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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에 깃든 추억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8월7일 14시35분    조회: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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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9)

◇김춘식(한국)

조카딸의 말에 의하면 요즘 자기네 직장에서는 다들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혼자 싸던 도시락이 한명 한명 늘어나더니 이제는 회사 도처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바람이 불고 있단다. 회사에서 주는 식비 4000원(한화)을 아끼려고 녀직원 몇으로부터 시작한 도시락 싸기에 이젠 남직원들도 동참하였고 회사는 이에 대비해 전기밥솥도 사다 놓고 후라이판이랑 채소 볶음판도 사다 주고 전자레인지도 비치해주었단다. 남직원들이 도시락을 싸는 것은 단순히 식비를 절약하기 위해서보다는 녀직원들이랑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각자가 싸온 갖가지 반찬을 나누어먹는 재미가 너무나 좋기 때문이란다.

어디 조카딸네 직장 뿐이랴. 내가 있는 회사의 주위 직장들에서도 도시락 싸기가 류행이 되고 있다. 해볕 좋은 날은 점심시간이 되면 그들은 아예 도시락을 들고 가까운 공원을 찾아 공원벤치에 앉아 동료들과 싸온 도시락을 나눠먹고 다 먹은 후엔 공원 산책로를 거닐면서 간단한 운동도 한다. 한편 아이들 데리고 산책 나온 가족에서부터 점심시간에 짬을 내여 운동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련인들 그리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아이들 등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그 속에서 여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덕분에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날려버릴 수 있고 일하면서도 힘이 팍팍 난다고 한다. 그들은 도시락이 가져다준 이 휴식시간을 무척 소중히 여긴다. 내가 잘 아는 한 젊은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함께 도시락을 나누어먹으니 학생시절로 돌아간 기분도 들곤 합니다. 그 땐 하루 중에 가장 즐거운 때가 엄마가 싸준 점심도시락을 먹는 것이였어요. 엄마가 싸준 도시락은 암만 먹어도 질리지 않았지요.”

참으로 그렇다. 요즘 같이 식당에서 먹는 음식은 먹다 보면 너무 지겨울 때가 있다. 그런데 학창시절 어머니가 싸주던 도시락은 그토록 오래 먹었어도 맛이 전혀 질리지가 않았다는 것은 왜서일가? 바로 도시락에는 엄마의 정성이라는 양념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정성이 담긴 어머니의 도시락은 무엇보다 맛과 사랑이 느껴졌다.

나에게도 도시락은 정말 달콤한 꿀과도 같다. 우리는 그 때 도시락 하나에도 행복을 느꼈다. 학창시절 가난해서 도시락을 매일 싸가지는 못했지만 가끔 가다 한번씩 엄마가 따뜻한 반찬과 밥을 담아서 넣어주시면 그 온기로 학교까지 즐겁게 다녔던 기억이 난다. 왠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고 항상 먹는 잡곡밥에 김치 반찬이나 무우말랭이였지만 얼마나 맛있고 하루가 즐거웠는지 모른다. 도시락은 먹는 재미부터 다르다. 도시락을 중앙에 두고 오순도순 둘러앉아 즐겁게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의 반찬을 나눠먹는 게 재미 있다.

그중에도 겨울철 도시락 추억이 가장 아름답다. 겨울철엔 난로 우에다 도시락을 얹어놓고 데워서 먹었는데 오전 2교시가 끝나면 가지고 간 도시락을 난로 우에 올려놓으면 거기에 신경이 씌여 공부가 잘 안되였다. 맨 아래 깔린 친구의 도시락은 누룽지가 생겼고 김치를 담은 도시락들에서는 김치찌개 냄새가 난다. 이 김치반찬 도시락이 한두개만 난로 우에 올라있어도 온 교실에 고소한 냄새가 퍼져서 배속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나고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가 않았다

도시락을 열 때면 반찬에 대한 기대를 한껏 할 때가 있다. 나에게도 닭알후라이 하나가 밥 우에 얹혀있으면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모른다. 어린 시절, 모두가 가난하게 살던 그 시절, 친구가 밥 우에 얹어오던 계란 후라이가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밥 먹을 때 서로 무슨 반찬을 싸왔는지 호기심과 기대에 찬 눈들이 도시락 반찬 뚜껑을 열 때마다 한곳으로 모이고 맛있는 반찬에 손가락을 저가락 대신 사용하여 서로 빼앗아먹으려고 란리였다. 손가락에 묻은 반찬국물을 쪽쪽 맛나게도 빨아먹을 때는 똑 마치 배속에 거지님이 들어앉아있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어쩌다 맛있는 반찬을 싸갈 때면 다른 친구들에게 반찬을 뺏기기 싫어서 밥 밑에 반찬을 넣어서 도시락을 싸던 기억이 떠오른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선생님 몰래 수업시간에 도시락을 까먹었던 생각도 난다. 그 땐 그 맛이 왜 그리 꿀맛이였고 먹어도 먹어도 계속 배가 고팠는지 모르겠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칠판에다 글 쓰실 때 살짝살짝 먹던 그 한숟가락의 도시락. 아, 그 맛 진짜 일품이였다.

3교시만 끝나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열나게 도시락을 까먹던 기억도 난다. 그러다 선생님한테 들켜서 반찬냄새가 난다고 많이 혼났다. 그 뿐인가? 4교시 수업시간은 어떨가?나른함에 도시락도 먹었겠다. 밀려오는 식곤증에 여기저기서 책상에 이마를 찧고 선생님은 손에 들려있던 분필을 던지셨고. 그도 아닐 때면 “밖에들 나가 서있어, 좀 정신이 나게.” 하고 웃으며 문밖으로 내몰기도 하신다.

학창시절 도시락은 적절한 영양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먹는다는 의미에서 정말 파티였다. 그 때는 지금처럼 영양이 높은 반찬이 많지 않았지만 점심시간 쯤은 우리들의 천국이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도시락 한개가 그냥 식사가 아니라 친구와의 교제도구이자 어머니의 보람이고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추억이다. 맛있는 음식에는 나누어먹는 즐거움의 활기, 몇년이고 언제나 함께 공부하는 학우,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들이 맛의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 무엇보다 음식은 사람 끼리의 관계이며 시간에 얹힌 기억들의 촉매이기 때문이다.

도시락은 추억과 사랑을 가득 담을 수 있는 무한의 가슴이다. 그땐 왜 그리 도시락이 맛있었을가? 그 속엔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해서 더 맛있었나 보다. 김이 솟구쳐오르는 밥솥에서 식구들의 눈을 피해 이밥이 섞인 도시락을 싸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도시락을 먹기 위해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서둘러 학교로 향하던 시절이다.

세상이 너무 좋아져서 풍부한 영양이 담긴 도시락이 많다지만 그래도 어머니 도시락과는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 경제가 어렵더라도 어머니 사랑 만큼은 늘 한결같을 거라 믿는다.이렇게 우리들은 부모의 자식으로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자랐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에피소드들이다. 가슴을 아련하게 하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행복은 어떤 쾌락이 아닌 마음의 평화로움, 바로 그것이다. 그 행복은 아주 작은 곳, 거기서 생겨났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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