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잊지 못할 그 시절 그 때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7월18일 08시42분    조회:121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응모작품 (26)

◇양상태(길림)

1967년에 찍은 결혼기념사진

결혼사진을 보니 신혼생활이 눈앞에 삼삼히 떠오른다.

1967년 가을걷이가 끝난 후 어느 날 나와 자형은 소개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우리 동네와 20여리 상거한 합달만 마을에 선보러 갔다. 처녀 집에 도착하자 처녀의 식구들과 한동네 사는 친척들이 총각 보러 모여왔다. 처녀는 모래부업을 한다고 강변에 모래 치러 가고 없었다.

동쪽방에 앉아서 기다리니 처녀가 왔다고 했다. 처녀는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느라 시간이 걸렸는지 좀 있다 처녀의 형님 되는 이가 시누이가 서쪽방에 있으니 대면하라고 했다.

나는 긴장하여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녀는 구들에 앉아있었는데 부끄러워선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옆으로 돌아앉았고 체구는 좀 작아보였으나 얼굴은 이뻐보였다. 나는 가슴이 설레였다.

내가 온 뜻을 말하자 처녀는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자기는 배운 것이 없다면서 앞으로 많이 방조해달라며 약혼에 동의한다고 했다. 나도 두말없이 동의한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첫눈에 서로 마음에 들어 혼사는 순풍에 돛을 단 듯 쉽게 정해졌다.

저녁에 처녀집에서 약혼턱을 냈는데 처녀네 식구에다 한동네에 사는 친척들, 이웃들이 왔다. 나는 큰손님이 되여 구들에 앉았다. 사람마다 경사스러운 일로 하여 웃음이 내밴 얼굴들이다. 온 집안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가득 차넘치였다.

정주에선 음식을 장만하느라 지지고 볶고 분망하였다. 이어 푸짐한 음식상이 들어왔다. 내가 소고기국 그릇을 비웠더니 처녀 고모가 국그릇을 들고 와서는 막무가내로 내 국사발에 부었다. 나는 남길 수도 없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처녀가 음식을 나르느라 방안으로 들락거리는데 내 눈길은 자꾸 그쪽으로 쏠리면서 저 처녀가 앞으로 내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긍지와 흐뭇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으며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전류처럼 온몸의 혈관에 흘러퍼졌다.

저녁식사 후 우리 일행은 집으로 돌아왔는데 자전거를 타고 캄캄한 그믐밤 울퉁불퉁 사나운 두메산골길을 어떻게 왔던지…

우리는 그 해 설을 앞두고 결혼식을 올렸다. 잔치날은 눈이 내리며 추운 날씨였다. 나는 대반과 함께 생산대의 마차를 타고 가 색시를 데려왔다. 저녁에는 동네 젊은이들과 아주머니들이 한구들 모여 오락으로 밤 가는 줄을 몰랐다.

결혼 후에 안해한테서 들은 얘긴데 그의 어머니는 화전에서 소차를 타고 이사 오다가 차에서 떨어져 한쪽다리를 영 쓰지 못하는 불구자로 된 데다가 후에 뇌혈전에까지 걸렸다. 안해는 가정이 곤난하여 소학교를 중퇴하고 어린 나이에 중풍에 걸린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간호했는데 시집오기 일년 전 어머니가 세상 뜰 때까지 줄곧 눈물겨운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는 한평생 일고생 마음고생으로 화가 나시면 밥상을 뒤집기가 일쑤였으며 분풀이를 애매한 자식들에게 했다. 집안에는 언제나 랭기가 싸늘했다. 어려서 제대로 된 부모사랑 한번 받아보지 못한 안해는 하루속히 시집 가서 신랑의 사랑이라도 받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시집 와서도 우리 집 역시 곤난하였다. 우로는 로부모가 계셨는데 어머니보다 16세 년상인 아버지는 년로하여 로동력을 상실했고 어머니는 두통병으로 반로동력 밖에 안되였다. 게다가 중학교를 다니는 두 동생 공부 뒤바라지를 해야 했다. 하다 보니 오막살이 집안엔 서발 막대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식구 많고 곤난한 집에 새 며느리를 맞게 된 량친 부모는 너무 기뻐서 동네사람들을 만나면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들은 잘살아보겠다고 생산대 로동에도 적극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농한기에 사원들이 쉬는 날이면 뒤산에 가서 풋나무를 해오는 등 쉬는 날이 없이 일했다.

그 해 가을, 나는 안해와 함게 장인 생신 차 처가집에 가게 되였다. 우리는 새옷으로 단장하고 자전거 앞 가름대에 안해를 앉히고 짐받이에다는 찰떡 한양재기를 싣고 처가집을 향해 씽씽 달렸다. 논밭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들이 부러운 눈길로 우리를 쳐다보며 “신랑 각시 놀러 가네!” 하며 고아대였다.

