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성공시대 청춘들,적성 맞는 일터서 '신바람'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9월27일 09시58분    조회:195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무모해도 괜찮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최다현(녀 29세): ‘가슴 뛰는 일’을 하겠다며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한 이가 있다.

북경 모 대학에서 미디어학과를 전공한 최다현은 졸업 후 부모님의 ‘의중’ 대로 고향인 연길로 돌아왔다. 부모님의 도움으로 모 기업에 출근하게 되였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마음 한켠이 허전했다고 한다.
 

“사무직이다보니 매일 컴퓨터에 마주앉아 자료정리에만 매달렸다. 비록 안정적인 직장에서 연길에 있는 다른 사회초년생들에 비해 월급도 많이 받는편이였지만 하루하루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답답함을 느꼈다.”

오랜 고민 끝에 마음을 굳히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고 말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제각각이였다. “그 편한 직장을 왜 나와. 너 그만둘거면 내가 대신 다니면 안되나?”라는 친구들의 우스개소리와 “어디 더 좋은 일자리를 찾은거야?”라는 주위 사람들의 의문 등. 퇴사 그 다음에는 딱히 결정된 건 없었다.
 

새로운 진로를 탐색하던중 대학교 선배로부터 상해의 한 예능프로그램에 중한통역이 급히 필요하다며 련락이 왔다. 원래 계획에 대한 모범 답변을 갖고 있지 않았던 그녀는 “해볼게요”라는 말과 함께 무작정 상해로 향했다. “참 무모한 도전이였던 것 같아요.” 최다현은 그때를 회상하며 더 큰 세상에서 열정적으로 살고 싶었고 최선을 다해 인생을 즐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루종일 촬영현장에서 급하게 뛰여다니고 대본번역에 밤을 새우느라 힘든 나날이였음에도 오롯이 자신의 노력으로 번역한 대본을 보며 성취감을 느꼈다. 프로그램의 흐름에 점차 익숙해져갈 때 즈음 예능프로듀서라는 직업에 눈길이 갔다. 메인피디가 짧은 예고편을 편집해보라며 첫 편집을 시켰을 때 걱정 반 셀레임 반이였다. “프로듀서로 일한 지 3년째이다. 처음 편집본을 선보일 때 굉장히 떨렸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촬영차 중국 각지와 세계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또한 실로 가슴 설레는 일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더 큰 무대에서 반짝이는 꿈을 이루고 싶어요.

 

 

 

리선영(녀, 26세): 령롱하고 반짝이는 쥬얼리, 많은 녀성들의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다.
 

“어렸을 때부터 반짝이는 걸 좋아했다. 대학교 전공을 선택할 때도 내 꿈과 가까워질 수 있는 북경을 선택하게 되였다.”

북경의 중국지질대학 재료과학및공정 학과를 졸업한 후에도 리선영은 더 큰 무대에서 꿈을 키워보려 북경에 남아 보석 관련 업계에 종사하게 되였다. FGA(영국보석감정사)자격증을 취득하고 중국보석협회에 출근하는 그녀는 “수천종의 광물중 아름다움과 희소성, 견고성을 지닌 보석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얼마나 희소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보석감정사, 다소 생소하지만 값진 보석의 존재를 알리는 만큼 보고만 있어도 황홀해지고 가슴이 설렌다.”며 직업에 대한 애착이 가득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홀로 북경에서 생활한 지도 6년이 되여간다는 리선영은 힘들고 지칠 때 정신적으로 크나큰 힘이 되여주는 부모님 덕분에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리선영은 자체 브랜드 제작을 목표로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창업준비에 돌입했다. 요새는 작업으로 하루를 빼곡빼곡 채운다는 그녀. 그녀는 악세사리 설계와 제작은 국내 공장과 합작해서 준비하면서 사소한 부분, 세부사항 등 직접 참여하고 신경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아 힘들지만 앞으로 좋은 경험과 밑거름으로 될 생각을 하니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고향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아주 신성하고 뿌듯하며 영광스러운 일이다.
 

김성휘(남 25세): 올해 ‘천인계획’인재모집프로젝트 일원으로 많은 청춘들이 선망하는 대도시의 생활을 접고 연변에 돌아온 청춘도 있다.
 

2011년, 전 주 6등이라는 성적으로 북경대학 국제정치학과에 붙은 김성휘. 2015년, 졸업 후 고향 연변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의문 가득한 반응이였다.

