에 들고온 적이 없었습니다.

그 시절 로임조절은 몇년에 한번, 그것도 한 직장에 한두명씩만 명액을 정해놓아서 하늘의 별따기였는데 아버지는 젊은 종업원에게 자신의 차례를 양보해주었습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왜 남한테 양보하느냐며 어머니가 원망을 하자 아버지는 “어쩌겠수, 주임인 내가 양보해야잖겠수?”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의 불평불만은 묵묵부답으로 이어져 어머니는 한달 동안 아버지와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란 세월 어버지는 간부란 허울 좋은 모자를 쓰고 억울하게 전기불도 없는 농촌으로 쫓겨가는 기구한 운명을 면치 못했습니다. 농촌의 살림집은 고작 파리떼 윙윙거리는 우사간 옆방,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고혈압병으로 몸져눕자 우리 집안은 컴컴한 턴넬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듯한 막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허구한 세월 눈사태처럼 쏟아져내린 고달픈 생활의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살았던 힘의 원천은 아버지의 대바른 품성과 든든한 배짱이 아니였을가 생각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 아버지는 자식들 앞에서 늘 이렇게 당부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배움, 오로지 그 배움만이 가난의 멍에를 벗어던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여서 아버지의 뜻에 힘 입은 자식들은 억센 구지욕으로 여린 날개를 굳히기 시작했습니다. 하여 늦은 밤중에도 온 마을에서 유독 우리 집 창가에서만 깜빡이는 불빛과 더불어 책장 번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마저 너무 때이르게 접어야 했습니다. 셋째형의 청화대학 추천이 인위적인 훼방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형도 울고 어머니도 울고 온 가족은 초상 난 집처럼 울적해졌습니다. 평생 정의감 하나만 믿고 살아온 아버지는 망연자실한 채 애꿎은 담배만 풀썩풀썩 피웠습니다. 원한과 울분을 달랠 길 없어 자연 술을 찾게 되었고 변변한 안주도 없이 독한 소주를 반근 이상 마시고 보면 만취상태가 되였습니다. 그런 연고로 가끔 어머니와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자주 생겨 집안 분위기가 스산해졌습니다. 왜 어머니를 괴롭힐가,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가 불쌍해 온 집 식구들은 한때 아버지를 원망도 해보았습니다.

1970년대 후반 정책락착을 받아 연길로 돌아온 후 아버지는 식량부문에서 인차 리직하였댔습니다. 헌데 모종 원인으로 몇달째 로임이 체불되여 모든 종업원들이 생활난에 빠지게 되였습니다. 성급하고 완강한 성미를 지니신 아버지는 분김에 남들은 감히 엄두도 못내는 정부시장사무실로 곧장 찾아가 따졌습니다. “내가 전선에서 피흘리며 싸울 때 자네들은 근근히 유치원을 다녔겠지. 오늘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할말은 해야겠네…” 워낙 한어말솜씨 남다른데다 사리까지 분명한 터라 사흘 만에 로임체불문제가 원만한 해결을 보았습니다.

고진감래라고 할가 우리 집도 복과 인연이 있었나 봅니다. 기분전환이 많이 좋아질 무렵 뜻밖에 희소식을 접한 아버지의 얼굴에 드디여 환한 웃음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농촌에서 집체호생활하던 내가 대학입학 통지서를 받던 그 날이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끼고 또 아끼던 무휼금으로 상해표 시계를 사서 나의 손목에 척 걸어주며 그처럼 기뻐하셨습니다. 그 환한 웃음이 오늘도 저 하늘가에 기폭처럼 나붓겨 이 가슴 뭉클해짐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 어버지는 진정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았던 나날에 행복이 뭔지 모르신 대로 그냥 커가는 자식들의 앞날에만 혼신을 바쳐 축복을 빌어오신 소박하면서도 고결한 분이시였습니다. 언제 한번 푸짐한 선물 받아보신 적 없고 언제 한번 그럴듯한 료리집도 구경 못해보셨습니다. 요즘 로인들 외국 나들이 산천구경에 신나지만 유독 고생 많이 하신 아버지한테는 그런 행운이 없으셨습니다. 가끔 자식들 덕분에 호화승용차에 앉아 여생을 즐기는 로인들을 볼 때마다 달나라 어디서인가 꼭 다리쉼을 할 것만 같은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워 하늘중천 우러러 목놓아 불러볼 때도 있었습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이 못난 자식이 생전에 효도를 못해 땅에 엎드려 눈물로 빕니다.

세월이 갈수록 잊을 수 없는 아버지의 바르고 깨끗한 옛 모습이 이슬 맺힌 솔잎마냥 추억의 봉분을 파아랗게 단장합니다. 아버지 백년의 체취가 산기슭에 깊이 패워진 수레자국처럼 삶의 고개길에 아름다운 년륜으로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인생은 한이 있어도 인정은 한이 없습니다. 아버지,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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