이튿날 생신연을 베풀었는데 친척들과 마을의 로인들이 왔다. 처남들은 모두 애주가였고 나도 그들 못지 않은 애주가였다. 우리들은 하루종일 곤죽이 되도록 마셨다.

밤에는 사촌처제가 추기는 바람에 나와 처제가 큰처남집 닭우리에 가서 제일 큰 장닭 한마리를 목을 비틀어 처남네 정주칸 바닥에 던져놓았다. 처남댁이 말은 못하고 아까와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 날 밤 나와 안해는 큰처남집에서 큰처남 내외, 둘째처남 내외, 셋째처남 내외, 사촌동서 내외, 사촌처제까지 한상에 오붓이 둘러앉아 밤 깊도록 술을 마시며 웃음꽃을 피웠다. 지금도 그때 일이 기억에 새롭다.

아들들의 효도관광으로 상해 황포강가에서 량주 함께

세월은 류수와도 같아 우리 량주는 이미 70고희에 들어섰다. 우리는 슬하에 아들 셋인데 모두 외지에서 잘 나가고 있다. 사람은 젊어서는 희망에 살고 늙으면 추억 속에 산다고 우리 늙은 량주는 지금 중학교를 다니는 공주 손녀를 돌보면서 종종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연변가정연구소에서는 7월 30일 문화봉사자팀 평생교육프로그램 회지 《한 알의 씨앗》 종합본 출간의식을 개최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자”는 신조의 새싹을 피웠다. 2008년 11월 첫 강좌를 시작으로 이듬해에 첫 창간호가 출간되기까지 팀원들은 열심히 필기도 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자신들의...
  • 2017-07-31
  • 위홍산: “긴급한 상황에서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홍수로 제방이 파손되여 마을이 큰 피해를 입게 되였을 때 과감히 자기의 농업용 뜨락또르 차바곤으로 제방을 보호한 촌민이 있다.   왕청현 천교령진 신화촌 촌민 위홍산(59세)은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21일, 백년일우의 홍수가 들이닥쳐 제방이...
  • 2017-07-28
  • 재칭다오 동문들이 하얼빈 조1중 교장단일행을 뜨겁게 맞이하고 있다.       (흑룡강신문=칭다오)박영만 기자=헤이룽장성조선족상회 산둥분회 임홍길 회장을 위수로 하는 하얼빈조선족제1중학교 졸업생들이 오는 9월 30일 70돐을 맞이하는 하얼빈 모교에 현금 5만 위...
  • 2017-07-28
  • 43만원어치의 물품 조달   우리 주에 큰 범위 폭우가 내린 후 주적십자회는 제일 시간에 긴급예비안을 가동, 상급 적십자회에 재해정황, 긴급전이인원수와 필요되는 구조물자를 신청했다.   20일, 주적십자회는 이불 1000채와 천막 10개를 안도, 돈화, 왕청 등 홍수피해가 엄중한 지역에 보내주고 도문, 룡정 등...
  • 2017-07-28
  • “폭우로 홍수 피해를 입은 리재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는가? 생활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연길시 북산가두 판사처 리금수부주임에게 기부금을 전해 주는 김봉숙(좌 1)   연길시 북산가두에서 살고 있는 맹인 김봉숙은 련며칠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자금...
  • 2017-07-27
  • 1987년 졸업을 앞두고 길림시 풍만수력발전소에서. 세상에 자기의 제자들을 사랑하지 않는 스승이 없고 또 자기의 스승을 존중하지 않는 제자도 없으리라. 교원생활 29년을 마치고 이미 10년전에 퇴직한 나에게 30년전의 제자 황해경이 전화를 걸어온 것은 3년전 가을의 어느날이였다. “선생님, 아무쪼록 로년에 신체...
  • 2017-07-26
  • 홍수는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만사가 해결된게 아니다. 집이 통채로 홍수에 떠밀려갔고 논밭이 물에 잠겨 살길이 막막하다. 홍수방지, 재해대처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구경 뭘 할수 있을가? 요즘 협회나 췬에서 자원봉사, 의연금 모금행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곳에 어려움이 있으면 모두가 일...
  • 2017-07-25
  • ‘아름다운 추억’ 응모작품 (28) ◇조동관(장춘) 로인회 활동에서 연설하고 있는 필자 1970년대 중엽의 어느 한 초여름의 청명한 날씨였다. 서란시를 끼고 있는 영안대대 순인소대에서는 모내기 고조에 진입했다. 하긴 하지까지 가지 않고 다문 2-3일이라도 앞당길 예산이다. 논판에 심어놓은 모들은 새파랗게 ...
  • 2017-07-25
  • 취재후기 | 연해지역 조선족 탐방 남경편(1) 남경에서 15년 나를 살게한 힘 가족   연해지역 조선족탐방 오늘 만난 첫 주인공은 23세에 남경생활을 시작한 최군(39세)씨다. 최군과의 인터뷰는 “혹시 도문의 오지공장을 아십니까?”라는 물음으로 시작되였다. 굴뚝, 김장독을 만드는 오지공장, 그곳이 대학...