“사람들은 화려한 대도시에 대한 환상이 가득하다. 애초에 북경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있던 나도 역시 그런 마음가짐이였다.”

북경에 대한 인상은 실로 큰 충격이였다. 북경은 수도 일선도시로서 극히 높은 교육수준과 풍부한 교육자원을 갖고 있다. 4년 동안 최선을 다해 다른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꿈, 리념에 더 한층 가까워지는 단계였다. 하지만 숨막히는 경쟁환경과 지나치게 높은 문턱, 이리저리 치이는 생활은 결코 원하는 삶이 아니였다고 한다.
 

22일, 김성휘는 “부모님은 기관사업일군으로서 20여년 동안 자신들의 일터에서 진지함과 부지런함으로 묵묵히 일해왔다. 고향과 일터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한 부모님을 보고 자란 영향이 아마도 나의 귀향취직에 큰 역할을 한 것 같다.”며 “고향의 급속한 발전은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결심을 확고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출근한 지 1년 미만인 직장 새내기이지만 선생님들과 선배, 동료들 덕분에 힘이 난다는 김성휘는 “연변에 돌아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천인계획’정책의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겸손한 자세로 부지런히 배워 아름다운 연변을 건설하는 사업에서 청춘의 력량을 기여할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귀농, 고향 촌민들과 함께 치부의 길을 걷고 싶어요
 

현희남(남 32세): 도시에서 년간 수십만원의 리윤을 내는 회사를 경영하며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받던 현희남은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24일, 룡정시 개산툰진 선구촌에서 현희남을 만났을 때 그는 한창 촌민들과 함께 콩수확기로 가을걷이를 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나 고향에 대한 정이 깊다. 마을 젊은이들이 외국이나 큰 도시로 돈 벌러 나갔지만 나는 귀향창업을 선택해 촌민들과 함께 치부의 길을 걷고 싶다.” 현희남씨는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고중을 졸업하고 19살에 일찍 대련, 청도, 상해 등 큰 도시에서 기술을 배우고 관리와 경영에 눈을 뜨게 된 현희남은 2008년에는 연길에서 무역회사를 세우고 연길지역의 수도물 2차 가압설비 총대리를 맡아 년간 수십만원에 달하는 수익을 보게 되였다. 좀 더 본격적으로 달릴 태세를 갖춰야 마땅할 시기였지만 고향과 부모에 대한 애정은 늘 마음 한켠을 허전하게 했다.
 

그러다 2014년, 국가의 ‘귀향창업’ 우대정책에 반해버린 그는 잘나가던 회사를 접고 단연 고향인 선구촌으로 돌아왔다.

현희남은 그동안 모은 창업자금과 정책성 대출을 통해 마을의 67헥타르의 토지를 양도받아 농기계를 사들이고 규모화, 기계화, 전문화의 재배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농촌에서의 창업은 도시에서의 창업 만큼 순조롭지 않았다. 농사일을 하기에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없었다. 첫해에는 옥수수 생산량이 대폭 감소했다.
 

“얼마 안 지나면 그만두고 다시 도시로 돌아갈거라고 하는 주위 사람들의 의심 가득한 눈길이 나에게 책임감, 의지력을 갖고 더욱 열심히 할 원동력으로 되였다.”
 

그는 마을 어르신과 기술일군에게서 옥수수 종자선택, 재배기술, 병충해 방지 등 전문지식을 차근차근 배우고 책과 인터넷을 통해 과학적인 농사방법을 찾아보며 경험교훈을 섭취하여 점차 농사일을 익혔다.
 

2015년, 토지류전을 통해 농장규모를 215헥타르로 확대하고 전문농장을 세운 그는 50여호의 빈곤촌민들을 전문농장에 가입시키고 수입효과를 함께 나누어 촌민들의 인정을 받았다. 몇년간의 노력으로 그의 농장은 점차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서면서 마을 촌민들에 대한 견인 역할도 톡톡히 해나가고 있다.
 

2016년 4월, 촌지도부 기바꿈선거에서는 높은 득표수로 선구촌촌민위원회 주임으로 당선되였다.

“촌민들의 믿음과 기대가 나의 귀향창업에 큰힘이 되여주었다. 젊은이다운 포부로 대담히 실천하면서 촌민들과 함께 치부의 길을 걸어가고 싶다.”
 

