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홍매특파원의 일본 인상기(1)
1996년 1월, 남편의 류학길을 동반하여 네살 난 아들애를 데리고 일본에 가게 되였다.
북경 경유로 나리타(成田)공항에 도착한 첫 인상은 조용하고 정갈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너무 더웠던 인상이 잊혀지지 않는다.
1월이면 고향에서는 엄동설한이다. 그 해 겨울에는 가죽외투가 류행이여서 자그마한 체구인 나도 비싸게 주고 산 검은색 가죽외투를 걸쳤다. 그 때에는 당연했던 100% 털실내의(일본에 간다고 친구가 새로 한뜸한뜸 손으로 뜬)를 아래우로 입고 있었다. 에어컨이라고 들어도 보지 못했던 촌뜨기가 온몸에 땀을 흘리며 공항수속을 밟았다. 심지어 아들애는 온몸이 흠뻑 젖은 채 하품만 하고 있었다.
거의 한시간 반 동안 걸린 입국수속을 겨우 마치고 23키로짜리 큰 짐 두개를 밀차에 끌고 세관을 거치게 되였다. 세관인원이 뭐라고 길게 말했다. 자칭 일본어에 자신있다고 했던 나였지만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얼마나 빨리 말하는지… 그리고 너무 소리가 낮아서 전혀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소통이 곤난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림 한장을 갖고 왔다. 각종 동물의 사진에 빨간 영어문자 NO가 적혀있었다. 그제야 소지품에 대한 조사인 줄 알고 도리머리를 흔들며 없다고 전했다. 그랬더니 가방을 열어보겠다는 손시늉을 했다. 그러라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우르르 세관인들이 몰려오고 사무실로 안내를 받았다. 가방 안에서 아들애의 사슴뿔 놀이감이 나왔다. 지인이 어느 록장에 참관 갔다가 아들애한테 선물로 사온 순수 놀이감이였는데 실제로 분간이 안될 정도였고 <鹿>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몰수해야 한다고 했다. 아들애는 울음을 터쳤고 나는 또 사정이야기를 할 수 있는 언어능력이 모자랐다.
잠시 생각을 굴린 나는 외마디로 웨쳤다. “紙と鉛筆!”(종이와 연필!) 일본땅을 밟고 처음으로 번진 일본어였다. 이어 “外に子供のお父さんがいます”(밖에 애 아빠가 있어요)라고 적었다. 그제야 세관 관원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밖으로 나가서 남편을 데려오라 했다. 함께 마중나온 일본인 햐사타케(久武)씨도 들어왔다.
사정이야기를 햐사타케씨가 세관 인원들에게 설명했다. 근데 그것이 놀이감이라는 걸 증명할 때까지 잠시 몰수해야 된다는 그들의 리유였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정해진 규정사항이 있었고 그것을 집행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우는 아들애를 달래면서 나는 그만 포기해야 되지 않을가 단념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궁리하던 햐사타케씨가 그들에게 몰수하는 리유를 설명하라고 들이댔다. 워싱턴조약에 적혀있는 동물에 관한 규정을 설명하기에 여념이 없는 관원들, 햐사타케씨는 그 조약을 직접 보겠다고 했다. 두터운 책이 나왔다. 구구히 설명하는 그에게 <鹿>자를 찾아내라고 했다. 왜서인지 <鹿>자가 없었다 한다.
결과 두시간 반 싱갱이질한 끝에 앞으로 서로 조심하자는 협의하에 무사히 나왔다.공항을 나서면서 햐사타케씨가 “가죽옷땜에 장사군으로 보였나”하고 혼자말을 했음을 썩후에 남편한테서 들었다.
단순한 일이 복잡해졌고 서로의 정당성을 고집하는 순간이였을가…
역시 일본인은 일본인이 상대해야 되겠다는 첫 인상을 안은 채 일본 본토 땅을 밟은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매사에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가를 하나하나 가르쳐 준 하늘나라에 가신 햐사타케씨가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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