  • 2017-07-25
  • 19일 저녁 7시부터 안도현의 대부분 향, 진에 큰비, 폭우가 내려 20일 오후 2시까지 안도현의 평균 강수량은 55.3밀리메터에 달했고 신합향, 석문진 등 5개 향진의 25개 마을이 정도부동하게 피해를 입었다. 특히 명월진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홍수로 도시 전체가 침수상태에 빠졌다.  수대의 차량이 홍수에 떠밀려갔고...
  • 2017-07-23
  • 보다 많은 시민들이 곤트란쉐리에 대한 리해를 돕기 위해 곤트란쉐리에서는 종종 체험활동을 진행한다. 특히 7,8월은 “방학체험월”로서 많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19일에도 한차례의 “친자활동(亲子活动)”을 진행, 후사모(후대사랑협회)와 함께 빵만들기 체험을 조직했다. 자상...
  • 2017-07-20
  •   (흑룡강신문=하얼빈)상지시에 거주하는 구대봉(65세)씨는 순박한 농민인데 그가 걸어온 길을 더듬어보면 실로 자랑차다.   구대봉씨는 이전에 연수현, 상지현 등지의 여러 시골마을들에서 농사를 지으며 선후로 생산대의 보관원사업을 6년간, 재량사업을 7년간, 소대와 대대의 로년협회 회장사업을 도합 7년간 했다....
  • 2017-07-20
  • 윤수범동지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본인과 그의 가족들도 알고 있은지 오래 되고 우리도 일찍 알고 있었으니 모두 사상준비는 되여 있었으나 정작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접하고보니 정말 애통하기 그지없었다. 장춘시조선족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부분적 회원들과 함께 있는 윤수범(앞줄 오른쪽 세번째) 윤수범은 나...
  • 2017-07-19
  • ‘아름다운 추억’ 응모작품 (26) ◇양상태(길림) 1967년에 찍은 결혼기념사진 결혼사진을 보니 신혼생활이 눈앞에 삼삼히 떠오른다. 1967년 가을걷이가 끝난 후 어느 날 나와 자형은 소개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우리 동네와 20여리 상거한 합달만 마을에 선보러 갔다. 처녀 집에 도착하자 처녀의 식구들과 한...
  • 2017-07-18
  • 누군가를 한두번 돕기는 쉬워도 달마다 찾아가 꾸준히 관심하고 걱정하고 도와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외롭게 자라는 아이들에게 든든한 바람막이가 ...
  • 2017-07-13
  • 나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아버지이다. 그런데 십여년전부터 숱한 자식들이 생겼다. 십여넌전에 나는 우연하게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 불우한 아이들이 많다는 걸 발견하고 사랑애심협회를 꾸렸다. 여기저기 뛰여다니면서 모금해서는 불우한 애들에게 학용품을 사주고 대학 가는 애들에게 학비도 마련해 주고 사람...
  • 2017-07-10
  • 화룡 문화가두 문흥사회구역 독거로인 위해 대리가정 결성   화룡시 문화가두 문흥사회구역에서는 대리자녀봉사팀을 뭇고 사회구역 간부들이 독거로인들과 대리가정을 결성하여 독거로인에게 따뜻한 보살핌을 전해주고 있다.   문흥사회구역에는 독거로인이 도합 114명 있는데 로인들은 슬하에 자녀가 없거나 자...
  • 2017-07-05
  • 연길시 대흥마을 김광철대장에 대한 촌민들의 찬사 집집이 된장 가공산업을 벌려 ‘장마을’로 알려지는 연길시 의란진 구룡촌 대흥마을, 장맛뿐이 아니라 화목하고 인정 많은 대흥은 또한 살맛 나는 마을이란다. 그래서인지 대흥에서는 도시로 이사나간 집이 극히 적고 서로 좋은 일에...
  • 2017-07-03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3) ◇신학봉(룡정) 1989년 겨울 가족이 함께 내 나이 금년에 80이라 지금으로부터 72년 전에 우리 집은 평안구 평안촌 3여(지금의 동성용진 평안촌 3툰)에서 살았다. 그때 나는 집에서 5리 떨어져 있는 평안소학교(동성소학교)에 다녔다. 하루는 동학들과 뛰놀다 다리를 상하...
  • 2017-06-27
  • “아마도 박선생이 지구촌의 ‘해당화대통령’으로 불릴 것 갔습니다. 지금부터 품위 있게 ‘대통령걸음’을 련습하세요… 허 허 허” 지난 5월 7일 아침 식사 때 조선족의 “리시진” (김수철. 93세, 연변농학원 교수, 식물박사)이  40년하제자(박영호, 54)에게 술을...
  • 2017-06-26
‹처음  이전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