글·사진 김설 기자/연변일보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연변가정연구소에서는 7월 30일 문화봉사자팀 평생교육프로그램 회지 《한 알의 씨앗》 종합본 출간의식을 개최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자”는 신조의 새싹을 피웠다. 2008년 11월 첫 강좌를 시작으로 이듬해에 첫 창간호가 출간되기까지 팀원들은 열심히 필기도 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자신들의...
  • 2017-07-31
  • 위홍산: “긴급한 상황에서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홍수로 제방이 파손되여 마을이 큰 피해를 입게 되였을 때 과감히 자기의 농업용 뜨락또르 차바곤으로 제방을 보호한 촌민이 있다.   왕청현 천교령진 신화촌 촌민 위홍산(59세)은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21일, 백년일우의 홍수가 들이닥쳐 제방이...
  • 2017-07-28
  • 재칭다오 동문들이 하얼빈 조1중 교장단일행을 뜨겁게 맞이하고 있다.       (흑룡강신문=칭다오)박영만 기자=헤이룽장성조선족상회 산둥분회 임홍길 회장을 위수로 하는 하얼빈조선족제1중학교 졸업생들이 오는 9월 30일 70돐을 맞이하는 하얼빈 모교에 현금 5만 위...
  • 2017-07-28
  • 43만원어치의 물품 조달   우리 주에 큰 범위 폭우가 내린 후 주적십자회는 제일 시간에 긴급예비안을 가동, 상급 적십자회에 재해정황, 긴급전이인원수와 필요되는 구조물자를 신청했다.   20일, 주적십자회는 이불 1000채와 천막 10개를 안도, 돈화, 왕청 등 홍수피해가 엄중한 지역에 보내주고 도문, 룡정 등...
  • 2017-07-28
  • “폭우로 홍수 피해를 입은 리재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는가? 생활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연길시 북산가두 판사처 리금수부주임에게 기부금을 전해 주는 김봉숙(좌 1)   연길시 북산가두에서 살고 있는 맹인 김봉숙은 련며칠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자금...
  • 2017-07-27
  • 1987년 졸업을 앞두고 길림시 풍만수력발전소에서. 세상에 자기의 제자들을 사랑하지 않는 스승이 없고 또 자기의 스승을 존중하지 않는 제자도 없으리라. 교원생활 29년을 마치고 이미 10년전에 퇴직한 나에게 30년전의 제자 황해경이 전화를 걸어온 것은 3년전 가을의 어느날이였다. “선생님, 아무쪼록 로년에 신체...
  • 2017-07-26
  • 홍수는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만사가 해결된게 아니다. 집이 통채로 홍수에 떠밀려갔고 논밭이 물에 잠겨 살길이 막막하다. 홍수방지, 재해대처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구경 뭘 할수 있을가? 요즘 협회나 췬에서 자원봉사, 의연금 모금행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곳에 어려움이 있으면 모두가 일...
  • 2017-07-25
  • ‘아름다운 추억’ 응모작품 (28) ◇조동관(장춘) 로인회 활동에서 연설하고 있는 필자 1970년대 중엽의 어느 한 초여름의 청명한 날씨였다. 서란시를 끼고 있는 영안대대 순인소대에서는 모내기 고조에 진입했다. 하긴 하지까지 가지 않고 다문 2-3일이라도 앞당길 예산이다. 논판에 심어놓은 모들은 새파랗게 ...
  • 2017-07-25
  • 취재후기 | 연해지역 조선족 탐방 남경편(1) 남경에서 15년 나를 살게한 힘 가족   연해지역 조선족탐방 오늘 만난 첫 주인공은 23세에 남경생활을 시작한 최군(39세)씨다. 최군과의 인터뷰는 “혹시 도문의 오지공장을 아십니까?”라는 물음으로 시작되였다. 굴뚝, 김장독을 만드는 오지공장, 그곳이 대학...
  • 2017-07-25
  • 19일 저녁 7시부터 안도현의 대부분 향, 진에 큰비, 폭우가 내려 20일 오후 2시까지 안도현의 평균 강수량은 55.3밀리메터에 달했고 신합향, 석문진 등 5개 향진의 25개 마을이 정도부동하게 피해를 입었다. 특히 명월진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홍수로 도시 전체가 침수상태에 빠졌다.  수대의 차량이 홍수에 떠밀려갔고...
