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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에서 15년 나를 살게한 힘 가족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7월25일 08시55분    조회: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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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기 | 연해지역 조선족 탐방 남경편(1) 남경에서 15년 나를 살게한 힘 가족
 

연해지역 조선족탐방 오늘 만난 첫 주인공은 23세에 남경생활을 시작한 최군(39세)씨다. 최군과의 인터뷰는 “혹시 도문의 오지공장을 아십니까?”라는 물음으로 시작되였다. 굴뚝, 김장독을 만드는 오지공장, 그곳이 대학 졸업후 최군의 첫 일터였다. 첫 일터에서 고된 체력로동을 해야했던 30일간 최군은 도시진출의 결심을 굳혔다.

“친구 자녀들은 타지에서 잘 살고 있다는 말을 아버지가 자주 하셨습니다. 아들이 자신보다 잘 되길 바랐던 아버지는 제게 큰 도시로 한번 나가보라며 여러번 권유했었습니다. 당시 오지공장은 저에게 ‘도화선’으로 작용했습니다. 공장의 막로동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죠.”

그렇게 북경, 상해를 거쳐 남경으로 오게 되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최군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계획도 없었다. 주위의 도움은 더더욱 없었다. 상해에서 아르바이트로 모은 일당 몇백원을 주머니에 접어넣고 2002년 9월 최군은 남경행 렬차에 올랐다.

대도시답게 당시 남경에도 조선족에게 주어진 기회가 많았다. 판다회사 직원, 려행사 가이드 등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다 알음알음으로 찾아간 한국 코오롱회사에서 최군은 발길을 멈추었다. 인간적이고 가족같은 분위기, 직원들의 단점 대신 우점을 부각시키는 코오롱사의 직원관리법이 최군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주말없이 일했습니다. 얼굴 찌푸리면서도 나가야했지요. 어차피 나갈거면 즐겁게 하자, 저부터 생각을 바꿨습니다. 저의 표정을 읽었는지 상사의 태도도 달라지더라고요. 직원의 일방적인 희생 대신 서로에게 적응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대하고 행동하는 상사에게서 자본경영에 없어서는 안 될 직원경영이라는 걸 처음 터득했습니다.”

코오롱사에서 쌓은 실력과 인맥으로 2005년 최군씨는 남경내 한국인을 대상한 “코리아부동산”을 시작했다. 부동산에 앞서 2003년에는 료식업에도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다. 낮에는 코오롱사 총무로, 코리아부동산 책임자로 일하다가 퇴근후에는 한식집 사장으로 변신했다. 그렇게 남경에 발붙인 10년사이 최군은 “열심히”라는 단어마저도 무색할만큼 열정넘치는 도시진출 청년의 삶을 살았다.

가족사진

아들 최지훈 딸 최지이

결혼은 생각조차 하지않았다. 그런 최군씨가 소개로 만난 지금의 안해와 6개월만에 가정을 이루게 된 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고향을 떠나온 16년 세월에서 예고없이 덮친 가장 큰 고통이자 가파른 고비였다.

“아버지가 하늘에서 걱정하실가봐서요, 얼른 결혼해서 시름을 덜어드리고 싶었습니다...”

16세에 어머니를 여읜 최군씨는 남경 생활이 제자리를 잡아갈 때 쯤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모셔와 남경에서 함께 지냈다. 2006년은 최군에게도 아버지에게도 가장 뿌듯한 한 해로 기억된다. 28세에 내집 장만에 성공한 아들이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던지 엄격한 교육에 비해 아들 자랑에는 린색하던 아버지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모습을 그때 최군은 처음 보았다. “남보다 열심히 살아야 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대한 아들의 첫 보상이였다. 그렇게 아버지와 함께여서 타향살이에 안착할 수 있었던 최군이였다. 그런 최군에게 고향에 갔던 아버지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이란 얼만큼한 충격이였을가.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습니다”라는 최군의 한마디가 그 무게와 크기와 깊이를 가늠케했다.

“ ‘당산대지진’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을 때였습니다. 돈이 많이 든다고 싫다는 아버지를 모시고 영화관에 갔었습니다. 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였죠. 남경에서 같이 다녔던 곳이 많은데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아버지께는 항상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지만 혼자 힘으로 삼키고 이겨내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아들 지훈이는 힘들어하는 아들을 위해 하늘에서 아버지가 내려준 선물이였습니다. 저에게 가족을 이뤄주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주었고 이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을 주었습니다.”

아들 최지훈 딸 최지이

일벌레 총각에서 한 녀자의 남편으로, 아들 지훈이와 딸 지이의 아빠가 되기까지, 더듬더듬 통역을 시작하던 새내기 사회인에서 부동산업, 료식업에 과감히 도전하며 지금의 생활을 일궈온 최군씨, 23세의 멋모르는 청년에서 불혹의 나이를 맞이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마디마디마다 최군씨를 성장시킨 리치가 있었고 이제는 아빠로서 아들 지훈이게게 꼭 해주고픈 당부도 생겼다.

“예전엔 바르게 열심히만 살면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열심히만 살아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부쩍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열심히만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안타깝게 보일 정도로... 열심히만 살면 딱 그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근면함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지혜가 따라줘야 한다는 것을 작은 아이템을 브랜드화하는 요즘 20대들을 보면서 절실히 느꼈습니다.”

“남보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늘 이르시던 생전 아버지의 당부에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가. 최군씨는 오늘도 자랑스런 아들, 부끄럼없는 가장이 되기 위해 힘을 낸다.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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