  • 2017-07-23
  • 보다 많은 시민들이 곤트란쉐리에 대한 리해를 돕기 위해 곤트란쉐리에서는 종종 체험활동을 진행한다. 특히 7,8월은 “방학체험월”로서 많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19일에도 한차례의 “친자활동(亲子活动)”을 진행, 후사모(후대사랑협회)와 함께 빵만들기 체험을 조직했다. 자상...
  • 2017-07-20
  •   (흑룡강신문=하얼빈)상지시에 거주하는 구대봉(65세)씨는 순박한 농민인데 그가 걸어온 길을 더듬어보면 실로 자랑차다.   구대봉씨는 이전에 연수현, 상지현 등지의 여러 시골마을들에서 농사를 지으며 선후로 생산대의 보관원사업을 6년간, 재량사업을 7년간, 소대와 대대의 로년협회 회장사업을 도합 7년간 했다....
  • 2017-07-20
  • 윤수범동지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본인과 그의 가족들도 알고 있은지 오래 되고 우리도 일찍 알고 있었으니 모두 사상준비는 되여 있었으나 정작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접하고보니 정말 애통하기 그지없었다. 장춘시조선족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부분적 회원들과 함께 있는 윤수범(앞줄 오른쪽 세번째) 윤수범은 나...
  • 2017-07-19
  • ‘아름다운 추억’ 응모작품 (26) ◇양상태(길림) 1967년에 찍은 결혼기념사진 결혼사진을 보니 신혼생활이 눈앞에 삼삼히 떠오른다. 1967년 가을걷이가 끝난 후 어느 날 나와 자형은 소개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우리 동네와 20여리 상거한 합달만 마을에 선보러 갔다. 처녀 집에 도착하자 처녀의 식구들과 한...
  • 2017-07-18
  • 누군가를 한두번 돕기는 쉬워도 달마다 찾아가 꾸준히 관심하고 걱정하고 도와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외롭게 자라는 아이들에게 든든한 바람막이가 ...
  • 2017-07-13
  • 나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아버지이다. 그런데 십여년전부터 숱한 자식들이 생겼다. 십여넌전에 나는 우연하게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 불우한 아이들이 많다는 걸 발견하고 사랑애심협회를 꾸렸다. 여기저기 뛰여다니면서 모금해서는 불우한 애들에게 학용품을 사주고 대학 가는 애들에게 학비도 마련해 주고 사람...
  • 2017-07-10
  • 화룡 문화가두 문흥사회구역 독거로인 위해 대리가정 결성   화룡시 문화가두 문흥사회구역에서는 대리자녀봉사팀을 뭇고 사회구역 간부들이 독거로인들과 대리가정을 결성하여 독거로인에게 따뜻한 보살핌을 전해주고 있다.   문흥사회구역에는 독거로인이 도합 114명 있는데 로인들은 슬하에 자녀가 없거나 자...
  • 2017-07-05
  • 연길시 대흥마을 김광철대장에 대한 촌민들의 찬사 집집이 된장 가공산업을 벌려 ‘장마을’로 알려지는 연길시 의란진 구룡촌 대흥마을, 장맛뿐이 아니라 화목하고 인정 많은 대흥은 또한 살맛 나는 마을이란다. 그래서인지 대흥에서는 도시로 이사나간 집이 극히 적고 서로 좋은 일에...
  • 2017-07-03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3) ◇신학봉(룡정) 1989년 겨울 가족이 함께 내 나이 금년에 80이라 지금으로부터 72년 전에 우리 집은 평안구 평안촌 3여(지금의 동성용진 평안촌 3툰)에서 살았다. 그때 나는 집에서 5리 떨어져 있는 평안소학교(동성소학교)에 다녔다. 하루는 동학들과 뛰놀다 다리를 상하...
  • 2017-06-27
  • “아마도 박선생이 지구촌의 ‘해당화대통령’으로 불릴 것 갔습니다. 지금부터 품위 있게 ‘대통령걸음’을 련습하세요… 허 허 허” 지난 5월 7일 아침 식사 때 조선족의 “리시진” (김수철. 93세, 연변농학원 교수, 식물박사)이  40년하제자(박영호, 54)에게 술을...
  • 2017-06-26
‹처음  이전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